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8일 일요일

선관위 테러 수사, 검찰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16일자 기사 '선관위 테러 수사, 검찰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퍼왔습니다.
[기고]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공격 사건으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건 두말할 나위 없이 한나라당일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이나 나경원 캠프가 조직적으로 투표방해 행위를 기획하고 실행했다는 증거들이 드러난다면 한나라당은 해산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에서 주권행사의 가장 직접적이고 주요한 수단인 투표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집단적으로 방해했다는 것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으로 정당해산의 충분한 사유가 된다. 물론 헌법상 정당해산의 심판 권한이 헌법재판소에 있으므로 함부로 예단할 일은 아니지만, 정당해산에 대한 사법심사 이전에 한나라당이 국민들의 비난 여론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대청마루에서 황운하 수사기획관이 선관위와 박원순 서울시장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에 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사 한나라당이 자의로 해산하거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이 재창당할 것은 불문가지다. 그렇지만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해 해산했다 재창당한 정당에 표를 줄 유권자들은 예전 보다 훨씬 줄어들 확률이 높다. 쉽게 말해 한나라당이나 나경원 캠프가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한나라당 혹은 그 후신 정당의 정치적 행보는 흉험무비할 것이 확실하다. 

존망의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과는 반대로 야당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호재를 잡은 셈이다. 투표행위를 근간으로 하는 선거제도를 부정하는 정당과의 경쟁은 한결 손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생각만 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초대형 행운이 야당측에 깃든 건 자명해 보인다.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 사건이 야당에게만 기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던 검찰에게도 선관위 홈페이지 사건은 재기의 발판 역할을 할 수 있다. 검찰입장에서는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사건의 일차 수사를 맡은 경찰의 수사가 총체적 부실이었다는 점이 크게 다행한 일일 것이다. 수사권 독립에 조직의 사활을 걸고 있는 경찰이 이 사건의 실체를 대략이나마 규명한 상태에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면 검찰의 활약이 돋보일 여지가 현저히 줄어들었을 테니 말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경찰수사는 상식과 이치에 어긋난 데다 갈팡질팡을 거듭했다.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수사권 독립을 지지하는 여론을 형성하는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는 틈을 타 검찰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사건을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인 공아무개씨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던 경찰의 수사와 검찰의 수사는 방향과 기법에서 사뭇 다른 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을 공씨 개인의 우발적 단독범행이 아니라 다수의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범죄로 파악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망이 더 촘촘해지고 수사의 범위가 더 넓어질수록 선관위 홈페이지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게 될 것이다.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사건의 최말단 소총수에 불과한 공씨로부터 출발한 수사의 촉수가 어떤 기관과 어느 선까지 도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검찰이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 사건의 실체와 의혹을 증거에 입각해 낱낱이 밝혀낸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검찰은 아래로만 향하고 있는 국민들의 신망과 기대를 반전시킬 동력을 단번에 확보하게 될 것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를 검찰이 부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를 포함한 검찰 내부에서 검찰 최상층부를 포함한 제 세력으로부터 혹여 쏟아질지도 모를 일체의 외압을 단호히 이겨낼 결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쉴새 없이 터져나오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들을 둘러싼 비리와 추문들에 대한 엄정한 검찰 수사는 불가피하고 필요한 일이겠지만, 검찰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데다 레임덕에 허덕이는 대통령의 주변만 단속한다는 의심을 받아서는 곤란하다. 자칫하면 검찰이 새로운 정치권력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저무는 권력을 사납게 몰아세운다는 국민들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검찰이 불편부당한 공권력의 집행자인지 여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는 이명박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에 대한 엄정한 수사가 아니라, 한국정치지형에서 상수(常數)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이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에 개입했는지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다.

모쪼록 대한민국 검찰이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사건에 대한 공정하고 엄격하며 합법적인 수사를 통해 정치검찰의 오명을 조금이나마 씻어내길 바란다. 국가형벌권의 집행을 전속적으로 관할하고 있는 검찰이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조롱과 불신과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