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31일 일요일

눈이 착한 산양, 비무장지대에서 만나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의 블로그 물바람숲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철책선 근처에서 칡잎과 버섯 먹는 모습 지척에서 촬영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살아있는 화석'


고속도로 6개 바꿔 타고 고진동으로

산양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북한강 최상류 지역으로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에 해당하는 오작교 지역이니 우선 화천으로 가야 합니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강원지역의 비무장지대에 접근하는 것은 조금 먼 길입니다. 길은 여러 갈래여서 갈 때마다 혹시 좀 가까운 길은 없나 하고 새로운 경로를 탐색해 보지만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소요 시간은 거의 비슷합니다. 

밤길인데다 몸마저 살짝 고단하니 오늘은 운전이 편한 고속도로를 이어가는 것으로 정합니다. 88고속도로, 대진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포함하여 6개의 고속도로를 지나 춘천에 이르고, 춘천 시내를 관통한 다음 구불구불한 국도를 30분 정도 더 지나 화천에 도착하는 경로입니다.

지금까지 산양을 만나기 위해 다녔던 비무장지대는 양구의 두타연, 가칠봉, 천미리 지역과 고성의 오소동 계곡, 고진동 계곡이었습니다. 

고진동(苦盡洞)이라는 지명은 금강산으로 향하는 여정 중 이곳만 오르면 그 고생이 끝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계곡의 경관이 빼어나기 이를 데 없어서 이곳만 둘러보아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진동 계곡뿐만 아니라 둘러본 지역 모두 원시림이 보존되고 있는 높은 산악지역으로 산양의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해당하는 곳이었으나 결국 산양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시기적으로 워낙 녹음이 우거지고 풀이 무성하여 관찰의 어려움 또한 크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림과 만남의 의미를 지닌 오작교에서는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자정이 막 넘은 시간, 88고속도로 남원 톨게이트로 진입합니다.

철책선 넘어 강물은 구불구불 흐르고

고속도로 6개를 차례로 지나고 춘천도 지나 마침내 화천에 도착했습니다. 푸르른 빛이 어두움을 분주히 밀어내고 있습니다. 곧 동이 트려나 봅니다. 오작교 일대의 비무장지대 취재팀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북한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곳에서 잠시 눈을 붙입니다.

취재팀과 합류한 뒤 민간인통제선 초소로 이동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공보장교가 약속시간에 맞춰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정식절차를 거쳐 군부대 측에 출입에 대한 허락을 미리 얻었고, 같은 부대의 장교가 배석까지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민통선 통제소의 출입문이 바로 열려지는 않습니다. 

출입을 신청한 사람과 직접 온 사람의 신원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출입문이 열리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행동은 공보장교의 통제에 철저히 따라야 합니다. 어디에 지뢰가 묻혀있는지는 귀신이 있다 해도 모를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몇 곳의 초소를 더 거친 후 비포장도로에 들어섭니다. 민통선 지대는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인데, 특히 동부전선의 비포장도로는 사실 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험합니다.

구불구불한 북한강 상류의 물줄기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급경사의 좁은 벼랑길을 아슬아슬하게 감아 돌며 한참을 지나 오작교에 도착합니다. 새로 만든 오작교가 강을 가로지르고 있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민족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예전의 다리입니다. 

폭격으로 이리저리 휜 철골에는 붉은 녹이 묵묵히 내려앉아 스스로 갉아먹은 60년의 세월에 지치지도 않는지 여전히 북한강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나는 알바 없다며 굽이쳐 흘러가기 바쁜 강물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강 양쪽으로는 철책이 이어집니다. 흐르는 바람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소통할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이제 철책에 바로 붙어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아득하게 치솟은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산과 계단 사이에는 폭 10 미터 정도의 산비탈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시야 확보를 위해 마련한 공간이므로 나무는 베어져 있고 풀만 무성합니다. 

8월 중순의 폭염은 참 부지런도 합니다. 해가 중천으로 자리를 옮기려면 아직 멀었건만 장비를 챙기는 잠시 동안에도 땀이 뚝뚝 떨어집니다. 욕심을 내서 여러 개의 렌즈를 챙겨 짊어졌더니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망원렌즈 하나로 짐을 줄입니다. 혹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산양을 만나게 된다면 눈으로만 담아야 하겠습니다. 사실 망원렌즈와 카메라 한 대 그리고 삼각대만으로도 한 짐입니다.

산의 중턱 정도에 올랐습니다. 다리가 휘청거려 도저히 한 계단조차 더는 오르지 못하겠는데 산양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까마득하게만 올려다 보이는 정상까지 철책을 점검하고 내려오는 병사들은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으면서도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내려갑니다. 

물이라도 전해주고 싶은데 물마저 이미 바닥이 났습니다. 오직 계단으로만 하루에도 몇 번씩 정상을 오르내리며 철책을 점검하는 단순한 일상의 임무를 꿋꿋하게 지켜내는 우리의 아들들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잠시 계단을 비켜설 수 있는 곳이 나와 짐을 내립니다. 다리의 형편도 그렇지만 숨이 턱까지 차올라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포기합니다. 중턱에만 이른 것이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철책을 경계로 북녘과 남녘이 한 눈에 들어오며, 이미 꽤 높은 곳이라 구불구불 휘감아 도는 북한강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입니다.

"너무 가까워 화각이 넘칩니다"

이글거리는 땡볕을 두 시간 가까이 온 몸으로 흡수하고 있을 때였나 봅니다. 주로 시선이 멈춰있던 정상 쪽이 아니라 오히려 아래쪽에서 뭔가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풀에 가려 몸이 온전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움직임이 있는 희끗희끗한 물체이니 산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상 쪽으로 향해있던 카메라의 방향을 조용히 바꿉니다. 

마침내 녹색의 풀 사이로 끝이 뾰족한 두 개의 검은 색 뿔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산양입니다. 산과 계단 사이의 좁고 급한 비탈에서 산양 하나가 풀을 뜯다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산속에서 막 비탈로 빠져 나온 듯 산 쪽에 가깝게 있습니다. 

망원렌즈를 통해 보고 있지만 아직 멉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몸을 돌려 산으로 다시 들어가도 끝이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도 끝입니다. 산비탈을 타고 그대로 올라와 주면 좋겠는데 산양이 어디로 이동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풀을 뜯던 산양이 방향을 바꿔 다시 산으로 들어가는 듯하더니 비탈을 따라 조금씩 올라와줍니다. 산양의 걸음 하나하나에 나의 맥박 수는 수시로 바뀝니다. 다양한 종류의 풀들이 있는데 유난히 칡잎만 골라 뜯어 먹고 있습니다. 

다시 산 쪽으로 들어가나 싶었는데 숲 가장자리에 있는 잘려진 나무 밑동으로 향합니다. 버섯을 찾아 먹고 있습니다. 어떤 버섯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거리로는 너무 멉니다.

드디어 산양이 바로 내 앞을 지나갑니다. 너무 가까워서 몸 전체가 화각을 넘칠 정도입니다. 눈까지 서로 마주칩니다. 눈이 정말 착합니다. 

아무리 얼어붙은 듯 서있는 것이라도 커다란 삼각대 위에 놓인 카메라는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데도 산양이 너무 경계를 하지 않아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내가 서있는 곳을 지나 위쪽으로 계속 오르더니 몸 전체가 적절히 화각에 들어올 즈음에서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고개까지 돌려줍니다. 게다가 특별한 몸짓까지 하나 더 보탭니다. 오른쪽 뒷다리를 올려 머리를 긁고 있습니다. 덕분에 배가 온전히 드러나게 되었는데, 4개의 젖꼭지가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암컷입니다.


산양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되짚어 내려오는 길은 지옥 계단이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부터 벌컥 벌컥 들이키고 차가운 계곡 물로 등목을 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입니다. 

철책을 점검하고 내려 온 병사들이 정상 쪽에서 3마리의 산양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취재팀 전체가 말없이 서로 얼굴만 보고 있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으로 의견을 하나로 정합니다. 가을을 기약합니다.

산양을 만난 지 시간이 조금 흘렀는데도 잠을 청하며 눈을 감으면 산양의 맑고 착한 눈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벼랑 끝에서도 200만 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지구의 모진 역사를 다 이겨낸 산양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벼랑 앞에서는 불과 수십 년의 짧은 시간에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산양이란 어떤 동물?

산양은 200만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직립을 하고 불과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를 160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산양은 그보다 훨씬 앞서 출현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산양은 태초의 모습을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립니다. 산양은 우제목 소과에 속하는 야생 동물로 천연기념물 제 217호와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Ⅰ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강원도의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일부 개체가 생존합니다. 또한 산양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의 부속서Ⅰ에 등재되어 있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기도 합니다.

산양은 다른 동물이 접근하기 어려운 1,000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서식하며, 특히 서식지의 기본 요건은 암벽지역입니다.

겨울철에 폭설이 내리면 먹을 것을 찾아 민가 주변의 낮은 지대로 내려오기도 하지만, 한 번 서식처를 정하면 그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벗어나더라도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는 습성이 무척 강한 동물입니다. 

체형은 염소와 비슷하나 더 큰 편이고 턱에 수염이 없습니다. 다리는 짧으며 체색은 전반적으로 회색이 두드러진데 등 쪽 중앙으로는 검은 색 띠가 꼬리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암수 모두 뒤로 굽은 뿔이 있으며, 뿔의 밑 부분에 있는 고리 모양의 주름은 나이에 따라 늘어납니다. 발굽은 험준한 산악 지형의 생활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 아찔할 정도로 깎아지른 절벽도 미끄러짐 없이 잘 타고 다닙니다.

산양은 식물의 연한 잎과 줄기라면 딱히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도토리를 비롯하여 산에서 나는 열매도 즐겨먹으며, 먹이가 부족한 겨울에는 낙엽, 이끼류, 조릿대, 나무껍질, 침엽수의 잎과 가지까지 먹습니다. 

짝짓기는 10월 즈음에 이루어지며, 7개월이 지난 이듬해 5월께 보통 한 마리 혹은 드물게 두 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수유 기간은 1개월 정도이고, 태어난 지 20일 남짓 지나면 어린 산양은 먹이활동을 시작합니다. 어린 산양이 먹이활동을 시작하는 5 ~ 6월은 산의 모든 식물에서 잎이 돋아나 먹이가 가장 풍부할 때입니다. 

2 ~ 5 개체가 작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으며, 낮에는 주로 안전한 바위 벼랑의 쉼터에서 되새김질을 하고 이른 아침과 저녁에 인접한 숲으로 옮겨 먹이활동을 하다 밤에는 바위 사이의 틈 또는 동굴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잠을 잡니다.

1950년대 까지만 해도 태백산맥 줄기의 높은 산악지역에서 산양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산양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는 한약재, 박제, 먹을거리 용도로 이루어진 무분별한 포획이었습니다.

1964년 3월과 1965년 2월 강원도 지역에 내린 폭설 때 포획된 산양이 무려 3,000 개체가 넘었다는 기록마저 있을 정도입니다. 그 많았던 산양의 개체수가 종 존속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감소하자 1968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보호하게 됩니다.

2002년 환경부 자료를 보면, 산양은 전국 21 곳의 서식지에 690 ~ 784 개체가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눈길이 멈추는 것은 21 곳의 서식지 중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여 자체적으로 번식과 존속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100 개체 이상의 서식지는 4곳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4곳(비무장지대, 양구-화천, 설악산, 울진-삼척-봉화)을 제외한 다른 서식지는 소규모의 개체들이 산재해 있어 근친교배 등의 이유로 향후 수십 년 이내에 멸종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서식지 주변의 환경단체와 정부는 힘을 모아 산양 복원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산양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강원도 양구에서는 2007년 산양증식복원센터의 문을 열고 산양의 증식과 복원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의 증식 및 복원 사업은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입니다. 하지만 외양간을 잘 고치면 다시 소를 잃는 일은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2011년 7월 30일 토요일

우토야의 메세지, 제노포비아의 함정

이글은 훅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생긴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주의였다. 경제적 빈곤 앞에서 자신들과 동등하거나 또는 더 잘 사는 타민족에 대한 혐오는 정치권력으로 비화되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나치즘이였다. 나치는 1945년 패망하였고, 정치권력으로서 제노포비아(Xenophobia : 외국인 혐오주의)는 유럽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최근 유럽을 보면 이러한 외국인 혐오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권력이 재부상하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진짜 핀란드인당’이 제 3당, 노르웨이에서는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노르웨이 진보당이 이미 2009년에 제 2당이 되었다. 거기다 스웨덴에서조차 극우 정당인 민주당이 원내에 진입하는 결과는 유럽 사회에서 극우와 민족순혈주의가 강하게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주요국가인 프랑스와 영국, 독일의 정치인들마저 다문화주의 포기를 선언(일종의 책임전가이다)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7월 22일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베링 브레이빅’의 참혹한 반 이민주의 테러는 사실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유럽의 극우세력이 득세하는데에는 반 이슬람으로 대변되는 문화적 충돌과 같은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다름 아닌 경제적 원인에 기인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유럽 경제 또한 위기를 맞았고, 그에 따른 고용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는데, 경제적 호황에서는 부각되지 않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진 셈이었다. 불황 거의 대부분의 경제적 선진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장 값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력난을 해소하는데 일정부분 기여를 하지만 반대로 임금을 동결하는 역할도 한다. 문제는 호황이 아닌 불황에서 표출된다. 호황일 때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값 싼 노동력 때문에 수출 경쟁력 강화와 경제 성장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그에 따른 문화적 갈등은 대중에게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불황일 때에는 위에서부터 정리 해고된 원주민 노동자들의 갈 곳을 막아버리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계층간 갈등이 강화되는 것이다. 특히나 북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표면적 갈등이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이유는 해당 국가들의 인구수가 적다는 공통점에서 출발한다. 유럽의 주요 강국들은 최소 3천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국가들에서 이민자들은 여전히 소수에 해당한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들의 인구는 가장 많은 스웨덴이 908만 명이며, 노르웨이와 핀란드는 각각 464만 명과 546만 명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규모 이주민들의 등장은 해당 국가의 전통 문화를 흔드는 결과로 이어지며, 그에 대한 반발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테러 용의자인 ‘베링 브레이빅’의 명분 또한 바로 이런 문화적 경제적 방어기제에 의존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이미 이주 노동자들은 단순히 반 다문화의 감정보다 안보적 문제 의식이 더 큰 것이다. ‘베링 브레이빅’의 무모한 행동이 제노포비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경고를 할 수 있지만, 필자가 예상하기로는 그렇다고 북유럽에서 진행되는 반 다문화주의가 멈춰질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경제적 갈등과 안보적 위기 의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서 오늘날 우리나라는 유럽과 사정이 많이 다를까? 필자는 유럽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다문화주의를 정책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는 민족주의와 순혈주의를 핵심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당장 국사 교과서만 펼쳐보아도 우리의 역사는 혈통 중심의 역사로 기술되어 있다. 한마디로 대외적 정책과 실질적 교육은 다른 방향인 것이다. 필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을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단재 신채호의 역사관은 철저히 실체 없는 국가에서 구심점을 만들기 위한 민족주의 중심의 역사 기술을 강조했다. 일제 강점 당시에는 이것이 독립심을 고취시키고, 민족 자긍심을 유지하는데 효과적이었겠지만 다문화를 표방하는 단계에서는 혈통 중심의 역사관은 당연히 아킬레스건이 된다. 스스로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편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공교육 체계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학생들에게 주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적 상황은 갈등구조에 대해 유럽보다 더욱 취약하다. 유럽은 블루컬러에 대한 노동 복지가 보장되어있고, 차별도 적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노동시간이 긴 국가 중 하나이며, 화이트 컬러와 블루 컬러 사이의 임금 격차도 상당하다. 또한 두 시장을 불문하고 평균 임금도 일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 국가들에 비해 열악하다. 한 마디로 고강도 저임금 노동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3D 업종은 구인난이 지속되고, 사무직은 구직난이 계속되는 이유도 이러한 임금 격차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내국인이 담당하지 못 했던 3D 업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내국인들에게 임금 동결의 원인과 노동 복지 개선의 저해 요소로서 지목되었을 때이다.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제노포비아의 잠재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 때문은 아니다. 재벌 중심 경제에서 기업 간 불공정 거래가 만연한 탓이 더 크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한 원인 분석은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 사횡서 극단적으로 분노가 쌓여있는 상황을 한 번 가정해보자. 여기서 가장 손쉬운 비난 대상은 어디일까? 서민들의 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경제적 낙수효과를 차단한 대기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들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노동 복지와 고용 촉구를 위한 정치적 힘을 행사할까? 아니면 외국인 노동자들일까? 안타깝지만 손쉽게 표출되는 감정은 다름 아닌 후자를 향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제일 만만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보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낙후된 국가 출신들이다. 거기다 우리와 이해관계가 적고, 소수이다. 이보다 좋은 먹잇감은 없다. 거기다 화룡점정으로 한국인의 상당수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 사실상 우리는 반 다문화주의의 시한폭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정치인들 또한 이러한 점을 십분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진실을 알고 있지만 선뜻 대기업을 대상으로 불공정거래를 시정하고, 임금을 현실화하며, 근로 복지를 강화하는 움직임은 사실 정치인 개인의 입장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국인은 참정권이 없고, 표심을 좌우하는 대상도 아니다. 가장 안정적인 지지를 얻는 방법이 다름 아닌 국수주의를 자극하는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의 지위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공고하다. 외국인 노동자로 인한 원가 절감의 혜택은 실제로 대기업들이 누려왔지만 정작 반 다문화 정서가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주요 주체인 중소기업의 고용 정책과 외국인 노동자들 개인의 문제로 바뀐다.
혹자는 한국의 다문화는 유럽의 노동 이민과 달리 국제결혼으로 인한 것이므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이것은 진실과 다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상당수의 국제결혼은 결과적으로는 인신매매와 다름없다. 그래서 다문화 가정이 다문화에 대해 가장 관용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이주 여성에 대한 폭력과 야반도주로 얼룩져있다. 다문화 가장의 상당수가 사랑과 믿음 그리고 관용으로 결합된 단위가 아닌 경제적 이해관계로서 결합된 단위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우리의 다문화정책이 잘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엉망 그 자체이다. 진실은 합법적 노동에 필요한 한국 국적과 이주 여성들의 몸값 거래를 잘 포장했을 따름이다. 그래서 문화와 문화가 융합되기 보다는 일방적 강요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대중들에게 크나큰 반감(다문화가정에 제공되는 복지가 한국인 차상위 계층의 복지보다 우선되는 경우가 실제로는 적지만 오히려 부각되어 인식된다)을 사고 있다. 물론 정책 입안자들은 믿고 싶지 않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반 다문화 정서가 폭발하는 순간이다. 그때가 되면 다문화주의의 당사자들인 외국인 출신 노동자와 이주 여성들은 표적이 된다. 대중들이 진실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그야말로 ‘약자’로서 도움이 없는 탄압을 받는다. 바로 다수의 한국인에 의해 외국계 이주민들이 전면적으로 차별과 억압을 받는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애국으로 둔갑한 극우를 극복할 내성이 한국의 시민사회에 존재하는지 조금 의문스럽다. 노르웨이의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우리는 더 위태롭다. 우리나라의 정당은 사실 유럽의 기준에서는 그야말로 극우주의와 기회주의 그 자체이다. 경제적 이유로 다문화주의를 채택했지만 정치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책임을 전가할 준비가 되어있다. 만약 우리사회에서 반 다문화주의가 고개를 들게 된다면 소수 외국인 노동자들을 지켜주는 것은 시민사회가 가진 진실의 눈 밖에 없다. 아마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과연 우리가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할까?’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반 다문화주의는 그나마 성숙된 시민 의식을 지닌 독일, 프랑스, 스웨덴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다. 본래 관용이라는 것은 자신이 여유있어야만 가능한 미덕이다. 경제적 불황은 우리에게서 여유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리고 쉽게 분노하게 만든다. 또한 분노는 쉽게 대중을 선동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정책은 과연 올바르게 진행되고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우토야섬의 메세지는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다.

붕괴 위험, 여주 용머리교 가보니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 물바람숲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상판에 금 가고 기둥에는 손가락 크기 틈 생겨
신진교, 왜관철교 이어 세 번째 붕괴 우려


허리가 휜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한천의 용머리교. 여주군이 형식적으로만 출입금지 띠를 쳐 놓았다.

집중호우가 거의 끝나가던 7월 28일 어제 남한강에 다녀왔습니다. 예상대로 지류하천의 역행침식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중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한천을 확인하다 이곳을 가로지르는 용머리교의 반쪽이 주저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다리는 4월부터 모니터링을 했던 곳이어서, 이번 비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교량 가까이에 가서 확인해 보니 상판 중앙 부분에는 좌우 끝에서 끝까지 금이 가 있었으며, 그 아래 기둥에도 어른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틈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이 교량은 마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할 뿐 아니라 여주보 현장을 드나드는 장비들도 오가는 비교적 교통량이 많은 곳입니다. 만약 낮 동안 붕괴가 일어난다면 인명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상황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바로 여주 군청에 신고를 하여 조처를 요구했습니다. 차량통행을 막고 안전진단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교량이 이렇게 된 까닭은 역행침식이 분명했습니다. 교량 하류 쪽에는 사석(발파석)으로 만들어진 하상유지공이 두 군데나 설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날 이 하상유지공들은 대부분이 무너져 내려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합수부와 가까운 곳의 하상유지공은 90%가량 유실되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상유지공은 본류 준설로 낮아진 하상 때문에 상대적으로 하상이 높은 지천의 바닥과 제방이 깎이는 역행침식 현상을 막기 위해 설치하는 시설입니다.

한천에는 이밖에도 두 건의 역행침식 피해가 있었습니다. 제방을 보호하는 콘크리트 블럭이 일부 쓸려내려간 것과 합수부와 가까운 자전거 도로 교량도 붕괴위험에 놓였습니다. 

흐름이 빨라진 물이 콘크리트 안쪽의 흙을 쓸어갔고, 교량 아래 쪽 제방도 쓸려 내려가면서 붕괴 위험에 놓인 것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유속이 빨라진 것을 염두해 두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판단됩니다.

이곳은 건설업계에서는 정평이 나 있는 건설사에서 시공하고 있는 곳이기에 다른 곳의 하천들은 더욱 염려가 됩니다.


하류 쪽에서 바라본 용머리교의 모습입니다. 왼쪽에서 다섯번째 교각까지 내려 앉은 모습이 확인됩니다. 가장 왼쪽 교각은 살짝 기운 것으로 판단됩니다. 침하가 되지 않은 6번째 교각 뒤에는 둔치가 발달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침하된 부분은 강한 물살로 아랫부분이 세굴된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가까이에서 본 모습입니다. 교량의 난간이 휘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건너편 아래쪽 교각은 일부 떨어져 나간 것도 보입니다.

교량 위에서 7번째 교각 상판의 모습입니다. 상판에 균열이 간 모습이 확연합니다.

균열은 반대편 끝까지 나 있습니다.

균열이 가장 심한 교각입니다. 어른의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벌어져 있습니다.

여주군청에 신고하니 출입금지 선만 쳐 두고 갔습니다. 그 사이에 동네 주민이 그냥 통행하다가 붕괴가 된다면 그대로 인명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7월 28일 촬영한 하류쪽 하상유지공입니다. 80% 이상 쓸려내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과 비교해보시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6월 30일에 촬영한 같은 곳의 하상유지공입니다. 이 때도 반이 무너진 상태지만 나머지 한 쪽의 상태로 원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상류에 있는 하상유지공입니다. 7월 28일에 촬영했습니다. 이곳도 하상유지공이 50% 이상 쓸려나가며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같은 장소 5월 13일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50cm 이상 높이의 하상유지공이 있었습니다.

합수부와 가까운 쪽에 놓여진 자전거 도로용 교량입니다. 건너편 아래쪽이 심하게 세굴되어 조금만 더 세굴된다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5월에 내린 비에 심하게 무너졌던 제방입니다. 이후 콘크리트 블럭으로 보강을 했고 풀들이 자라며 안정화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시는 것처럼 블럭 안쪽의 흙이 쓸려나가면서 주저 앉았습니다. 

용머리교 상류 쪽 제방입니다. 이곳도 빠른 유속으로 제방 블럭들이 힘없이 물속으로 떠내려갔습니다. 지나는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한천 일대에는 비교적 접근이 쉬워서 모니터링을 주기적으로 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사진촬영을 막는 등 모니터링을 하는데 굉장히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국책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눈을 가리는 것이고, 이러한 위험이 있다는 것도 숨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시민 모니터링을 막지만 말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사고대비를 위해 정부와 시공사는 적극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역행침식은 비단 한천만의 일은 아닌 것이 이미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천의 교량 같은 현상은 작년 남한강 지류 연양천의 신진교 붕괴, 올해 낙동강 본류의 왜관철교 붕괴 등으로  이미 일어났습니다. 이는 분명 4대강 사업 때문이며, 4대강 사업이 '살리기'가 아니라 생태를 파괴하고 인공물도 파괴하는 '죽이기' 사업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번 비는 집중호우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제 얼마나 올 것인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비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고, 여주 일대는 26일부터 250mm 의 비가 왔을 뿐입니다. 

여주군은 이 사건에 대해서 시급하게 안전진단과 보강공사를 해야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와 시공사는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더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처에 나서야 합니다.

김성만/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녹색연합 활동가

2011년 7월 28일 목요일

'뻐꾹 뻐꾹’ 무얼 하느라 바쁜가 했더니…뱁새 둥지에 탁란 현장 촬영

이글은 한겨레산문 조홍섭기자의 물바람숲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알 4개 밀어내고 뻐꾸기 한 마리 부화
제 몸집보다 큰 뻐꾸기 새끼 지극정성으로 길어내


▲붉은머리오목눈이 집을 차지하여 자라난 뻐꾸기 새끼
지난 20일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둥지에 뻐꾸기 새끼가 자라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소재의 카페를 찾아갔다.

7월5일 5개의 알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 중 하나는 뻐꾸기 알이었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잠시 둥지를 비운 사이 뻐꾸기가 알을 낳고 간 것이다. 3일 뒤 한 마리만 둥지에서 부화했고 나머지 알 4개는 사라졌다. 뻐꾸기 새끼가 알을 다 밀어내고 혼자서 둥지를 차지한 것이다. 철쭉 나뭇가지 사이에 둥지보다 큰 뻐꾸기 새끼가 붉은 입 천장을 보이며 경계를 한다.


▲뻐꾸기가 알을 맡긴 튼 카페의 철쭉 숲
일찍 제보를 받았다면 뻐꾸기의 탁란(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 행위) 과정과 뻐꾸기 새끼가 오목눈이 알을 밀어내는 과정을 기록할 수 있었을 덴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뻐꾸기는 직접 둥지를 만들지 않고 다른 새(개개비, 산솔새,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에 알을 하나 낳아 그 새끼만을 기르게 하는 대표적인 탁란을 하는 새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양부모가 온 것을 알고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뻐꾸기 새끼.

▲먹이를 먹이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먹이를 입 깊숙이 넣어주고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보다 큰 뻐꾸기 새끼의 입속으로 오목눈이의 머리가 통째로 들어간다.

▲먹이를 먹인 뒤 훌쩍 큰 '새끼'를 대견스럽게 쳐다보는 오목눈이.
뻐꾸기의 몸 길이는 36cm이지만  붉은머리오목눈이는 13cm의 아주 작은 새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자기의 새끼로 착각하여 자기보다 큰 새끼를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둥지보다 뻐꾸기 새끼가 더 크다.
탁란이란

새, 물고기, 곤충이 같은 종 또는 다른 종 개체에게 자기 알의 부화와 새끼 양육을 맡기는 기생 행동을 가리킨다. 둥지를 짓고 새끼를 기르는 부담을 피할 수 있지만 당하는 쪽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는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탁란을 하는 새의 새끼는 재빨리 부화해 얼른 자라나 둥지를 독차지한다. 숙주의 알이나 새끼를 제거하는 뻐꾸기 형과 달리 숙주의 새끼와 함께 자라는 북미갈색머리흑조 형도 있다.

물고기 가운데도 이 두 가지 유형의 탁란이 모두 나타난다.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수에 사는 메기의 일종은 알을 입속에 넣어 부화시키는 키클리드에 탁란한다.

또 우리나라의 돌고기는 꺽저기의 산란장에 침입해 자신의 알을 낳고 도망치며, 감돌고기는 꺽지의 산란장에 탁란하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2011년 7월 26일 화요일

직설 속의 은유 순간포착, 렌즈로 역사 기록

이글과사진은 한겨레신문 곽기자 사진이야기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세계보도사진전] 뉴스사진 감상법
 야만의 고발, 슬픈 역설, 영화보다 더 영화…
 때론 긍정의 눈으로 때론 비관의 초점으로

토마스 페샥, Save Our Seas Foundation 
 7월 28일부터 세계보도사진전이 시작된다.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세계보도사진재단이 주최하는 이 전시는 54년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전 세계 125개국의 사진기자 5천6백여 명이 지난 한 해 동안 찍은 사진 10만 8천여 점을 출품했다. 2011년 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9개 분야로 나눠 심사를 했고 그 결과물인 수상작을 중심으로 170여 점의 작품이 이번에 전시된다. 이번 전시를 소개하는 김에 뉴스사진 감상법을 곁들이고자 한다.

 보도사진은 힘이 세다. 보도사진은 팩트(사실, 사건) 자체가 끌어가는 경향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보도사진을 찍는 사진가의 힘보다 사건 자체의 힘에 더 의존하는 일이 왕왕 있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뉴스를 다루는 보도사진 외 다른 방면의 사진도 대상 자체의 힘에 의존하는 경우는 늘 있을 수 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로 하기로 하고 이번엔 뉴스사진(보도사진이란 용어의 불완전성 때문에 뉴스사진을 혼용한다)을 읽는 법에 더 치중할 것이다. 현장에서 뉴스사진을 찍을 때, 그리고 찍은 사진 중에서 골라 지면에 쓸 때, 그리고 전 세계에서 그런 식으로 보도된 사진들을 모아 심사하고 상을 줄 때엔 모두 거의 유사한 잣대가 동원된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이라서 예술사진(이 용어도 불완전하긴 마찬가지다)보다는 더 객관적일 것 같지만 어림도 없는 말씀이다. 사진과 사진을 비교하여 우수한 것을 골라내고 상을 주는 일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래서? 이견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별문제가 되진 않는다.
보도사진가에게 상이란 부수적이다. 사진을 찍어 어딘가에 보도하는 행위 자체가 목적일 뿐이며 출품하여 심사를 받고 상을 받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마다 이런저런 보도사진콘테스트가 열리면 눈여겨보긴 한다. 뉴스사진에도 트렌드가 있으니 올해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흥미롭다. 지난 한 해 지구상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조디 비버, 굿맨 갤러리, 타임
다니엘 모렐, 아이티
다니엘 베러훌락, 게티이미지
올해의 가장 강력한 잣대는 희귀성에 의존한 뉴스밸류였다. 시각적으로 강하게 호소한다는 측면도 많이 부각되었다. 대상을 받은 남아공 사진가 조디 비버의 작품 <비비 아이샤>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진을 보는 독자들에게 눈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끔찍한 이미지다. 교통사고를 당해 생긴 상처라면 이 사진은 대상을 받지 못한다.
뉴스사진엔 사진의 뒷이야기가 캡션(사진설명)이란 형태로 늘 동반해야 의미부여가 완성된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비비 아이샤는 어린 나이에 탈레반 전사 가정으로 보내졌고 사춘기가 되어 그 전사와 결혼했으나 폭력적인 처우에 불평하며 친정집으로 돌아온 것이 화근이 되었다. 탈레반 사람들이 들이닥쳐 그녀를 잡아갔고 귀를 자르고 코를 잘랐다. 이후 버려졌다가 구출되어 보호소에서 육체적, 정신적인 도움을 받았고 재활과정을 보내고 있다.
야만적인 풍습의 희생자라는 상징적 의미가 이 사진의 뉴스가치를 높인 것이다. 이 사진이 상을 받는데 분명히 큰 도움이 되었을 역사적 사진이 한 장 있다. 1984년 스티브 매커리가 찍었던 아프가니스탄 소녀의 사진이 그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스티브 매커리의 사진에서 소녀는 녹색의 강렬한 눈빛으로 설움과 고난에 찬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신세를 호소했다면 조디 비버의 사진에선 “눈뜨고 코 베인” 상처로 담담히 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

‘스폿뉴스’ 단사진(한 장짜리 사진)부문에서 2등을 수상한 다니엘 모렐의 <아이티>도 같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약 23만 명이 사망, 30만 명이 부상, 100만 명 이상이 집을 잃은 아이티의 지진은 초대형 재앙이다. 사진은 콘크리트 더미에 몸의 절반 이상이 파묻힌 사람들을 담고 있다. 먼지와 피를 뒤집어 쓴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원시부족들처럼 보인다. 지구의 몸부림 앞에 아무런 대책 없이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아픔을 사진으로 보도하는 보도사진가들도 가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전달하는 목적에 대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작품으로 포장한 것이 아니라 대형 재난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가장 강렬하게 지구촌 곳곳에 알리고 싶은 것이다. 아이티의 참사는 워낙 규모가 큰 지구적 재난이었으나 고작 1년 6개월이 지난 2011년 이 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이티를 기억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전시장에는 여러 장의 아이티 참상을 담은 사진들이 있다. 타인들은 잊어버리더라도 보도사진은 여전히 웅변하고 있다.

다니엘 베러훌락이 찍어 ‘뉴스 속 사람들’ 스토리부문 1등을 수상한 <파키스탄 홍수>는 재난의 참상을 담았다는 점에서 아이티의 사진들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사진이 찍힌 바로 그 순간에 사람들은 물에 잠겨있다. 세트장에서 배우와 엑스트라들이 찍는 영화의 장면이 아니라면 이것은 정말 놀라운 순간포착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막 물이 들어오는데 사람들이 허위적 거리고 있다. 그러니 사진 설명을 읽어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해가 된다. “9월 13일, 가장 피해가 컸던 신드주에서 파키스탄 육군의 구조 헬기의 물의 파도가 치는 가운데, 홍수 피해자들이 식량 배급분을 얻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헬기의 날개 그림자가 사진 속에 비친다. 한 때 국토 5분의 1이 수몰됐던 파키스탄 사상 최대의 홍수 상황에서 물자 공급이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다. 지긋지긋한 물속에 다시 뛰어들면서 식량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슬픈 역설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틴 뢰머스, 파노스 픽쳐스
앤드류 맥코넬, 파노스 픽쳐스, 스피겔
찡그리지 않고 다소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사진들도 꽤 있다. 마틴 뢰머스가 인도 콜카타에서 찍어 ‘일상생활’ 스토리부문에서 1등 한 이 사진엔 사고나 사건이 없다. ‘일상생활’ 부문은 말 그대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이 사진의 사진설명은 아래와 같다. “현재, 인류의 절반이 도시에 살아가고 있다. UN은 2050년에는 세계인구의 70퍼센트가 도시생활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어떻게 이 사진을 읽을지 살펴보자. 사진엔 기차와 택시와 인력거라는 세 가지 교통수단이 보인다. 과거와 미래의 공존이다. 미래로 유입된 과거가 힘겹게 도시 속에서 버티면서 생활하고 있다. 기차는 움직이고 있다. 또한 일부 사람들도 셔터속도의 도움으로 흘러 지나가고 있다. 셋 중에 가장 빠르고 첨단교통수단인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 시대에 뒤떨어진 택시와 인력거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발 빠르게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할 일없이 서성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인구의 70퍼센트가 도시생활자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이 될 것이다. 도시 속에서 양극화는 더 심화할 것이다. 도시빈민들이 도시의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동안 상위 3퍼센트의 도시인들은 쌩쌩 눈에 보이지도 않게 스쳐 지나갈 것이란 것을 이 사진은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을 자세히 뜯어보고 나니 또 마음이 무거워진다. 비슷하지만 훨씬 편한 사진이 있다. 앤드류 맥코넬이 찍어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단사진부문에서 1등을 수상한 <조세핀 음심바 음퐁고가 첼로를 연습하고 있다. 킨샤사, 콩고>다.

사진의 설명을 보자. “콩고민주공화국의 킨샤사에서 첼로 연습을 하는 죠세핀 누심바 무뽕고(37세). 중앙아프리카 유일의 오케스트라 킴바구이스트 교향악단(OSK)의 멤버다. 죠세핀은 낮에 킨샤사의 중앙시장에서 달걀을 팔고, 거의 매일 밤 오케스트라 동료들과 리허설을 한다. OSK는 1994년에 현 지휘자인 아루만두 디앙기엔다에 의해 창설됐다. 처음에는 수십 명의 연주자가 적은 악기를 공유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200명 체제로 콘서트를 여는 것이 가능하다. 대부분은 독학의 아마추어 연주자이고 낮에는 도시에서 본업을 한다” 설명을 보면 쉽다. 낮에 달걀을 팔고 밤에 오케스트라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보도사진이라고 해서 사진설명만으로 상을 받는 일은 없다. 
이 사진은 대비를 이용한 전형적인 사진이다. 가운데에 얇게 쳐진 플라스틱 담장이 있어 왼쪽의 사적인 공간과 오른쪽인 거리, 혹은 시장을 구분한다. 담장의 높이로 봐서 양쪽은 서로 들여다볼 수가 없다. 그러나 담장의 두께로 봐서 소리가 퍼져나가리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왼쪽에서 첼로를 연습하는 죠세핀 누심바 무뽕고는 오른쪽 거리의 사람들과 다른 극에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란 뜻이다. 실제로 낮에는 죠세핀도 거리에서 계란을 판다고 했으니 똑같은 계층의 사람이다. 밤에 시간을 내서 첼로를 연주하는 것은 심적인 여유이며 희망이다. 몸은 가난하다고 해도 맘까지 가난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적 메시지다. 뭐니 뭐니해도 인간들의 공간에선 그늘이 늘 보인다.

그런 장면을 다룬 사진이 맘에 들지 않는 이를 위해서 만든 부문이 ‘자연’이다. ‘자연’ 단사진 부문에서 1등을 한 토마스 페샥의 사진은 시원하고 명쾌하다. “케이프가넷 새가 여름 번식기에 말가스 섬에 내려앉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서쪽해안에 있는 이 섬은 바닷새의 중요한 번식지이다” ‘자연’ 부문은 인간이 아닌 부류, 혹은 인간의 거주공간이 아닌 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포함한다. 그래서 긴장하지 않아도 좋고 대체로 편하고 아름답고 귀엽다.
그래야 하는데 이 사진은 조금 섬뜩했다. 짐작컨대 무인카메라로 찍은 것 같은 이 사진에서 케이프가넷 새는 카메라, 다시 말하자면 인간을 노려보면서 내려오고 있다.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도 카메라(그 뒤에 숨어있는 인간)와 충돌을 각오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이곳은 새들의 땅이니 이곳만은 넘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멋진 사진이다. 그 아래로 저 멀리 수없이 많은 바닷새 동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하늘엔 다음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이미 이륙한 바닷새들이 선회비행을 하고 있다. 이런! 결국 이 사진도 인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보도사진은 강하다. 강하다고 단순하다거나 직설적인 것은 아니다. 은유적이며 계산적이며 미래를 암시한다.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비관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예측한다. 작년에 비해 비관적인 사진이 더 많아졌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필자 개인의 주관인지도 모르겠다. 
 전시는 예술의 전당 V 갤러리에서 8월 28일까지 열린다.
스포츠 스토리부문 1등, 아담 프리티, 게티이미지, 스포츠 포트폴리오
다이엘라 따마뉘,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2등, 볼리비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2011년 7월 25일 월요일

"일자리 창출, 자동차보다 재생에너지가 낫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핵 탈출’ 독일 현장] 미란다 슈로이어 베를린 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장 인터뷰
재생에너지, 2009년에만 28만 개 일자리 만들어
한국, 원자력 의존도 너무 높아, 만약의 사태 대비해야
miranda.JPG 
미란다 슈로이어 베를린 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장.

유럽연합 환경자문회의 의장이자, 독일 연방정부 환경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 중인 미란다 슈로이어 교수는 독일 에너지 분야의 핵심 두뇌이다. 

독일 녹색정책 창시자로 불리는 마르틴 예니케의 뒤를 이어, 2007년부터 베를린 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장으로 재임 중이다. 그는 ‘17인 윤리위원회’ 멤버로도 참여했다. 

<비비시> 방송 인터뷰와 각종 프로젝트로 바쁜 와중에도 그는 먼 한국에서 온 21명의 일행을 위해 길고도 자세한 브리핑을 해주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이 유독 탈원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번 사고가 독일인에게 잊혀져 가던 체르노빌 사고 기억을 되살려냈습니다. 1986년 4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 당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던 바람을 타고 독일은 방사능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지요. 당시 방사능이 섞인 우유와 음식물, 방사능에 노출된 어린이 놀이터 등은 아직도 독일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원전에 대해 이전까지 50대 50이던 독일 내 찬반여론은 체르노빌 사고 이후부터 ‘80% 이상 원전 반대’로 바뀌었습니다.

게다가 독일의 녹색당이 1998년부터 사민당과 연정을 통해 집권당이 되면서 탈원전이 정책으로 반영됐습니다. 녹색당은 단계적 탈원전계획을 세우고, 세금구조도 노동부문에서 거둔 세금을 줄이고 에너지소비나 환경오염에 대해 매기는 것으로 바꾸고, 재생에너지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집권한 녹색당은 사민당과 연립정부를 세우면서 ‘원자력발전을 점진적으로 폐쇄한다’는 문구를 넣었다고 한다.)

bicycle.JPG 
베를린의 관광용 친환경 자전거

-메르켈 총리는 작년 10월 원전 수명연장에 서명하지 않았습니까. 후쿠시마 사고가 크긴 하지만 이렇게 큰 정책적 전환을 한 구체적 계기가 있는지요. 

지방선거의 결과입니다. 독일에는 16개 주가 있는데, 남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제일 잘 사는 2개 주 중 하나이지요. 이곳은 무려 58년 동안 메르켈 총리의 기독교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온, 기민당의 텃밭입니다. 그런데 3월 27일 이곳 선거에서 기민당이 참패했습니다. 녹색당-사회민주당이 승리해, 독일 사상 최초의 ‘녹색당 주지사’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연방정부를 무척 긴장시켰습니다. 메르켈 총리가 작년 10월 이전 정부의 ‘2023년까지 원전 철폐’ 정책을 뒤집고 원전 수명을 12년 연장한다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는 매우 인기 없는 정책이었습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총선의 향방을 가른 두 가지 이슈는 모두 환경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주도인 슈투트가르트의 오래된 철도 역사를 없애고 최첨단 중앙역을 짓는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를 주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 온 데 대한 반대 여론이었습니다. 또 하나가 전국 차원의 이슈인 원전 폐쇄 여론이었지요. 3월 14일 독일 전역에서 11만 명이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촛불을 들었습니다. 3월 26일에는 대도시 4곳에서 더 큰 원전 반대시위가 벌어졌지요. 무려 25만명이 모였습니다."

-처음 출범할 때만 해도 메르켈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성격으로 ‘윤리위원회’를 소집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정반대였지요.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위원들이 동의한 건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일본 같은 하이 테크놀로지를 가진 나라에서도 사고가 나는데, 독일 또한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 확인됐지요. 다른 에너지도 부작용이 있지만, 원자력은 이웃과 지역, 국가, 심지어 지구 전체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세대 간 형평성의 문제도 제기됐습니다. 방사성폐기물을 후세대에 전해줘야 합니다. 앞으로 수백 년 동안 안전하게 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할 장소가 있느냐, 아직 어떤 나라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이 전제 아래 핵심 쟁점은 3가지였습니다. 첫째, 독일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얼마나 안전한가. 둘째, 지금 가동되는 원전이 모두 다 필요한가. 셋째, 에너지 가격의 큰 인상 없이 대체할 다른 에너지원이 있는가, 였지요. 3개월 동안 원전 7기의 가동을 중단했어도, 전력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원전이 모두 필요하지는 않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가진 재생에너지·에너지 효율 기술로 현재 원전이 감당하고 있는 전력 공급분인 23%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너무 낙관적인 시나리오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물론 문제점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풍력단지는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남쪽의 공장에 전력을 공급해 주기 위해 국토를 가로질러 고압 송전망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생에너지는 매우 가변적이어서 바람이 불 때는 많이 나오고, 안 불 때는 적게 나오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 원전을 폐쇄해 기존 화석연료를 늘리면, CO2 배출이 높아질 수 있다는 위험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1990년 대비 2020년까지 40% 이상 CO2 배출량을 줄이기로 계획 중입니다. 앞으로 독일에선 제품의 에너지효율을 강화하는 정책이 매우 중요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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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라이부르크 시의 풍력 발전기

-독일은 유럽 전역에서 전력을 수입하거나 수출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고립돼 있어 독일 같은 시나리오가 어렵고, 원전 폐쇄도 어렵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원전에 너무 의존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후쿠시마가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최악의 시나리오를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일본은 현재 54기의 원전 가운데 12기만 운영 중입니다. 국가는 비상에너지 저장분이 있어야 합니다. 일본에선 사무실 빌딩전력을 줄이는 등 비상사태로 에너지 비축을 하고 있는데, 지금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한국도 다른 에너지 대안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독일의 실험이 과연 성공할 것으로 보는지요. 

독일의 이번 결정은 모험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원자력 또한 경쟁력이 없다고 봤지요. 우라늄을 채굴할 수 있는 기간은 100년이 남았고 가격도 올라갈 것입니다. 핵 확산에 대한 문제도 있지요. 반면 재생에너지는 차세대 기술이기 때문에 기술이 개발되면서 가격도 떨어질 것입니다. 풍력이나 태양광은 2050년이면 원자력이나 석탄보다 가격경쟁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특히 독일은 지금도 에너지의 70%를 수입하는데,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도 확보하고 동시에 에너지 안보도 지킬 수 있습니다. 앞으로 개도국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독일이 세계적인 기여도 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재생에너지를 통한 녹색일자리 창출이 늘어날 것입니다. 2009년에만 28만개의 재생에너지 관련 일자리가 생겼지요. 2030년에는 재생에너지 일자리가 자동차 일자리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한국은 97%의 에너지를 수입한다.)

박란희 환경재단 기획위원 rhpark@greenfund.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