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1일 금요일

보리밥 한 그릇 뚝딱, 이 맛에 산에 온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10-21일자 기사 '보리밥 한 그릇 뚝딱, 이 맛에 산에 온다'를 퍼왔습니다.
천년 고찰보다 유명한 순천 조계산 보리밥집

▲ 조계산 보리밥집 가는 길 ⓒ 전용호

'천년불심길' 중간에 자리 잡은 보리밥집

순천은 볼거리가 다양하다. 최근 떠오르는 생태 관광지인 순천만이 있다. 바다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 과거로의 여행을 즐기려면 낙안읍성도 좋다. 하루정도 시간 여유가 있다면 천년고찰이 양쪽으로 지키고 있는 조계산은 어떨까?

조계산은 884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높은 산은 아니래도 각종 활엽수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 정도로 산이 깊다. 최고봉은 장군봉으로 한국전쟁 전후로 빨치산이 은거할 정도로 웅장한 맛이 있다. 조계산은 어느 때나 찾아도 좋다. 남쪽지역이라 아직 단풍을 즐기기에는 이르다. 천년고찰 송광사와 선암사가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유명한 곳이 하나 더 있다. 보리밥집이다. 웬 보리밥?

선암사와 송광사는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있다. 천년 동안 두 절을 이어주었을 길이 있으니 '천년불심길'이다. 두 절을 이어주는 길 어느 쪽에서 오르든 처음으로 만나는 고개가 굴목재다, 송광사 쪽은 송광굴목재, 선암사 쪽은 큰굴목재가 있다. 재라고 낮은 게 아니라 해발 700m가 넘는 높은 산등성이를 넘어야 한다.

▲ 천자암에서 송광굴목재로 가는 길 ⓒ 전용호

양 굴목재 사이에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집에서 오래 전부터 보리밥을 팔기 시작했다. 보리밥집은 등산로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 등산객들에게는 마치 주막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조계산을 등산할 때는 따로 점심을 준비하지 않는다. 보리밥집에서 보리밥을 먹어야 조계산을 등산한 기분이 난다. 얼큰한 동동주 한 사발까지 곁들인다면….

보리밥이라야 색 다른 것도 없다. 커다란 대접에 고추장 한 숟갈과 참기름이 전부다. 따로 주는 보리밥 한 그릇. 그리고 반찬으로 나온 나물을 이것저것 섞어서 비벼 먹으면 그게 다다. 젓갈로 나온 멸치젓을 넣고 무청에 한 쌈하면 어디서도 느끼지 못할 산중 비빔밥을 먹게 된다.

천자암 종각에서 바라본 산너울 풍경

조계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4군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등산로 시작점이 선암사와 송광사다. 순천에서 시내버스가 다니는 접치에서 오르는 길이 있는데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또 다른 길은 쌍향수로 유명한 천자암을 지나가는 길이 있다.

천자암은 조계산 서쪽을 지나가는 15번 국도 길가에 있는 이읍마을에서 올라간다. 이읍마을로 들어서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천변에 버티고 섰다. 밑동이 굵고 상처 난 곳이 없이 잘 자랐다. 이읍마을을 지나 차한 대 겨우 지날 정도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을 오른다. 길가에 고용나무가 손톱만한 감을 땡글땡글 달고 있다. 감은 감인데 먹기에는…. 삼거리가 나오고 계곡으로 오르면 천자암 절집이 보이고 송광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이정표에는 송광사까지 3.4㎞라고 알려준다. 상당히 먼 거리다.

▲ 천자암 종각에서 바라본 풍경 ⓒ 전용호
▲ 길가에서 반겨주는 보랏빛 꽃향유 ⓒ 전용호

길로 올라서면 종각이 있고, 종각 앞으로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다. 종각 처마 아래로 아름다운 산너울이 넘실거린다. 바다같이 조용하고 넓은 풍경에 한동안 마음을 놓는다. 길가에는 꽃향유가 보랏빛으로 등불을 밝히듯 피어있다.

신령스런 기운 넘치는, 천연기념물 88호 천자암 쌍향수

천자암으로 들어선다. 작은 암자라도 들어가는 문은 쉽지 않다. 누각 아래 작은 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천자암 법당이 있고 그 옆으로 두 마리 용이 하늘로 승천하듯 커다란 향나무가 서 있다. 고려시대 때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중국에서부터 짚고 온 지팡이를 이곳에 꽃아 논 것이 싹이 나서 이렇게 자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 곱향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있는 천자암 쌍향수 ⓒ 전용호
▲ 천자암 쌍향수 ⓒ 전용호

나무를 보면 전설이 저절로 만들어질 정도로 신령스러운 기운이 넘친다. 한 나무 둘레가 4m나 되는 웅장한 나무다. 석축 위에 있어 아래서 보면 더욱 크게 보인다. 곱향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어서 쌍향수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 나무를 흔들면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고도 한다. 울타리 밖으로 나와 있는 나뭇가지를 살며시 흔들어 본다. 천자암 쌍향수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는데, 우연인지 몰라도 지정번호가 88호다.

쌍향수 앞에는 약수가 흐르는데 한 바가지 떠서 마신다. 물맛이 좋다. 천자암을 나와 산길로 들어선다. 산길은 경사가 완만한 오솔길이다. 길도 넓어 걷기에 좋다. 송광굴목재로 가는 길이다. 쉬엄쉬엄 오르다가 산정으로 오르지 않고 산허리를 타고 간다. 길에선 벌써 가을이 시작됐다. 바닥은 벌써 상수리나무 낙엽들이 쌓였다.

▲ 천자암 가는 삼거리. 넓은 광장처럼 아늑하다. ⓒ 전용호

산허리를 구불구불 걸어간 길은 송광사에서 오는 '천년불심길'과 만난다. 잠시 쉬었다 간다. 삼거리 풍경은 아늑한 숲속 풍경이다. 바위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허전해진다. 가을분위기 탓인가 보다. 조용한 산속은 낙엽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다.

보리밥은 셀프서비스, 누룽지는 덤

길은 내리막길로 보리밥집까지 걸어간다. 작은 계곡도 지나고, 졸졸거리는 물소리도 듣는다. 배도사대피소를 지나고 한참을 내려가면 길 아래로 지붕만 보이는 집이 있다. 보리밥집이다. 주변에는 보리밥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보리밥집은 35년 전통이라고 페인트로 써 놓았다. 매년 고쳐야 할 것 같다. 보리밥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아 줄을 서야 한다. 주방은 무척 바쁘다. 셀프서비스.

▲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보리밥집 풍경 ⓒ 전용호
▲ 보리밥집은 셀프서비스. 줄을 서서 기다린다. ⓒ 전용호

평상에 자리를 잡고 보리밥을 먹는다. 쌀쌀한 날씨를 따끈한 된장국이 풀어준다. 밥을 다 먹고 누룽지까지 한 그릇 먹으니 든든하다. 어디로 내려갈까?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은 그리 즐겁지 않다. 보리밥집에서 바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장안마을까지 3㎞다. 짧은 거리는 아니다. 그래도 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길은 비포장길로 구불구불 내려간다. 바로 옆으로 계곡이 있다. 가끔씩 보이는 집들은 민박집인데 철이 지났는지 인기척은 없다. 한적한 길을 한참 동안 걷는다. 마을이 나타나면서 사람 사는 모습이 보인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하다. 장안마을은 산골마을이다. 아주 옛날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돌담이 아름답고, 슬레이트 지붕이 옛 정취를 물씬 풍긴다. 담장마다 감들이 탐스럽게 익어간다.

▲ 시골 옛 정취가 남아있는 장안마을 ⓒ 전용호

덧붙이는 글 | 10월 16일 조계산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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