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1일 월요일

후아레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한미FTA’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 2011-10-31일자 기사 '후아레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한미FTA’'를 퍼왔습니다.

서울 석관동에 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연출전공 3학년. 트위터 @mkmodus



황폐한 땅, 연기가 자욱한 거리, 불이 나도 달려오지 않는 소방차, 그 잿더미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그 지옥같은 공기를 뚫고 확성기를 단 자동차가 등장한다. 확성기에는 총장의 오래된 멘트가 증장한다.
후아레즈에서 또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계속되는 살인으로 후아레즈는 공포의 도가니입니다!
여자 시체 3구가 또 발견되었습니다!
후아레즈에서 또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후아레스는 살인으로 인해 공포의 도가니로 물들어 갑니다
제니퍼 로페즈가 열연한 영화 는 이 살벌한 소식을 전하는 신문판매 이동방송차의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하나의 스릴러, 혹은 서스펜스 장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화 서두의 자막을 통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사실’에 근거한 작품이다.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의 결과로 인해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인근 지역에 벌어진 잔혹한 풍경을 어린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살인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하며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많은 관객들을 놀라게 하고 그에 대한 탄압의 논란이 정치권으로 점화하고 있는 공지영 작가 원작의 영화 가 ‘영화’라는 것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떤 숨겨진 진실을 드러낸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이 영화 은 자본주의의 최종적 국면처럼 보이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현실에서 파괴되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NAFTA가 통과된 지 12년 정도가 지난 멕시코는 지금 경제적 파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미 대다수 민중들의 삶은 극빈층으로 추락하고 있으며, 양극화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싸파티스타 원주민들의 저항이 지난 세기말 국제적인 반세계화 운동의 성지가 되었던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NAFTA 통과 이후 멕시코 인근 미국의 국경에는 전세계의 기업들이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멕시코인들의 값싼 노동력과 무관세 혜택을 받음으로써 상품을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미국 곳곳에 물건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킬라도라, 즉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조립/수출하는 멕시코의 외국계 공장들이 1천여 개 밀집된 국경도시 후아레즈에는 3초에 하나씩 TV가 생산되며 7초에 한대씩 컴퓨터가 생산된다. 헌데 이 ‘마킬라도라’는 주로 어린 여성을 고용하는데 저임금과 과다한 노동시간 및 열악한 조건에서도 일을 잘 하기 때문이었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70년대 한국 가발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을 떠올릴 것이다. 일명 ‘공순이’라고 불리며 이들은 70년대 한국의 수출산업의 노동력을 초과적으로 담당했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사실 오늘날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도 많은 수의 여성노동자들이 확대된 유통업계와 제조업계, 그리고 청소나 보육 등 서비스직에서 저임금, 과다 노동 속에 시달리고 있다. NAFTA 이후 만들어진 대부분의 ‘마킬라도라’는 이 여성노동자들에게 24시간 내내 일을 시켰다고 한다. 많은 여성들이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집에 가는 도중에 습격을 받기도 했다. 영화가 다루는 사건은 바로 이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을 향한 심야의 습격에 대한 실화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당장 기어이 한미FTA를 통과시키려는 정부와 여당의 계획을 직면하고 있다. 수년을 끌었던 이 사안은 한미양국의 내부적인 원인과 정치/경제적인 복잡한 관계들로 인해 질질 끌어왔지만 결국 오바마 미국 정부는 속전속결로 한미FTA 비준을 통과시켰고 한국에서의 빠른 국회통과를 원하고 있다. 지난 정권 시기 농민과 노동자들이 보인 무수한 저항들, 그리고 2008년의 광우병 소고기 촛불시위까지 관통해온 이 문제가 결국엔 철저한 무관심과 무기력증 속에서 통과될 위기에 놓여있다. 게다가 민주대연합을 부르짖으며 정권교체의 한길로 달려가고 있는 민주당이 아예 한나라당과 합의해 이것을 통과시키려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조건부 통과라든가 보완사항 마련 등의 빌미를 달고서 말이다. 그러나 이미 철저하게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조항들로 가득해져 오직 가진 자들만을 위한 전략으로 전락한 한미FTA는 결코 통과되어선 안된다.
이미 파탄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가속화시키는, 한미FTA


FTA는 흔히 알려진 대로 단순히 상품이나 서비스의 ‘원활한 거래’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의 관세철폐뿐만 아니라 자본-노동과 같은 생산요소와 서비스의 이동성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까 포괄한다. 상대국인 미국의 기준이나 요구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사회 전반에 도입해 선진경제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하기에 FTA는 그 자체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심화와 파국을 불러올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FTA를 통한 무역과 금융의 자유화는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우선 정부는 금융시장의 개방과 자유화를 통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이것이 한국경제에 성장을 가져오고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997년 이후 외국인 투자는 대부분 단기 차익을 노리는 증권투자이다. 증권투자의 경우 성장유발효과가 극히 제한적인데다 변동성이 커서 경제전반의 위험도를 높이게 될 뿐이다. 직접투자의 경우에도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투자유발효과가 낮아지는 추세다.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을 어느 정도 증가시키지만 자본축적률이 증가하지도 않고, 자본 이동의 불안정성이 커서 오히려 축적률을 저해하기 때문에 장기적 성장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결국 이런 불안정한 노동시장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줄어들며 비정규직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바로 저임금 불안정노동이 양산되고 있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현실이다.
론스타를 떠올려보자. 초국적 투기자본인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매각 과정에서 4조원이 넘는 거액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 한 나라의 국가라면 응당 이런 금융 수탈을 제한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는 도리어 이런 조치를 ‘투자 장벽’으로 분류한다. 한미FTA는 원칙적으로 금융서비스 관련 수량규제를 금지하며, 재벌들의 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금융투자 확대를 용인한다. 따라서 주주에 대한 금융적 이익의 보장이라는 ‘주주자본주의’의 원칙은 결국 노동자들의 임금 억제나 비정규직화,외주 용역의 확산과 하청기업에 대한 도급 단가 삭감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금융화 체제의 이익이라는 것이 민중들에 대한 착취의 강화를 대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은 8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작년 여름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공장의 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화시키지 않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근본적 폐절 없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조금도 나아질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FTA는 재벌 중심의 성장 전략이다. 하기에 국내 제조업, 중공업 공장들의 해외 이전 유인만 양산할 공산이 크다. 기업은 끊임없이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찾는 조직이기 때문에 FTA로 철폐된 투자 자유화 조치는 기업들이 자신의 생산기반을 해외로 이전하는데 치중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일례로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에 거대한 조선소를 지어 영도에서의 수주를 대규모로 이전하고 있는 것을 보라. 이들은 영도조선소의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를 감행하면서 매년 톡톡히 이득을 챙기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는 김진숙이라는 여성 용접노동자가 300여 일이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 메타클래드사는 멕시코 산루이 포토시주에서 폐기물매립장을 운영하려고 계획했다. 이에 포토시주 정부가 해당지역을 자연보존지역으로 설정하자 메탈클래드사는 이를 자신들의 투자에 대한 부당한 침해로 여겨 멕시코정부를 상대로 NAFTA 11장에 의거해 중재를 신청했다. 이에 멕시코정부는 환경규제에 대해 간접수용으로 판결했고, 1.6억달러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이런 일은 이제 한국에서도 발생한다. 작년 3월 여야는 기업형 슈퍼마켓 SSM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개정에 대해 합의하고 있었는데 이에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가 나서서 이것이 한-EU FTA를 위반할 것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이 법개정은 통과되지 못했는데 FTA라는 것이 얼마나 높은 위상을 갖고 민중들의 삶에 대한 갖가지 보호조치들을 폐기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미FTA는 의료나 교육, 그리고 기타 공공서비스 분야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미 대부분 시장화된 공공서비스 영역은 이제 전면적인 시장화/민영화의 파고를 맞이할 것이다. 또 의료부문이나 교육도 전면적인 시장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영리병원 문제를 비롯해 대학자율화라는 미명하에 실시되는 사립대 재단 규제의 철폐, 그리고 서울대 법인화 등의 문제들은 우리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얼마나 파괴될 수 있는지를 반증한다.
이제 우리는 한미FTA가 통과될지도 모른다는 오늘밤 마지막 뉴스를 듣고 잠에 들어야 한다. 아니 어쩌면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은 이미 그것이 통과가 되기 직전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미 저 정치권력들은 국민들의 삶이 파탄이 나건, 한미FTA가 결국 재벌과 초국적 금융자본만을 위한 시스템을 불러올 것이건 간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 대다수에게 관심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저 재벌들과 미국 정부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고 끊임없이 유착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신들이 쥐고 있는 정치권력을 어떻게 ‘존속’시킬 것인가 밖에 없는 것이다. 대체 우리, 평범한 사람들, 몫 없는 자들이 이런 불가역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우리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여의도의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메우는 것 뿐이다! 그리고 저들에게 경고하는 것 뿐이다. “초국적 자본과 재벌들에게 우리의 삶을 팔아넘기지 말라!”고 말이다.
역사의 기관차는 언제나 진보한다고 했던가? 그러나 지금 역사의 기관차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역사의 기관차에 브레이크를 걸고 ‘예외상태’를 선언할 수 있어야만 한다. 오늘 TV 뉴스에 비춰진 여의도 앞 시민들,노동자들,농민들,학생들의 모습이 시끄러웠는지, 저항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을지, 궁금하다. 영화 의 마지막 장면은 어딘지 암울하기 짝이 없는 슬픔가 파괴의 상황 속에서 마무리된다. 우리가 만약 지금 파국이 선고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파탄들을 눈 앞에서 지켜보며 흘려보낸다면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모두가 거리로 나서 “1% 부자들만을 위한” 한미FTA, 자유무역이라는 환상을 걷어내 버린다면 진정한 자유는 바로 그만큼 움직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을 지켜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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