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사설]한반도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대응해야


이글은 경향신문 2011-12-19일자 사설 '[사설]한반도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대응해야'를 퍼왔습니다.
ㆍ김정일 사후 우리의 태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지난 17년간 절대권력으로 한반도의 반을 통치해온 최고 지도자가 수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영원히 떠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지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의 사망 소식은 충격적이다.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으로 6자회담 재개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노력도 당분간 중단이 불가피해졌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반도에 커다란 격랑이 몰아칠 수도 있다. 우리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앞으로 발생할 상황들을 예측하고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김 위원장의 공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인 핵 개발로 인해 북한이 세계적으로 더욱 고립되면서 북한 주민의 생활이 피폐해지고 인권 상황이 나빠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여기에다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남북 대결 정책을 취했다. 반면 6·15 공동성명과 10·4 공동성명 등으로 남북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한 전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김 위원장 사후 북한의 장래다. 현재 북한은 아버지 김 주석의 사망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 볼 때 김 주석의 사망 때는 후계자 문제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김 위원장은 1970년대 초 후계자로 공식지명되어 김 주석의 생전에 사실상 북한을 다스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아들 김정은은 후계자로 지명된 지 불과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새 체제가 안정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또 북한의 경제 상황은 김 주석이 사망한 1994년보다 훨씬 열악하다. 김 위원장이 경제개발을 독려해왔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북한의 외부 여건도 17년 전보다 녹록지 않다. 당시에는 북한 핵 문제가 북한과 미국의 회담으로 해법에 가닥이 잡힌 상태였다. 그리고 세계적 이슈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의 핵실험과 농축우라늄 개발로 북한 핵 문제는 세계적 문제가 됐으며, 북·미의 현격한 입장 차이로 해결의 접점을 찾기 힘들다. 북·미가 지난주 베이징 접촉에서 3차 양자대화에 합의했지만 북·미 관계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김 주석 사망 때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현재는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이명박 정부의 강경 대북정책으로 남북이 극도로 대립하고 있다. 

북한이 어디로 갈지는 1차적으로 북한의 선택에 달렸다. 최대 관심사인 후계자 문제에 대해 북한은 김 위원장의 사망을 알리는 ‘보도전문’에서 ‘김정은 동지의 영도 따라’ 오늘의 난국을 이겨나가자고 밝혀 김정은이 후계자임을 분명히 했다. 권력 세습 과정이 짧았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권력 장악에 한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북한 체제가 당장 불안정한 국면에 빠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들도 대부분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 사후 북한의 가장 큰 변수는 경제난이다. 경제난이 지금보다 심각해질 경우 북한은 바람직하지 않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새로 북한을 이끌어 갈 김정은 체제가 정책의 초점을 경제난 극복에 맞출 개연성이 높다.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난으로 인한 내부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극단적인 세력이 군사적 모험을 자행할 개연성이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는 경제난에서 벗어나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해 조속히 체제를 안정시키고,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매진하길 기대한다.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는 또다시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 우리의 대응방향에 따라 남북 갈등이 더욱 심화할 수도 있으며, 정반대로 화해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이 기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이 기회를 남북 화해의 계기로 삼으려면 기본방향을 ‘한반도 안정’에 두고 결단력 있게 대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반도 안정을 위해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안정을 해칠 뿐이다. 김일성 사망 때 이미 경험한 바다. 설익은 대북 강경론에 정부가 끌려가면서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됐으며, 결국 그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가 짊어지고 말았다. 이미 국내에는 북한 체제 변화 운운하는 대북 강경론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이 점을 명심하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치권도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것을 삼가지 않으면 안된다.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이따금씩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과 접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북 억압정책과 전략 부재 탓이다. 정부는 북한의 안정이 바로 한반도의 안정이라고 인식하고 북한의 새로운 체제가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 방법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남북관계 개선에 짐이 되고 있는 이른바 ‘5·24조치’ 등은 재검토 대상이다. 

김 위원장의 사망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고 안정시키는 계기가 되려면 한반도 주변국가인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동참이 절대적이다. 북한은 김 주석 사망 이후에도 미국과의 접촉은 계속했다. 정부는 이들 국가와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지수가 높아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끝으로 굳건한 안보태세가 한반도 안정에 필수적임은 새삼스럽게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말이나 행동을 앞세운 과도한 조치는 안보를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해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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