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1일 목요일

비리 혐의자는 떵떵거리며 산다

이글은 한겨레21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17년 전 친권포기각서 문제 등 제기한 해인원 사건 추적…해고 뒤 무죄 판결 받은 공익신고자는 사라지고 허위 고소장 사주한 이사장은 지금도 그 자리에

» 경기도 광주시청은 동산원이 속해 있는 한국발달장애복지센터에 지난해 모두 24억여원의 세금을 지원했다. 해마다 지원금을 받는데도 한국발달장애복지센터는 1998년부터 5년간 직원들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체납해 자산을 압류당했다. 법원 판결문에는 동산원의 전신이 '혜인원'으로 표기돼 있으나, 등기부등본에 1988년 최초로 기록된 명칭은 '해인원'이었다. 기사 작성도 이에 따랐다. 한겨레21 이종찬
가는 비가 내렸다. 지난 6월22일 낮 최고기온은 27℃로 기록됐다. 오후 1시 경기도 광주시 탄벌동 674번지 숲에는 빗소리만 들렸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하남시로 향하는 43번 국도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산 중턱에 섰다. ‘사회복지법인 한국발달장애복지센터’ 간판을 확인한 뒤 행정실 건물로 향했다. 복지센터 산하 동산원, 장애인특수학교 인덕학교, 광주시 장애인주·단기보호시설, 광주시 장지어린이집, 동산식품이 모두 한데 모여 있었다. 동산원은 보육사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생활터다. 정신장애인이 많다. 서정희 이사장을 만나야 했다. 전화로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노조결성해 해고당한 공익신고자
단기 정신장애를 겪은 것처럼, 이날 복지센터 직원 3명은 모두 서 이사장의 소재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내놨다. 수위는 경계하는 시선으로 서 이사장이 “오전에 출근했으나 외출 중”이라고 말했다. 차로 돌아와 휴대전화를 들었다. 전화기 너머 직원은 서 이사장이 “오늘 건강이 좋지 않아 출근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가는 비가 계속 그었다. 오후 3시께 다시 복지센터 행정실 건물 앞을 서성거렸다. 40대로 보이는 남자 직원이 풀을 베다 말고 서 이사장이 “오전에 출근했다가 1시 넘어 급하게 외출했다”고 무심하게 말했다. 행정실 건물 앞에서 만난 50대의 남자는 서 이사장의 소재를 밝히는 대신 “왜 다 지나간 17년 전 사건을 묻고 다니냐, 돌아가라”며 기자를 밀쳤다. 직원과의 두 차례 통화와 두 번의 방문으로도 서 이사장과 직접 접촉할 수 없었다. “1994년 당시 보육사로 근무하던 정광용씨를 해직시킨 이유가 전임 이사장 비리를 ‘내부공익신고’했기 때문이냐”는 질문도, 물론 던지지 못했다.
정광용씨는 17년 전인 1994년 5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문을 두드렸다. 28살 청년 보육사의 손에 장애아동 부모가 해인원 쪽에 제출한 친권포기각서, 기부금 관련 예금통장 등이 들려 있었다. 이 입수한 법원 판결문을 보면, 정씨가 공익 신고한 이 자료들은 진보적인 장애인 전문매체 1994년 5월호에 공개됐다. 친권포기각서는 전임인 최창수 전 이사장이 장애인 부모들에게 개인적으로 받은 것이었다. 친권포기각서에는 “해인원에 수용된 장애아동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당시 은 보도했다. 통장들은 최 전 이사장의 횡령 혐의를 입증할 증거물이었다. 최 전 이사장의 지시로 1994년 3월 문서 창고 정리 작업이 벌어졌다. 친권포기각서, 예금통장 등이 쓰레기 소각장에서 조용히 태워졌다. 우연히 시계를 찾으러 소각장을 찾은 정씨가 타다 남은 문서를 주웠다. 당시 총무로부터 “버리라”는 지시를 받은 정씨는 이들 문서를 복사한 뒤 폐기했다. 그리고 해인원의 운영 비리가 세상에 알려졌다.
정씨의 공익신고로 1994년 9월 이사장이 바뀌었고, 10월엔 원장이 새로 부임했다. 생활터 이름도 ‘동산원’으로 바뀌었다. 정씨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경영 비리와 보육사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씨 등 해인원 보육사 4명이 같은 해 10월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광주군청(현 광주시청)에 제출했다. 새로 부임한 서 이사장 등 해인원 이사회는 10월 말 이들 4명을 해고했다. 보육사들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해인원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또한 “노조 설립을 방해했다”며 3자개입 혐의로 당시 광주군청 복지시설 담당 석경자씨를 성남지방노동사무소(현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고발했다.
서 이사장도 대응에 나섰다. 목사 출신 신임 원장 김순회씨에게 정씨에 대한 고소장을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판결문을 보면, 그들이 ‘발명한’ 혐의는 절도죄였다. 고소장에는 “정씨가 해인원 사무실에서 서류함을 드라이버로 부순 뒤 친권포기각서와 통장 등을 훔쳐갔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로 서류함을 부순 사람은 김순회씨였다. 열쇠를 잃어버린 뒤 중요한 문서를 찾다 서류함을 부쉈다. 해인원은 부서진 서류함을 찍은 사진을 정씨의 절도죄 혐의 증거로 제출했다. 고소장이 접수된 수사기관은 해인원에서 1.3km 떨어진 경기도 광주경찰서가 아니라 서울 강서경찰서였다. 김씨는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정씨를 빨리 구속시켜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서 정씨 주소지 관할 경찰서에 고소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강서경찰서와 서울남부지검은 해인원 쪽 주장에 손들어줬다. 강서경찰서가 정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서울남부지검 검사가 영장을 청구했다. 경·검·법이 일치했다.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판사는 1994년 12월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내부공익신고자는 구속기소됐다. 정씨의 동료 보육사 한아무개씨는 법정에서 “정씨가 아동친권포기각서 등이 들어 있는 서류 박스를 창고에서 꺼내 카메라로 찍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 참여정부 시절 사회복지법인의 경영 투명성을 높일 사회복지사업버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한겨레21 이종찬
무죄를 받아도 의혹은 방치돼
이때 또 다른 내부공익신고가 나왔다. 구약성경 ‘아모스서’ 5장에서 예언자 아모스는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라고 말했다. 목사 출신 김순회 원장은 ‘아모스서’를 따랐다. 그는 1995년 1심 재판 도중 정씨에 대한 고소취하서를 제출하며 “(정씨에 대한) 고소는 서 이사장의 강요로 사실을 왜곡하여 고소했던 것”이라고 증언했다. “정씨가 주도하여 노조를 설립하자 서 이사장이 피고인이 친권포기각서 등을 훔친 것처럼 하여 구속시키자고 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부순 서류함을 사진 찍어 경찰에 증거로 낸 것도 서 이사장이라고 김씨는 증언했다. 김씨는 “마음이 고통스러웠다”고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럼에도 서울남부지법 정용상 판사(현재 변호사)는 1995년 5월23일 한아무개 보육사의 증언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했다. 다만 “사안이 경미하다”며 징역 6개월형에 대해 선고유예를 판결했다. 선고유예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 정지 또는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때”(형법 59조) 유죄선고를 유예할 수 있다는 제도다. 유예 기간을 무사히 보내면 형 선고가 무효가 되지만, 엄연히 유죄판결에 해당한다. 129글자의 단 한 문장으로 쓰인 1심 판결문에는 김순회 원장이 진술을 번복하고 고소를 취하한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은 1995년 12월 1심을 뒤엎고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일한 증거인 한씨의 증언이 일관되지 않아 신빙성이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정씨가 서류를 훔친 모습을 본 시점과 상황을 묘사한 한씨의 진술이 자술서, 경찰 조서, 검찰 조사에서 모두 달랐다. 대법원은 1996년 3월 무죄를 확정했다. 김씨는 1995년 인터뷰에서 서 이사장이 전임 최창수 이사장으로부터 6억원을 주고 해인원을 인수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사회복지사업법상 보건복지부 장관의 허가 없는 복지법인 재산 매매는 불법행위다.
정의는 거기서 멈췄다. 내부공익신고자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비리 의혹은 조사·수사되지 않았다. 법원은 정씨에 대한 고소장이 허위임을 인정했다. 무고죄에 해당한다. 허위 고소장을 작성하도록 시킨 서 이사장은 형법 31조의 무고죄 ‘교사범’에 해당한다. 서 이사장은 수사받지 않았다. 이 수원지검 성남지청, 서울남부지검, 서울강서경찰서에 서 이사장을 수사 또는 기소한 사실이 있는지 물었다. 기록 폐기 등을 이유로 3개 기관 모두 비공개 결정을 통지했다. 특히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이해당사자인 서 이사장이 비공개 요청을 해 공개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
정씨가 제기한 전임 최창수 이사장의 횡령 등 비리 의혹도 조사나 수사받은 정황이 보이지 않았다. 경기도 광주시청에 여러 차례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기록이 폐기됐다”며 비공개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여러 사건 관련자들은 광주시청이 비리를 이유로 복지센터 임직원을 고발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광주군청은 되려 1998년 해인원에서 이름을 바꾼 동산원을 지자체의 공식 장애인복지시설로 인정하고 예산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례를 발의했고 군의회가 가결했다. 이미 군청에서 보조금을 받던 한국발달장애복지센터는 늘어난 지원금을 해마다 받을 법률적 근거를 확보한 셈이다. 정씨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정보공개 청구 결과,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당시 정씨와 함께 해직된 보육사 1명에게 복직 판정을 내렸음이 밝혀졌으나 동산원이 이 보육사를 복직시킨 정황은 없다.
수서 청소년수련관 사건도 빼닮아
그리고 17년이 지났다. 횡령 혐의 공소시효(7년)와 위증죄 공소시효(5년) 등 최창수 전 이사장과 서정희 이사장에게 적용될 만한 혐의 공소시효는 모두 완료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순회 원장은 사건 직후 동산원을 떠났다. 그는 지금 출소자 보호시설인 ‘한마음쉼터’를 경기도 고양시에서 운영한다. 과의 통화에서 김씨는 “사건 직후 해인원을 나와 서 이사장이 수사나 조사를 받았는지는 모른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고 말했다. 정씨가 “해인원 쪽에 편파적”이라는 이유로 당시 성남지방노동사무소에 고발했던 석경자씨는 지금 광주시청 여성가족팀장으로 근무 중이다. 석 팀장은 과의 통화에서 “왜 17년 전 사건을 묻느냐”고 말했다. 석씨는 “당시 정씨 등 근로자들이 문제가 많았다. 노조를 만들어 자기들이 법인을 운영하려 했다. 서 이사장은 문제가 없었고, 문제 있는 건 전임 이사장이었다. 사건 도중 부서를 옮겨 정씨가 무죄를 받았는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관련자들은 대부분 “왜 17년 전 사건을 이제 와 묻느냐”고 물었다. ‘비리가 혹시 있었다 해도 지금은 개선됐다’는 전제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 한국발달장애복지센터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가 1998년 7월 이 복지센터 자산을 압류한 사실이 드러났다. 근로복지공단은 2003년 10월에야 압류를 해제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사회복지법인 경영진이 직원들의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을 체납할 경우 국세징세법에 의해 자산을 압류한다. 복지센터는 예산 대부분을 광주시청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수용한 장애인과 직원 수가 일정해 경영 기복이 생기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5년간 직원들의 산재보험금 등을 체납한 것이다. 동산원에 물었으나 해명을 거부했다. 경영 불투명성, 위법성 문제가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광주시청은 지난해에도 복지센터에 모두 24억7700만원의 지원금을 줬다. 전체 예산 32억2900만원의 77%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경영 감독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청에 지난해 한국발달장애복지센터를 현장 방문해 지원금 사용 상황 등을 조사한 횟수를 정보공개 청구했다. 광주시청은 “자료가 없다”며 밝히지 않았다. 80대의 서정희 이사장은 여전히 이사장 자리에 있다.
‘수서 청소년수련관 공익신고 사건’은 비리 내용, 처리 결과 등 모든 지점에서 이 사건과 닮아 있다. 조성열씨는 1999년 수서 청소년수련관을 위탁받아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 상희원 직원이었다. 당시 유호준 이사장이 조씨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법인 돈을 횡령했다. 조씨는 이를 내부공익신고했고 참여연대의 ‘시민감사청구’로 서울시 감사가 벌어졌다. 는 이런 내용을 크게 보도했다.
“서울시립 수서청소년수련관 쪽이 운영수입금 2억3천여만원을 빼돌려 불법으로 쓴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시는 (2000년 5월) 30일 강남구 일원동 수서청소년수련관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상희원 쪽이 지난 95년 1월부터 98년 12월까지 체육관, 소극장, 식당 등 수련관 운영에 따른 수입금을 수련관 회계 통장에 입금하지 않고 별도 통장을 개설해 1억263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시는 수련관 이사장 유호준(85)씨 등 상희원 관계자 5명에 대해 공금횡령 등 혐의로 사법 당국에 고발하는 한편 복지법인 허가를 취소할 방침이다.”( 2000년 5월31일치 참조)
유호준 이사장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통장을 만든 조씨만 기소돼 벌금형을 받았다. 조씨는 과의 통화에서 “중요한 증거인 녹취록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검찰이 무혐의 처분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사건 뒤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지금껏 종친회에서 일한다. 유 전 이사장은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회장 등을 지낸 기독교계의 거물이었다. 대한민국 건국 5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 명예회장 등 민관 고위직을 두루 거친 뒤 2003년 숨졌다. 당시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 서울시에 정보공개 청구했으나 기록 폐기를 이유로 아직 답하지 않고 있다.
정씨에게 묻지 못한 이유
상당수의 내부공익신고는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씨 등이 제기한 사회복지법인 비리 문제는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대구시의회에서는 2009년 “지역 사회복지법인 불법 매매를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행정사무감사에서 나왔다. 장애인요양시설을 운영하는 성람재단·석암재단에서 이사장이 횡령 등을 저질러 2007~2008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앞서 사회복지법인의 운영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 등을 담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2006년 현애자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에 의해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됐다면 이후 사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부공익신고자 정광용씨, 김순회씨, 조성열씨는 방패 없이 행동했다. 그들은 부패방지법(2002년 최초 제정)도 없던 시대에 ‘부패행위를 효율적으로 규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적 권익을 보호’한다는 부패방지법 1조의 정신에 맞춰 말하고 움직였다. 지난 3월 공익신고자를 폭넓게 보호하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에 너무 늦게 왔다.
1심 선고 직후 “해고무효소송에서 이겨 해인원에 복직할 것이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던 28살의 청년 보육사는 올해 45살이 됐을 게다. 민주노총 조직국,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장애인위원회, 광주시, 장애인 운동단체 등 어떤 관련 기관·단체도 정씨의 근황이나 연락처를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당시 발언을 기억하느냐”란 질문을 준비했지만, 결국 정씨에게 묻지 못한 이유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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