2011년 10월 8일 토요일

[사설]역사교과서의 이념 덧칠에 분노한 역사학계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7일자 사설 '역사교과서의 이념 덧칠에 분노한 역사학계'를 퍼왔습니다.
역사학계가 뿔났다.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근현대사학회 등 한국사 전공자를 망라한 대표적 학회들이 어제 “역사교과서를 정치와 이념 공세로부터 지켜내 객관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형식은 학술토론회였지만 실상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학계의 의견을 무시한 채 역사교육의 방향을 틀어버리려는 몰역사적(沒歷史的) 행태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터무니없는 교육과정 개정 속도전을 밀어붙이며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대폭 축소한 것도 모자라 ‘민주주의’를 정체불명의 ‘자유민주주의’로 무단 변경한 것이 화근이다. 역사학계는 ‘민주주의’의 삭제가 단순한 용어의 문제를 떠나 역사 왜곡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역사학계는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고 개념도 불명확한 자유민주주의 용어로 어떻게 제대로 역사교육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교과부는 자유민주주의가 왜 잘못이냐고 우기지만, 왜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여야 하는지에 대해선 우물쭈물하고 있다. 우리 헌법을 다루는 고교 ‘법과 정치’ 과목 교과과정에서도 다루지 않는 이 용어를 굳이 현대사에 써야 하는 학문적 이유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계는 그 저의를 의심한다. 자유민주주의가 현실 정치에선 반공·반평등·반복지의 이념적 도구로 동원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념 덧칠이 가해진다면 한국현대사의 왜곡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역사교육과정 개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무교양주의’다. 공식 절차를 거친 개정안에 뒷문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밀어넣은 ‘한국현대사학회’는 간판만 학회이지 한국현대사 전공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정파와 다름없다. 물론 현대사가 역사가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현대사에 대해 아무런 학문적 업적도 내놓지 못하면서 역사교과서에 빨간펜을 들고 나서는 것은 역사에 대한 염치도 학자적 양심도 없는 일이다. 이런 정파의 말을 좇은 교과부의 행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역사학계는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고 이념적 편향성을 지닌 용어는 역사교과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역사학계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과서는 학계의 공인을 거친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쓰여져야 옳다. 더구나 역사교과서라면 헌법정신에 부합하고 제도권 교육에서 오랫동안 합의된 개념을 채용함이 마땅하다. ‘민주공화국’을 천명한 헌법정신을 곡해하면서까지 역사교과서에 정치색을 덧칠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문제인 것이다. 교과부는 당장이라도 고시를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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