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미소금융, 서민의 돈을 강탈하다


이글은 시사인 2011-12-29일 기사 '미소금융, 서민의 돈을 강탈하다'를 퍼왔습니다.
미소금융 간부와 특혜를 받은 국민포럼 대표가 뇌물 혐의로 조사 받고 있다. 취재 결과, MB 정권 측근들이 주무른 이 사업의 허점이 드러났다. 저소득층을 위한 금융마저 약탈의 대상이었다.

도처에 약탈이 만연해 있다. 크든 작든 ‘경제적 잉여’가 있음직한 곳엔 어김없이 ‘빨대’가 꽂혔다. 대통령이 차명 부동산 투기로 고발당하고 측근 세력과 친인척들이 비리로 구속되는 판국이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을 돕던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저소득층 시민의 돈을 약탈한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2월 초부터 미소금융중앙재단 간부인 양 아무개 부장을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이다. 양 부장에게 뇌물을 준 사람은 민생포럼이라는 단체의 김 아무개 대표. 그 역시 뇌물 공여와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청와대가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의 결정판’이라고 했던 미소금융 시스템에서 불거진 사건이다.

미소금융은 한국형 ‘마이크로 파이낸스’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란, 일반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힘든 저신용·저소득층의 자활을 위해 무담보로 소액 자금을 빌려주는 사업. 2006년 방글라데시의 교수 겸 금융가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마이크로 파이낸스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바도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사회연대은행, 신나는조합 같은 시민단체가 민간 차원에서 이 사업을 벌여왔다.

‘위’에서는 크게, ‘밑’에서는 작게? 

그런데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이른바 ‘친서민 정책’의 지위를 얻게 된다. 이 체계의 중심은 사실상 정부기관인 미소금융중앙재단(미소재단)이다. 미소재단의 재원은 수천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휴면예금과 기업·은행 등의 위탁금. 미소재단은 이 자금을 민간의 ‘복지사업자’들에게 배정한다. 실제 현장에서 대출 희망자를 직접 심사하고 선별해서 돈을 빌려주는 일은 이 복지사업자들의 몫이다. 이런 복지사업자들에겐 당연히 일정한 공신력과 윤리성, 무엇보다 대출 희망자가 돈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인지 가늠하는 심사 능력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소재단은 ‘선정심사위원회’를 통해 “서류심사, 면접, 현장실사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복지사업자를 선정했다”고 공언해왔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16일 미소금융 1주년 기념식에서 진동수 금융위원장(왼쪽에서 네 번째)과 김승유 미소재단 이사장(왼쪽에서 다섯 번째) 등이 박수를 치고 있다.

미소재단의 양 부장에게 뇌물을 준 김 대표의 민생포럼 역시, 미소재단이 이런 ‘엄격한 절차’로 고르고 골라 복지사업자로 선정한 단체다. 검찰에 따르면, 민생포럼 김 대표는 많은 위탁금을 받기 위해 미소재단 양 부장에게 1억원을 주었다. 그 대신 양 부장은 민생포럼에 위탁금 50억원을 배정했다. 민간 복지사업자 중에서 가장 많은 배정금이다. 그런데 김 대표는 민생포럼 이외에 또 하나의 민간단체를 설립해 센터장(실무 총괄)으로 일하고 있다. ‘사단법인 사람사랑’이다. 사람사랑 역시 복지사업자로 선정돼 위탁금 10억원을 받았다. 민생포럼의 주소지는 사람사랑과 같다. 

민생포럼은 2009년 말 미소재단의 복지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줄곧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다. 마이크로 파이낸스 부문에서 쌓은 경험이 없을뿐더러 다른 특별한 사업도 알려진 바 없는, 수수께끼 같은 단체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익법인(사단법인·재단법인)도 아니어서 이런 단체에 거액을 맡겨도 되는지 논란이 일었다. 공익법인은 남의 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반드시 이사회와 감사를 두고 외부 회계감사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민생포럼은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나지 않아 이런 감독 체계가 없다. 명색이 서민 대출을 하겠다는 단체인데 홈페이지도 없다. 미소재단이 고르고 골라 가장 많은 돈을 위탁한 복지사업자가 하필 이런 단체였던 셈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보면 민생포럼은 복지사업자로 선정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단체였다. 2007년 8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민생포럼의 발족식은 ‘사회양극화 극복을 위한 민생 대토론회’라는 행사의 2부였다. 1부인 ‘소외층 금융지원 방안’에서는 마이크로 파이낸스 기구의 설립이 제안되었다. 당시 민생포럼이 부스 앞에 내건 플래카드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즉, 이 행사는 마이크로 파이낸스를 이명박 후보·민생포럼과 엮어내는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절차였던 셈이다.

이 단체 대표들의 행보를 봐도 정치색이 역력하다. 유선기 초대 상임대표는 대선 전후 이명박 후보의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사무총장으로 옮겼다가 KB국민은행 경영자문, 대한생명 경제연구소 고문 등을 거쳤다. 그 다음 대표인 김오연 전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은 예금보험공사 감사로 재직 중이다. 이 자리는 문융식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거쳐 현재 구속되어 있는 김 대표로 넘어갔다.

검찰은 김 대표에게 뇌물 공여와 함께 횡령 혐의까지 추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구체 내용은 밝히고 있지 않다. 이 취재 중 포착한 혐의 내용은, 미소금융 시스템이 돈을 다루는 공적 기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게 운영되어왔다는 점이다.


2000만원 빌렸는데 2억원 빌린 것으로

‘사회적 기업’인 ㄱ법인은 최근 민생포럼으로부터 2000만원을 대출받았다. 그런데 관련 계약서에는 2억원을 대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연유에 대해 ㄱ법인 관계자는 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생포럼 측에서 ‘우선 운영비로 2000만원을 주고, 나머지는 이후 필요할 때 시설자금으로 대출해주겠다’고 말하기에 그런 줄 알았다.” 정리하자면 민생포럼은 ㄱ법인에 2억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미소재단에 신고하고 사실은 2000만원만 빌려준 것이다. 나머지 1억8000만원은 어디로 갔을까. ㄱ법인 관계자는 사건이 터진 뒤 검찰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ㄱ법인 명의의 도장이 민생포럼 측에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ㄱ법인은 민생포럼에 도장을 넘긴 바 없다. 즉, 위조된 도장이다. ㄱ법인 이외 업체의 도장들도 검찰의 압수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가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시중은행·저축은행 등 다른 대출기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금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이 각종 서류를 통해 일상적으로 대조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산체계로 자금 흐름이 실시간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실제 대출금’과 ‘대출한 것으로 기록된 금액’이 다른 경우는 있을 수 없다. 혹시 미소재단은 전산체계도 구축해놓지 않고 사업을 해온 것일까. 이 경우에는, 대출자를 직접 만나 확인하는 방식의 점검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ㄱ법인 측 관계자는 “미소재단이 실제 대출금액을 확인한 것은 사건이 터진 뒤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다른 복지사업자인 ㄴ사를 통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미소재단은 전산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었다. 미소재단이 직영하는 ‘지역 지점’에서는 이미 전산 시스템을 사용해왔다. 웹상에서 관련 도메인에 접속한 다음 자금 운용 내역을 입력하면 된다. 그러나 외부 복지사업자인 ㄴ사의 경우, 이 도메인에 입력해도 내용이 전송되지 않았다. “답답해서 미소재단 측에 여러 번 문의했으나 딱 부러진 대답을 내놓지 않더라” 하고 ㄴ사 관계자는 말했다. ㄴ사는 매월 위탁금 운용 내역을 서면으로 보고한다. 그렇다면 미소재단 처지에서는 서면보고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출금 확인과 관련해서는 올해 한 번도 점검받은 적이 없다”라고 ㄴ사 관계자는 말했다. 복지사업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형 사고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돈을 빌려줬다고 허위로 보고하고 위탁금을 받아내면 된다. 대출자의 도장을 위조하는 일 따위는 땅 짚고 헤엄치기다. 


철저히 정치적으로 설계되고 운영된 사업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미소금융 시스템 자체가 철저히 정치적으로 설계되고 운영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미소재단의 주요 재원은 휴면예금과 기업 및 은행의 기부금이다. 정부나 한나라당의 돈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미소금융 시스템의 중심으로 진입하면서 특정 정치세력의 영향력 확대나 심지어 사익을 위해 활용되고 이 와중에 ‘서민 약탈’이 자행되는 정황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 파이낸스 부문의 국제 협의기구인 CGAP에서 발표한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원칙’에 따르면, “정부의 임무는 (저소득층) 금융 서비스의 틀을 짜는 것이지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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