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9일 수요일

[사설]성희롱 진정했다고 해고된 한 여성노동자의 투쟁


서울 청계광장 인근 여성가족부 앞에서 139일째 천막농성 중인 김순옥씨(가명) 사연은 사내하청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한 김씨는 14년 동안 품질검사 부서에서 일하던 중 회사 간부 2명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하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그러나 회사 측은 “인권위에 진정해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오히려 김씨를 해고했다. 회사와 가해자들은 성희롱과 부당해고에 대해 손해배상하라는 인권위와 노동부의 결정조차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제대로 된 사업장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인권유린이다. 

이 사건에는 직장 내 성희롱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라는 두 문제가 중첩돼 있다. 김씨의 성희롱 사건을 다루는 하청회사와 원청업체인 현대차의 태도는 몰지각을 넘어 적반하장 그 자체다. 회사 측은 처음에는 “그게 성희롱이냐”라고 하다가 인권위의 결정이 나오자 이번에는 문제를 일으켜 회사를 망신시켰다고 주장했다. 현대차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의원들에게 김씨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내용이 담긴 자료를 돌리며 폭력적 대응을 했다. 또 김씨에 대한 해고는 현대차 내 하청업체의 구조적 문제를 폭로하고 있다. 김씨는 부당해고된 뒤 구제신청을 하려 했지만 하청업체는 폐업했다. 폐업하고 다시 문을 연 하청업체에는 성희롱 가해자 등 전 하청업체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회사 문패만 바꿔다는 전형적인 위장폐업 행태다. 현대차는 이번에도 “옛 하청업체는 현대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입사 후 줄곧 원청인 현대차 관리자로부터 작업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대법원 판결대로 김씨에 대한 고용책임을 현대차가 져야 하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 등 비정규직과 여성의 보호는 시대적 과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차별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은 사업자 측에 차별 시정을 권고하는 수준일 뿐 법적인 강제력이 없다. 결국 법적인 강제 없이 사내하청 노동자 보호는 요원하다는 것을 김씨 사건은 시사하고 있다. 지금도 법원과 노동위원회가 각종 판결과 행정조치로 원청업체의 관리 책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원청업체들은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원청업체인 현대차가 해결 주체로 나서 김씨를 복직시키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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