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7일 목요일

환경기자의 방사선 피폭기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의 물바람숲블로그에서 퍼온글입니다.



교통사고로 수십 차례 X레이 찍고 얼마 뒤 체르노빌 취재
혹시나 해서 검사받아보니 2 개 염색체 이상…이 게 뭘까

ct.jpg ▲ 컴퓨터 단층촬영(CT) 모습. 이 과정에서도 다량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박종식 기자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지난해 8월 (여름휴가 2주일을 앞두고) 불의의 교통사고가 났다.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고(목격자들은 절대 그렇지 않았고 단지 횡설수설했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한강성심병원에 실려갔다. 

얼마간의 기억을 잃은 것 외에는 괜찮았다. 단지 갈비뼈 서너 대가 부러지고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약간 찌른 정도였을 뿐(뭐, 정말로 괜찮습니다).

수술을 마친 의사는 폐에 물이 차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매일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한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두어 차례 엑스레이를 찍었다(0.1mSV*2회*30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러진 뼈가 없는지 골 스캔이라는 검사(10mSV*1회)를 받기도 했다. 혹시 머리가 좋아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뇌 CT촬영(10mSV*1회)도 했다. 검사들은 호전 상황을 알려줬고 나는 회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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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르노빌 취재 때 들른 버려진 유치원의 학용품.

people.jpg ▲ 파리쉬브 마을의 이반 이바노비치, 마리아 콘드라드빠나 부부. 체르노빌 한가운데서 건강하게 살고 있다.

지난 4월 체르노빌 취재를 다녀온 뒤, 선배의 권유로 원자력의학원에 가 방사능 정밀진단을 받았다. 체르노빌에서 얼마나 많은 방사선이 내 몸을 통과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붉은 숲'이라는 곳에서 방사능 측정기가 삑삑 댔던 기억, 좋은 사진을 건지려고 수풀에 묻힌 폐허의 유치원에 들어갔던 기억이, 간호사가 피를 뽑을 때 스쳤다. 

1단계는 혈액 검사. 일반적인 암 가능성 검사를 하는 것처럼, 혈액 수치로 급성 피폭인지 아닌지를 가린다. 2단계는 정밀진단. 혈액에서 1000개의 DNA를 채취해 배양한 뒤 염색체 변이가 나타난 게 있는지를 보는 거라고 했다. 

연구자들로서도 수작업이 필요한 귀찮은 작업이라고 했다. 1000개의 샘플 중에서 이동원형 염색체(dicentric chromosome)를 찾는 것인데, 엊그제 등기우편물이 날라왔다. 2개가 발견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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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마세요.) 다행히도 진단서에는 '방사선 피폭이 의심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이동원형 염색체 2개는 젊은 성인 남성에서 발견될 수 있는 수치라고 했다. 

하지만 나로선, 어쨌든 2개가 생겼다는 사실, 은 지울 수 없었다. 마눌님은 "야, 그러면 애기 낳으면 안 되는 거 아냐?"고 웃고, 나도 따라 웃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은 작게나마 묵직했다. 

얼마 전 일본 후쿠시마에서 취재를 벌인 KBS의 한 촬영감독에게선 이동원형 염색체 7개가 발견됐다. 그는 현재까지 후쿠시마 취재인력 중 유일한 피폭자인데(100명 이상의 기자들이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원자력의학원은 그에게 '방사선 피폭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바로 밑의 경계치에 있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불과 10여 명의 검사결과가 나왔을 당시에, 5개인 사람도 있었고 4개인 사람도 있었다. 원자력의학원은 6개 이상일 경우 피폭 선고를 내렸다고 한다. 나는 7개, 5개, 4개 그리고 2개를 되뇌이며 가슴을 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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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7일 '방사능 비'가 내리자 시민들이 앞다퉈 우산을 쓰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소량의 방사선 피폭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김봉규 기자

개인적 공포에 더해 직업적 호기심이 발동해 아는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2개가 발견됐다고, 이건 어떠냐고.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1980년대의 연구결과를 보면 비노출 집단의 경우 세포 1만개 당 2개의 세포 이하로 나온다고 해요. 그렇다면 1000개이면 0.2개가 나와야 정상이겠죠. 하지만 의료기기 사용 등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의 방사선 노출량이 늘어났어요. 요즈음 세계적인 연구 결과를 보면 보통 1000개당 3개 이상일 경우 추가 피폭이 됐다고 봐요. 보통 2개까지는 일반인도 나올 수 있다고 하고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휴우, 정상 안에 들었다.  

그렇다고 이동원형 염색체가 그냥 생기는 건 아니예요. 주로 방사선의 때문이죠. 자연방사선이든, 인공방사선이든 방사선의 영향 때문에 생겼을 거라는 거에요. 지난해 교통사고 때 엑스레이 찍은 것이 원인일 수도 있어요. 일반적으로 이동원형 염색체는 90일 안에 소멸되지만, 저선량 노출의 경우 최대 3년까지 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거든요."

한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세계적으로 2개면 보통, 이라는 말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자연방사선의 경우 사람이 사는 지역마다 노출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화강암 지반(라돈이 많이 나온다)이기 때문에 자연방사선 노출량이 외국보다 높다는 얘기도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런 방사선 노출량에 대한 국내의 통계 데이터가 없다는 것, 2개가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모른다는 것, 방사선의 인체 영향에 대해서 과학이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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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선량 방사선에 의한 발암확률 모식도. 100명 가운데 평생 암에 걸려 죽는 사람은 42명(검은 원)이다. 이 가운데 자연방사선에 추가로 100밀리시버트의 인공 방사선에 쏘이면 1명(별)이 암으로 사망한다. 일반인 권고기준인 연간 1밀리시버트라면 1만명당 1명이 사망한다. 자료=미국 과학아카데미 2006년 보고서

이동원형 염색체 2개. 지난해 매일 찍은 엑스레이 때문일 수도 있고, 체르노빌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한국 젊은 남성의 평균치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우리의 인식론적 한계 내에서 내릴 수 있는) 논리적인 결론이다. 과학은 텔레비전에서 신문에서 아는 체 했건만, 결국 내 마음 한 켠에 남아있는 찜찜함을 해소해주지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담론이 활활 타올랐다가 훅 꺼졌다. 그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과학의 권위를 빌어 안심하라고 안심하라고 했다. 

방사능에 대한 과학의 가설은 통계학에 기대어 있다. 이를테면 연간 1mSV에 노출되면 1만명당 암 발생자가 1명이 늘어난다는 것 혹은 어느 정도 노출량이면 괜찮다, 나빠질 것이라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은 경험을 통해 나온 통계적 결론이다. 

지난 4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 체르노빌 원전 이튿날 그곳에 있었던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 사람은 지금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했다(둘 다 피폭한계치에 이르러 이튿날 즈음 원전 주변에서 소개된 이들이다).

그게 과학과 통계가 보여주는 '빈 공간'이다. 과학의 불확실성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과학이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은 20%인데, 우리가 그 20%에 기대어 세계를 다 안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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