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고문의 추억’, 민주화의 별 김근태 지다


이글은 대자보 2011-12-30일자 기사 '‘고문의 추억’, 민주화의 별 김근태 지다'를 퍼왔습니다.
[오용석의 정언생각] 이근안 지금 보고 있나? 고문이 아직도 예술이더냐?


▲ 민주화의 별, 그 혹독한 80년대 민주화의 여정 모습 ©김근태 미니홈피

이근안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그 유명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근무하면서 매국 조선의 '청룡봉사상'을 포함하여, 재직기간 중 모두 16차례의 표창을 받았습니다. 당시 대공 분야에서는 "이근안 없으면 수사가 안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답니다.

그가 이처럼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투철한 사명감과 남다른 고문기술 덕분입니다. 몽둥이찜질은 기본이고, 볼펜 고문… 관절 뽑기…, 나아가 일명 칠성판에 온몸을 묶고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씌운 채 코와 입에 샤워기를 들이대고 고춧가루와 물을 퍼붓는 물고문, 그리고 새끼발가락에다 전기 줄을 감아 전류를 흘려보내 몸을 마치 불 인두로 지지듯이 바스러뜨리는 전기고문.

지금 고문기술자 이근안,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서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목회자로 입문한 건 “간첩죄로 잡아들인 애들이 후일 민주화 인사로 보상받는 걸 보고 울화가 치밀어 감옥에서, 믿을 수 있는 나라, 배신 없는 나라를 찾다 보니 하늘나라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보고 있나, 이근안? 고문이 아직도 예술이더냐?”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80년대 심문(=고문)은 하나의 ‘예술’이었으며,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다.”라고 당당히 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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