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기독교, 이제 ‘천당 지옥’ 놀음은 그만 둬라!


이글은 대자보 2011-10-23일자 기사 '기독교, 이제 ‘천당 지옥’ 놀음은 그만 둬라!'를 퍼왔습니다.
① 기독교의 인격신, 고작 환상에 불과한 것 아닌가

“어떤 의견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해서, 곧 그 의견이 전적으로 엉터리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버트런드 러셀, 1872~1970, ‘기독교 윤리학’ 중에서)

“조직화된 종교는 수적인 우세가 필요한 마음약한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속임수이며 버팀목이다. 종교는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라고 말한다.” (제시 벤추라, 1951~ , 프로레슬러 및 전 미네소타 주지사)

“종교는 환상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1856~1939)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로버트 퍼시그,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 재인용)

“만약 신에게 이야기를 건넨다면 당신은 기도하고 있는 것이고, 신이 당신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당신은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는 것이다.” (토머스 사스, 1920~ , 정신과 의사, ‘두 번째 죄’ 중에서)

“개는 자신의 주인을 신으로 여긴다.” (다윈, 1809~1882, ‘인간의 유래’ 중에서)

(정언 생각) 어느 때 어느 곳에서건 대다수가 따르는 의견을 감히 허구라고 내칠 만큼, 독립적인 자유정신을 갖춘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특히 기독교가 절대 요구하는 무조건적 복종의 관점에서, 신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주인에 대한 개의 태도는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신은 그 실체가 없는 ‘추상명사’에 불과하나, 인간은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보통명사’라는 점이다.

② 기독교, 이제 ‘천당 지옥’ 놀음은 그만 둬라!

“평화롭게 그들은 죽을 것이다. 평화롭게 그들은 당신의 이름으로 사라질 것이다. 무덤 너머에서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죽음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밀을 지킬 것이다. 그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는 천국의 영원한 보상을 미끼로 그들을 꾀어 들일 것이다.” (종교재판소장,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나는 지금껏 내세에 대한 티끌만한 증거도 본적이 없다.” (마크 트웨인, 1835~1910)

“나는 천국과 지옥, 각 개인들의 내세나 인격신이라는 종교이론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를 조금이라도 본 적이 없다.” (토머스 에디슨, 1847~1931)

“나는 자신의 피조물에게 상벌을 가하거나 우리 자신과 똑같은 의지를 소유하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또한 육체적인 죽음을 뛰어넘어 부활하는 인간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나약한 영혼들이 공포와 부조리한 이기심에 사로잡혀 그런 생각에 집착한다. 나는 …… 현존하는 세계의 경이로운 구조를 언뜻 보는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성의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나의 모든 노력을 바치는 것에 만족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1879~1955)

“사망자들(9.11 테러 희생자들)이 모두 낙원에 있으므로, 이승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해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빌리 그레이엄, 1918~ , ‘9.11 희생자’ 추모예배 중에서)

(정언생각) 어느 살인강도가 끈질기게 기회를 노리다 마침내 당신에게 접근한다. 당신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며 ‘돈을 내놓을래, 아니면 목숨을 내놓을래?’ 협박한다. 당신은 그 총잡이가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었기 때문에, 배심원들이 그한테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게 당신의 자유의지에 전적으로 달린 문제일 것으로 생각하나.

좋다! 당신의 돈을 다 빼앗고서도 그는 여전히 당신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위치에 있다. 설혹 그가 이번만큼은 당신을 살려주기로 결정했다 쳐도, 그걸 갖고서 그자가 찬양과 숭배를 받아 마땅한 일인가. 그는 단지 요청한 적도 없고 원치도 않았던 협박을 스스로 거두어들였던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 인간이 원하지도 요구한 적도 없는데, 자칭 신이라는 자가 제멋대로 부과한 불구덩이 고문 속에서 고작 몇몇 인간을 구해낸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자비롭다’고 칭송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오늘의 기독교, 더 이상 “천당 갈래, 지옥 갈래” 하는 식의 양자택일적 협박작태는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그것은 문명 이래 지속된 권력형 공갈협박이었고 오늘도 계속되는 축재형 사기행각일 뿐이다. 진실은, 신이 저지른 중대한 실수 중 하나가 인간을 만든 일이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 중 하나가 신을 발명한 일이었을 뿐이다.

신도, 그리고 천당도 지옥도 신이 아닌 인간이 창조한 추상명사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용이라는 명사가 실제로 쓰인다고 해서, 용이라는 동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로버트 잉거솔이 잘 지적했듯이, 지옥이라는 신화는 “인간이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모든 비열함, 모든 복수심, 모든 잔인함, 모든 증오, 모든 파렴치함들”을 투사하는 것이다. 설혹 그게 신이건, 사랑이나 아니면 정의건 모든 추상명사는 역시 인간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창조된 것들일 뿐이다.

오늘 21세기에 여전히 정신적 도착상태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아마도 그들이 예배 중 가장 많이 인용했을 법한 성경 구절(이사야서 45장 9절)이다. 주석 한두 마디만 괄호로 덧붙여 그대로 되돌려준다.

“지은 것 중에 제일 하찮고 못된 것(인격신)에 지나지 않으면서 자기를 지은 이(인간)와 다투는 자에게는 화가 닥칠 것이다. 진흙(인격신)이 토기장이(인간)에게 ‘너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하고 말할 수 있는 거냐?”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개방과 통합 (연) 소장으로서 양극화 해소에 관심이 많으며, 평생 화두로 삼고 있는 주제는‘사람과 경제 그리고 역사’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