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몰락한 ‘폴리널리스트’, 한국언론 부끄러운 초상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28일자 기사 '몰락한 ‘폴리널리스트’, 한국언론 부끄러운 초상'을 퍼왔습니다.
[정치권으로 간 언론인들] 감시자에서 기생자로, 언론장악 첨병으로…

2011년은 언론인들에게 특히 부끄러운 일이 많았다. 권력을 쫓아 정치권으로 뛰어든 전직 언론인들, 이른바 폴리널리스트들의 부정부패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권력의 감시자였던 이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해 급속도로 부패하고 변질되는 모습은 이 땅의 언론인들에게 반면교사가 됐다. 쇠락해 가는 권력에 기생해 사리사욕을 채우려했다는 지적을 받았던 폴리널리스트들은 이명박 정부 시대를 사는 언론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지난 3월 서민의 피눈물을 쏟게 만들었던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3명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연루됐다.
김두우·홍상표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로비스트 박태규씨의 금품 청탁을 받고 부산저축은행그룹 퇴출을 무마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각각 중앙일보와 YTN 출신이다. 박씨는 김 전 수석이 중앙일보 정치부장 시절 때부터 알고 지내며 뒤를 봐줬다는 후문이 들린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김은혜 KT상무,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이동관 전 청와대 언론특보,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 홍상표 전 청와대 홍보수석. 가나다 순.

동아일보 출신의 이동관 전 청와대 언론특보도 ‘박태규 리스트’도 포함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동관 전 특보는 이를 폭로한 민주통합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에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다”는 문자를 보내 또 다른 입방아의 주인공이 됐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다르지 않았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한국일보·조선일보 기자 시절부터 공직에 오른 이후까지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 임기말 부패의혹의 주인공들은 공교롭게도 언론인 출신이 적지 않다. 특히 김 전 수석과 이 전 특보는 MB와 임기를 함께 한다는 ‘순장 4인방’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이 중 이 전 특보는 얼마 전 TV조선에 출연해 “스스로 MB 아바타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정권을 향한 끝없는 충성심을 숨기지 않았다.
홍상표 전 수석 역시 언론장악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YTN ‘돌발영상’이 폐지되고 노종면 등 기자 6명이 해직되는 과정에서 YTN에 몸담았던 홍상표 전 수석에게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방송 장악을 하지 않기 위해 미디어법을 고쳐야 한다”는 자가당착적 말로 미디어법 처리에 앞장섰던 신재민 전 차관 역시 MB식 언론장악의 일등공신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대통령의 입’으로 활동했던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도 입방아에 올랐다. MBC 기자출신인 김 전 대변인은 청와대를 떠나 30대의 젊은 나이로 KT 상무로 옮겨가 ‘낙하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김 상무는 최근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는 과정에서 뉴세븐원더스 재단과 부적절한 협약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선정 기준이나 공신력도 문제였지만 공무원을 강제 동원하고 KT 전화비 200억 원을 체납해 선정 취소 논란이 제기되는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편파방송 논란과 함께 ‘종편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KBS 수신료인상과 KBS 도청 의혹 사건에는 MBC 아나운서 출신의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의혹의 시선을 받았다.
한선교 의원의 도청문건 논란으로 촉발한 이 사건은 KBS 김인규 사장과 그에게 충성하는 기자들, 그리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신료 인상에 힘을 쏟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찰은 한선교 의원과 도청 의혹을 받던 KBS 장아무개 기자를 무혐의 처리했지만 의혹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MB의 멘토로 불리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노골적으로 발 벗고 나서서 종합편성채널 4사에 특혜를 쏟아 부었다. 최시중 위원장은 동아일보 논설위원 출신이다. 개국 당시 제대로 된 편성표조차 내놓지 못하던 종편사들이 12월 1일 일제히 개국할 수 있었던 건 최시중 위원장의 역할이 컸다는 지적이다. 최시중 위원장은 의무 재전송을 강제하며 황금 채널 배정을 압박하는 등 전방위 특혜를 밀어붙였다는 지적을 받았다.대기업 광고 책임자들을 불러다 놓고 광고 압박을 한 정황도 여러 차례 포착됐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한나라당 해체 위기를 불러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테러 사건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홍보기획본부장으로 기용하면서 ‘스핀닥터’의 역할을 부여받았던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가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신태섭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불공정하고 탈법적인 정부이다보니 언론인 출신들만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더 높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면서 “언론계에서 자율적인 규제와 문화를 확립해 이런 일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근태의 마지막 말 "2012년을 점령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30일자 기사 '김근태의 마지막 말 "2012년을 점령하라"'를 퍼왔습니다.
'세계의 양심수' 김근태, 하늘로 가다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해 달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광주 경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로의 개혁 후보 단일화를 위해 후보직을 사퇴하며 남긴 말이다. 그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심정으로 지금은 죽는다"고도 했다. 두 마디는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드라마틱한 말이었다. '6.3 세대'로 386 운동권 '대부'로 불렸던 김근태, 그는 현실정치에서 만년 비주류였다. '비주류의 정점'이라는 게 있다면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에서 출생한 김근태는 중학교 3학년 때 5.16쿠데타를 목격했다. 강제로 교직을 그만두게 된 그의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고 곧 심장판막증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어머님은 동대문 시장에서 여자 스타킹과 양말을 받아다 팔아 김근태를 키웠다.

그는 경기고를 졸업하고 1965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71년 박정희 정권 부정선거 파동 반대 활동, 교련 데모에 적극 참여했고, 서울대 내란 음모 사건으로 수배를 당하게 된다. 당시 친구였던 조영래, 장기표, 심재권은 감옥에 들어갔다. 이후 74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또 다시 수배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도망하기를 7년,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


▲ 학창 시절의 김근태 ⓒ김근태 미니홈피
▲ 민청련 시절 김근태(오른 쪽은 장영달 전 의원)) ⓒ김근태 미니홈피

김근태는 새로 들어선 전두환 군부 독재에 맞서 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했고초대, 2대 의장을 지냈다. 후배들인 386세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 세력의 기획자이자 동지로 살았다. 그러나 민청련 활동으로 인해 그는 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이 전무'로 통하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했다. 전기와 물이 그의 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이후 그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며 남은 생을 살아야 했다.

이 사건에 관한 진술은 이미자의 '노래 테입' 중간에 녹음된 채로 미국 인권단체에 건네졌다. 이후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의 양심수'라는 수식이 김근태 이름 앞에 붙었다. 87년 로버트 케네디 국제 인권상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그를 가두고 고문했던 국가보안법은 21세기 하고도 11년이 지난 오늘, 아직도 살아있다.

그는 자신의 책 에서 '인간도살장' 안에 있던 느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문을 할 때는 온 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 다음에 고문대에 뉘면서 몸을 다섯 군데를 묶었습니다...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 고문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습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 때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는 노래를 뇌까리면서 과연 이것을 지켜내기 위한 인간적인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감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했으며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절망에 몸서리쳤습니다."


▲ '세계의 양심수' 김근태는 인권상 수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김근태 미니홈피

87년 6월 항쟁을 감옥에서 맞은 그는 88년이 돼서야 석방됐다. 세상은 변했지만 '천지개벽'은 없었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결성을 주도하고 정책기획실장, 집행위원장을 지냈지만 시대는 그를 또 다시 구속했다.

노태우 정권이 끝난 뒤 3당 합당을 지켜본 그는 현실정치로 눈을 돌린다. 95년 민주당에 입당한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와 함께 새정치국민회를 꾸렸고, 부총재 직을 맡았다. 이 때 15대 총선을 치렀고, 서울 도봉갑에서 당선돼 내리 3선을 지냈다. 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 탄생에 힘을 보탠 그는, 곧바로 새천년민주당 쇄신 운동에 돌입했다. 역시 '비주류'였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선 경선에서 맞붙었다. 이인제 후보와 경쟁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힘을 실어주면서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른바 '노풍'이 불기 시작한 광주 경선 직전이었다. 두 번째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 노무현 탄핵 열풍을 딛고 '주류'로 올라선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참여했지만 여전히 그는 '비주류'의 길을 걸으며 열린우리당을 지배했던 '중도실용노선'과 '투쟁'을 이어갔다.


▲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내던 시절 김근태 ⓒ김근태 미니홈피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낼 때는 부동산원가 공개에 반대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계급장 떼고 토론해보자"고 맞섰다. 그런 그를 노 전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장관을 지내면서도 그는 영리병원을 반대하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추진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여전한 '비주류'였다.

2011년 12월 29일 그가 떠나기 전, 지난 10월 18일 마지막으로 그의 블로그에 'posted by 김근태'로 남아 있는 글 역시, 그의 '인생'이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었다.

"(월가 시위의 요인은) 무엇보다 1%를 향한 99%의 분노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1%인지 5%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처럼 전 세계가 공감한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제패했었다는 증거다. 선진국과 후진국, 강대국과 약소국, 민주국가와 비민주국가의 구분 없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세계적 대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손인 월가의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희생도, 반성도, 징벌도 없는 불공평함에 분노한 것이다.
...
우리는 미국보다 사정이 낫다. 미국보다 금융이 정치에 비해 권력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증권사가 많은 동여의도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글의 제목이다.

"2012년을 점령하라"



/박세열 기자 

"이근안, 이래도 고문이 예술이고 애국이었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30일자 기사 '"이근안, 이래도 고문이 예술이고 애국이었나?"'를 퍼왔습니다.
김근태의 용서와 이근안의 파렴치

26년간 떨리던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의 손이 침대아래로 '툭' 떨어지자, 병실 주변에는 여명보다 안개가 먼저 깔렸다. 30일 새벽 5시 30분 '세상의 양심'은 시리디시린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64세의 지난한 삶을 놨다. 사인은 고문 후유증.

선대인 경제전략연구소장은 트위터(@kennedian3)에 "정녕 하나님은 있는 겁니까"라며 "평생 민주화와 정치 발전 위해 헌신했던 김근태 선생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시고, 그를 고문했던 이근안은 목사로 변신해 고문은 예술이고 애국이었다고 떠들고 다니는 세상"이라고 한탄했다.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김근태 상임고문과 이근안 전 경감의 악연은 26년 전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시작됐다. 김 상임고문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1985년 9월 4일 구속됐다. 그 후 그는 17일간 매일 5시간씩 이 전 경감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았다.

"고문을 할 때는 온 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 다음에 고문대에 뉘면서 몸을 다섯 군데를 묶었습니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 고문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습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김근태 책 )

고문 트라우마는 '죽음의 그림자'처럼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치과에 가는 것조차 꺼렸다고 한다. 의자에 반쯤 누운 채 얼굴을 가리는 순간, 바로 전기고문이 연상됐기 때문. 2001년 대선 경선 때 참모진은 물고문으로 얻은 비염과 축농증 때문에 전달력이 떨어진다며 수술을 권했다. 그렇게 수술대에 올라 마취를 하는 과정은 그를 다시 남영동 대공분실로 데려갔다. 수술 후 그는 "칠성판(고문대)에 다시 올라간 느낌이었다"고 했다.


▲ '고문 기술자' 이근안 ⓒ연합

하지만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기억은 다르다. 이 전 경감은 작년 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고문 행위가 "애국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신문(訊問) 기술자"로 지칭, "그런 의미에서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덧붙였다.

"(김근태 상임고문에게) 전기 고문을 한 건 사실이지만, 220볼트 전기를 쓴 게 아니고 면도기에 들어 있던 배터리를 썼다. 내가 취미 삼아 만든 모형 비행기 모터에서 'AA 건전지2개'를 가지고 겁을 준 것뿐... 몇 시간 전부터 '너 전기로 지질 거다'라고 겁을 준 다음에 전기 잘 통하라고 소금물 뿌린 발가락에 배터리를 갖다 대고 겁을 주니 지하조직 일체를 자백했다."

1985년 납북어부 김성한 씨 고문 혐의로 88년부터 수배를 받던 이 전 경감은 10년 10개월 만인 1999년 10월 검찰에 자수했다. 이미 김 상임고문 사건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건이 도피생활 중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였으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 4조의2' 규정에 따라 7년 형을 선고 받았다.

자수는 했지만, '청룡봉사상'을 포함하여 재직 기간 중 모두 16차례의 표창을 받고 대공 분야에서는 "이근안 없으면 수사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고문 기술자'라는 말이 억울했다. 그는 과의 인터뷰에서 "훈장을 타서 매달 10만 원씩 받을 수 있는 돈도 안 받았다"며 "내가 그 돈을 받기 위해서 애국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가 돈 받으려고 그랬나. 마찬가지다"라고 자신을 안중근 의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0년 2월 7일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김 상임고문이 이 전 경감을 옥중면회 했다. 이 전 경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김 장관이 들어오자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지난 일은 죄송하게 됐다'며 고개를 숙이자 김 장관이 양팔을 벌려 포옹을 해왔다. 그리고는 '그게 어떻게 개인의 잘못이냐. 이 시대가 낳은 비극 아니냐'며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닌가."

정작 면회를 마친 김 상임고문은 그날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면회 2주 뒤 자신의 홈페이지에 "저 사죄는 사실일까?"라며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의 사타구니에까지 전기고문을 가했던 자였다.

작가 공지영 씨는 관련 일화 한편을 트위터(@congjee)에 소개했다.

"몇 년 전 뵈었을 때, 우연히 이근안을 만났다고. 그가 울며 잘못했다 용서해달라고 했을 때 너무 가식처럼 느껴져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그게 몇 달 후까지 자신을 괴롭힌다고. 나 너무 옹졸한가? 물으셨죠."

이 전 경감은 2006년 11월 출소해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자신이 목회자로 입문한 건 "간첩죄로 잡아들인 애들이 후일 민주화 인사로 보상받는 걸 보고 울화가 치밀어 감옥에서, 믿을 수 있는 나라, 배신 없는 나라를 찾다 보니 하늘 나라를 찾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당신을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왔다"

김근태는 애초 이근안을 만나야 할지 망설였고, 면회 사실 공개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은 물론 이근안 씨를 만난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정리되지 않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참회하겠다며 목사가 된 이의 마음은 미해결 사건으로 남을 것 같다. 김근태는 "당신을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으나, 시대가 이근안을 용서했을지는 의문이다.



/이명선 기자

당신께 안내하고 싶은 곳들


이글은 레디앙 2011-12-30일자 기사 '당신께 안내하고 싶은 곳들'을 퍼왔습니다.
[청년이 청년에게] 31세 김영경, 26세 이준석에 말을 건 까닭

안녕하세요. 저는 청년유니온이라는 청년세대들의 노동조합 위원장을 하고 있는 서른 한 살 김영경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레 편지를 띄우게 되어 조금 민망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당신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스물여섯, 내게 있었던 것들
처음 과학고에 하버드 출신이라는 이력을 언론과 호사가들이 강조할 때 저는 당신이 교육봉사를 해왔다는 것을 더 먼저 보았습니다. 저 역시 가난한 동네에서 파트타임 학원강사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갈 때 이 사회의 교육불평등에 의해 아이들의 미래가 어두워 보일 때마다 깊은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스펙보다 교육봉사를 해왔던 당신의 진정성을 더 믿고 싶었습니다. 스물여섯이라는 젊음이 동세대 청년들의 아픔과 고통을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는 가장 큰 스펙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다만 어제오늘 준석님이 철거민들의 투쟁을 두고 상처가 될 만한 이야기를 퍼부었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신께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물 여섯이라는 아름다운 나이에 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힘들었던 기억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새벽녘 언젠가 편의점에서 담배를 팔고 있었거나, 욕을 해대는 아저씨들에게 먹먹한 가슴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부끄러운 마음에 마스크를 쓰고 지하철역 출구에서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스물 여섯에 가지고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에서 82% 청년들이 가지고 있다는 빛바랜 대학 졸업장과 학자금 대출 빚 1천만원 뿐이었습니다.
그 1천만원 빚은 어린이날 놀이동산에서 곰돌이 인형을 쓰고, 빛도 들지 않는 지하 대형마트에서 보안요원을 하며 갚았습니다. 스물 여섯의 특목고 출신, 하버드 수학, 청년 벤쳐 CEO, 교육 자선을 하면서 거대 집권 여당의 비대위원으로 들어간 이준석씨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인가요?
철거민들의 외침 이해해야
당신을 비판하려고 쓰는 편지가 아닙니다. 고소득층만 들어간다는 특목고를 나온 것도, 최저임금 4,320원으로 5,000시간(하루 10시간씩 500일) 이상을 일해야 일년 등록금을 낼 수 있다는 하버드에서 공부를 한 것도 당신의 탓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거대 집권여당의 비대위원이라면, 그리고 청년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려 한다면 당신이 비난했던 그 철거민들의 날카로운 외침이 곧 동세대 청년들이 이 사회가 가하는 고통 속에 내뱉는 아픔의 신음소리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2011년 우리 또래 청년들 대부분은 그 철거민들과 같습니다. 취직하지 못하는 청년이 1/4입니다. 취업하는 대부분의 청년들도 불안정한 비정규직, 인턴입니다. 몸을 버려가며 밤새 위험한 일을 해도 가까스로 백만원 남짓의 월급을 받을 뿐입니다.
서울의 원룸 월세는 50만원이 넘습니다. 학자금 대출상환은 매달 30만원씩 나갑니다.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신이 나이만 젊은 청년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청년을 대변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이 반값 등록금을 주장하고, 청년임대주택을 이야기하고, 돈이 없어서 수입산 찐 쌀로 만든 1,500원짜리 김밥을 먹는 청년들을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청년 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바꿀 마음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름다운 스물여섯을 살아가고 있는 당신께 30분 배달제가 폐지된 피자집과, 알바생에게 주휴수당을 챙겨주는 커피전문점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배달원과 그 알바생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추신 : 아름다운 한 분이 또 소천 하셨습니다. 그 분이 오랜 고통을 이겨가며 대변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날선 외침과 신음을 내뱉고 있는 약자들을 위한 민주주의였음을 준석씨와 제가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합니다.

2011년 12월 30일 (금) 14:16:14 김영경 / 청년유니온 위원장

한심한 KBS, MBC의 작태를 고발한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1-12-30일자 기사 '한심한 KBS, MBC의 작태를 고발한다'를 퍼왔습니다.
[시론]보도 기능을 조자룡 헌 칼로 만들어

29일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에서 정치 리포트가 한 건도 없었다. 
KBS, MBC의 공언이 현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KBS는 수신료 처리를 이유로, MBC는 방송광고판매대행법안에 자신을 공영 미디어렙에 지정했다며 29일 국회 리포트 거부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공영방송 국회 정치반의 파업으로 보이지만 이는 바닥을 드러내며 갈 데까지 간 공영방송의 현주소를 가리키고 있다. 국민과 시청자가 부여한 보도 기능을 자신들의 이익 관철을 위해 활용하는 처참한 현실이다. 
그러나 국민과 시청자는 이들이 국회 리포트를 하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을 듯하다. 그들이 정치보도를 제대로 해왔다고 판단하는 국민과 시청자는 없다고 장담한다. 오히려 그들이 정치, 국회 소식을 전하지 않는 것은 잘 된 일이다. 
KBS, MBC는 자신들의 떨어지는 위상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한심스러울 뿐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지는 해다. 정치권에 가까이 붙어 위세를 떨고 있지만 국민과 시청자가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다. 그들의 국회 리포트 거부는 정치권만 아쉬울 뿐이지 국민과 시청자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국민과 시청자가 KBS, MBC 보도에 의존하는 시대는 한참 전에 끝났다.
국민과 시청자가 부여한 보도 기능을 ‘조자룡의 헌 칼’로 만들어 휘둘러대는 그들에게 수신료 인상과 방송광고 직접 영업은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 오히려 공영성 회복이라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영방송이라고 포장지에 써 있다고 하더라도 내용물은 공영방송의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현재 국회 문방위 앞은 일손을 놓고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는 KBS 기자와 공영렙 지정을 반대하는 MBC 기자로 장사진이라고 한다. 눈 뜨고 못 볼 한심한 풍경이다. 그래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에게 한 말씀 올린다. 쫄지 마시라!

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모자 위로 해가 떠오르는 이곳... 참 괜찮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12-30일 기사 '모자 위로 해가 떠오르는 이곳... 참 괜찮네!'를 퍼왔습니다.
[사진] 잘 알려지지 않은 '모자섬'에서의 일출 감상


▲ 대치유료낚시터의 모자섬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 김정수

'흑룡의 해'라는 2012년을 앞두고 새해 일출 감상을 계획한 여행객들이 많다. 왠만한 일출명소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어디 조용하게 일출을 볼만한 곳이 없을까? 내가 새로이 터전을 잡은 하동에는 30여 개의 무인도가 있어 일출 감상 지점이 많다. 그런데도 금오산 일출을 제외하면 알려진 일출 명소가 없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 모자섬 주변으로 새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 김정수
▲ 모자섬 앞으로 낚시배가 지나는 가운데 해가 구름 사이로 나오려고 한다. ⓒ 김정수

내가 나침반으로 일출각을 계산해 찾아낸 지점 중 6개의 무인도를 배경으로 일출을 촬영했다. 그중에서 겨울철에 촬영하기 좋은 곳이 금남면 대치리의 대치 유료낚시터 앞에 자리한 모자섬이다.

무인도의 공식 이름은 고도지만 마을주민들은 모자를 닮았다고 해서 모자섬으로 부른다. 부산 다대포의 모자섬은 일출 감상 지점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터넷 검색기에는 모자섬의 일출 사진은 없는 듯하다.


▲ 일출이 시작되는 모자섬 앞으로 배가 지나고 있다 ⓒ 김정수

낚시꾼들을 제외하고는 찾는 이가 거의 없다. 내가 그동안 몇 차례 다녀간 동안 사진 촬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모자섬은 대치유료낚시터 안내부스가 있는 방파제 앞 300여 미터 떨어진 바닷가에 외로이 떠있는 무인도다. 모자섬과 약간 거리를 두고 왼쪽에 수령도라는 무인도가 길게 늘어서 있다. 수령도는 섬이 너무 길어 일출사진으로 운치는 다소 떨어지지만 촬영할만한 곳이기도 하다.


▲ 대치유료낚시터 앞에 떠있는 모자섬의 여명 ⓒ 김정수

반면 모자섬은 아침 7시 20분 전후로 해가 지는 겨울철이 촬영하기에 좋다. 내가 찾아간 날은 지난 17일(토요일) 아침이었는데, 운좋게도 일출 무렵에 낚시객을 배로 실어나르는 중이었다. 나는 앵글에 모자섬과 배를 함께 넣고 일출 풍경을 촬영했다.

해는 모자섬 뒤쪽의 남해 창선도의 산위로 떠오르는데, 남해 일출시간보다는 2~4분 정도 늦는 편이다.


▲ 모자섬 앞으로 떠오르는 일출 ⓒ 김정수
▲ 대치유료낚시터 수령도의 일출. 2011년 3월말 촬영 ⓒ 김정수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길 : 남해고속도로 진교IC에서 남해대교 방면으로 가다보면 대치마을이 나온다. 대치마을 앞 사거리의 버스정류소 옆에 돌로 새겨진 대치진구지마을 표지석이 보이면 좌회전한다. 2분쯤 달리다보면 삼거리에 대치유료낚시터 이정표가 보인다. 우회전해 3분 정도 들어가면 조그마한 선착장이 나오고 그 앞에 모자섬이 보인다. 

김정수 기자는 여행작가로 하동에서 사랑초펜션(www.sarangcho.kr)을 운영 중이다.

"핵재앙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잊었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9일 기사 '"핵재앙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잊었나"'를 퍼왔습니다.
임순례 감독이 광화문에서 1인 시위에 나선 이유

, 등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임순례 씨가 2011년을 이틀 앞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3월 11일을생각하며 신규 원전에 반대하는 '311시간 시민행동'이 26일부터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임 감독은 그 네 번째주자다.

임 감독이 1인 시위를 하는 자리에서는 이미 지난 12월 2일부터 신규 원전 부지 선정에 반대하며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책임자 하승수 씨가 1인 시위를 벌여왔다. 임 감독이 1인 시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3월에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건은 충격이었어요. 핵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명확히 보여줬죠. 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는 거꾸로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고 합니다."

임 감독은 "정부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렸다"며 "시대에 역행하는 행동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신이 1인 시위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22일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영덕을 신규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했다. 현재 가동 중인 21개에 건설 중인 것 7개, 계획 중인 것 6개를 합하면 34개다. 여기다 또 다시 8개를 더 짓겠다는 게 이번 계획의 주요골자다.


▲ 1인 시위 중인 임순례 감독. ⓒ프레시안(허환주)

"무시무시한 사건 발생 1년도 안 됐는데…"

임 감독은 "무시무시한 사건이 발생한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며 "하지만 우리는 그때의 공포와 경고를 벌써 잊은 듯하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임 감독은 "정부에서는 일본보다 우리의 핵발전소가 더 안전하게 건설된다고 말하지만 완벽하게 안전한 건 세상에 없다"며 "하지만 정부는 무모하게 핵발전소 계획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감독은 "독일 총리도 원전은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됐다 하더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며 "하지만 우리 정부는 늘 안전하다고 큰 소리를 친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안전"이라며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신규 원전을 새로 더 짓겠다는 건 비합리로 상식을 덮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임 감독은 핵발전소를 폐기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를 들며 "원전을 더 짓는 계획을 취소하고 기존에 있던 것도 폐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이게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도 핵발전소는 없어지는 게 맞다"며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정부의 계획을 비판했다.

"절전하는 시스템 마련하는 게 시급"

임 감독은 "정부는 전기수요 때문에 핵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며 "하지만 현재 우리의 문제는 전기를 과소비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임 감독은 "현대 생활을 하는 우리는 상당 부분에서 전기를 과다하게 쓰는 게 사실"이라며 "이를 절제하고 전기를 아껴 쓸 수 있는 방안과 시스템을 만들어 도입하는 게 핵발전소를 짓는 것보다 먼저 실시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임 감독은 "또한 핵발전소 같은 무시무시한 게 아닌, 친환경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발전소를 짓는 걸 정부는 고민하게 실행해야 한다"며 "하지만 현 정부는 원전을 수출할 거를 고민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허환주 기자 

미소금융, 서민의 돈을 강탈하다


이글은 시사인 2011-12-29일 기사 '미소금융, 서민의 돈을 강탈하다'를 퍼왔습니다.
미소금융 간부와 특혜를 받은 국민포럼 대표가 뇌물 혐의로 조사 받고 있다. 취재 결과, MB 정권 측근들이 주무른 이 사업의 허점이 드러났다. 저소득층을 위한 금융마저 약탈의 대상이었다.

도처에 약탈이 만연해 있다. 크든 작든 ‘경제적 잉여’가 있음직한 곳엔 어김없이 ‘빨대’가 꽂혔다. 대통령이 차명 부동산 투기로 고발당하고 측근 세력과 친인척들이 비리로 구속되는 판국이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을 돕던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저소득층 시민의 돈을 약탈한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2월 초부터 미소금융중앙재단 간부인 양 아무개 부장을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이다. 양 부장에게 뇌물을 준 사람은 민생포럼이라는 단체의 김 아무개 대표. 그 역시 뇌물 공여와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청와대가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의 결정판’이라고 했던 미소금융 시스템에서 불거진 사건이다.

미소금융은 한국형 ‘마이크로 파이낸스’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란, 일반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힘든 저신용·저소득층의 자활을 위해 무담보로 소액 자금을 빌려주는 사업. 2006년 방글라데시의 교수 겸 금융가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마이크로 파이낸스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바도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사회연대은행, 신나는조합 같은 시민단체가 민간 차원에서 이 사업을 벌여왔다.

‘위’에서는 크게, ‘밑’에서는 작게? 

그런데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이른바 ‘친서민 정책’의 지위를 얻게 된다. 이 체계의 중심은 사실상 정부기관인 미소금융중앙재단(미소재단)이다. 미소재단의 재원은 수천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휴면예금과 기업·은행 등의 위탁금. 미소재단은 이 자금을 민간의 ‘복지사업자’들에게 배정한다. 실제 현장에서 대출 희망자를 직접 심사하고 선별해서 돈을 빌려주는 일은 이 복지사업자들의 몫이다. 이런 복지사업자들에겐 당연히 일정한 공신력과 윤리성, 무엇보다 대출 희망자가 돈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인지 가늠하는 심사 능력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소재단은 ‘선정심사위원회’를 통해 “서류심사, 면접, 현장실사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복지사업자를 선정했다”고 공언해왔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16일 미소금융 1주년 기념식에서 진동수 금융위원장(왼쪽에서 네 번째)과 김승유 미소재단 이사장(왼쪽에서 다섯 번째) 등이 박수를 치고 있다.

미소재단의 양 부장에게 뇌물을 준 김 대표의 민생포럼 역시, 미소재단이 이런 ‘엄격한 절차’로 고르고 골라 복지사업자로 선정한 단체다. 검찰에 따르면, 민생포럼 김 대표는 많은 위탁금을 받기 위해 미소재단 양 부장에게 1억원을 주었다. 그 대신 양 부장은 민생포럼에 위탁금 50억원을 배정했다. 민간 복지사업자 중에서 가장 많은 배정금이다. 그런데 김 대표는 민생포럼 이외에 또 하나의 민간단체를 설립해 센터장(실무 총괄)으로 일하고 있다. ‘사단법인 사람사랑’이다. 사람사랑 역시 복지사업자로 선정돼 위탁금 10억원을 받았다. 민생포럼의 주소지는 사람사랑과 같다. 

민생포럼은 2009년 말 미소재단의 복지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줄곧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다. 마이크로 파이낸스 부문에서 쌓은 경험이 없을뿐더러 다른 특별한 사업도 알려진 바 없는, 수수께끼 같은 단체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익법인(사단법인·재단법인)도 아니어서 이런 단체에 거액을 맡겨도 되는지 논란이 일었다. 공익법인은 남의 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반드시 이사회와 감사를 두고 외부 회계감사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민생포럼은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나지 않아 이런 감독 체계가 없다. 명색이 서민 대출을 하겠다는 단체인데 홈페이지도 없다. 미소재단이 고르고 골라 가장 많은 돈을 위탁한 복지사업자가 하필 이런 단체였던 셈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보면 민생포럼은 복지사업자로 선정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단체였다. 2007년 8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민생포럼의 발족식은 ‘사회양극화 극복을 위한 민생 대토론회’라는 행사의 2부였다. 1부인 ‘소외층 금융지원 방안’에서는 마이크로 파이낸스 기구의 설립이 제안되었다. 당시 민생포럼이 부스 앞에 내건 플래카드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즉, 이 행사는 마이크로 파이낸스를 이명박 후보·민생포럼과 엮어내는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절차였던 셈이다.

이 단체 대표들의 행보를 봐도 정치색이 역력하다. 유선기 초대 상임대표는 대선 전후 이명박 후보의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사무총장으로 옮겼다가 KB국민은행 경영자문, 대한생명 경제연구소 고문 등을 거쳤다. 그 다음 대표인 김오연 전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은 예금보험공사 감사로 재직 중이다. 이 자리는 문융식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거쳐 현재 구속되어 있는 김 대표로 넘어갔다.

검찰은 김 대표에게 뇌물 공여와 함께 횡령 혐의까지 추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구체 내용은 밝히고 있지 않다. 이 취재 중 포착한 혐의 내용은, 미소금융 시스템이 돈을 다루는 공적 기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게 운영되어왔다는 점이다.


2000만원 빌렸는데 2억원 빌린 것으로

‘사회적 기업’인 ㄱ법인은 최근 민생포럼으로부터 20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런데 관련 계약서에는 2억원을 대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연유에 대해 ㄱ법인 관계자는 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생포럼 측에서 ‘우선 운영비로 2000만원을 주고, 나머지는 이후 필요할 때 시설자금으로 대출해주겠다’고 말하기에 그런 줄 알았다.” 정리하자면 민생포럼은 ㄱ법인에 2억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미소재단에 신고하고 사실은 2000만원만 빌려준 것이다. 나머지 1억8000만원은 어디로 갔을까. ㄱ법인 관계자는 사건이 터진 뒤 검찰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ㄱ법인 명의의 도장이 민생포럼 측에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ㄱ법인은 민생포럼에 도장을 넘긴 바 없다. 즉, 위조된 도장이다. ㄱ법인 이외 업체의 도장들도 검찰의 압수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가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시중은행·저축은행 등 다른 대출기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금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이 각종 서류를 통해 일상적으로 대조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산체계로 자금 흐름이 실시간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실제 대출금’과 ‘대출한 것으로 기록된 금액’이 다른 경우는 있을 수 없다. 혹시 미소재단은 전산체계도 구축해놓지 않고 사업을 해온 것일까. 이 경우에는, 대출자를 직접 만나 확인하는 방식의 점검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ㄱ법인 측 관계자는 “미소재단이 실제 대출금액을 확인한 것은 사건이 터진 뒤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다른 복지사업자인 ㄴ사를 통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미소재단은 전산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었다. 미소재단이 직영하는 ‘지역 지점’에서는 이미 전산 시스템을 사용해왔다. 웹상에서 관련 도메인에 접속한 다음 자금 운용 내역을 입력하면 된다. 그러나 외부 복지사업자인 ㄴ사의 경우, 이 도메인에 입력해도 내용이 전송되지 않았다. “답답해서 미소재단 측에 여러 번 문의했으나 딱 부러진 대답을 내놓지 않더라” 하고 ㄴ사 관계자는 말했다. ㄴ사는 매월 위탁금 운용 내역을 서면으로 보고한다. 그렇다면 미소재단 처지에서는 서면보고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출금 확인과 관련해서는 올해 한 번도 점검받은 적이 없다”라고 ㄴ사 관계자는 말했다. 복지사업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형 사고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돈을 빌려줬다고 허위로 보고하고 위탁금을 받아내면 된다. 대출자의 도장을 위조하는 일 따위는 땅 짚고 헤엄치기다. 


철저히 정치적으로 설계되고 운영된 사업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미소금융 시스템 자체가 철저히 정치적으로 설계되고 운영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미소재단의 주요 재원은 휴면예금과 기업 및 은행의 기부금이다. 정부나 한나라당의 돈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미소금융 시스템의 중심으로 진입하면서 특정 정치세력의 영향력 확대나 심지어 사익을 위해 활용되고 이 와중에 ‘서민 약탈’이 자행되는 정황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 파이낸스 부문의 국제 협의기구인 CGAP에서 발표한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원칙’에 따르면, “정부의 임무는 (저소득층) 금융 서비스의 틀을 짜는 것이지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삼성, 조폐공사 이득 위한 전자주민증?


이글은 레디앙 2011-12-28일자 기사 '삼성, 조폐공사 이득 위한 전자주민증?'를 퍼왔습니다.
진보정당, 시민사회 "10년 동안 1조원 들어…정보인권 재앙될 것"

통합진보당과 인권시민사회단체는 28일 전자주민증법안의 국회 통과에 반대하는 긴급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오래 전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법안이 상임위에서 별다른 토론도 없이 처리된 것에 대하여, 정부 여당은 물론 법안 처리를 합의해준 민주당의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민주당 책임도 물을 것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전자주민증은 1996년 김영상 정부가 추진했다가 김대중 정부 들어 국민 정보인권 침해와 방대한 예산 문제로 백지화된 사업"이라며 "하필이면 3500만 주민번호 유출 사고가 터지고 전자여권 92만 건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폭로된 해에 전자주민증 제도가 강행되는 것에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전자주민증의 주요 도입 명분은 위변조 방지"이지만 "위변조 공식 통계에는 겨우 499건에 불과하며 그 대부분이 곧 성인이 될 청소년의 변조에 불과"하다며 "많게는 10년 동안 1조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갈 전자주민증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주민번호와 지문을 보호하기 위해 전자주민증을 도입한다는 명분은 어불성설"이며 "전자주민증은 주민번호와 지문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간과 공공에서 그 전자적 쓰임을 촉진하는 계획"이라고 "실명확인을 강제하고 일상적인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또 "전자주민증 법안의 통과로 덕볼 곳은 삼성과 조폐공사 등 전자주민증과 그 인식기의 제조 및 판매에 이해 관계가 있는 기업들일 뿐"이라며 "정부 여당과 민주당은 전자주민증 도입 시도를 중단하고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즉각 폐기시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통합진보당 조승수 의원,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김선수 회장,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상임이사 등이 참석했다.
진보신당 문부식 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전자주민증 제도로 인해 만들어질 일상적 감시사회가 우리 국민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게 되리라는 점에서 우리 당은 전자주민증 제도에 대한 분명한 반대를 선언하며 만에 하나 이 제도가 시행될 때에는 전면적인 거부투쟁을 벌여나갈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선언했다.
2011년 12월 28일 (수) 16:34:46 고영철 기자

‘고문의 추억’, 민주화의 별 김근태 지다


이글은 대자보 2011-12-30일자 기사 '‘고문의 추억’, 민주화의 별 김근태 지다'를 퍼왔습니다.
[오용석의 정언생각] 이근안 지금 보고 있나? 고문이 아직도 예술이더냐?


▲ 민주화의 별, 그 혹독한 80년대 민주화의 여정 모습 ©김근태 미니홈피

이근안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그 유명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근무하면서 매국 조선의 '청룡봉사상'을 포함하여, 재직기간 중 모두 16차례의 표창을 받았습니다. 당시 대공 분야에서는 "이근안 없으면 수사가 안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답니다.

그가 이처럼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투철한 사명감과 남다른 고문기술 덕분입니다. 몽둥이찜질은 기본이고, 볼펜 고문… 관절 뽑기…, 나아가 일명 칠성판에 온몸을 묶고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씌운 채 코와 입에 샤워기를 들이대고 고춧가루와 물을 퍼붓는 물고문, 그리고 새끼발가락에다 전기 줄을 감아 전류를 흘려보내 몸을 마치 불 인두로 지지듯이 바스러뜨리는 전기고문.

지금 고문기술자 이근안,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서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목회자로 입문한 건 “간첩죄로 잡아들인 애들이 후일 민주화 인사로 보상받는 걸 보고 울화가 치밀어 감옥에서, 믿을 수 있는 나라, 배신 없는 나라를 찾다 보니 하늘나라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보고 있나, 이근안? 고문이 아직도 예술이더냐?”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80년대 심문(=고문)은 하나의 ‘예술’이었으며,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다.”라고 당당히 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직자입니다. 

20대 뇌발달 우려하던 중앙, 한나라 26세 비대위원은 '안철수스럽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1-12-28일자 기사 '20대 뇌발달 우려하던 중앙, 한나라 26세 비대위원은 '안철수스럽다''를 퍼왔습니다.
젊은이도 껴줬는데, 한나라당 예쁘게 봐달라고 쓰던가


▲ 한나라당의 26세 비대위원 이준석 대표를 띄운 28일자 중앙일보 3면

지금, 박근혜 비대위의 얼굴은 ‘26세 청년기업인 이준석’이다. 28일자 조중동은 일제히 이준석의 부각에 주력했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정치 보도가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이 청년의 화려한 부상은 10대들의 은어로 ‘갑톡튀’(갑자기 톡 튀어나오다)가 분명하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비대위에 참석한 이준석 대표가 회의 중에 테블릿PC를 만지는 장면을 1면에 걸고 제목은 ‘26세, 한나라를 바꾸나’로 뽑았다. 3면을 털어 이준석 대표를 띄운 중앙일보는 제목을 ‘디도스 수사, 당 검증위원장 맡은 이준석’으로 뽑았다. 동아일보는 더 대담하게 갔다. 이준석을 안철수에 비유했다. 역시 4면을 털어 이준석을 띄우며 제목에 아예  “나와 안철수 엮는 건 억지”라고 갔다. 본인은 억지라는데 동아일보는 엮고 싶은 뉘앙스가 역력하다.
조중동이 이준석 대표에 반색하는 걸 나무랄 생각은 없다. 일각에선 한나라당이 위기를 수습한다며 꾸린 비대위에서 사회 경험이 일천한 26세 청년을 앞세우는 행태로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엄숙주의와 연령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어찌되었건 젊은 세대가 중앙 무대에 진출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다. 설령, 누군가 실패하고 이용만 당한다 하더라도 그런 시도들이 쌓이고 쌓일 때, 한국 정치는 보다 활력 있고 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구조로 인한 실패가 필연적이라도 자꾸 도전해야 한다. 더욱이 한나라당이라면 말이다. 그 동안 한나라당은 젊은 층과의 소통에서 차라리 질식에 가까운 외면을 당해왔다. 트위터 10만 양병설이네 어쩌네 하며 번지수 잘 못 찾았던 대책에 비해 이준석 비대위원의 등장은 훨씬 신선하고 효과적인 전략이다. 이렇듯 간만에 찾아온 뉴비(newbie)이니 만큼 조중동이 호들갑을 떠는 모습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좀 낯 뜨겁긴 하지만 20대의 한나라당 참여 의미를 거듭 강조하며, 그에게 정치적 결정권까지 부여한 한나라당의 시도를 마르고 닳도록 격려해 쇄신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한나라당 이미지 개선에 복무한다해도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는 문제다.


▲ 김정은 체제를 두고 '20대는 뇌발달이 덜 돼 위험하다'고 힐난한 26일자 중앙일보 6면.
그런데 말이다. 딱 이틀 전으로 돌아가 보자. 26일자 중앙일보 6면에는 ‘20대는 여전히 뇌 발달 중 나라를 통치하는 건 위험’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중앙일보는 미국의 신경과학자 샘 왕 교수의 발언을 빌어 “20대는 여전히 뇌가 발달 중인 단계에 있는 나이로, 권력을 쥐고 한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인용한 이 기사는 “20대는 충동을 물리치고 길게 내다보는 능력이 원천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 (중략) 젊은 사람들의 경우 복잡한 결정을 다룰 만한 경험과 기술이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중앙일보의 28일자 이준석 관련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들에게선 왠지 ‘안철수스러움’이 풍긴다. 사회적 책임, 사회공헌, 벤처 그리고 기성 정치에 때 묻지 않은 모습이 그렇다. 특히 서울과학고와 하버드대 출신의 청년 벤처 사업가라는 화려한 ‘스펙’을 지닌 ‘1985년생 비대위원’은 한나라당의 최대 화제였다” 따듯하기가 더할 나위 없고,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단 메시지가 분명하다.
중앙일보 기자는 이준석 대표에게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 가능성”을 물으며 “정치권에 생각이 있느냐”고 거들었다. 사실상 정치를 하란 얘기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등장한 20대를 대하는 보수 언론의 시선은 이처럼 천지차이다. 한 쪽을 향해선 20대는 뇌 발달에 문제가 있어 정치를 하면 위험하다면서 또 다른 쪽은 차기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안철수에 견주고 있다.
이 극단적 어긋남을 뭐라고 해야 할까? 보수는 공산당이 싫어요. 아니면 20대에 대한 보수의 강박이 빚은 정신 분열증? 아니면 그냥 한나라당 좀 예쁘게 봐주세요? 

민주통합당, 철새 둥지 되나?


이글은 미디어스 2011-12-29일 기사 '민주통합당, 철새 둥지 되나?'를 퍼왔습니다.
이상민 의원, 선진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 당적 옮겨


▲ 민주통합당 입당을 선언하는 이상민 의원
한창 당대표 경선 중인 민주통합당에 자유선진당의 현직 의원이 입당한다고 밝혔다. 대전 유성을 지역구로 하는 이상민 의원은 29일 자유선진당을 탈당, 민주통합당으로 당직을 옮긴다고 선언했다. 정권교체를 외치며 한창 주가를 올리는 민주통합당에 철새들이 찾아오는 모양새다.
이상민 의원은 지난 2004년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대전 유성에서 당선됐지만, 18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공천 심사에서 탈락하자, 총선을 20일 앞둔 2008년 8월 19일 탈당했다. 이후 이상민 의원은 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을 저울질하다 선진당에 입당, 당선됐다.
이상민 의원은 29일 기자회견에서 “나와 자유선진당은 너무나 본질적으로 맞지 않아 부딪힘이 많았고 힘들었다”면서 “민주통합당 대열에 합류하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민주당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민주당 김유정 원내대변인은 “이상민 의원은 교과위 의정활동을 통해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야당의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면서 “입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의원을 빼앗긴 자유선진당은 이상민 의원을 '철새'라고 비난했다. 문정림 대변인은 “민주당에서, 자유선진당으로, 다시 민주통합당으로… 또 다시, 어디론가 가는 ‘철새정치인’, ‘배반의 정치인’에 대해, 국민은 마침내, 개탄을 넘어서서 외면할 것”이라며 “배반과 배신조차 미화시키는 민주당의 꼼수에 대해 국민은 마침내 비난을 넘어서서 외면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상민 의원의 입당에 대해 지역구인 민주통합당 대전광역시당은 “일부 당원의 반대로 공식논평을 하지 않는다”면서 박범계 시당위원장의 개인 논평으로 환영의사를 밝혔다.
박범계 위원장은 개인 논평에서 “이상민 의원은 지난 4년간의 의정활동을 통해 민주진보개혁노선을 지켜왔다”면서 “이제 민주통합당의 당원으로서 당헌·당규에 따라 4·11 총선의 대장정에 함께 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반면 대전광역시당 유성지역 당직자들은 지난 26일 “철새정치인 이상민 의원의 입당을 반대한다”며 기자회견을 했다.
대전 유성에서 19대 총선을 준비하는 송석찬 예비후보의 지지자로 알려진 이들은 “이상민은 지난 2008년 제18대 총선 당시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우리 당원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민주당 소속 유성구의원과 당직자들을 데리고 탈당하여 조직을 무너뜨렸다”며 “당의 결정에 불복하고 당 조직을 파괴한 해당행위자를 다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 송석찬 예비후보는 지난 2006년 대전광역시장 선거에 출마에 도전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략공천으로 무산되자 국민중심당 후보로 또다시 출마를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좌절된 바 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그분께 빅엿을 바칩니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1-12-29일자 기사 '“도덕적으로 완벽한 그분께 빅엿을 바칩니다”'를 퍼왔습니다.
[올해의 미디어 인물]인터뷰 나꼼수 김용민PD

2011년은 의 해였다.
MB 내곡동 투기 의혹, 나경원 1억 피부 관리 및 재판 청탁 의혹,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의혹은 기존 시사 보도프로그램을 통해 보도될 법한 사안들이었지만, 나꼼수를 통해 알려졌고, 나꼼수를 통해 확산됐다. 적어도 올 한 해, 기존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꼼수가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KBS, MBC, SBS 구성원들은 “올 한 해 나꼼수를 키워준 건 방송3사”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주관하는 민주언론상을 나꼼수가 수상한 것은 분명 나꼼수의 선전을 의미하지만, 반대로 올 한 해 한국의 언론이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는 세밑을 맞아 언론을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기획 인터뷰를 준비하고자 했다. 하지만 특히 올해만큼은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언론인이 없었다. 이렇다 할, 움직임도 성과도 없었다. 이에 는 한 해 동안 언론의 역할에 충실했던 나꼼수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목사 아들 돼지”로 더 익숙한, 나꼼수 멤버 김용민 PD를 만나기 위해 27일 오후 5시 국민대 국제관을 찾았다. “제가 없더라도 쫄지마~” 깔깔대는 정봉주 전 의원의 웃음소리가 공간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날 김용민 PD가 열심히 작업하던 정 전 의원의 깔때기가 담긴 ‘정봉주 징역 1년 확정 기념 호외’는 27일 밤 공개됐다.

▲ 김용민 PD ⓒ미디어스

먼저, 김용민 PD에게 ‘올 한 해 나꼼수의 가장 큰 성과’를 물었다. 그러자 “각하의 재산 증식에 제동을 걸었다”는 자신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각하의 재산 증식에 제동을 걸었다. 내곡동도 그렇고, 경준이(김경준) 추방도 못하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나. 각하의 탐욕에 제동을 걸고, 각하에게 빅엿을 드린 거다. 그분의 오로지 일생 소원은 재벌이 되는 것인데, 그분에게 가혹한 형벌은 재산 몰수다. 앞으로도 나꼼수가 할 일은 진보 운동의 구심체? 이런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거고, 정말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은 부당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 꼼수를 부릴 수 없도록 하는 게 우리의 존립 목적이다.”(하하)
거셌던 나꼼수 열풍의 이유도 함께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이 시대에 대한 울분의 표출을 나꼼수에 대한 지지로 보여준 것이지 (멤버) 개개인의 인기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때로는 각하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열화와 같은 분노를 사고 있는 이 양반이 살 길이 없겠다 싶다. 퇴임 이후 운신의 폭이 상당히 없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나꼼수 열풍에 따른 후폭풍도 있었다. 조중동 뿐 아니라 스스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까지 나서 “나꼼수가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 “무책임한 폭로만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일제히 쏟아냈다.
이와 관련해, 김용민 PD는 “(나꼼수를 듣는 분들은) 우리를 선택했지, 우리에게 계몽당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를 욕할 게 아니다. 언론과 정당이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조중동, 특히 한나라당은 나꼼수 탓을 하기 전에 본인들이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얼마나 오만한지 돌이켜 봐야 한다. 똑똑한 국민들이라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 김용민 PD ⓒ미디어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정봉주 전 의원 이야기로 흘러갔다. 김용민 PD는 이번 정 전 의원 판결을 “나꼼수 중단 압박용”이라 규정했다. 정권 임기가 1년 남은 상황에서 레임덕을 맞자 ‘정봉주 수감’이라는 최악의 패착을 부렸다는 것이다.
BBK 의혹을 폭로했던 정봉주 전 의원의 징역 1년 확정에 대한 비판이 높다. 오히려 등 해외 언론들이 나서 정 전 의원 수감 소식을 전하며 한국의 표현의 자유 위축을 우려할 정도였다.
“(정봉주 전 의원 수감을 통해 나꼼수를) 없애려고 하는 거다. 그렇지만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이제부터는) 생존에 대한 싸움이 시작됐다. 외신 보도가 나왔다. 일본 언론도 줄줄이 기사를 쓰고 있다. 국격 돋는다. 다른 나라 언론이 보도하는 게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상식 밖의 행동이 분명하다. 대통령에 대한 의혹 제기인데 이 때문에 감옥을 보낸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BBK 의혹이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귀결됐나? 여전히 수많은 의혹이 남아 있고, 진실이 가려지지 않았다.”
덕분에, 앞으로 나꼼수는 3인 체제로 유지된다. 대신, 녹음할 때 정봉주 전 의원 자리에 실제 정 전 의원 크기의 실사 사진을 앉히는가 하면, 나꼼수 방송 곳곳에 정 전 의원의 웃음  소리를 덧대는 등 여전한 존재감을 심어준다는 계획이다. 또, 일주일에 한 번 ‘정봉주 늬우스’를 만들어 근황을 전해주되, 말도 안 되는 얘기는 잘근잘근 씹어줄 예정이라고 한다.

인터뷰 당일, 김용민 PD를 비롯해 김어준 총수, 주진우 기자 등 나꼼수 멤버들은 구치소에 있는 정봉주 전 의원 면회를 다녀왔다. “정봉주 의원은 괜찮으시냐”고 물었더니, “면회 시간 10분 내내 깔때기를 했다”며 당시 유쾌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김용민 PD에 따르면, 정 전 의원은 “구치소에 있는 3천 명이 다 나의 편”이라고 말하는 여전히 깔대기를 보였다고 한다. 또, 정 전 의원은 구치소 벽 한 쪽에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추진할 국정 운영 구상을 메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김어준 총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당시 면회 상황을 메모해야 했던 교도관도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정작 쫄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언론인들”


▲ 김용민 PD ⓒ미디어스
이날 인터뷰에서는 현, 언론 상황에 대한 질문과 대답도 이어졌다. ‘방송사 구성원들이 나꼼수를 키운 건 방송 3사”라고 말할 정도다’라는 질문에, 그는 MB 정권에서 겪은 언론인들의 ‘수난’에 대한 안타까움도 표했다.
“정말 문제는 이 정권 들어 잘 나갔던 사람들이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스크래치 한 번 인생에 안 난 사람은 문제가 있는 거다. 특히 언론인들의 징계, 소송은 훈장이자 스펙이다. 개길 때가 됐다. 1년인데 뭐 못 참나. 언론들이 쫄면 안 된다. ‘쫄지마’는 김어준 총수가 만들 말인데, 정작 이 말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언론인들이다.”

그는 특히, 국민일보와 부산일보의 투쟁에 대해 “멋지다”는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국민일보의 정체성은 조용기였는데 이를 부정하고 거듭나겠다는 것이고, 부산일보 역시 그들의 정체성이었던 정수장학회를 부정하고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우리 언론인들이 용기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언론인들을 향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지난 4년 동안의 언론 굴종의 역사를 면밀하게 기록해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환경이 바뀌더라도 과거 정권에서 가졌던 언론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장 한 명 바뀌었다고 뉴스의 논조가 108도 바뀌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김용민 PD는 현 정권 아래에서 부역했던 언론인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 바로 언론계 ‘친이인명사전’이 그것이다. MB정권에서 승승장구했던 언론인들에 대한 자료 또한 수집하고 있다. 그는 정권에 부역했던 언론인들에 대해 “염치없는 인간들”이라며 “언론을 얼마나 농락했는지 책임 추궁을 시작해 정권이 끝난 다음 그 대가를 지불하게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부탁했다.
“미디어스, 참 좋다. 기사도 기사지만 관점이 있는 글들이 많아서 재밌게 읽는 부분들도 있고, 이런 시각이 있구나 싶다. 절대 쫄지 마시고 내년에 제대로 한 번 개겨 보자. 국민으로부터 신망을 잃은 권력은 존재 가치가 없다. 말 그대로 있으나마나한 정권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기에 심판할 일만 남았다. 각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빅엿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