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6일 일요일

"명품 다큐 찍는 대신 '언론의 4대강' 막겠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10-14일자 기사 '"명품 다큐 찍는 대신 '언론의 4대강' 막겠다"'를 퍼왔습니다.
지난해 KBS 새노조(언론노조 KBS본부) 파업 현장에서 만난 그는 연실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파업을 좋아하는 강성이어서? 입이 있어도 열 수 없었던 입이 뚫려서! 그랬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낙하산 사장이 내려와 유수의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폐지되고 망가져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KBS였다. 그곳에서 'KBS를 살리겠다'고 새 노조 조합원들이 일어섰던 게다.

당시 그는 20년 가까이 시사교양 PD로 누비던 현장이 아닌 수원연수원에 있었다. 2008년 9월, 비판적인 사원들에 대해 사측이 '피의 숙청'을 단행했을 때 그도 좌천됐다. 프로그램을 2년 넘게 만들지 못했던 그가 올해 3월, 다시 "앞으로 2년 동안 PD로서의 이강택은 없다"고 선언했다. 1만5천 언론노동자들의 맨 앞에 나선 이강택(49)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다.

'겸연쩍다.' 이 위원장이 지난 7월, 조합원들에게 보낸 편지에 썼던 표현이다. "굶을 놈들을 굶게 하지, 절대 먼저 굶지는 않겠다"고 말했던 그가 취임 3개월 만에 단식을 했다. 구호로 내걸었던 '6월 내 미디어렙법 입법'도 관철시키지 못한 상황이 그는 겸연쩍다고 했지만 위원장이 먼저 투쟁의 테이프를 끊자 언론노조도 투쟁의 고삐를 당겼다. 그 힘은 8월 23일 언론노조 총파업 돌입으로 모아졌다.

9월 16일, 취임 6개월을 넘긴 이강택 위원장을 만났다. 위원장으로서 언론노조를 거론할 때는 의연했고, '쟁이'로서 PD 이야기를 할 때는 반짝였다.


▲ 등 명품다큐로 유명한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 ⓒ 노동세상

PD에서 위원장으로, 6개월 걸렸다

- 취임 때 단식 안 한다고 하더니 3개월 만에 바로 단식을 했다.
"그러게 말이다.(웃음) 배고픈 걸 못 참는 편인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그렇게 만들더라. 조직이 정돈되기도 전인데 KBS 수신료 인상이 추진되고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법 논의가 흐지부지되는 상황에서 위원장이라도 뭔가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 '대반격의 시대를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취임 반년이 지났는데 어느 정도 반격을 했다고 보나.
"이 정도로 반격이라고 했겠나?(웃음) 이제 반격을 시작할 여건이 성숙되고 있다. 언론노조가 이 정권 들어서만 3번 이상의 파업을 하면서 후유증도 상당했다. 우선 조합원들과 골간조직들로 하여금 '다시 싸울 수 있다,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분위기와 마음을 모아내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흐트러진 산별의 체계들을 다시 세우고 응집력을 갖추는 데 6개월을 소비했다.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부터는 반격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 이번 정부 들어서만 4번째인 8월 총파업을 준비하면서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충분히 준비된 파업은 아니었다. 또 고전적 의미에서의 총파업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총력투쟁에 가까웠다고 볼 수도 있다. 준비가 부족해 망설이기도 했지만 별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집행부가 결의와 의지를 갖고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는 이른바 언론장악이라고 표현되는 갖가지 검열장치, 인사상의 배제, 징계, 유배 등의 정치적 억압들을 해왔다면, 여기에 (종편의 광고 직접영업 등으로 인한) 자본의 억압이라는 악몽 같은 미래가 결합되는 시점이 다가온 거다. 사상 초유의 두 가지 압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뭔가 분수령을 만들어내야 했다. 분명한 저항의 선들을 긋지 않으면, 자칫 전부 다 휩쓸려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급함이 있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 예전과 같은 방송파행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반 시민들에겐 언론노조의 총파업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현재는 방송 파행까지 가는 고전적 의미의 파업이 어렵다. 1990년대 이후 외주제작이 계속 늘어나서 각 분야의 외주제작 비율이 절반에 가깝고 드라마는 훨씬 더 높다. 조합원들이 파업을 해도 일부 비조합원과 간부들을 투입하고 외주제작사들이 붙으면 업무 공백을 메울 수 있다. 한 달 이상 파업을 끌지 않으면 티도 안 난다.

또한 합법파업도 쉽지가 않다. 현재 노동법은 임단협 관련 사안만 합법파업으로 인정하는데 알다시피 언론노조의 파업 사안은 거의가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사안들이다. 그러다보니 엄청난 위험을 각오하면서 한 달 이상 가는 파업을 조직할 수 있겠나? 쉽지 않다. 그래서 대조합원, 대국민 선전활동으로 미디어렙법에 대한 여론을 만들어내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 언론노조 내에선 지난 총파업의 투쟁성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미흡하긴 했지만 언론노조 내부에서는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파업에 들어가면서 목표로 삼았던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 파업을 통해서 조합원들의 단결과 의식을 고취할 수 있으면 우리는 승리한다'였다. 이 부분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 조합원들이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그렇기 때문에 10월에 2차 투쟁까지 계획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두 번째는 '대국민 홍보를 잘해서 여론전에서 성과를 거두자'였다. 파업 이후 시민들이 이제 미디어렙이나 종편(종합편성채널)이란 단어에 익숙해졌고 미디어렙법이 이슈로서 시민권을 얻었다고 본다.

세 번째는 미디어렙법 법제화였다. 이건 지난한 작업인 것은 맞다. 어쨌든 민주당으로 하여금 이 사안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갖게 만든 성과가 있었다. 또 꿈쩍도 안할 것 같던 한나라당을 논의테이블에 앉혔다(인터뷰 전, 이강택 위원장은 국회에 들어가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고 왔다고 했다. 인터뷰 전날인 9월 15일, 언론노조는 미디어렙법 입법 논의를 지연시키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 위원장은 그 의원이 '간밤에 잠을 못 잤다'고 했다면서 변화된 분위기를 전했다).

한나라당이 현재 조중동에 편승해 미디어렙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지만 내년에 총선이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둘 중 어디가 중요한가를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 명줄을 보전하는 데 조중동 매체에 의존하는 것이 더 장애가 된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 "KBS라고 전부 거부하지는 말고 인터뷰를 요청하면 언론노조에 전화를 좀 해달라." ⓒ 노동세상

"KBS라고 다 거부 말고 언론노조로 전화 달라"

이강택 위원장은 '명품' 다큐멘터리로도 유명하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의 10년 후를 점쳐볼 수 있는 ( 2006년 6월 4일), 보다 먼저 광우병 공포를 알렸던 ( 2006년 10월 29일),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PD로서 전성기가 언제였나?"는 질문에 '2006년 전후'라는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의외로 그의 답은 '1990년대 후반'이었다.

"KBS에 3대 스페셜이 있어요. . 그걸 다 하기 힘든데 제가 다 했어요."

PD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방송으로 구제역을 처음 소개한 것도 자신이라고 그가 자랑한다. 그렇다면 그가 PD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꼈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1998년, 그는 의 편을 통해 공중파에서 비전향장기수를 처음으로 다루었다. 그 방송으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언론상을 타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 잊을 수 없는 사연이 있단다.

"그때 2개 꼭지를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조작간첩사건에 대한 거였습니다. 방송 제작 과정에서 추가로 증거를 찾아서 조작인 걸 밝혀내기도 했어요. 그분이 그해 8월에 특사로 나오셨어요. 박동운 선생이라고. 그분이 출소하고 저를 찾아오셔서는 '이 PD 때문에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PD가 아들을 찾아줬다'고 하면서 손을 잡고 우셨어요. 유복자처럼 자란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방송을 보고 '아버지를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얘기했다는 겁니다. 이후에도 보람을 느낄 때는 많았는데 그때가 PD로서 가장 명예로웠어요."

그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힌다. 여전히 감동이 그의 가슴에 살아있는 듯하다. 그렇게 다른 무엇보다 긍지로 살아가는 언론인들이 요즘은 '정권의 나팔수'라고 시민들한테 외면받기 일쑤다. 이 위원장은 그게 가장 안타깝다.

- 얼마 전 제주 강정마을에 갔다가 의 인터뷰 요청을 마을 부녀회장님이 거부하는 걸 봤다. KBS 출신으로서 KBS가 시민들에게 외면받는 데 대한 아픔도 있을 텐데….
"국민들이 너는 언론인이 아니라고 낙인 찍는 것이다. 그것처럼 치욕스러운 게 있을까. 자신의 사회적 소명이 타인, 그것도 방송의 주인인 시민들에 의해 근원적으로 부인당하는 것인데. 이건 정말 참혹한 거다. 그런데 최소한의 선별은 해주셨으면 좋겠다. KBS라고 전부 거부하지는 말고 인터뷰를 요청하면 언론노조에 전화를 좀 해 달라.(웃음) 담당 PD나 기자 이름을 알려주고 '믿어도 될까요?'라고 한번 확인을 해주시면 고맙겠다. 우리는 대번에 식별이 가능하니까. 아닌 사람들한테는 확실하게 교훈을 주시고…."

- 위원장 당선 시 언론노조 내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관련해서 어떤 계획들을 하고 있나.
"일례로 언론노조 산하에 제작단을 만들려고 한다. 언제부턴가 한미FTA에 대해 단편적인 보도만 나오고 있는데 그처럼 기존 공중파 등에서 다루지 못하는 문제들을 직접 우리가 만들어서 의제화시킬 계획이다. 이미 작업 중이고 곧 공개가 될 거다.

최근 우리 조합원들이 4대강 문제나 쌍용차, 한진중공업 등의 사안에 대한 시사교양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이전에는 그런 걸 만들려고 하면 쟤네들이 다 자르지 않았나. 자르고 다 유배 보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조합원들이 다시 힘을 내서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그런 방송들을 몇몇이 아니라 모두가 동시에 내서 압박도 더 강화하고 저들이 누구를 선별할 수도 없게 만드는 작업들을 벌여내려고 한다."

▲ 이강택 위원장은 조중동매 종편은 '제2의 언론통폐합'과 같다면서 "이전에 전두환은 총칼을 들고서 했다면, 지금은 의회내에서의 다수권력, 그걸 통해 바꾼 법, 온갖 편법들을 동원해서 언론 통폐합을 하는 거다. 조중동 종편은 언론의 4대강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 노동세상

조중동매 종편은 '언론의 4대강'

- 조중동매 종합편성채널(종편)의 광고 직접 영업이 미디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지.
"조중동 신문은 무가지, 자전거, 비데와 같은 경품 증정 등 시장에서의 불공정 경쟁을 통해 점유율을 높이고, 그럼으로써 광고단가를 세게 받고, 다른 매체를 위축시키면서 독점화해왔다. 똑같은 일을 방송에서도 벌이려고 하는 거다. 방송이 사회적 영향력도 크고 공적인 성격도 강해서 대행사를 통해서 해왔던 광고영업을 조중동매 종편이 직접 하게 된다면 저들한테 광고가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많이 갈 것이다. 논조는 그들의 지향이니까 그대로 가는 거고.

결국은 MBC, SBS, 종교방송, 지역방송, , 등에 나눠졌던 광고들이 조중동매 종편으로 몰려갈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매체들은 생존의 위협에 빠진다는 얘기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광고 수익이 줄었는데 임금이 오르겠나. 오히려 임금이 깎이고 구조조정에 들어갈 거다. 그렇게 되면 진실? 돈 많이 드는 걸 하겠나. 조중동매가 커지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다른 데도 위축이 돼서 조중동매를 따라가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보도기능이 상실되는 거다.

그렇게 미디어계 전반이 광고주들한테 목줄이 죄이는 형태로 변할 것이다. 그러면 조중동신문 파업 관련 기사에 노동자들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런 방송이 더 생기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자본의 입장에선 없다. 정말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다. 나는 '제2의 언론통폐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전에 전두환은 총칼을 들고서 했다면, 지금은 의회내에서의 다수권력, 그걸 통해 바꾼 법, 온갖 편법들을 동원해서 언론 통폐합을 하는 거다. 조중동 종편은 '언론의 4대강'인 셈이다."

- 조중동매 종편 방송이 시작되면 불참여, 불시청, 불매 등 3불운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현재 지상파의 유명 PD들이 대거 종편으로 옮기고 유명 방송작가들의 드라마들이 종편의 개국방송으로 라인업돼 있는 상황인데 3불운동 성공할 수 있을까.
"저들도 일종의 생산요소들을 구매해서 장착하는 과정이다. 또 그 자체가 저들의 선전포인트, 장식물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이 일정한 효과는 있겠지만 그것에서 승부가 난다고 보지는 않는다. 사실은 기존의 매체나 공중파에서 제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그렇게 많은 인력유출이 없었을 거다. 저들이 그런 이쪽의 취약점을 잘 활용하고, 동시에 돈이라는 걸로 유인해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게다.

그래서 저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문제점을 밝히고 그에 대한 감시체제를 제대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많은 부분이 가려지기 때문에 3불운동 힘들 수도 있다. 또 기존의 언론들이 저들이 만든 것과 명확하게 차별화되지 않는다면, '그거나 그거나'가 된다면 (쉽지 않을 거다).

중요한 것은 조중동매 종편과 분명히 차별화되는 품질과 품위, 철학들이 구현되고 내부에서도 자율성 등이 늘어나서 기존 방송사 종사자들도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중요하다. 강호동, 노희경 같은 유명 MC나 방송작가들한테도 거기 가서 사적인 이익집단에 봉사하느니 여기 분위기 좋은 데서 명예롭게 일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존 언론들이 그런 부분들에 대한 경계들을 못 짓고 있는 게 문제다. 다른 공중파들이나 상대적으로 건강한 매체들이 본연의 모습들을 찾아간다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 이명박 정부 하에서 기존 언론의 제 모습 찾기가 만만찮을 텐데….
"우리가 이명박 정권이나 자본, 낙하산 사장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들은 한통속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종편에 몰아주고 이쪽을 와해시키고 있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이건 우리 언론노동자가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래서 우리가 내거는 모토가 '공정방송의 복원'인 거다. 지금 그걸 우리 힘으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10대 요구 중 첫 번째가 낙하산 사장 퇴출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들과 정면승부를 벌이자는 거다."

그는 퇴임 때, "취임 때 내세웠던 많은 공약들, '저 중에 얼마나 가능할까?' 싶었을 것들을 대부분 가능하게 한 위원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또한 현업으로 복귀하면 "세계경제의 위기, 자본주의, 시장, 뉴라이트 계보의 뿌리 등을 리얼하고 낱낱이 파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퇴임할 2013년 3월 이후, "현장이 가지는 역동성이 항상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고 했던 20년차 PD 이강택은 어느 현장에 있을까. 자못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10월호 기사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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