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5일 일요일

“교류단절로 인한 대북정보 부재, 현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24일자 기사 '“교류단절로 인한 대북정보 부재, 현 정부의 자업자득이다”'를 퍼왔습니다.
[인터뷰]정일용 615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상임공동대표

연합뉴스에서 오랫동안 북한 및 한반도 관련 보도를 하며 기자협회장을 역임한 정일용 기자는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상임공동대표로서 남북교류 사업도 수차례 관여한 바 있다. 

정일용 대표는 23일 오후 와의 전화인터뷰에서 ‘94년에 비해 언론보도가 차분하고 냉정해졌다’는 평가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북에 대해 잘 모르면서 추정에 추정을 거듭해서 쓰고 있다”고 쓴 소리를 했다.

정일용 대표는 일부 언론의 김정은 후계체제가 준비가 부족하고 불안하다는 보도와 관련, “오히려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가 될 때보다 북 사회가 내부적으로 안정돼있다고 볼 수도 있다”며 새로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일용 대표는 일선에서 북한 관련 보도를 하는 후배들에게 “북한에서 나오는 원전에 근거해 최소한 북의 주장이 이렇다 라고 보도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며 ‘사실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언론이 남북관계를 파탄내자는 것이 아니라면 관계개선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정일용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상임공동대표

다음은 정일용 대표와의 일문일답 요지다.

-언론보도가 94년에 비해 차분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언론은 서거냐 사망이냐 하는 지엽적인 논란을 부채질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보도를 하고 있다.

=94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좀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북과 교류접촉 많아지면서 북쪽에 대해 전보다 좀 많이 알게 돼서 그렇지 않겠나?
그러나 남쪽이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는지도 모르는 것이 정부와 언론의 수준이다. 북과 김정은 후계자에 대해 잘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추정해서 쓰는 것은 쓰는 기자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다. 국민들도 94년과 비교하자면 (북에 대한 선정적인) 그런 기사가 나온다 해도 별로 주목하지 않고 있다. 

김정일 후계 승계 당시보다 현재의 북이 훨씬 안정돼 있어

-김정은 후계자가 갓 서른도 안 된 인물로 사실상 허수아비라거나 북이 극도의 혼돈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는 가설이 쏟아지고 있다.

=나이만 갖고 따질 것은 아닌 것 같고 후계자 수업을 오래 못 받았다, 후계자로서 활동이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후계자 결정 과정에 삼촌이나 경쟁세력이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한창 자랄 때는 북이 유일사상을 정립한다 면서 내부 정리가 필요한 분위기였다. 김정은 후계자 지명은 김정일 위원장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안정적이다.
경제로 보더라도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1994년에도 힘들었고 이후 계속 가뭄이다, 홍수다 해서 얼마나 힘들었나? 그때와 비교하면 북쪽에서도 경제적으로는 좋아졌다고 말하고 외신에 따르면 북의 올해 식량 작황이 괜찮다는 보도도 있다. 그런 면을 종합해보면 김정은 후계자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분위기에 권력을 승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대 세습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언론과 일부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생각을 어떻게 가지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부인할 수도 없고,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북의 현실이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들어선 것을 부인할 수 있겠나?

-김일성 주석도 생전에는 남쪽으로부터 극심한 비판에 시달리다 사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비교되며 언론의 평가가 후해졌다. 지금도 김정은 후계자와 비교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름대로 지도력이 있었다는 식으로 상대적으로 후하게 평가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것이 보인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 해서 좋게 평가하고 새로 등장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깎아내리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김정은 후계자에 대해서는 당분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북을 봉쇄고립시키니 정보도 얻을 수 없어

-북의 서거 발표 이후 남측이 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가 대단히 부족하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드러났다. 정부여당 쪽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의 정보력이 약화됐다고 하고, 반대로 남북교류 차단이 정보력 부재의 주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본래 서로 만나고 해야 주워듣기라도 하지. 이 정부 들어와서 언론본부만 해도 만남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첩보위성이 지름 몇 센티미터짜리 물체를 구분한다 해도 건물 내부 상황이나 사람 생각을 어떻게 끄집어낼 수 있나. 이명박 정부와 미국 등 서방의 자업자득이다.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 고립시켜서 폐쇄적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정보가 있을 수 없다. 

ⓒ6.15남측위 언론본부 2006년 남북언론인토론회 합의서에 서명(수표)한 남측 언론본부 정일용 상임대표와 북측위원회 양철식 사무국장이 기쁜 표정으로 합의서를 교환하고 있다.

-이전 정부처럼 남북 교류가 활성화 됐다면 지금과 달랐을까?

=교류가 진전되고 만나고 있었다면 갑자기 17일 뭔가 변화가 있다면 알 수 있지 않았겠나. 관계가 진전됐다면 북쪽에서도 숨기지 않았을 것이다. 개연성으로 보자면 보다 빨리 알았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정부는 조의 대신 위로를 표명하고, 이희호 현정은 여사 외 민간 조문은 불허하되, 민간단체의 조의 표명이나 조전 발송은 허용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어떻게 보나?

=남북 간의 특수관계를 떠나나 조문을 가는데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스운 이야기다. 사람들이 잘 기억을 못하는데 북쪽에서 조문을 오거나 조전을 보낸 것은 상당히 여러 차례다. 정주영·정몽헌 회장과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 그리고 통일 관련 인사 등에 여러 차례 조의를 전했다. 그렇다면 북쪽이 더 유연한 것이 아닌가. 
남에서 정부 차원 조의 표시 대신 동포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달한다고 하는데 굳이 김정일 위원장 등 지도체제를 인민과 구분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 식이라면 막말로 잘 됐으니까 축하한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쪽에서 이렇게 유연하게 하리라고는 북에서 생각도 못했을 거라는데 말 하다보니 유치하고 웃음이 난다. 꼼수로 보인다.
북쪽에서 와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쪽에서 남북관계 개선 생각해서 조문 가겠다고 하는데 누구는 가지 말라고 무슨 잣대로 하는가? 

북 관련 보도에서 북의 ‘원전’ 중시해야

-북 관련 보도는 사실 관계 확인도 어렵고 명예훼손 같은 위험도 없어 ‘소설 쓰기’의 유혹이 많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1차적으로 원전, 즉 북쪽 신문이나 방송, 출판물에 기초해서 기사를 썼으면 좋겠다. 최소한 북이 그렇게 주장했다는 것은 사실 아니냐. 사실이든 선전이든, 북의 말은 알 수 있다. 또 깊이 오랜 시간 보다보면 어떤 건져낼 것이 있다.
지금 남북관계의 향방은 남에 많이 달려 있다. 북도 남이 하기 따라서 상당히 좋아질 수도 있고 끝장날 수도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언론이 남북관계를 파탄내자는 것이 아니면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가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앞으로의 남북관계 어떻게 전망하나

=김정일 위원장 부고를 보면 상당히 장문이다. 김 위원장 치적이 나오고, 뒷부분에 남북관계에 대해 조국통일 3대헌장과 남북 간의 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해 자주적인 통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 시대와 변함이 없다. 김정은 시대를 보면 큰 틀이 바뀐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핵문제는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문부터 20년 넘게 계속되는 문제다. 김정은 시대라고 갑자기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외부 압박으로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자기 편의주의적인 생각일 뿐이다.

고희철 기자khc@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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