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6일 월요일

정조의 효심이 담겨 있는 길... 가보니 가슴이 아프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12-26일자 기사 '정조의 효심이 담겨 있는 길... 가보니 가슴이 아프다'를 퍼왔습니다.
노송지대, 기록에 의하면 소나무 500그루가 있어야 하지만

▲ 노송지대 수원시 장안구 파장도 일대에 자리한 노송지대. 정조가 이곳에 식목관을 시켜 500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 ⓒ 하주성

수원시 파장동에서 지지대비로 넘어가는 길. 약 5km 정도의 이 길은 예전 정조대왕이 능침에 잠들어 있는 아버지인 장헌세자(사도세자)를 만나러 다니는 길목이었다. 이 길은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느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수령 200여 년을 넘는 소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노송길. 예수가 이 땅의 고통을 짊어지러 왔다는 12월 25일, 노송지대를 걸었다.

지난 23일에 내린 많은 눈 때문에 소나무가 있는 곳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럽다. 기온이 떨어진데다가 바람까지 분다. 손이 시려 사진을 찍기가 조금은 불편하다. 2차선 도로를 따라 양편으로 자란 소나무들은 정조 시대에 심었다고 하니, 아마 수령이 200여 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500주의 소나무를 심은 정조


▲ 노송지대 노송지대는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19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 하주성

▲ 노송 현재는 38그루 정도의 당시에 심은 소나무들이 남아있다. ⓒ 하주성

서울 - 수원간 국도를 따라 5km 정도에 조성돼 있는 노송지대. 기록으로 따지면 이곳에 500주 이상의 소나무들이 살고 있어야 한다. 이산 정조(1776~1800)가 부친인 장헌세자의 원침인 현륭원의 식목관에 내탕금 1000량을 하사해 이곳에 소나무 500주와 능수버들 40주를 심게 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소나무들은 자라면서 솔씨를 퍼트려 새로운 종자를 키워내기 때문에, 200년이 지난 세월이라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 고사하고 38주 정도의 노송만이 보존돼 있다. 이 노송지대는 1973년 7월 10일, 경기도 기념물 제19호로 지정이 됐다.

정조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 소나무길 파장동에서 경수도로를 따라 지지대비로 오르는 5km 정도에 소나무들이 있다 ⓒ 하주성

▲ 소나무 정조 당시에 식재를 한 이 소나무들은 수령이 200년이 지난 노송들이다 ⓒ 하주성

노송길 끝에 있다는 지지대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산 47-2에 소재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인 지지대비는 정조의 지극한 효심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 7년인 1807년에 화성 어사 신현의 건의로 세워진 비이다. 정조는 아버지인 장헌세자의 능을 참배하고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늘 이곳에서 거동을 멈추고 능침이 있는 방향을 돌아봤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 비의 이름이 '지지대비'이다. 지지대란 정조대왕이 이곳에 오르면 행차가 느릿느릿해진다고 해, 느릴 '지(遲)'자 두 개를 붙여 썼다고 한다. 정조 이산의 그런 효심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노송지대일 것이란 생각이다. 


▲ 소나무 노송지대에 남아있는 소나무들. 모두 번호를 달고 있다 ⓒ 하주성

▲ 번호표 정조 당시에 심은 것으로 보이는 노송들은 모두 번호를 갖고 있다 ⓒ 하주성

노송이 길을 따라 울창한 이 길. 이 길에 얽힌 사연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무슨 이유로 정조 이산은 자신이 부친의 능침을 돌아보는 길목에 소나무를 500주나 심었던 것일까? 아마도 소나무의 생명이 길다는 것을 감안한 것은 아니었을까? 즉 소나무처럼 생명이 강한 조선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자라기 힘든 메마른 곳에서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또한 사철 푸르른 잎을 지니기 때문에 강인한 인상을 준다. 소나무는 변함없는 푸름 때문에 대나무와 함께 송죽지절(松竹之節·변하지 않는 절개)이라 불린다. 이렇게 소나무를 심어 놓은 이산 정조의 마음속에는 변하지 않는 효심과 강인한 조선, 그리고 강한 왕조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을까.


▲ 지지대비 능침을 돌아 본 정조가 한양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부친 장헌세자의 능침을 뒤돌아보고는 했다는 것이다. ⓒ 하주성

바람이 차다. 500그루나 되는 소나무들이 10분의 1도 남지 않았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 아마 제대로 관리가 됐다면, 이 일대는 정조의 효심을 가득담은 솔밭이 됐을 것이다. 지금도 양편으로 늘어선 소나무 사이를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차량들을 보며 '저 나무들도 언젠가는 매연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것은 이산 정조의 효심이 사라지는 것일 텐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수원인터넷뉴스와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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