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7일 월요일

“SOFA 현행규정 개선? ‘국면회피’로 가선 안 된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1-10-17일자 기사 '“SOFA 현행규정 개선? ‘국면회피’로 가선 안 된다”'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

“정부가 한미SOFA 개정이 아니라 현행 규정이나 운영방안을 개선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는다고 하는데, ‘국면 회피용’으로 지나가버릴 것 같아 걱정이다. 과거에도 여러 번 그런 수법으로 본질을 희석했었다. 이런 식으로는 불평등한 SOFA의 문제점을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교수는 국제법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이슈와는 유독 인연이 깊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나 SOFA개정국민행동본부 등 시민단체에 몸담으며 SOFA 개정을 위해 노력해왔고, 1991년과 2001년 두 차례 개정 협상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다.

최근 주한미군의 엽기적 성범죄가 잇따르자 정부가 여느 때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나서고 있다.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통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현행 SOFA를 점검해 미국 측에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한미SOFA의 개정보다 현행 규정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현재 규정상 한국이 재판권을 갖는 경우 범죄인 신병인도 시점은 ‘기소 이후’로 돼있지만, 합의의사록이나 양해사항에 ‘미국은 재판전 구금을 요청 받으면 충분히 고려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으니, 초동수사 단계에서 관련한 부분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장희 교수는 이 같은 정부의 방안에 회의적이다. 국민 여론이 악화하니까 국면회피용으로 꺼낸 대책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현행 SOFA에서 형사관할권 문제 등 불평등한 규정은 무엇이 있는지, 또 우리에게 다소 유리하게 바뀐 규정조차 왜 현실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아왔는지 조목조목 짚으면서 한미SOFA ‘개선’이 아니라 ‘개정’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이 교수는 1966년, 1991년, 2001년 협정의 내용이 바뀌어온 역사적인 과정은 물론이고 일본, NATO 등 타국의 사례와도 비교하면서 한미SOFA가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기 쉽게 이야기했다.

아래는 이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현행 SOFA의 형사관할권의 문제점을 조항별로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아래 이장희 교수 기고글을 참조하면 된다.'2001년 개정된 SOFA의 형사관할권의 문제점']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

-최근 미군의 성폭행 사건이 잇따르고 이태원살인사건의 범인이 미국에서 검거되는 일까지 이어지면서 한미SOFA 개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미SOFA의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53년 전쟁이 끝난 후 평시가 됐지만 미군이 산에서 나무 하는 한국 사냥꾼을 사격연습 삼아 총을 쏘고, 동두천 등 유흥가에서 술 마신 다음 마을 전체에 석유를 뿌려서 불을 지르는 등 범죄가 대단히 많았다. 그러자 당대 지식인들이 ‘사상계’라는 잡지를 중심으로 불평등한 ‘대전협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해서 1966년(7월 9일) 처음으로 한미행정협정이 맺어졌다. 

그 때까지 주한미군의 지위 등을 규정한 게 ‘대전협정(재한미국군대의 관할권에 관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협정, 1950년 7월 12일)’으로 전시 중에 체결된 것이라 민사청구권 규정이 안 돼 있고 형사관할권만 규정된 협정인데, 100% 미군에 재판권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설명을 하자면 보통 군대를 보낸 나라(파견국)과 받은 나라(접수국) 중 관할권을 누가 행사하느냐에 있어 세 가지 이론이 있다. 접수국이 형사관할권을 행사한다는 ‘접수국 관할설’과 공무 중 일어나는 범죄만 파견국이 관할권을 행사하고 그 외 범죄는 접수국이 관할권을 가진다는 ‘절충설’이 있고, 끝으로 우리 ‘대전협정’처럼 가장 후진적인 것으로 파견국이 100% 가진다는 ‘파견국 관할설’이 있다. 

대개 절충설을 택하고 있는데 이 경우 ‘공무냐 아니냐’, ‘누가 공무증을 발행하고, 누가 공무 여부를 판단하느냐’ 이게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훈련 중 쉬는 시간에 나와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훈련의 연장으로 볼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 유명한 게 1957년 일본의 ‘지라드(Girad) 사건’이다. 당시 전쟁이 끝나고 탄피를 주워 생활하던 한 일본 여성이 부대 안에 있는 탄피를 주우려고 펜스를 넘어 들어갔다. 부대 안은 점심시간이었는데, 미군이 몇 번 경고한 후 사격해서 이 여성이 죽었다. 이를 두고 일본과 미국이 서로 형사관할권을 주장했는데 논점은 휴식시간이었는지, 공무 중이었는지였다. 결국 미국 대법원까지 가서 일본이 재판권을 행사하게 됐던 사례다.

다시 얘기를 돌아가 보면, 1966년 협정이 미일협정이나 NATO협정과 외형은 비슷하지만, 알맹이에는 독소조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본협정, 합의의사록, 양해서, 교환각서 네 가지로 돼있는데 가장 문제가 많은 게 합의의사록이다. 본협정에서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규정이 있어도 합의의사록에서 상당히 왜곡되는 부분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가 범죄인 신병인도 시점이다. 이는 2001년까지 계속됐는데, ‘재판이 완료된 후’ 신병인도가 가능하게 돼있었다. 두 번째가 자동포기조항이다. 우리에게 1차적 관할권이 있는 경우에도 15일 안에 서면으로 통고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재판권이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거의 형사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했었다.

-1991년과 2001년 SOFA 개정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1991년 처음으로 SOFA가 개정됐는데 이때의 성과라면 자동포기조항이 없어진 것이다. 또 우리가 1차적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죄가 확대됐다는 것, 또 공무 증명서를 발부하는 주체가 우리에게 조금 유리하게 됐다는 것 정도다. 

그런데 1991년 개정 후 1992년 윤금이씨 사건, 1997년 이태원 살인사건 등 굉장히 많은 미군범죄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저도 참여했지만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나 SOFA개정국민행동본부 등 시민사회의 SOFA개정 목소리가 거세졌다.

그렇게 해서 2001년 두 번째로 SOFA개정이 이뤄졌다. 이 때 바뀐 게 범죄인 신병인도 시점을 기소 이후로 앞당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기소 후 신병을 인도받으려면 '한국이 1차적 재판권을 가질 것', '구금을 필요로 하기에 충분한 중대성을 지니는 살인.강간 등 12개 범죄로 한정' 등 4가지 까다로운 전제조건이 달려있다. 이로 인해 미국이 시비 걸면 언제든 발뺌할 수 있다. 미일SOFA나 NATO SOFA는 이런 전제조건이 아예 없다.

이게 어떤 문제점이 있냐. 기소 이전에는 미국 관리의 입회 없이는 조사를 해도 법적으로 인정을 못 받고, 이로 인해 접견해서 초동수사 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돼있고, 기소 이후에는 소위 신문금지, 즉 재판부에서 판사가 물어보는 것 외에 수사관이 수사 목적으로 신문을 못하게 돼있다. 그러니까 기소 전에는 제대로 조사를 못 하고 기소 후에는 신문을 못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법당국의 조사, 수사권을 상당히 제약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미군성폭행 사건도 그렇지 않나. 고시텔에 따라가서 상당히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렀는데 현행범이 아니라고 구금을 하지 못하다 보니 제대로 초동수사를 하지 못하지 않았나. 경찰이 조사를 하고난 다음 송치할 때 불구속 의견을 첨부한 것도 말이 안 된다.

-SOFA 상 미군 측에 유리하게 돼있는 요소가 많다보니, 이런 부분이 악용되는 것 같다. 미군 숫자는 줄어드는데 범죄는 오히려 느는 추세라고 한다.

=한미SOFA의 형사관할권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와 미국의 ‘법문화’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형사관할권에 있어 영미법적 법문화와 대륙법적 법문화를 이야기한다. 형사소송의 목적 중 한 축은 피고인의 인권 보장이고, 다른 한 축은 실체적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다. 이 중 영미법은 범죄인을 놓쳐도 좋으니 인권 보장 쪽에 관심을 둔다면, 우리와 같은 대륙법 쪽은 범죄인을 잡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런데 한미SOFA는 2001년 개정 때도 우리 법문화가 반영이 안 되고, 지나치게 영미법적 요소가 들어가서 피고인의 인권 보장 부분에서 미군 쪽에 특혜를 주는 내용이 지나치게 많이 담겼다. 그러다보니 우리 경찰이나 사법당국의 조사, 수사권을 제약해놓은 요소가 너무 많다. 이 부분이 왜곡돼 미군들 사이에서 범죄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미군이 3만5천명에서 2만8천명으로 숫자가 줄었는데 범죄는 왜 줄지 않고 오히려 늘까. 우선 미군 병사들에 대해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적응교육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 받는다’는 한미SOFA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되는 거다. 또 SOFA 규정이 실제 운영에서 솜방망이처럼 되다보니 자기들끼리 ‘한국에서 적당히 풀어주더라, 영내에만 들어오면 얼마 있으면 해결된다, 술 먹고 장난 좀 쳐도 문제 없더라’는 식의 인식이 자리잡게 된다.

-정부는 SOFA 개정보다 현행 규정을 활용하고 운영방안을 개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한다.

=1991년과 2001년 두 차례 협상 과정에서 직접 현장도 보고 시민단체 대표로 정부와 대화도 많이 했다. 2001년 개정의 경우 1995년 시작해 11번이나 협상을 거쳤다. 1953년의 경우에도 1966년까지 10년 넘게 걸렸다. 지금 개정한다 해도 넉넉하게 10년은 잡아야 할 것 같다. 그만큼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SOFA 개정이 아니라 현재의 운영규정이나 방안을 개선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는다고 하니, 이러다 SOFA 개정이 물 건너가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이번에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렸는데, 거기서 얘기하는 게 합동위원회 운영방안을 개선하자, 현재 있는 조항을 개선하자, 이런 건데 나는 이런 부분이 ‘국면 회피용’으로 지나가버릴 것 같아 걱정이다. 과거에도 여러 번 그런 수법으로 본질을 희석했었다. 이런 식으로는 불평등한 SOFA의 문제점을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합동위 운영방안을 개선한다고 하면, 예를 들어 예비조사 개선방안이 있다. 범죄인을 우리 쪽에서 부르면 한 시간 안에 미국 입회자와 오도록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게 구속력도 없고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본협정에 구속력 있는 규정을 넣어야 한다. 

한미합동위원회를 개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고쳐도 소용이 없다. 결정 자체의 구속력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미국 쪽 주장은 구속력이 있고 우리가 원하는 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다. 현 규정도 잘 개선해서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이 원하는 것만 그렇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합동위원회가 비밀로, 밀실협정으로 돼선 안 된다. 회의를 공개하고 합동위 분과위원회에 피해자 대표가 반드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
-정부는 신병인도 시점 등 한미SOFA 규정이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얘기하는데.

=정부는 우리 SOFA 규정이 다른 나라보다 나쁘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우리는 원칙이나 외형은 다른 나라와 비슷한데 독소조항으로 인해 실질적인 조사권.수사권, 그러니까 우리의 사법주권을 제약하는 요소가 많이 있다. 그 점을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도 신병 인도를 기소 이후에 한다지만, 그 나라에도 피고인 신문 금지 규정이 있나? 없다. 

또 설사 우리에게 유리한 규정이 있더라도 그게 실질적으로 집행이 되고 있질 않다. 예를 들어 우리 SOFA에 보면 미국이나 한국에 1차적 재판권이 있더라도 어느 한쪽이 판단해서 관할권을 달라고 요청하면 호의적으로 고려하게 돼있다. 문제는 우리 측은 한 번도 미국 측에 관할권 요청을 한 적이 없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장갑차 사건 때 국민 여론이 들끓다 보니까 최초로 요청한 것이다. 반면 미국은 1차 관할권을 우리가 가져도 매번 요청을 한다. 

-끝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다면.

=한미관계의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해 서로의 우호관계를 해치는 불합리한 규정은 고치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2001년 이후 10년 동안 한국 시민사회의 성장,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성장을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직도 우리의 경우 마치 미개국처럼 미국 대표가 입회해야 수사를 할 수 있다. 예전에 한 미국 전문가에게 일본에도 이런 규정이 없는데 왜 한국에는 이런 규정이 있냐고 물었더니 ‘한국 사람은 예전에 수사관이 고문을 많이 해서...’라고 하더라. 불신이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의 성장, 사법 민주화 과정이 반영이 안 된 거다.

또한 10년 간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봐야 한다. 과거 냉전시대엔 미국이 한국에 일방적 특혜를 주기 위해 왔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데는 상호방위조약 상의 목적도 있지만, 동북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지키기 위한 부분도 있다. 즉 한미관계가 과거처럼 일방적이고 시혜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주권을 존중하는 동반자 관계가 됐다는 것이다. 

지금 얘기되는 형사관할권 문제는 SOFA 전체 문제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SOFA 전반에 있어서 양국의 우호관계를 해치는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개정이 돼야 한다.

정지영 기자jjy@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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