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편법으로 사서 특혜로 키우려 했나


이글은 한겨레21 2011-10-24일자[2011.10.24 제882호] 기사 '편법으로 사서 특혜로 키우려 했나 '를 퍼왔습니다.

» 2002년 7월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서울시청 행사장에 등장해 거스 히딩크 감독과 기념사진을 찍은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아들 시형(맨 왼쪽)씨. 9년 뒤 그 아들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대통령 사저 터를 자신의 이름으로 사들였다. 오마이뉴스 제공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특기다. 애초부터 공과 사의 칸막이 자체가 없었거나, 있었어도 깻잎 한 장 두께였을지 모른다. 2002년 7월3일 서울시장 취임 이틀째.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아들과 양복을 차려입은 사위가 거스 히딩크 감독 옆에 섰다. 그날 오전 서울시 고위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호통을 쳤다는 그는, 오후가 되자 공식 행사장에 와 있던 아들과 사위를 손짓으로 불러 히딩크 감독과 사진 촬영을 하게 했다. 공과 사를 섞는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다.
그 장인에 그 사위인가. 아버지 소유의 한국타이어 임원으로 있는 사위는 “회사까지 빼먹고 왔다”고 했다. 서울시장 취임 사흘째. 북상하는 태풍에 서울시 공무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정작 그는 부인이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한 대학 여성고위지도자과정 하계수련회에 참석해 1시간30분 동안 특강을 했다. 공사 구분 없는 아들 사랑, 아내 사랑은 딸 사랑, 손녀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된 그는 2010년 1월 인도·스위스 순방길에 올랐다. 대통령 특별기에 남몰래 오른 맏딸과 초등학생 손녀의 존재는 사진기자들의 카메라에 모습이 잡히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
아들을 ‘랜드푸어’로 만든 아버지
9년 전 히딩크 감독과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철없던 그 아들이 또다시 아버지의 ‘공사 구분 몰지각’에 동참했다. 아버지는 이명박 대통령, 아들은 이시형씨. 이번에는 단순히 사진 한 장 기념으로 간직하는 정도가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부동산실명제 등 현행법 위반에 서울 강남 금싸라기 땅 편법 상속·증여 의혹, 국고 낭비, 청와대 경호실 경비 전용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1978년생인 이씨는 주로 아버지 주변 사람들의 회사에 다녔다. 1남3녀 중 막내인 이씨는 2008년 7월 이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한국타이어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석 달여 만에 국제영업부서 정식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특혜 채용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이씨는 불과 1년 만인 2009년 11월 갑자기 퇴사했다. 그러던 이씨는 2010년 8월9일 큰아버지(이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씨)가 1대 주주로, 이 대통령의 측근인 강경호 전 코레일 사장이 대표로 있는 (주)다스에 해외영업팀 과장으로 입사한다. 현대·기아차에 시트 등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다스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이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씨가 다스에 입사하자 경북 경주 본사에 있던 해외영업팀이 갑자기 서울로 이전했다. 이씨는 지난 3월 차장으로 승진해 경영기획팀장을 맡고 있다. 그의 취업 경로는 아버지가 입이 부르트게 강조하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이씨의 재산은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다. 이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08년 4월 공직자 재산공개를 하며 신한은행 758만5천원, 대한생명보험 2400만원, 우리은행 497만원 등 모두 3656여만원의 예금과 보험을 이씨의 재산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씨의 재산은 ‘공식적인 감시망’에서 사라진다. 이 대통령이 2009년부터 올해까지 내리 3년 동안 재산공개에서 이씨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독립 생계 유지’가 이유였다. 공무원 재산공개의 모범이 돼야 할 행정부 수반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비판은 더한 것도 많으니 일단 접어두자. 어쨌든 독립적으로 살아서 재산도 공개할 수 없다는 아들이 왜 아버지 대신 대통령 사저 터를 자신의 이름으로, 그것도 청와대 경호처와 공동으로 사들였을까.
지난해 다스는 연결실적 기준으로 6408억원 매출에 15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거래처가 안정적인 알짜 회사에서 차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이씨의 연봉은 보너스 등을 합쳐도 5천만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어머니의 서울 논현동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6억원을 대출받고, 청와대에서 존재조차 확인해주지 않는 친척에게서 차용증을 쓰고 5억2천만원을 빌려 퇴임 뒤 대통령 사저 터를 사들였다고 한다. 청와대는 은행권 대출 6억원의 이자로만 매월 250만원 정도가 이씨의 통장에서 자동이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년에 3천만원의 이자비용이 든다. 여기에 친척 쪽에서 빌렸다는 돈의 이자까지 더하면 ‘봉급쟁이’인 이씨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된다. 대출과 빚으로만 11억2천만원을 만들어 금싸라기 땅을 사들였다가 이자에 허덕이는, 이른바 ‘랜드푸어’가 된 셈이다. 이런 의혹이 제기되자 청와대 쪽은 를 통해 ‘해명’을 바꿨다. 애초 친척 쪽에서 빌린 돈이 5억2천만원이라고 했던 청와대는 “실제 친척에게서 빌린 돈은 6억원인데 아직까지 이자를 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9년 전 히딩크 감독과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철없던 그 아들이 또다시 아버지의 ‘공사 구분 몰지각’에 동참했다. 정치권에서는 부동산실명제 등 현행법 위반에 서울 강남 금싸라기 땅 편법 상속·증여 의혹, 국고 낭비, 청와대 경호실 경비 전용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자 받지 않는 착한 친척은 누구?
이씨는 아버지 대신 땅을 사들이며 상당액의 취득세와 등록세를 냈다. 청와대는 편법 증여 논란에 대해 “이 대통령이 적절한 시점에 이씨에게서 땅을 되사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럴 경우 이 대통령도 또다시 취득세·등록세를 물어야 한다. 이중으로 세금을 내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도소득세나 증여세까지 부과될 수 있다. 뭐가 이리 복잡해야 할까. 이 대통령이 아들을 통하지 않고 전임 대통령처럼 직접 자신이 살 집을 구했다면 간단한 일이었다. 청와대가 내세우는 ‘보안 문제, 땅값 상승 우려’ 등은 아들을 내세우지 않고 청와대 경호처 직원들이 땅을 보러 다녔어도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잡한 거래를 한 이유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복잡한 대목은 또 있다.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온갖 재산 관련 의혹이 터져나오자 당선되면 서울 논현동 자택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재단법인 청계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현재 이 대통령에게는 사저를 따로 지을 여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 지난 3월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이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는 54억9천여만원을 신고했다. 이 가운데 35억8천만원이 논현동 집 평가액, 13억7천만원이 논현동 땅 평가액이었다. 이 대통령은 퇴임 뒤 논현동이 아닌 내곡동에 살게 된다. 그런데 아들을 내세워 사저 터를 사면서 논현동 땅만 담보로 잡아 대출을 받았다. 이 대통령 명의로 된 2층짜리 집(200평)은 담보를 잡히지 않고, 대신 부인 명의의 땅(100평)만 담보로 6억원을 대출받았다. 집과 땅 모두 담보로 잡았다면 현직 대통령이 굳이 친척에게까지 손을 내밀지 않아도, 정치권으로부터 친척과 차용증을 공개하라는 불필요한 공세를 받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6억원을 빌려주고도 반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이자를 받지 않았다는 ‘착한 친척’은 누구일까. 이 대통령 쪽 가계도를 살펴보면 큰형 이상은씨(다스), 둘째형 이상득 의원(사위는 LG가 구본천씨), 사위 조현범씨(한국타이어 부사장) 등이 보인다. 지난해 숨진 처남 김재정씨의 부인도 다스의 대주주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해명을 위해 사저 터 매매계약서까지 야당 의원에 제공한 청와대가 친척과 차용증을 숨기는 것을 보면 실제 친척에게서 돈을 빌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친척에게서 빌리지 않았다면 6억원의 출처는 이번 의혹의 핵심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이씨의 해명을 들어보고자 다스로 전화를 걸었지만 경영기획팀 관계자는 “이번주에 출근했는데 출장을 가서 다음주에나 온다”고 했다.



» 지난 10월11일 민주당 의원들이 내곡동 사저 터 앞에서 주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강남 사람은 강남에 살아야?
지난해 11월25일 국회에서는 이 대통령 퇴임 뒤 경호시설 비용 70억원을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청와대 경호처 최찬묵 차장은 “부지 매입비 기준은 현재 사저를 기준으로 해서 할 수밖에 없다. …현재 사저가 있는 논현동 땅값이 저희들이 알아보니 평균 평당 3500만원 간다. …70억원 정도 소요되지 않느냐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 진영곤 비서관도 “기왕에 가지고 사시던 그 장소 자체가 땅값이 비싼 지역이기 때문에 그걸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거주하도록 하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 논현동 땅값이 비싸니 경호부지 매입비도 많이 든다는 논리였다. “논현동 집은 주변 빌딩에서 다 내려다보여 경호에 부적절하다”는 현재의 경호처 주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여야는 퇴임 뒤 대통령 사저인 ‘논현동’을 기준으로 40억원을 책정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논현동 기준 40억원’이라는 거액을 따내자마자 다른 땅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내곡동 사저 터의 청와대 쪽 중개인은 “지난해 말에 자신을 회사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전화를 해서, 40억~50억원에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는 대지 200평에 전(밭)이 붙어 있는 땅을 구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사무실을 둔 중개인은 ‘강남 땅’ 전문이다. 그는 강남구 수서동 등 6곳을 청와대 쪽에 소개했는데 수서동 쪽 땅에 큰 관심을 보였지만 결국 내곡동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경호처는 국회에 사저 터 변경 사실을 알리지도 않은 채 애초부터 땅값이 비싼 강남 쪽 땅만 염두에 두고 물색한 것이다. 땅을 찾아헤매던 ‘회사 직원’들은 지난 5월25일과 6월20일 ‘대통령 경호처 재무관’ 도장을 매매계약서에 찍었다.
이씨와 경호처는 사저 터와 경호시설 부지를 하나로 묶어 통째로 사들였다. 전체 매입비용 54억원 가운데 이씨가 11억2천만원, 경호처가 42억8천만원을 댔다. 그런데 각자의 매입비용을 땅값 시세와 연동시켜보면 이상한 결과가 나온다. 이씨는 사저 터를 공시지가의 1.3배라는 비교적 싼 가격에 사들인 반면, 경호처는 그린벨트가 대부분인 밭을 공시지가의 4배나 주고 사들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씨는 5억5천만원 정도의 이익을 본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사저 터 논란이 격화하자 이 대통령은 이 땅을 자신의 명의로 ‘뒤늦게’ 돌리기로 했다. 앞으로 사저 터와 경호시설 부지의 지적 분할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투자한 11억2천만원을 넘는 이익은 고스란히 이 대통령 본인의 이익이 된다. 이 대통령이 특혜의 당사자가 되는 셈이다.
애초 땅 주인은 사저 터와 함께 매매 가능성이 별로 없는 그린벨트 부지까지 한꺼번에 팔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에게 큰 이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 혼자 사들일 수 있는 땅은 기껏해야 11억원어치 정도였지만, 땅 주인은 사저 터만 쪼개서 팔지 않았다. 11억원만으로는 현재의 내곡동 땅은 절대 사들이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호시설 부지를 굳이 사저 터와 함께 구하겠다며 나랏돈 42억8천만원이 ‘공동 투자’되면서 개발 여력이 충분한 곳에 자리한 금싸라기 땅을 사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손 안 대고 코 풀기다.
이 대통령 혼자 사들일 수 있는 땅은 기껏해야 11억원어치 정도였지만, 땅 주인은 사저 터만 쪼개서 팔지 않았다. 그러나 경호시설 부지를 굳이 사저 터와 함께 구하겠다며 나랏돈 42억8천만원이 ‘공동 투자’되면서 개발 여력이 충분한 곳에 자리한 금싸라기 땅을 사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손 안 대고 코 풀기다.
궁금한 아들의 호주머니
내곡동 사저 터는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6년 그린벨트가 해제되며 ‘1종 전용주거지역’으로 지정됐다. 지난해 3월에는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용적률이 높아지면 땅값이 크게 오르는 등 개발 압박이 커진다. 사저 예정지 바로 옆에는 2013년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선다. 인근에는 1993년 첫 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이상득 의원이 10억원이 넘는 땅을 2억2천만원에 신고했다 홍역을 치렀던 내곡동 땅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청은 테니스 동호인도 많지 않은 인구 6천여 명의 내곡동에 갑자기 테니스장을 짓기로 했다. ‘황제 테니스’로 유명한 이 대통령의 사저 예정지에서 1.5km 떨어진 곳이다.
중요한 것은 도곡동 땅도, 다스도 모두 자기 것이 아니라고 했던 이 대통령으로서는 아들에게 물려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4년 가까이 재산공개를 하지 않은 아들 이씨. 이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내년에는 아들의 재산을 고지할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들의 호주머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어쨌든 이 대통령은 내곡동을 ‘점령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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