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3일 수요일

[시각] 의료서비스가 기업가치에 놀아나선 안 된다

이글은 한겨레의과학자와 기자가 만드는 뉴스와비평 Science On에서 퍼온 글입니다.



[endo의 편지] (12)

영리병원이 의료 서비스 선진화인가? – 중앙일보의 보도를 읽고






00hospital
대학 병원의 응급실. 한겨레 자료사진



료체계와 관련한 문제에서 보자면, 미국의 환자들은 대체로 의사들의 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진단과 처방이라고 판단해도 보험회사의 제한으로 최선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차선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에 환자들은 대체로 의사가 환자의 편에서 보험사를 상대로 최선을 다했음을 이해합니다 (갤럽 조사에서 간호사, 약사, 의사는 미국 대중이 가장 신뢰하는 직업 5위 안에 속해 있는 것은 이를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의료체계는 환자와 보험사 사이의 문제로 귀결되고, 의사는 보험사가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최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현대의학의 기본 정신에도 사실 ‘의료체계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라는 웃지 못할 전제가 필요합니다. 이는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먼저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 의료체계임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최근 <중앙일보>는 세계 수준으로 성장한 한국의 의료 분야를 글로벌 비즈니스로 더 진화시키기 위해서 영리 목적의 병원이 빨리 허용돼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기사로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영리병원을 도입해야 하는 핵심 이유로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된다는 점을 들었는데, 그렇다면 지금 이미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한국의 의료 서비스에 굳이 영리병원을 도입할 이유도 없어지기에, 기사에는 사실 모순적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내에서 근거와 객관적 정의도 없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성되는지조차 모르는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나 의료 서비스의 선진화 같은 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기업가들의 상업적 이윤 추구라는 목적을 두둔하고 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리병원 20%’ 미국 의료서비스는 선진19국 중 최하위권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보고서(The world health report 2000)에 따르면, 한국의 의료체계 수준은 191개국 중 58위에 올라 있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싱가포르, 오스트리아, 일본 등이 10위권에 올라 있는 반면에 미국은 37위에 올라 있습니다. <뉴욕타임즈>가 이 보고서를 다루며 미국의 의료체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반면에, 다른 미국 언론과 저널들은 세계보건기구의 평가 자체에 어떤 결함이 있으므로 의료체계 순위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데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line
■ endo는? 미국에서 현업 의사이자 대학 초빙교수로 일하는 의학자 ‘endo’(필명) 님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온라인 게시판에 유익한 글을 올려 주목받아왔습니다. 사이언스온의 독자이기도 한 endo 님은 생의학의 쟁점들에 관한 글을 부정기적으로 사이언스온에 보내오고 있습니다. -사이언스 온
최근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보건기구와 다른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면 미국이 세계 1위의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미국인의 자존심을 살릴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2008년 미국 보건단체인 커먼웰스펀드(Commonwealth Fund)가 주요 선진국 19개국을 비교한 결과에서도 미국은 19위로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또 가장 최근인 지난해에 네덜란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의 7개 나라를 비교한 결과에서도 역시 최하위인 7위를 기록했습니다. 사실상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은 비록 몇개 나라만을 대상으로 한 비교라 할지라도 한 번도 최하위를 면한 적이 없습니다. 덧붙여 전체 병원 중에서 영리병원이 약 20%를 차지하는 미국에서 영리병원의 덕택으로 10년 이상의 기간에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의료체계가 발전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지난해의 7개국 비교 평가에서 의료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는 항목 중 유일하게 미국이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된 부분이 있습니다. 효과적 치료와 환자 중심 치료 항목입니다. 반면에 의료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는 다른 항목인 환자의 안전을 고려한 치료와 만성 질환 및 심장질환 같이 고위험·고비용 수반 환자들에 대한 치료 항목에서는 최하위권이었습니다. 이 항목들에 관한 서비스의 질이 낮을 때 앞으로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환자들에게 심각한 타격이 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된 항목인 환자 중심 치료는 개인적인 영리를 추구하는 시장 지향 의료체계와는 대립하는 현대의학의 환자 중심 패러다임에 입각한 치료를 말합니다. 영리병원이 환자 중심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전체 의료체계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며 이것은 곧 의료 서비스의 질과 많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리 목적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측면들이 있습니다. 의료 서비스는  의료진과 의료기관, 의료체계, 그리고 환자 등이 체계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의료 서비스의 질에 대한 평가는 기술적 측면에만 의존하지 않는 다차원적인 문제입니다.

렇게 <중앙일보>뿐 아니라 한국의 기업가들이나 정치가들 또는 이에 동조하는 일부 학자, 의사들이 걸핏하면 주장하는 ‘세계 수준의 의료 서비스 질의 향상’ 또는 ‘의료 서비스의 선진화’ 같은 표현이 과연 누가 어떻게 평가한 어떤 질적인 측면인지, 그리고 어느 나라의 수준을 말하는 것인지는 미국의 예만 보더라도 분명한 기준과 근거도 없고 모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준과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성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목적을 내세워 무조건 영리병원을 도입하자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막연한 추측과 희망사항을 마치 사실처럼 주장의 근거로 삼아 대중을 속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일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성마저 상실한 투기꾼들의  사회적 행패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계보건기구나 커먼웰스 펀드의 평가에서 최상의 의료체계를 갖춘 것으로 나타난 나라들이 외국 환자들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여들여 그런 의료체계를 구축한 것이 아닐뿐 아니라 외국환자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님은 분명합니다. 일부 외국 환자들을 대상으로 기업가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자기나라의 의료체계 개혁을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영리병원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을 뿐 아니라 영리병원이 오히려 의료체계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자국의 국민이나 의료체계를 희생하면서 기업가들의 배를 불리자는 이야기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를 기업에 이윤 챙겨주는 장사꾼으로 전락시킬건가?



리병원들이 수익 높은 분야에 집중하고 서비스 가격을 높게 책정함으로써 지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한편, 의료 혜택의 공평성을 저해하여 미국의 전체적인 의료체계 수준이 낮게 평가되게 하는 데 한몫 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 한국의 의료체계에서 영리병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비인기 분야 의사들이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비영리 병원들이 영리병원들과 경쟁을 하면 오히려 그와 같은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whoreport그 이면에서 의사를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팔아 기업가에게 이윤을 남겨주는 장사꾼으로 전락시키려는 언론과 정치가들, 기업가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이 사회를 주도할 때 환자들은 필연적으로 상업적 가치 판단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단순한 소비자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전인적 치료를 위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라기보다는 질병 자체의 치료에만 국한하는 관계를 설정해, 환자 중심 의료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4월 폴 크루만이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환자는 소비자가 아니다‘”라는 글에서 ’환자는 곧 소비자‘라는 말이 생겨나는 미국은 심각한 사회적 가치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을 때의 문제 의식은 이런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중앙일보>의 주장뿐 아니라 영리병원을 옹호하는 대부분의 다른 주장들은 의료 서비스의 선진화라는 실체가 불분명하고 모호한 목적을 내세워서 기업가들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라는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는 곧 소비자‘라는 관념을 은연 중에 대중에 인식시켜 이기적 물질 만능주의와 같은 사회적 가치를 한국 사회에 퍼뜨리는 것은 일부 기업가들의 이윤 추구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국가 의료체계를 희생시키는 것과 같으므로 결코 정당한 이윤 추구라고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학적 증거 기반으로 최선의 선택을 제공하고 또 제공받을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는 의료체계에서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는 것이지 의료 서비스가 기업가의 돈벌이 수단이 되었을 때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선진화할 수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을 생각한다면 의료 서비스의 질에 대한 현황을 정확하고 투명한 자료와 보편타당한 기준을 설정하여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의 개선책을 진지한 사회적 논의에 부쳐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적 증거 기반의 환자 중심 의학을 실천하여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켜야 하는 책임을 지닌 자들의 책임있는 자세인 것입니다.







[주요 참고 자료]


<중앙일보>, 존스홉킨스 “한국과 끝났다”, 7월11일치 1면, 2011년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07/11/5420754.html?cloc=nnc

Gallup, Nurses Top Honesty and Ethics List for 11th Year
http://www.gallup.com/poll/145043/Nurses-Top-Honesty-Ethics-List-11-Year.aspx

John W. Kenagy, et al., Service quality in health care, JAMA 1999.
http://jama.ama-assn.org/content/281/7/661.short

Karen Flynn, BRIEF OVERVIEW: Systematic reviews for Patient-Centered care. 2010
http://www.va.gov/VATAP/docs/Patientcenteredcare2010.pdf

The Commonwealth Fund, The U.S. Health System: Challenges and Reform in International Perspective, 2009.
http://siteresources.worldbank.org/HEALTHNUTRITIONANDPOPULATION/Resources/281627-1114107818507/101310USHealthReformDavis.pdf

The Commonwealth Fund, How the Performance of the U.S. Health Care System Compares Internationally 2010 Update
http://www.commonwealthfund.org/~/media/Files/Publications/Fund%20Report/2010/Jun/1400_Davis_Mirror_Mirror_on_the_wall_2010.pdf

The Commonwealth Fund, Why Not the Best? Results from the National Scorecard on U.S. Health System Performance, 2008
http://www.commonwealthfund.org/usr_doc/Why_Not_the_Best_national_scorecard_2008.pdf?section=4039

The Commonwealth Fund, Measuring the U.S. Health Care System: A Cross-National Comparison, 2010.
http://www.commonwealthfund.org/~/media/Files/Publications/Issue%20Brief/2010/Jun/1412_Anderson_measuring_US_hlt_care_sys_intl_ib.pdf

The New York Times, Patients Are Not Consumers.
http://www.nytimes.com/2011/04/22/opinion/22krugman.html

WHO, The world health report 2000 – Health systems: improving performance
http://www.who.int/whr/2000/en/whr00_en.pdf

The NewYork Times, World’s Best Medical Care?
http://www.nytimes.com/2007/08/12/opinion/12sun1.html

WSJ, In the Wrangle Over Health Care, a Low Rating for the U.S. System Keeps Emerging Despite Evident Shortcomings in Study.
http://online.wsj.com/article/SB125608054324397621.html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