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4일 토요일

[사설]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구분 못하는 정보당국


이글은 경향신문 2011-12-23일자 사설 '[사설]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구분 못하는 정보당국'을 퍼왔습니다.
‘먹통 정보력’으로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있는 정보당국이 연일 기밀을 흘리고 있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 다음날 국회 정보위에서 보고한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 움직임이 공개된 데 이어, 정부의 고위 소식통은 그제 정보 입수수단과 능력을 짐작할 수 있는 이른바 ‘김정은 대장 명령 1호’ 입수 시점을 한 언론에 제공했다. 고위 정보당국자들이 정보력 부족에 대한 비판여론을 모면하려고 북한 관련 기밀을 흘리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정보당국자들의 행태가 한심스럽다.

원 원장이 밝힌 전용열차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첨단기술을 통해 얻어진 정보다. 그 자체가 민감한 내용일 뿐 아니라 한·미의 정보 공유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사안이다. 국정원은 정보 공개의 책임을 비공개 정보를 흘린 국회의원들에게 돌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정원은 동일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대장 명령 1호 입수시점 공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정보수집에서는 보안이 생명이다. 아무리 인적정보 수집(휴민트)과 기술정보 수집(테킨트) 능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기밀이 한 번 공개되면 기존의 방법은 가치를 잃어 보완이 불가피하다. 때로는 기존의 인적·기술적 수단을 포기하고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완전히 새로운 수집수단과 경로를 찾아야 할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 때 우리가 이미 겪은 바다. 

정보당국자들의 기밀공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 미국이 제공한 정보를 공개해 미국으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이 부지기수다. 또 국회 정보위를 통해 기밀이 새 나간 것도 비일비재하다. 2006년 2월 국정원이 ‘언론 유출 정보 사례집’을 만들어 국회의원들에게 배포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정무직인 고위 정보당국자들의 아마추어리즘과 직업 정보관리들의 관료화 때문이다.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당국이 수집한 정보는 최대한 국민에게 공개하고 기밀을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보는 정반대로 취급되어 왔다. 기밀이 공개된 데에는 그동안 정보가 정보 당국에 의해 자의적으로 다루어져온 데도 원인이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원 원장을 비롯한 정보당국의 전면적인 인적쇄신과 동시에 기밀 분류 기준을 엄격히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기밀을 지키지 못하는 국회 정보위의 운영도 개선되어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원칙에 따라 회의를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하되 꼭 필요할 때만 비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비공개 정보가 공개됐을 경우 관련자들에게 상응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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