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1일 금요일

메이지 정부도 “독도는 조선 땅”


이글은 시사IN 2012-08-31일자 기사 '메이지 정부도 “독도는 조선 땅”'을 퍼왔습니다.
독도가 조선 땅이었다는 증거는 일본에 더 다양하고 확실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 일본 고문헌뿐 아니라 메이지 정부도 독도를 조선 영토라고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8월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겨온 일본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이번 일의 유탄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하나는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3·4위 결정전에서 박종우 선수가 펼친 ‘독도 세리머니’다. 올림픽에서 금지된 출전 선수의 ‘정치적 메시지’ 표명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기는 힘들지만, 행여 선수의 메달이 박탈되기라도 한다면, ‘바람’을 넣은 대통령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다른 하나는,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도 관련 발언을 놓고 벌인 설전이다. 문 후보가 “1965년 (한·일 수교협상)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딘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에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섬을 폭파시켜서 없애버리고 싶었다고 말했다”라면서,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한 것은 8월2일이었다. 왠지 그때는 잠잠히 지나갔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뜨거운 화제가 된 8월10일 저녁, 박 후보의 대변인이 반박을 했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이 발언은 일본 측에서 한 것”이라나. 


이번 연재의 주제와 책을 황급히 바꾸었으니, 유탄은 나에게도 튀었다. 그런데 독도에 대해서라면 2008년 이맘때, 다른 지면에 한 번 쓴 적이 있다. 그때도 원인 제공자는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그해 7월14일, (요미우리 신문)은 같은 달 9일에 있었던 한·일 정상회담 때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일본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기하겠다고 통고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말했다는 특종을 실었다.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외무성이 부인하고, 한국 외교부가 요청했음에도 끝내 정정기사를 내지 않았다. 

독도 문제에 대한 가장 간명하고 총괄적인 소개서라면 신용하 교수의 (신용하의 독도 이야기)(살림, 2004년)를 따라올 게 없다. 문고본이라는 작은 부피이지만, 고대사와 근대사는 물론이고 현대사까지 통틀어 독도의 역사를 조감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 기회에 독도 문제를 떼고 싶으시면, 역사적·지리적·국제법상의 모든 난문제를 조목조목 밝힌 이 책부터 읽는 게 좋다.  


(삼국사기)에 신라의 우산국 병합 기록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 우산국이 신라에 병합된 때부터 독도는 한국의 고유 영토가 되었고, (삼국사기)의 두 곳에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 일본은, 독도는 우산국 영토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응수한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1481년)을 증보한 (신동국여지승람)(1531년)에는 우산국이 두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나와 있으며, (만기요람)(1808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의 땅”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라고 써 놓았다. 일본 어부들은 1870년대 말까지 독도를 송도라고 호칭했다. 또 일본은 앞의 주장에 잇대어, 조선이 독도의 실체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강변한다. 을 들출 필요도 없이, 울릉도 고지에서 독도가 육안으로 보인다는 것만으로 일본 측의 주장은 반박되고도 남는다. 맨눈으로 보이는 섬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다. 

(신용하의 독도 이야기)는 독도가 조선 땅이었다는 증거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 더 다양하고 확실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기대 밖의 역설을 보여준다. “독도를 기록한 일본 고문헌들로서 현재까지 발견된 모든 고문헌은 독도가 한국 영토이고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데다가, 일본의 고지도는 하나같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섬으로 명기하고 있다. 일본의 의도에 반하는 이런 자료는, 일본의 근대가 시작되는 메이지 정부 때에 더욱 풍성해진다.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1905년 이전까지는 외무성, 내무성, 태정관, 육군성 막론하고 독도를 조선 영토라고 명확히 인지하여 재확인”하고 있다. 

<신용하의 독도 이야기>신용하 지음살림 펴냄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 제41호를 통해 독도가 울릉군에 속한 한국 영토임을 재공표했다. 일본은 이 사실을 무시하고 러·일 전쟁 중인 1904년 독도에 감시탑을 설치했고, 1905년에는 내각회의를 거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했다. 그런데 당시의 일본 정부는 그 사실을 관보가 아닌, 시마네 현의 현보에 싣는 ‘꼼수’를 부렸다. 일본의 저술가 나이토 세이추는 (한국학술정보, 2011년)에 이렇게 썼다. “이 조치는 분명히 비밀리에 이루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국제법에 비추어 ‘유효하게 실시되었다’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공시였다.”


“독도 문제는 미국의 대일 전략에서 파생”

20세기 초에 시작된 한국과 일본 사이의 독도 분쟁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영토적 야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일제의 패망은 독도 반환으로 자연스레 이어져야 했으나, 그 과정에는 곡절이 많다. 신용하도 자신의 책 말미에서 이 문제를 꽤 중요하게 다루었지만, 정병준은 아예 1945~1953년의 현대사만 가지고 1000쪽에 가까운 (독도 1947)(돌베개, 2010년)을 썼다. 지은이의 견해와 핵심은 “독도 문제가 한·일 간의 문제이거나 역사적 영유권, 지리적 문헌의 문제라기보다는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을 기점으로 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동북아 전략, 특히 대일 정책의 부산물로 한미·미일 관계에서 파생되었다”라는 데 있다. 이 책의 전문성과 두께가 부담스럽거나, 그보다는 박정희의 ‘독도 폭파’ 발언의 진위가 더 궁금하다면 노 다니엘의 (독도밀약)(한울, 2011년)을 필독해야 한다.   

이제껏 일본의 독도 도발은 시마네 현이나 소수의 극우 세력이 주도했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일본은 교과서·외교청서·방위백서 등을 통해 ‘독도는 일본 땅’을 전력으로 외쳐왔다. ‘잃어버린 10년’으로 끝나지 않는 경제 침체와 군국주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던 일본 사회의 보수성이 결합해 국수주의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과 ‘레임덕 만회’라는 비웃음을 스스로 짊어지면서 후임 대통령의 고민을 덜어준 것은 잘한 일이다. 이번 일로 일본은 수가 궁해진 반면, 한국은 작심하고 굳히기만 하면 된다. 일본이 남한과 북한 사이를 현명하게 오갔다면, 이런 때에 ‘북한 카드’로 한국 정부를 압박할 수도 있었다. 장차 그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독도에 1인용 집필실을 만들어, 작가를 몇 달씩 상주시키는 것은 한국이 써볼 만한 방법이다. 그럼 나도 간다.

장정일 (소설가)

‘상관모욕죄’ 대위, 징역 3년 구형


이글은 시사IN 2012-08-31일자 기사 '‘상관모욕죄’ 대위, 징역 3년 구형'을 퍼왔습니다.
트위터에서 상관을 모욕한 죄로 기소된 현역 장교에게 징역 3년 구형이 떨어졌다. 2주 안에 내려질 선고는 군인의 ‘표현의 자유’를 가늠해볼 잣대가 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SNS 이용에 대해 단속 강화 지침을 내렸다.

“저는 무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피고인석에 앉은 이 아무개 대위(27)의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8월22일 경기도 한 부대에서 진행된 제7군단 보통군사법원. 네 번째로 열린 군사재판에서 이 대위는 자신의 심경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뗐다. “육사 생활에 재미를 느꼈느냐”라는 검찰관의 신문과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느냐”와 같은 군 판사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해온 터였다.

그는 최후진술을 위해 A4 한 장 가득 써온 글을 ‘다·나·까’로 끝나는 전형적인 군인 말투로 읽어 내려갔다. 이 대위는 기소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무죄를 다툴 사건 자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민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나라가 존재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4년이 넘는 동안 제가 복무한 군대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대한민국의 파수꾼입니다.” 

ⓒ시사IN 조남진 트위터에 대통령에 대한 글을 올려 ‘상관모욕죄’로 기소된 이 아무개 대위에 대한 공판이 8월22일 열린 가운데 군 관계자들이 재판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군사법원 재판장 격인 심판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방청석에 앉아 이 대위의 최후진술을 듣던 그의 어머니 전 아무개씨(55)는 “아들이 당당하게 할 말 다 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은 여리다. 어제는 한숨도 못 잤다. 요샌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 들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위태위태하게 버티고 있는데 요즘 들어 특히 더 힘들어한다. 이제 정말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군 검찰은 이 대위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기소된 군형법 제64조 제2항(문서, 도화 또는 우상을 공시하거나 연설 또는 그 밖의 공연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상관모욕죄에 해당되는 최고 형량이었다. 검찰관은 “군인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기는 하지만 장교는 모범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장교로 자기 신분을 망각한 채, 끝까지 뉘우치지 않았다”라며 구형 이유를 덧붙였다. 

이 대위 쪽 이재정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군 검찰이 공소한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검찰이 낸 자료는 원본이 아닌 워드프로세서로 편집된 채 손으로 가필한 흔적까지 있어 증거능력이 의심된다는 지적이었다. 이 변호사는 “트위터에서의 비판은 국군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이 아닌 내곡동 사저 문제, 인천공항매각, 등록금 정책 등과 관련한 최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었다. 물론 좀 더 합리적인 태도로 비판하지 못한 점은 아쉽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형법을 다루는 법정이고, 법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군 검찰 구형 열흘 전, 군기강 확립 발표

또 이 변호사는 두 번이나 기각된 증인신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애초에 SNS에서 벌어진 강정마을 관련 논쟁으로 인해 이 대위의 트윗이 문제가 됐다고 알려졌던 것과 달리, 그보다 훨씬 앞선 지난 2월부터 국군기무사령부가 이 대위 트위터를 지켜봐왔다는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대위의 트위터 캡처본 473장의 자료를 제출한 기무사 소속 서 아무개 대위가 사건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지만, 재판부는 그를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두 번째 공판부터 변론 종결 때까지 논란이 된 이 쟁점에 대해 “위법 수집 증거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해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심판관은 다시 이 대위에게 물었다. “양심에 손을 얹고 이번 일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다.” 이 대위는 “행여 이명박 대통령이 적진에 뛰어들라고 하면, 그게 어떤 업무라고 할지라도 (군인으로서) 수행해야 한다”라고만 대답했다. 이재정 변호사는 이 대위의 짧은 말을 보충했다. 이 변호사는 법리를 강조하던 그 전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자신이 겪은 이 대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대위는 보수적인 엘리트 군인이다. 서울대와 육사를 동시에 붙고서도 육사를 지원했다. 이를 말리는 모친을 설득하면서까지 육사에 입학했고, 육사 지원금으로 일본 유학도 갔고 우수 논문상도 탄 인재다. 이런 이 대위의 모습을 보면서, 육사 진학을 반대하던 어머니도 태도를 바꿔 육사발전기금을 300만원이나 낸 적도 있다.” 

ⓒ시사IN 조남진 한 군인이 제7군단 보통군사법원 입구에 있는 군기강 확립 안내문을 보고 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재판은 이날 선고를 제외한 모든 일정을 끝냈다. 군 판사는 2주 안에 선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군인의 SNS 사용과 관련한 재판은 처음이다. 국방부는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엄벌하겠다고 밝혔지만 재판부는 국방부 하부 조직이 아니다. 군대 내 표현의 자유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선고인 만큼 재판부가 독립된 사법기관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해주시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검찰의 구형이 있기 열흘 전, 사이버 군기강 확립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SNS 활용 행동강령’을 제정해 이를 위반하는 군인은 관련 법규에 의거해 엄벌에 처하겠다는 것이었다. 국방부가 밝힌 SNS 활용 행동강령에는 △승인되지 않은 휴대전화 등은 영내 반입·사용 금지 △SNS상에서 군 비하·모욕·해학적 표현으로 군 기강 및 품위 훼손 금지 △SNS상에서 타인에 대한 모욕·욕설, 명예훼손, 정치적 중립 저해 등 금지 등이 명시되어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SNS 관련 지시사항을 이 대위 구형과 선고를 앞둔 때 발표하는 건, 사실상 지침을 내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 대위 건을 본보기로 해서 본격적으로 SNS에서 표현을 제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1월 전군에 배포한 ‘SNS 활용 가이드라인’에도 이 행동강령이 들어가 있다([시사IN] 제246호 국방부 SNS 가이드라인 ‘웬만하면 다 걸린다’ 기사 참조). 모든 군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항을 행동강령으로 제정했다”라고 밝혔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이명박 정권 '친서민' 구호는 새빨간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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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복리가 경제민주화다] '최고임금제'로 바뀐 '최저임금제'

임금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전에만 해도 억대연봉은 거의 없었다. IMF 사태가 몰고 온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더니 이제는 억대연봉이 아니라 억대월급이 수두룩하다. 많은 사람들이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버는데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도 이보다 훨씬 많이 버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실에서 법제화된 최저임금마저 제구실을 못 한다.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활급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 최저임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야 하나 오히려 억제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도가 현재와 같이 파행적으로 운영된다면 소득양극화는 더욱 벌어지고 이에 따른 복지수요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되었다.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가 그 이상의 임금을 주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국가는 적정임금을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정신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2001년에야 모든 사업장에 최저임금이 적용됐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이 각각 9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이 결정한다. 시행 초기에는 적용범위를 상시적으로 10명 이상 고용한 제조업체로 제한했으나 이제는 모든 사업과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그런데 최저임금위원회가 연례행사처럼 인상폭을 둘러싸고 파행을 되풀이한다. 2012년 인상률을 결정하는 2011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용자측은 상투적으로 동결을 주장하며 시간을 끌다가 막판에 가서 소액인상을 내놓고 파국으로 몰고 갔다. 2011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4320원인데 2011년에도 또 동결을 주장했다. 반대가 심하자 0.7%, 30원 인상안을 내놓았다가 최종안으로 3.1%, 135원 오른 4455원을 제시했다.

노동계는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인 5410원에서 후퇴해 타협안으로 10.6%, 460원 오른 4780원을 내놓았다. 공익측은 조정안으로 2011년보다 6.0~6.9% 오른 4580~4620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사 양측위원이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동반사퇴함으로써 파국을 맞고 말았다.

2011년 들어 소비자물가가 1~6월 연속 4%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2011년 상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3%로 2010년 동기의 2.7%에 비해 크게 뛰었다. 이에 따라 1/4분기 실질임금이 4.1% 감소했다. 임금이 뛰는 물가를 따라잡지 못해 급여소득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 2010년 6월 24일 서울 마포 경영자총협회 건물 앞에서 청년실업네트워크 회원들이 2011년 최저임금 인상안으로 2010년보다 8원 많은 4118원을 제시한 경영계를 규탄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역시 '부자정권'…이명박 정부, 최저임금인상률 역대 최저

정부통계를 볼 필요가 없다. 생필품 값이 폭등세를 보여 주부들이 장보기가 겁나고 월급쟁이들이 점심 먹으러 가기가 무섭다. 여기에다 전기요금, 대중교통요금 등 각종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을 대기한 상태다. 이런 판에 저임지대에서 가장 고통 받는 계층의 최저임금을 동결하자니, 사용자위원들이 임금을 논의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최저임금법은 생계비, 유사노동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을 따져 인상률을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생계비는 물가상승률과 연관성이 깊다. 나머지는 업종-지역의 특성 때문에 현실적으로 지수화가 어렵다. 물가상승률이 가장 유효한 지표이다. 그런데 고작 30원이 뭔가? 10원짜리 동전은 통화가치를 상실한 지 오래다.

하루 10시간 일해 봤자 고작 300원을 더 번다. 사흘 일해야 버스나 지하철을 한 번 타면 그만이다. 최종인상안인 3.1%, 135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크게 밑돌았다. 어떤 임금인상협상도 물가상승률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것을 무시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파국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 이외에 달리 해석이 어려웠다.

최저임금액 이상의 지급의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문제는 사법처리된 사례가 거의 없어 이 규정이 사문화되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250만 명이고 이마저 못 받는 노동자가 200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청년유니온이 면접조사한 결과를 보면 서울지역 편의점의 46.5%가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전교조 조사에 따라도 아르바이트 고교생의 46.8%가 최저임금을 못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업종의 경우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으로 자리매김한 꼴이다.

이런 현실에서 2011년 7월 13일 새벽 공익위원들이 사퇴했던 사용자위원들과 합세해 260원 오른 4580원안을 기습처리했다. 자체조사한 생계비 상승률이 6.4%라면서 이보다 낮은 6.0%로 날치기한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3년 최저임금을 2012년보다 6.1%, 280원 오른 4860원으로 결정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최저임금 산정기준으로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권고한다.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한 시간당 실질 최저임금수준은 2010년 한국이 3.06달러로 프랑스의 30%, 일본의 40%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역대 정권이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가장 인색하여 부자정권의 면모를 확인했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명박 정권의 인상률이 가장 낮다. 2008~2011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연평균 5.0%으로 물가상승률 3.6%를 감안하면 실질 최저임금인상률은 연평균 1.4% 수준이다. 역대정권의 연평균 인상률을 보면 김영삼 8.1%, 김대중 9.0%, 노무현 10.6%로 이명박 정권보다 훨씬 높았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 이래 역대 최저치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유지하면서도 친서민이란 구호를 외쳤으니 그 허구성을 말하고도 남는다. 단속하지 않아 최저임금 위반이 많은데도 그것을 지급능력 부족이라고 호도했다. 더러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논의하나 그보다는 저임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려는 정책의지가 더 중요하다.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삼성 백혈병' 소송 2라운드, 새로운 발암물질 증거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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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물로도 발암물질 생성"…원고 일부 승소 1심 바뀌나?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 인정 항소심에서 원고 측이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급 발암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이 부산물로 생성된다는 자료를 추가로 내놨다. '부산물'이 증거로 떠오르면서 앞으로 소송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은 30일 오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에 걸린 노동자와 유가족 5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등에 대한 4차 변론을 열었다.

항소심에서 원고 측은 올해 2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내놓은 연구결과를 근거로 삼성전자 기흥공장(가공공정)과 온양공장(조립공정) 모두에서 대기 중에 벤젠, 포름알데히드와 전리방사선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원고 "정상적인 공정에서도 부산물로 발암물질 생겨"

원고 측 변호사는 "지난 1심에서는 이전 공정에 부산물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는 등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벤젠 등이 남아 있을 확률이 제기됐다면, 이번에는 반도체공장의 '정상적'인 공정에서도 부산물로 발암물질이 생성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사업장이 직접 사용한 화학물질에 대해서만 공방이 오고 갔다면, 이제는 화학물질이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해 내는 부산물에 의한 영향까지 고려대상으로 추가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토공정(반도체 회로패턴을 형성시키기 위해 빛을 가하는 공정)이나 몰드공정(반도체칩을 고온의 조건에서 단단하게 가공하는 공정)에서 사용하는 노보락수지는 빛이나 고온을 가하면 분해돼 부산물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백혈병 유발인자를 새롭게 생성한다.

원고는 "발암물질의 수치가 낮더라도 어떤 사람은 적은 노출만으로도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며 "벤젠, 포름알데히드, 방사선 등 여러 발암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면 그 상호작용으로 효과가 배가돼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 림프조혈계 질환에 걸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예전의 반도체공장은 내부 공기와 전 공정을 공유했기 때문에 발암물질이 모든 공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 지난해 6월 23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직후 삼성 반도체 노동자 및 유가족들이 서울행정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이종란 노무사, 김은경 씨, 고(故) 황민웅 씨의 아내 정애정 씨, 송창호 씨. ⓒ프레시안(자료사진)

앞서 1심에서 재판부는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와 유족으로 구성된 원고 5명 가운데 백혈병에 걸린 고(故) 이숙영 씨와 고(故) 황유미 씨의 산재만을 인정했다. "명백하게 백혈병 유발 요인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유해한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백혈병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 관련 기사 : 법원 "'삼성 백혈병' 산재 맞다…유해물질 지속 노출 탓")

나머지 김은경(백혈병), 송창호(악성림프종), 고(故) 황민웅(백혈병) 씨는 유해물질에 노출된 것은 인정됐지만,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되지 않았거나 노출됐더라도 지속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2심에서는 이들이 일하던 공정에서도 대기 중에 새로 발견된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을 가능성이 추가된 셈이다.

원고 측 변호사는 "과거의 공정은 사라지고 없지만, 삼성전자 노동자와 고인들은 자동화되기 전에 수동화된 구식 공정에서 일했다"며 "과거에는 현재 측정된 노출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됐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발암물질 사용 안 해…노출량도 자연수준"

반면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의 보조참가인으로 나온 삼성전자 측 변호사는 "벤젠 등 발암물질을 사용하지 않았고, 설사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검출량이 일반 외부환경의 측정치와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측은 지난 2009년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3사가 직접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맡긴 연구에서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감광제 6건 모두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다"는 내용에 대해 "분석방법과 과정을 공개하지 않아 연구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자사가 의뢰한 서울대 보고서 대신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의뢰해 감광제에 벤젠이 들어있다고 가정하고 실험해본 결과, 근로자에게 벤젠이 노출되지 않았다"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내놨다.

삼성전자는 "원고들은 불순물을 제거한 공정이나 밀폐된 공정에서 일했기 때문에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았다"며 "설사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결과를 보더라도 공기 중에 노출된 벤젠의 농도도 옥외 농도와 비슷한 수준이고, 전리방사선 노출량 또한 자연방사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패소한 1심 판결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어떤 유해물질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백혈병이 생기는지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막연한 추론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반도체공장에서 쓰는 화학물질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특히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반도체 사업장의 제조공정 건강실태 역학조사'를 반박하는 데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이 역학조사는 반도체 공장 업무와 백혈병은 상관이 없지만, 조립공정 여성의 경우 림프종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5.16배, 재생불량성 빈혈은 표준화사망비가 1.46으로 높게 나왔다고 결론 내렸다.

삼성전자는 "2008년 역학조사는 전체를 조사하지 않고 표본을 뽑아 조사했다"며 "오차범위를 고려하면 통계적 의미가 적다"고 주장했다. 반면 같은 연구에 대해 원고 측은 "백혈병과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은 모두 림프조혈계 질환에 속한다"며 백혈병의 한 종류인 림프종의 발병율을 백혈병과 따로 조사함으로써 결과가 희석됐다고 주장했다.

심상정 "삼성은 소송에서 빠져라" 

재판부는 삼성전자의 문제제기를 수용해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평가 자문'에서 분석방법과 과정을 보완할 것을 요구하면서 재판을 마쳤다. 오는 11월 1일 마지막 공판이 열리면 곧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공판에는 통합진보당 심상정 의원이 방청석에 참가했다. 심 의원은 재판이 열리기 직전 보도자료를 내고 "이 소송은 원고인 유족 등과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의 싸움"이라며 "보조참가인인 삼성은 소송에서 빠지라"고 촉구했다.

 /김윤나영 기자

"재벌 총수들이 벌벌 떨만한 무서운 법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31일자 기사 '"재벌 총수들이 벌벌 떨만한 무서운 법은…"'을 퍼왔습니다.
[토론회] 김상조 교수, 기업집단에 관한 종합적 규율 체계 제시

"경제 민주화가 시대적 과제로 부각됐지만 기대 못지않게 우려가 크다."

30일 국회 의정관에서 열린 경제민주화포럼 전문가초청 토론회 발표자로 나선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의 소감이다. 경제민주화포럼에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속해 있다.

김 교수는 경제 민주화와 관련해 "출자총액제한제도,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재벌세 도입 등의 방안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방안들을 엮어주는 논리와 기반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선정적 정책 수단의 유혹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지속가능한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민주화 논의, 기대 못지않게 우려가 크다"

토론 주제는 기업집단법이었다. 기업집단법의 취지는 재벌 총수의 권한은 막강한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은 지지 않는 현실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유럽의 기업집단법 현황을 소개하고, '선수는 기업집단인데 심판은 개별 기업만 상대하는' 한국에서 재벌 개혁에 참조할 사항들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우선 "주식회사처럼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경제 현상도 실제로는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업집단 역시 100년 정도밖에 안 된 새로운 현상이며, 이에 대한 규율 체계도 나라마다 다르고 미완성 상태라고 지적했다. 유럽 등의 기업집단법을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한국에 적합한 기업집단 규율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럽에서 기업집단법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업집단법 하면 독일의 콘체른법을 떠올린다. 콘체른법에 장점이 많지만 그것을 한국에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렵다. 단순히 '콘체른법을 모델로 한국의 기업집단법을 만들자'고 한다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콘체른법은 1965년에 만들어졌다. 콘체른법 제정 논의를 주도한 것은 발터 오이켄을 비롯한 질서자유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의 기본 생각은 "권한이 있는 만큼 책임을 지게 해야 우리의 자유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콘체른법의 특징과 약점을 이렇게 정리했다.

"콘체른법에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하나는 지배회사가 종속회사에 어떤 지시를 하는지 상세하게 기록(종속보고서)으로 남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배회사의 지시로 인해 발생한 종속회사의 손해에 대해 보상한다는 것이다.

비판도 나온다. 우선 지배회사와 종속회사 사이에 공평한 계약이 이뤄지겠느냐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종속보고서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영이사회가 감독이사회에 보고할 뿐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관계자들이 알 수 없다."

김 교수는 기업집단을 규율하는 독일 방식의 또 다른 특징으로 "성문법 못지않게 법원 판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한국 상황을 언급했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의회도, 법원도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한국의 사법부는 그간 경제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들에 대해 '국민 경제에 기여한 바를 감안한다'며 통상 집행유예를 선고해왔다.

김 교수는 독일 사례를 넘어 유럽 전반의 기업집단 규율 체계를 짚었다. 유럽에서는 1968년부터 기업집단법 도입이 적극적으로 모색됐다. 기업집단이 확산됐을 뿐만 아니라 그 전해(1967년)에 유럽공동체(EC, 후에 유럽연합으로 확대)가 출범하면서 회원국들의 회사법을 조율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중 이사회와 노동자 경영 참가를 전제로 하는 독일의 기업집단 규율 방식을 영국이 거부하면서 논의는 정체됐다. 결국 독일의 콘체른법을 모태로 한 접근 방식은 폐기되고, 영국과 프랑스의 성문법 및 판례에 기반을 둔 다원적 접근법이 채택됐다.

김 교수는 기업집단을 규율하는 영국 방식과 독일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영국 방식은 기업집단의 범위를 매우 좁게 설정하면서, 이사의 행위가 상식선을 넘어 오남용됐을 때만 예외적으로 처벌한다. 독일 방식은 기업집단의 범위를 매우 넓게 정하고, 지배-종속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게 확인되면 이사 행위의 불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지배-종속 상황에 근거에 책임을 지게 한다."

김 교수는 독일 방식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문제점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지배-종속 관계를 법에서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배-종속 관계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걸 어떻게 확인하고, 또 그것을 법에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지배-종속 관계를 사전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김 교수는 이 때문에 "1990년대 말 이후 유럽에서는 절충적 접근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하나의 법에 모든 것을 담는 대신, 기업집단법의 원리를 각각의 법에 부분적으로 나눠 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각 법의 취지에 따라 개념의 범위를 달리 정하는 것이고, 내가 택한 것도 이것이다."

유럽 기업집단법을 통해 살펴본 한국 기업집단 규율 체계

▲ 김상조 교수(자료 사진). ⓒ프레시안
이 과정에서 기업집단법 논의 흐름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콘체른법이 종속회사, 소액주주, 노동자에 대한 지배회사의 횡포를 막는 데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1990년대 이후 기업집단법 논의에서 '그룹 공통의 이익 인정', 즉 기업집단의 시너지 효과가 약자 보호와 동일한 비중의 목적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로 주목받은 것이 1985년 프랑스 대법원의 로젠블룸(Rosenblum) 판결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기업집단에서 어떤 계열사는 손해를 보더라도 그룹 전체에 시너지가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고 그것이 효율적이라고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그 손해에 대해 보상해주는 메커니즘을 정한 판결이다."

김 교수는 기업집단 규율 체계에 '로젠블룸 원리'를 담아 "기업집단의 편익과 부담의조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벌 총수 맞춤형 판결'을 관행적으로 해온 한국 사법부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 '로젠블룸 원리'는 재벌 회장들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 김 교수도 이 점을 감안해 전제조건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지배-종속 관계를 외부에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손해와 상계되는 이익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그 이익이 추상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게 추상적이면, ('로젠블룸 원리'는) 재벌 총수의 면책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로젠블룸 원리'를 도입할 필요성을 제시하긴 했지만, 당장 들여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김 교수는 "이를 도입하려면 한국 법원이 프랑스 대법원 정도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한 10년 후쯤 논의해보자"고 말했다. 프랑스 법원은 75건 중 9건에 대해서만 총수의 면책을 인정할 정도로 '로젠블룸 원리'를 매우 엄격하게 적용했다.

절충적·다원적 접근법, '로젠블룸 원리' 도입과 함께 김 교수는 다양한 기업집단 개념 도입, 기업집단의 조직 형태에 따른 규제 격차 해소,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수단의 조화 등이 한국의 기업집단 규율 체계에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가 11개인데, 이를 하나로 보고 규율하는 법 체계가 없는" 등의 문제점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이해관계자 보호와 관련해 채권자와 소액주주에 대해서는 사전적 장치 중심으로, 노동자에 대해서는 사후적 장치 중심으로 보호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파산한 후에는 채권자를 보호할 수 없다. 채권자 보호의 핵심 원리는 파산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 즉 회사로서 회생 가능성이 의심받을 때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액주주 보호와 관련해서는 기업집단에 편입될 때 거기에 들어갈지 말지를 선택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한국에서는 노동시장을 떠나면 (사실상) 죽는다. 따라서 조직 내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주는 것이 노동자 보호의 핵심이다."

김 교수는 소액주주 보호 장치로 의무공개매수제도(인수합병을 목적으로 주식을 사들일 때 일정 비율 이상을 공개적으로 매수하게 하는 제도)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소액주주의 '떠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한 계열사에 더 많이 출자하게 함으로써 재벌의 소유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대안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5년의 경험을 돌아볼 때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이명박 정부 들어 폐기되기 전인) 2007년에 이미 규제 효력을 상실했다"며 "민주통합당이 남을 비난할 처지가 못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교수는 출자총액제한제도와 함께 재벌 개혁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거론되는 '순환출자 금지'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시행해야 하지만, 그걸 재벌 개혁 방안의 가장 앞자리에 둘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이날 기업집단 규율 체계에 대해 발표한 내용은 민주통합당에 제출한 130쪽짜리 보고서를 압축한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이 보고서에 김 교수는 21개의 입법제안을 담았다. 김 교수는 "21개 입법제안을 한꺼번에 법으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1년 안에 해야 할 것도 있지만 3년 혹은 10년을 두고 진행해야 할 사항들도 있다는 말이다.

21개 입법제안 중에는 영국식 이사 자격 박탈 제도도 있다. 재벌 총수가 천문학적 규모의 경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기업을 경영하는 한국 현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조세 포탈과) 배임으로 유죄를 받고도 이건희 회장은 여전히 삼성생명 대주주다. 이와 달리 론스타는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후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잃었다.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관련 규정이) 은행법에는 있고 보험업법에는 없기 때문이다. (…) 영국에서는 파산에 중요한 귀책사유가 있는 사람은 다른 회사의 이사를 최장 15년까지 할 수 없다. 파산법인 혹은 그에 근접한 법인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이 제도가 한국에 도입되면 그 파장은 매우 클 것이다. 재벌 총수에게 아주 무서운 법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 제도가 "부당하더라도 회장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월급 사장들이 항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통합당, 이사 자격 박탈 제도 적극 검토해야"

김 교수의 발표에 이어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과 전성인 홍익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김 부원장도 김 교수와 마찬가지로 최근의 경제 민주화 논의 상황을 우려했다. 김 부원장은 "현실적으로 경제 민주화가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여야가 부딪치는 느낌도 잘 안 든다"고 말했다. "재벌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정치권에서) 과거의 것을 꺼내 (관성적으로) 재사용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김 부위원장은 "1987년 버전, 1997년 버전과 다른 2012년 버전 재벌 개혁 방안을 마련해 돌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부위원장은 기업집단 규율 체계에 대한 김 교수의 방안에 대해 "민생 문제보다는 기업집단 내부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 논의의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논평했다.

김 부위원장은 김 교수의 21개 입법제안 중 이사 자격 박탈 제도와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사 자격 박탈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민주통합당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에 대해서는 김 교수와 의견을 달리했다. 김 부위원장은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대체할 만한 '경제력 집중 억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고민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민생 관련 지적에 대해, 김 교수는 "기업집단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며 "중소기업, 서민, 자영업자 문제 등에 대해서는 다른 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한국의 기업집단 규율 체계를 만들 때 "노동자 보호 문제를 꼭 법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인 교수는 김 교수의 입법제안 21개 중 11개에 대해 '전폭 찬성'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로젠블룸 원리'에 대해서는 "도입이 필요한지 약간 의문"이라는 뜻을 밝혔고, 의무공개매수제도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성과 기대 효과 측면에서 유보적"이라고 논평했다.

 /김덕련 기자

두들겨 팬 용역보다 '조폭두목'처럼 설쳐댄 회사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31일자 기사 '두들겨 팬 용역보다 '조폭두목'처럼 설쳐댄 회사가…'를 퍼왔습니다.
[폭력에 내던져진 노동자들·①] 정년을 앞둔 SJM 노동자 이상열 씨

SJM의 용역폭력 사태로 인해, 많은 이들이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테러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이번 사태는 일부 용역업체의 불법적 행위와 폭력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만연했던 민주노조에 관한 자본의 공격적 행동을 폭로한 사건이기도 했다. ·다산인권센터와 (프레시안)은 노동기본권이 무엇이며, 노동자가 바로 자신이고 가족이고 이웃인 평범한 사람들임을 알릴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기획은 지난해 경기지역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을 인터뷰해서 (사람꽃을 만나다)를 발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산인권센터가 SJM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을 인터뷰했다. 첫 회는 전 아주대 김철환 교수가 정년을 앞둔 SJM노동자 이상열 씨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아주대 김철환 교수는 퇴임직전까지 아주대 교수회의 의장을 맡아, 사학비리와 싸웠다. 퇴직을 앞둔 어느 날 평생을 바친 회사로부터 배신당한 아픔, 그러나 그보다 남겨진 후배들의 처지 때문에 걱정이라는 노동자 이상열 씨. 그는 회사를 퇴직해도 노동조합은 퇴직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들의 오랜 대화를 김철환 교수가 글로 보내줬다. (편집자)

그의 첫 인상은 곱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다. 오랜 기간 산업현장에서 일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마에 주름 하나도 없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없다. 그 험한 꼴을 당한 사람이라면 의당 내뿜어야 할 분노도 가슴 속에서 삭이는 모양이다.

그 보다도 그의 부인이 용역의 만행과 회사의 부당함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방방 뜬다"고 전한다. 그에게는 분노의 분출보다도 앞으로 후배들이 겪어야만 할 어려움이 "가슴 아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가족 같은 직원 관계"가 무너지고 "원만하던 노사관계"가 3년 전부터 어긋나더니 급기야는 파국의 경지에 이르게 된 현재의 상태가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에게 이번 에스제이엠(SJM) 사태는 퇴직을 불과 몇 달 남겨 놓고 겪어야만 하는 가슴 아픈 일이다. 그는 금년 말 12월에 퇴직할 예정이다. 1987년에 입사했으니 무려 25년을 재직한 회사이다. 회사가 설립 된지 37년이니 그의 삶이 회사의 삶과 거의 중첩된다. 힘들었던 철야작업도 수당 받는 재미보다 회사가 잘나간다는 안도와 자랑스러움으로 마다하지 않았다.

그에게 SJM은 "가족 같은 우리 회사"였다. 직원 사이의 관계도 상사, 부하의 수직적이고 경직적이라기보다는 서로 서로의 애경사를 챙겨주고 돌봐주는 수평적인 관계였다. 회사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설악산이나 강원도 등지에서 가졌던 야유회와 체육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던 일"이었다. 부인과 애들도 함께 즐겼던 야유회와 체육대회에는 회장님과 임원 모두도 참가했던 화목한 모임이었다.

▲ 이상열 씨. ⓒ다산인권센터

노동자의 헌신으로 어려움을 뚫고 나간 창업 초기

창업 초기 회사가 여러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힘은 고용된 노동자들의 헌신이다. 회사와 노동자가 동일체가 되면 될수록 노동의 강도는 헌신적으로 강해진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모든 창업주들은 이 회사가 "우리의 회사"임을 강조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함께 열심히 일하고, 함께 이익을 나누면서 함께 가자고 강조한다. 아마도 창업후 일정 기간 SJM은 사장과 고용된 사람이 함께 키우려는 문자그대로의 "우리 회사"였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 새벽 아수라장의 공포와 후배 조합원들이 당한 야만적 폭력에 대한 분노 속에서도 회사 창업자를 꼬박 꼬박 "회장님"이라고 호칭한다. 그의 인생을 바쳤던 "우리 회사"에 대한 애정이 들여다보인다. 재벌회사의 절대 권력을 칭하는 "CM(Chair Man)"과는 전혀 다른 사람 냄새가 풍기는 "회장님"이다.

실상 그 동안 SJM은 안산지역에서 세인의 입에 오를만한 노사분규가 없었던 사업장이었다. 오히려 노사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진 평판이 좋은 사업장이었다. 노조가 설립될 당시에는 SJM은 한국노총에 가입했었다. 노조가 3대에 이르러서 민주노총으로 변경할 당시 겪었던 진통이 가장 큰 분규였다. 당시 조합원들은 협박과 회유를 당했지만 다행히 부당하게 해고 되었던 노조위원장은 복직되었고, 일시적인 상처는 원만하게 치유되었다.

"가슴 아픈 일 없었던 회사"가 변하기 시작했다. 회사 직원과 그 가족, 그리고 회장님과 임원 모두가 함께 했던 야유회가 대표이사만이 참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최근에는 노무이사만이 참가하는 마치 "노무팀과 함께 하는 형식적인 야유회 체육대회"가 되어 버렸다.

원만했던 노사관계도 변하기 시작했다. 3년 전부터 노무를 전담하는 이사가 외부에서 영입되었다. 이번 컨택터스라는 용역업체를 동원하고 현장에서 지휘하던 노무이사가 바로 그 때 영입된 인물이다. 노사가 과거에는 "대등하게 진행되었던 협상이 대화 보다는 일방적으로 회사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노조를 무시"하는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부터 5월 사이에 진행되었던 협상에는 대표이사가 12차까지 불참하고 노무이사의 일방적인 주장만이 되풀이 되는 파행이 발생했다.

노사관계가 경직되고 상호 믿음에 균열이 발생하고 협상이 파행으로 이어진 것은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회사는 그 동안 꾸준하게 성장하여 탄탄해졌다. SJM은 이 번 사태에서 흉기로 둔갑한 벨로우 생산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남아공 중국 등에 현지공장을 설립하는 해외투자도 확대되어 왔다. 회사가 탄탄해지면서 계열회사도 확대되었다. SJM 홀딩스라는 지주회사도 설립되었다.

이익구조가 탄탄해지면서 변한 회사

회사는 약정한 성과급의 배분에도 꼼수를 쓰기 시작했다. 200억 원의 순이익이 발생한 해에도 그 이익을 성과급으로 배분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국내에서 발생한 이익금 20억 원만이 성과급의 대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와 함께 막대한 순수익을 내던 회사가 적자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창업주인 김00 회장의 장남인 김00 상무에게 지분이 옮겨가는 과정이었다.

▲ 이상열 씨(왼편)와 김철환 교수(오른편). ⓒ다산인권센터
창업 초기 어려울 때 창업주가 강조하던 "우리 회사"가 이익구조가 탄탄해지면 "내 회사"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과 사회의 특징이다. SJM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내포하고 있는 끝없는 탐욕의 한 단면이다. 이러한 세태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세계에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이익 추구보다는 교육이라는 사회의 공공재를 생산하는 공익법인인 대학마저도 이러한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금반지 팔아서 만든 내 대학"은 대물림되고, 사유화 되는 현상은 비난은 고사하고 하나의 관행으로 이미 뿌리내려 있다.

SJM의 노사관계가 조금씩 삐걱대고 파행으로 얼룩지기는 했지만 파국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민주노총에 가입되어 있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강성 노조'라고 오해받고 그러한 워딩의 편견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고 물론 SJM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노사관계는 원만한 편이었다. 고용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도 일부 사업장에서 부분적인 파업에 들어가 있었을 뿐 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갑작스럽게 직장폐쇄 조치를 취했고, 파업을 하지 않고 있던 제3공장에도 "문 때려 잠그고 나가라"라는 통보를 했다.

"올 것이 왔다"라는 불안감 속에서 노조원들의 농성이 진행되는 와중에 그는 저녁에 퇴근했다. 새벽 4시 잠이 깬 그에게 전화가 왔다. 용역들이 진입하고 농성장이 아수라장이 되고, 그 와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는 전화였다.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그가 현장으로 가야겠다는 결정에 이른 시간은 채 5분도 안되었다. 그는 옷을 걸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불과 10분에서 15분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후문으로 현장으로 들어갔다. 2층 노조 사무실에 사람들이 몰려져 있고, 참혹한 현장은 소강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사태의 위험성과 더 큰 사고를 우려한 조합원들이 2층 사무실에서 나가겠다고 용역회사에 요청했다. 이 때 회사의 노무이사는 현장의 용역 책임자와 무엇인지를 협의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현장에서 나가는 와중에 용역들이 회사 제품을 담아 논 박스에서 물건을 끄집어 내 던지기 시작했다. 나가겠다고 하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흉기로 공격한 것이다. 여성조합원들에게도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 그도 예외는 아니어서다리와 허벅지를 곤봉으로 맞는 폭행을 당했다. 다른 조합원들로부터 들은 얘기는 2차 공격은 1차 공격보다는 약했다고 한다.

ⓒ다산인권센터

용역보다 더 원망스러운 회사

그는 현장에서 두들겨 맞고 피신한 직후에는 목숨은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도 엄습하는 좌절과 불안의 감정이 더 컸다고 한다. 지금 그에게 가장 섭섭한 대상은 그들을 공격한 용역이 아니다. 용역보다는 회사가 더 원망스럽다. 특히 "조폭 두목처럼 현장에서 설치던" 노무담당 이사가 그의 마음을 애처롭게 만든다.

그에게 가장 섭섭한 대상은 경찰이다. "머리가 깨지고, 팔과 다리가 부러지는 사람이 생기는 참혹한 현장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부동자세에서 처다 보지도 않고" 외면하던 경찰에 대한 그의 원망은 그의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하기야 "살려 달라, 안에 사람이 죽는다"라는 절규를 만행의 현장에서 외면하는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절망감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불과 퇴직을 몇 달 남겨 논 그의 입장에서는 "험난한 분규의 현장에서 벗어나"는 감정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은 현장을 외면하고 기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는 후배 조합원들"이 겪어야 할 앞으로의 문제가 제일 걱정스럽다. 그도 다른 나이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젊은 층의 흥분을 진정시키면서 회사가 파국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 측이 사과한 후에 원만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바람을 외면하는 듯하다. 회사는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직장폐쇄는 아직 풀리지 않았고 업체만 바뀐 용역직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쫓겨난 노동자들은 아직도 공장 밖에서 농성 중이다. 회사는 심지어 노조원들에 대해 고소를 한 상태이다. 그는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다. 농성에서 빠져 나오고 노조를 탈퇴하라는 회사의 집요한 공작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노조 간부에 대한 민사상의 손배소가 이어질 것이고, 제2노조가 설립될 것이다. 이러한 만행은 또 다른 사업장으로 번질 것이다. 이러한 비극과 만행을 끝내야 한다.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할 이유이다.

* SJM 문제해결과 용역폭력 근절을 위한 시민문화난장이 1일 오후 5시부터 SJM 공장 앞에서 열린다. 길거리 강연을 비롯해, 허클베리핀, 지민주, 연영석, 이지상 등의 공연도 진행된다. 아래 웹자보. 

ⓒ다산인권센터

/김철환 전 아주대학교 교수

"논문 표절 김재우, 사실상 청와대가 낙점"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31일자 기사 '"논문 표절 김재우, 사실상 청와대가 낙점"'을 퍼왔습니다.
강동순 전 방송위원 "방송사 지배구조 바꿔야 탈 정치"

한나라당 추천으로 옛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던 여권 인사가 정치권의 방송장악을 막기 위해 방송법 개정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강동순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오마이뉴스
강동순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은 31일 방송된 평화방송 라디오 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집권세력이 사실상 방송을 장악하는 모양새"라면서 "방송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동순 전 상임위원은 김재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연임에 대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면서도 "현 정부가 논문 표절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재우 이사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동순 전 상임위원은 "현행법상 (이사 선임은) 방통위를 경유하게 돼 있지만 방통위에서 힘을 행사할 수 없게 돼 있다"면서 "사실상 청와대에서 하는 거라고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강동순 전 상임위원은 "방송법 자체가 잘못됐다"면서 "집권당의 대통령이 방송사 이사회를 구성하고 그 이사회에서 사장을 선임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강동순 전 상임위원은 "제일 중요한 게 방송사 지배구조"라면서 "지배구조를 고치기 전에는 정치권 개입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18대 국회 때 방송법 개정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강동순 전 상임위원은 "정치권의 개혁마인드가 부족하다"면서 "(정치권에서) 방송을 정치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강동순 전 상임위원은 "이번 대선에 누가 승리할지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19대 국회에서 대선 전에 방송법을 개정해 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강동순 전 상임위원은 "법 개정이 어려우면 방송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워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송을 만들어야한다"고 덧붙였다.
강동순 전 상임위원은 KBS 감사로 재직하던 2006년 방송위원회 상임으로 임명됐다. 방송위 재직 당시 강동순 전 위원은 감사로 재직하던 때, 'KBS 내부 감사자료를 옛 한나라당에 유출한 의혹'과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이라고 규정하며 "정권을 되찾으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위에 새로 그려야 한다"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승욱 기자  |  sigle0522@mediaus.co.kr

'미스테리 인생' 이길영, 사상 초유 '감사청구' 당해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30일자 기사 ''미스테리 인생' 이길영, 사상 초유 '감사청구' 당해'를 퍼왓습니다.
부역, 채용비리, 학력조작까지…후임 감사도 직접 선택?

▲ KBS 새 노조는 30일 오전 이길영 감사를 KBS 이사로 추천한 방송통신위원회와 감사 업무의 공백을 용인한 KBS를 상대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곽상아

KBS 직원 317명이 차기 이사장으로 유력한 이길영 KBS 감사에 대해 공익 감사를 청구하고 나섰다. KBS 직원들이 집단적으로 KBS 이사 자격을 문제삼으며 감사 청구에 나선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KBS 새 노조는 30일 오전 이길영 감사를 KBS 이사로 추천한 방송통신위원회와 감사 업무의 공백을 용인한 KBS를 상대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KBS 직원 317명이 청구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새 노조는 청구서에서 방통위에 대해 "이길영씨가 학력변조 의혹, 부정채용 적발, 정권편향 이력 등으로 공영방송 이사에 부적합한 인물로서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을 수 있는 충분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음에도 학력 등 관련 자료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단수 추천한 것으로 보아 공공기관인 방통위가 사인인 이길영씨를 (이사에) 선정하기 위해 재량권을 남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지적했다.
또 새노조는 KBS에 대한 감사청구서에서 "감사 고유 업무의 공백이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현 감사실 직원이 현 이길영 KBS 감사를 KBS이사로 추천하는 한편, 업무상 공백에 대한 사내 우려에 대해 '감사실장이 직무를 대행해 감사 기능을 수행한다'라고 관련 규정을 부당하게 해석하는 등 KBS 감사 본연의 업무에 공백을 용인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공익을 현저히 해했다"고 밝혔다.

◇ '대구상고 출신' 내세워 명예졸업장 받았던 이길영, 이제와 "다닌 적 없어"

▲ 이길영 KBS 감사
후배들로부터 사상 초유의 감사를 청구당한 이길영 감사는 어떤 인물일까. 그는 5~6공 시절 KBS 보도본부 간부로서 정권에 부역하다가, KBS를 떠난 이후인 2006년에는 한나라당 도지사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활약했으며, 대구경북한방산업진흥원장으로 재직했던 2007년 친구 아들을 부정채용했다가 감봉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아 '부역언론인' '정치인' '비리감사'라는 표현을 꼬리표로 달고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최근 '학력조작'이라는 불명예까지 얻게 됐다. 서울의 대신고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명문고등학교 '대구상고' 출신 행세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가 '대구상고 동문'으로 살아온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경향신문사 발행의 '월간 정경문화 1984년 10월호'에 나온 '대구상고 동문들의 현주소'에 버젓이 이름을 올리고, 2005년에는 대구상고 명예졸업장까지 받았다. 대구상고 동창회장은 명예졸업대상자 추천서에서 "(이길영 감사가) 1957년 4월 6일 입학했으나 집안 사정이 어려워 이듬해 4월 자퇴하게 됐다"며 "모교의 기개와 위상을 제고함에 이바지한 공이 지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길영 감사가 방통위에 제출한 이사지원서에는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서울 대신고'를 다닌 것으로 나온다. 이길영 감사가 문공부 직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당시의 인사 기록 카드에도 출신 고등학교는 '서울 대신고'라고 기재돼 있다.
학력조작 의혹은 고등학교 뿐만이 아니다. 방통위에 제출한 이사지원서에는 '국민산업학교'라는 이력이 기재돼 있으나, 문광부 직원 재직 시절 인사기록 자료에는 '단국대 상학과'와 '국민대 농업경영과'를 다닌 것으로 나온다. '미스테리 인생'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학력 사칭 의혹에 대해 이길영 감사는 27일 국회 문방위에 출석해 "(총동창회 목록에 이름이 오른 것은) 대구상고 출신 친구들의 낚시 모임에 한 번 갔는데, (낚시모임) 명단에 있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문회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며 "(학력사칭 의혹이 사실일 경우)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 이길영 감사가 2005년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로부터 받은 명예 졸업장. 대구상고 명예졸업장에는 이길영 감사를 "본교에 입학하여 수학한 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노웅래 의원실 제공)

김현석 KBS 새 노조 위원장은 "이길영 감사는 기자 선배지만 부끄러운 사람이다. 권력에 잘 보여 호의호식하기 위해 평생 양지만 쫓아다녔던 사람"이라며 "이길영 감사는 '대구상고를 다닌 적 없다'고 자백했고 의혹이 사실일 경우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는데, (명예졸업장과 추천서가 공개되어) 하루만에 거짓말이 드러난 셈"이라며 이사직 사퇴를 요구했다. 

◇ '비리감사' 이길영의 후임, '학력조작 이사장' 이길영이 뽑게 되나?

'비리감사'로 불리던 이길영 감사가 KBS 최고의결기구인 KBS 이사회로 자리를 갈아타면서 KBS 조직에 큰 피해를 끼쳤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007년 채용비리를 저지른 전력으로 인해 2009년 12월 KBS 감사 취임 당시 거센 반대에 부딪혔던 이길영 감사. 당시 그는 감사실 평직원들의 거센 반대를 뚫고 감사에 취임했으나 3년의 임기를 끝까지 채우지도 못하고 감사 자리를 떠나게 됐다. 만약 이길영 감사가 학력조작 의혹에도 불구하고 내달부터 KBS 이사로서의 업무를 시작하게 될 경우 이길영 감사는 자신의 후임을 직접 뽑게 되는 셈이다.
한 KBS 직원은 사내게시판을 통해 "이사 또는 이사장이 되었을 때 첫 번째 해야 할 업무가 본인이 맡았던 감사를 새로 뽑아야 하는 일이라면 이는 누가 봐도 KBS가 우스워지는 꼴이 아니냐"라며 "KBS 최고의결기관인 이사가 되신 이후 국회의원 공천이나 방통위원장에 추대하겠다는 제안이 오면 또 중도포기하고 나갈 것인가? 이길영 감사께 KBS는 무엇인가?"라고 꼬집었다.

곽상아 기자  |  nell@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