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9일 수요일

[사설] 검찰, SLS 사건에서만은 ‘꼬리자르기 수사’ 없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18일자 사설 '검찰, SLS 사건에서만은 ‘꼬리자르기 수사’ 없어야'를 퍼왔습니다.
이국철 에스엘에스(SLS)그룹 회장 폭로 사건이 묘하게 돌아간다. 엊그제 이 회장과 신재민 전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대상으로 각각 청구한 구속영장 내용을 보면 검찰이 이 회장을 주 타깃으로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신 전 차관에게는 검찰 스스로 영장 발부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반면 이 회장에게는 9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횡령 혐의와 12억달러 사기 혐의, 신 전 차관에 대한 뇌물공여, 명예훼손 등 4가지를 적용했다.
검찰은 일단 이 회장의 신병을 확보해놓아야 수사가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이 진실을 덮기 위해 영장을 청구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는 데서 보듯이 검찰 의도대로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이 회장의 입만 봉쇄하는 결과가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자칫 사건의 본말이 뒤바뀌어 정권 실세들의 비리 의혹은 사라지고 이 회장 개인 비리로 막을 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이 회장이 직접 주장하거나 주변에서 흘러나온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수백만원대 향응 수수 의혹,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를 상대로 한 금품 로비의혹은 이 회장이 비망록 등을 통해 이미 폭로한 바 있다. 특히 2009년 창원지검의 에스엘에스그룹 수사 당시 정권 최고 실세의 측근들이 회사를 찾아주겠다며 접근해 거액을 받아갔다는 주장은 이번 사건의 핵심 의혹이라고 할 만하다. 이 회장이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에스엘에스 기획수사설의 진위도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그러나 검찰과 이 회장의 숨바꼭질 속에 이런 핵심 의혹들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검찰이 이를 파헤칠 의지를 갖고 있다면 이 회장의 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검찰은 그동안 정권의 최고위 실세가 거론되는 사건마다 하나같이 핵심을 비켜갔다. 이번에야말로 꼬리자르기식 수사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이 회장도 “구속되면 비망록을 두 달에 한 권씩 공개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정당당하게 모든 자료를 내놓고 국민에게 호소할 때만이 진정성을 인정받고 나아가 검찰의 성역없는 수사도 이끌어낼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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