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4일 토요일

김정일 죽음, 문제는 대북 휴민트야, 바보 언론아


이글은 미디어스 2011-12-23일자 기사 '김정일 죽음, 문제는 대북 휴민트야, 바보 언론아'를 퍼왔습니다.
[기자수첩]김정은 체제 소설 쓸 시간에 누가 축출됐는지 살피시길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일 사망을 온 세계가 동시에 알았다”고 했다. 이 문장에는 ‘우리만 몰랐던 것은 아니다’는 문맥이 감춰져있다. 하지만 원세훈 국정원장은 “김정일 전용열차는 움직이지 않았다”며 김정일 사망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대통령은 몰랐다고 했는데 국정원장은 몰랐던 건 아니라고 한 셈이다.
몰랐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는 건지, 아니면 몰랐지만 괜찮다는 건지, 몰랐던 건 아니라는 건지. 그야말로 황당한 상황의 연속, 엇박자의 블루스가 이어지고 있다. 정가에서 원세훈 국정원장의 별명은 ‘원따로’인데, ‘원래 따로 움직인다’는 말의 줄임이다. 어쩌면 원 국정원장은 이제 대통령과도 따로 움직이기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23일자 주요 일간지 가운데 대북 휴민트 붕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심층 취재한 곳은 '한겨레' 정도가 유일했다. 사진은 23일자 한겨레 3면.

그래서 차라리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얘기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정 의원은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휴민트(인적정보)가 붕괴됐다”며 그 이유가 “대북 휴민트가 반MB로 몰려 축출 당했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국정원의 물이 갈렸단 얘기다. 북한 관련 정보가 워낙에 없어 탈북자들로부터 돈을 주고 사고 있단 증언까지 나왔다.
설득력이 있다. 원 국정원장은 행정안전부 장관 시절 행안부 내의 참여정부 인맥을 숙청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9년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원세훈 행안부 장관은 취임한 이후 행안부 내에 남아 있는 참여정부의 색깔을 빼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참여정부 시절 자주 사용했던 용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참여정부에서 자주 사용했던 ‘혁신’이라는 말 대신에 ‘창의’라는 표현을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용어도 싫어했던 그가 참여정부에서 중용한 인사를 썼을 리 만무해 보인다. 원세훈 국정원장 이후 국정원의 핵심 라인은 분명 굉장히 ‘서울시청’스러워졌다. 원 국장의 또 다른 별명은 ‘원 주사’(그는 9급 지방직 공무원 출신이다)이다. 
아직까지 언론은 대외비를 다루는 정보라인의 문제 때문인지 누가 축출당한 ‘대북 휴민트’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정원에서 축출당한 누군가의 증언들을 받으면, 왜 이처럼 이명박 정부가 엇박자의 블루스를 추고 있는 것인지 금새 알 수 있을 텐데 누구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건 차라리 이명박 정부 들어 두드러진 언론의 한 특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론은 언젠가부터 정부가 말하면 말하는 만큼만 쓰고, 정부가 말하지 않으면 없는 사실로 취급하고 있다. 정부에 불리하면 쓰지 않고, 정부에 유리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포장하는 것이 천성처럼 베어가고 있다. 정부의 공식 보도 자료가 곧 기사이고, 의혹과 관련해선 정부의 해명이 나오기 전까지 기사화하지 않는다. 정부가 해명을 하면 의혹보단 정부의 해명이 중요하게 처리된다.
대북 휴민트의 붕괴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 던져진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언론이 반드시 확인해야 하고 짚어내야 하는 사실 관계이다. 연간 1조원 이상의 예산을 쓰는 국정원이 YTN을 보고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알았다면 이는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자기 부정 행위다. 언론은 마땅히 국정원의 존재 이유를 따져 물어줘야 한다.
대통령도 몰랐고, 국정원장도 몰랐던 김정일의 죽음을 언론이 먼저 알았을 리는 만무하다. 무슨 얘기냐면, 지금 언론이 신나게 써대고 있는 김정은 체제 북한의 실세, 누가 북한을 통치하나, 김정일 일가의 가계도, 김정일의 여인들 뭐 등등에 관한 비본질적이고 잡다 구리한 기사들의 경우 신빙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는단 얘기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을 낌새조차채지 못했던 언론은 그 이유를 ‘북한 사회의 폐쇄성으로 정보가 전혀 유출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북한 최고 권력층의 속살과 같은 정보에 대해선 어떻게 그렇게 본 듯이 얘기할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루 이틀 사이에 평양에, 김정은에 ‘빨대’라도 꼽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언론이 하고 있는 김정은 체제 북한의 권력 관계 예측과 실세 전망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프로야구 스토브 리그 기사를 보고 있는 듯하다. 이름이 조금 알려진 선수들의 놓고 ‘주전 쟁탈 경쟁’,  ‘역대 최고수준’, ‘ㅇㅇㅇ선수 주목’, ‘돌풍 예고’ 등의 제목을 달아 최대한의 미사여구를 동원해 쓰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프로야구 스토브 리그 기사의 경우 그래도 그만 안 그래도 그만이란 점에서 별 사회적 해악이 되지 않지만, 북한 문제의 경우 그 양상과 예민함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무협지쓰듯 써 내려가는 언론의 기사는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한 ‘놀이’이다.
그럼 무슨 기사를 쓰느냐고 볼멘소리 할 것도,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대북 휴민트의 붕괴에 집중해야 한다. 김정일 이후의 남북관계를 논하기 위해서 내부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정권이 바뀌건 바뀌지 않건 남북평화공존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은 전체 기자 사회가 공유해야하는 변하지 않는 가치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가 제 역할을 하도록 감시, 견인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그걸 망가뜨렸다. 대답을 분명히 해줘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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