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박정희가 빼앗고, 이명박이 판다


이글은 한겨레21 2011-10-24일자[2011.10.24 제882호]기사 '박정희가 빼앗고, 이명박이 판다'를 퍼왔습니다.


» 제주도 중문 대포 주상절리 근처 바닷가에서 바라본 중문관광단지 모습. 맨 왼쪽에 하얏트리젠시 제주 호텔이 보이고, 맨 오른쪽 풍력발전기 옆에 여미지식물원이 보인다. 지역 주민의 아픈 역사가 아름다운 풍광 뒤에 숨어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 제공

7년째 엄청난 흑자를 기록한 공기업이 있다. 이런 공기업을 사기업에 파는 것을 어떤 이들은 ‘선진화’라고 부른다. 경제를 잘 아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그런 사람이다. 경영효율성 제고가 명분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인천공항 매각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박 장관은 외려 “매각이 너무 늦어졌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제주중문관광단지가 매각 대상이 됐다. 한국관광공사는 매각안내서에 “토지가치의 성장잠재력”과 “안정적인 수익창출”을 강조했다. 좋은 공기업을 헐값으로 매각하는 것이 선진화냐는 반대자들의 비판의 정당성을, 거꾸로 증명해준 셈이다. 중문단지를 인수할 사기업은 땅값 차익으로만 수천억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공항과 다른 점이 있다. 중문관광단지는 군사독재가 제주 사람의 땅을 빼앗아 만들었다. 33년 뒤 개발독재 시절의 영웅으로 평가받는 대통령이 그 땅을 사기업에 넘기려 한다. 이 제주에 내려가 당시 토지 강제수용에 저항했던 주민과 강제수용의 악역을 맡은 면장을 만났다. _편집자
제주 바다는 여러 얼굴을 가졌다. 여름엔 맑고 투명하다. 겨울 파도는 꺼멓고 거칠다. 제주를 다녀간 관광객은 대부분 두 개의 얼굴 모두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승용차로 50분 달리면 중문관광단지에 닿는다. 면적 163만7078㎡(49만6084평)의 중문관광단지 안에 아름다운 곳이 많다. 신라호텔의 쉬리 벤치에 앉아 중문해수욕장을 보는 것도 좋은 선택으로 추천된다. 기능주의 건축물 같은 육각기둥의 주상절리를 찾는 사람도 많다. 10월6일 오후에도 그랬다. 수학여행 온 여고생들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연신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10월 햇살에 물속의 육각기둥 밑부분도 반짝였다. 주상절리 바위 너머 갯바위에 주민 한 명이 릴을 감아올리고 있었다. 한국관광공사(이하 관광공사)의 뜻대로 중문단지가 사기업에 팔리면 그는 더 이상 그 바위에서 낚시를 하지 못할 것이다. 땅에 터잡고 사는 주민도 사유지를 침범할 법률상 권리가 없다. 바닷가에서 아프리카박물관 방향 도로로 걸어 올라갔다. 노란 표지판이 오솔길과 지방도가 만나는 지점에 서 있다. “안내문-이곳은 (주)부영의 개발 예정 부지이므로 무단 점용, 농작물 경작, 쓰레기 불법 투기 등을 금지합니다. -(주)부영.” 특정 기업이 중문단지를 인수한다면, 이런 표지판이 관광단지 전역에 세워질 것이다. “표지판에 보면 부영 회사 이름 옆에 ‘사랑으로’라고 그려진 게 있어.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인데 깃발로만 그렇게 하는 거예요”라고 말한 김동한(64) 대포동 마을회장이 가장 우려하는 미래다.
1978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는 수백 명의 제주 사람에게서 약 211만㎡(64만 평)의 땅을 강제수용해 중문관광단지 터를 조성했다. 정확히 몇 명이 팔았는지 정리된 통계는 없다. 중문·예래·대포 마을 주민들이 가장 많이 땅을 수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하께서 제주개발 계획 수립 지시”
중문 주민 고복성씨가 숨지기 전 이 노란 표지판을 봤는지는 분명치 않다. 봤다면 건강을 더 해쳤을 것이다. 농부 고씨는 1978년 3월 면장이 보낸 통지서를 받았다. 통지서 내용은 믿기 어려웠다. “안내의 말씀- 이번 국가계획에 의거 중문종합관광부지개발에 따라 수용토지매수를 개시하였기 알려드립니다. …뜻밖에 귀하의 토지가 관광부지로 수용케 되어 여러 가지로 애로가 있는 줄 사료되오나 국가 시책에 적극 호응하는 뜻에서 토지매수에 협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중문면장 고문현.”
3171㎡(961평)의 농지를 나라에 팔라는 뜻이었다. 통지서는 5월에 한 번 더 왔다. 1978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독재 말기다. 대통령이 정하면 국민이 따라야 했다. 군인정치의 시대였고, 제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5·16 쿠데타 직후 36살의 해군 준장이 해군 제독 차림으로 도지사로 부임했다. 육군 헌병 대령 출신의 정우식 도지사는 요정 접대부를 차에 태우고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다. 중문관광단지의 시작을 당시 행정부 문서는 “1972. 2.10 대통령 각하께서 (제주개발) 계획 수립 지시”라고 기록한다. 1978년 2월 “대통령 각하께서 특별법 제정 지시”를 했다. 그로부터 석 달 만에 토지수용이 주민에게 통보됐다. 고씨 등 중문면민들에게 제시된 가격은 3.3㎡(1평)당 2천~3천원이었다. 주민 대부분은 그냥 땅을 팔았다.
고씨는 저항했다. 고씨 등 4명은 당시 1평당 시가 1만1천원에 훨씬 못 미친다고 생각했다. 1978년 9월 국제관광공사에 “토지수요자 및 이해관계인에 통지나 협의가 없었다”라며 소원장을 냈다. 국제관광공사는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78년 10월 “제주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 1978년 10월19일 수용 재결이 확정되었으므로 1978년 10월30일까지 중문면사무소에서 보상금을 수령하라”고 통보했다. 고씨는 또 저항했다. 1979년 1월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이하 중토위)에 소원장을 냈다. “(수용 대상 토지에) 현재 보리를 경작 중인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려고 하니 다음 사항을 희망함. 보상금 포기 및 기증하겠으니 중문관광단지 취직 희망. 2차 수용을 희망하며 당시 가격으로 보상 희망.” 한발 물러난 셈이다.
국제관광공사는 고용 요구를 거부했다. 보리 농사를 지은 것에 대해서도 “경작 금지 요청에도 불구하고 무단경작한 본 토지에 대해서는 조속한 시일 내에 원상회복 조치가 없는 한 제반 법규 및 규정에 따라 토지사용료를 징수하게 된다”고 알렸다. 농사지은 보리를 갈아엎으란 소리였다. 고씨는 이번엔 중토위에 소원장이 아니라 정식으로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농부에게 법은 난감하게 복잡했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냉혹했다. 중토위는 1980년 2월 이의신청 법정 기간인 1개월이 지난 뒤 이의신청을 제기했다며 각하 결정했다. 고씨의 2년 넘는 투쟁은 허무하게 끝났다. 그후에도 중문을 떠나지 않았던 고씨는 2~3년 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포동 주민 이도훈(74·가명)씨는 고복성씨보다 운이 나쁘다. 노태우 정부 시절 강제수용당한 자신의 땅이 2006년 건설업체 부영에 팔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속이 쓰렸다. 그는 1989년 농지 9900㎡(3천 평)를 강제수용당했다. 정부가 처음 감정해 통보한 땅값은 3.3㎡당 1만2천원 안팎이었다. 실거래가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 제주 중문관광단지. 네이버지도 갈무리

강제수용된 토지 일부 부영에 매각
지난 10월6일 만난 당시 면장 고문현씨는 33년 전 강제수용 통지 및 실무 악역을 맡았다. 그의 기억은 조금 달랐다. “당시 매수가는 높은 값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낮은 값도 아니었어.” 외롭게 투쟁한 고씨에 대해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고씨에 대해 “외롭게 투쟁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강남규 제주문화관광개발원장의 말과 달랐다. 노동·지역운동을 오래한 강 원장은 무크지 에 고씨의 사연을 1985년 처음 알렸다. 26년 전 취재 자료인 재결서, 강제수용 공문 등을 여전히 갖고 있어 에 제공했다.
이처럼 1978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는 수백 명의 제주 사람에게서 약 211만㎡(64만 평)의 땅을 강제수용해 중문관광단지 터를 조성했다. 정확히 몇 명이 팔았는지 정리된 통계는 없다. 중문·예래·대포 마을 주민들이 가장 많이 땅을 수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땅을 판 사람들은 여전히 농사를 지었다.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줄어든 자신의 농지에서 농사짓거나 남의 땅을 빌려 경작했다. 땅을 수용당하고 받은 돈으로는 덩달아 오른 대체농지를 사기에 부족했다. 누군가는 농사를 접고 바닷가에서 좌판을 깔았다. 관광단지에 채용된 주민은 약속과 달리 두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대포동 주민 이도훈(74·가명)씨는 고복성씨보다 운이 나쁘다. 노태우 정부 시절 강제수용당한 자신의 땅이 2006년 건설업체 부영에 팔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속이 쓰렸다. 그는 1989년 농지 9900㎡(3천 평)를 강제수용당했다. 정부가 처음 감정해 통보한 땅값은 3.3㎡당 1만2천원 안팎이었다. 실거래가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이 벌어진 지 2년째 된 해였다. 주민들은 ‘서귀포시대포동 내땅지키기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당시 을 보면, 이씨 등 백수십 명은 그해 8월 대포동 마을회관에서 집회를 열고 관광공사 제주지사까지 행진했다. 관광공사는 그 직후 시가보다 약간 높은 3.3㎡당 12만~13만원을 제시했다. 이씨는 더 버티지 못했다.
지금 이씨는 늘 농사짓던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씨가 판 9900㎡ 가운데 관광단지 내 아프리카박물관 도로부지 500여 평만 관광단지에 남아 있다. 나머지 8250㎡(2500평)은 관광공사가 2006년 약 1400억원을 받고 부영에 매각한 2단계 사업지구 터 46만2천㎡(14만여 평)에 포함돼 있다. 10월6일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씨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포동 사람들은 관광공사에 수용당한 땅에서 꽤 오래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사기업은 달랐다. 이씨는 “(부영이) 거의 자라서 금방 수확할 참깨까지 밀어버렸다”고 말했다. 김동한(64) 대포동 마을회장은 “보통 주민들이 참깨 농사를 (수용당한 토지에) 해왔는데 이만큼 올라와서 한 달이면 수확할 참깨를 부영에서 잡아 밀어버렸다”고 말했다. 2006년 언론은 부영의 매입으로 “개발이 활기를 띨 것”이라고 보도했다. 부영은 표지판을 세운 것 외에 아무런 개발도 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지역에 환원해야 한다”는 김동한 회장의 말은 중문관광단지 민간 매각에 대한 지역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한다.


» 중문단지 개발사업 기공식 모습.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 제공

평당 200만원 안팎의 골프장을 29만원에 매각하려
관광공사는 공기업 선진화를 이유로 2008년 12월 경영위원회에서 중문골프장 매각안을 의결하고 방안을 논의했다. 감사원이 같은 해 감사에서 중문골프장은 관광공사의 목적 사업이 아니며 관광진흥 재원 조달에 기여하지 못하므로 매각 등 정리 방안을 찾으라고 지적한 것이 계기가 됐다. 지역민은 반발했다. 제주도가 인수 의사를 밝히고 관광공사와 협상을 벌였다. 지난해 결렬됐다. 관광공사는 자체 감정평가 뒤 중문골프장 1050억원(95만4767㎡), 잔여토지(72만5275㎡) 및 시설 460억원 등 모두 1510억원과 직원 60명의 고용승계를 매각조건으로 제시했다. 제주도는 개발이익 지역 환원을 주장하며 중문골프장을 무상으로 이관하는 등 400억원 수준을 제시했다. 관광공사는 지난 7월 중문관광단지 일괄 매각을 공고하고 추진했으나 1개 업체만 입찰에 응해 유찰됐다. 관광공사는 지난 9월30일 매각주간사 선정 입찰 공고를 냈다.
지역민들의 반대는 격렬하다. 상인·주민·시민사회단체가 모두 모여 ‘중문관광단지살리기 서귀포범시민운동본부’를 만들었다. 서귀포시도 이들과 함께한다. 이들은 중문단지 매각은 국가가 특정 기업에 토지매매 차익을 특혜로 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관광공사가 자체 감정평가로 밝힌 매각 가격은 중문골프장의 경우 3.3㎡당 28만9300원, 잔여토지의 경우 21만 9780원꼴이다. 시민운동본부는 중문골프장의 경우 시가가 3.3㎡당 200만원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관광단지를 인수한 기업은 토지 재매각만으로 인수대금 1050억원의 몇 배를 이익으로 얻는다고 추정한다.
서귀포범시민운동본부장인 민명원 서귀포관광협회장은 국가가 애초 국민과 했던 개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광공사가 밝힌 현재 개발 공정률은 67% 수준이다. 주민 참여가 완전히 봉쇄될 우려도 언급했다. 대포동 주민들처럼, 관광단지가 사유지가 되면 주민들의 통행조차 제한될 우려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제주도에 있는 27개소 708홀의 골프장 가운데 유일하게 중문골프장이 비회원제인 점도 거론된다. ‘퍼블릭 골프장’ 구실을 하는 중문골프장이 사기업에 넘어가면 고가의 회원제로 전환될 것이 분명하다는 우려다.
인수의향서 낸 이랜드에 뒷말 무성
관광공사가 지난 7월 밝힌 매각안내서를 보면 이를 음모론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관광공사는 이 문서에서 가장 먼저 “토지가치의 성장잠재력”을 꼽았다. 관광공사는 “향후 개발이 완료될 경우 이에 따른 토지의 잠재적인 가치는 매우 크므로 이를 고려해야 한다”며 “중국인 및 동남아권의 제주 투자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러한 부동산 영주권 제도는 향후 제주도 내 부동산의 가치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중문단지를 사면 땅값으로 ‘대박’을 본다고 관광공사가 나서서 홍보하는 셈이다.
관광공사는 특히 중문골프장에 대해 “매년 꾸준히 이용객 수가 유지되고 2011년 이후 평년 수준 이상이 될 것”이라며 안정적인 수익창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안정적인 수익창출’이 보장된 공기업을 선진화를 위해 팔겠다는 취지다. 김재윤 민주당 의원은 “중문·대포 마을 사람들이 헐값에 넘겼는데 이걸 또다시 공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매각한다는 건 주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경쟁력 있는 복합리조트 단지로 육성하는 것이 땅을 내놓은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밝혔다. 중문관광단지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경북 경주 보문관광단지의 경우 최근 경북도가 인수한 탓에 ‘제주홀대론’도 제기된다. 박찬식 제주대 교수(전 4·3연구소장)는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공사가 공익을 위해서 많은 수입을 올렸으면 주민에게 정당하게 환원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민간에 매각된다면 사업자에게는 엄청난 이익이겠지만, 공공 인프라의 기능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수 뜻을 밝힌 업체들에 대한 뒷말도 지역에서 무성하다. 제주도와 현지 주민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지난 8월 관광공사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은 이랜드와 부영으로 알려졌다. 이랜드는 대표적인 개신교계 기업이며, 박성수 회장은 ‘사랑의 교회’ 장로였다. 부영은 2006년 잔여부지 매입 때 특혜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의 관광공사에 대한 2010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감사원은 “제주 중문2단지 부지 매각계약 이행이 부적정”하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부영에 대해 부족하게 청구한 금액 채권반환 청구조치”를 관광공사에 지시했다. 2006년 매각 당시 부영에 비정상적으로 싸게 땅을 넘겼다는 취지다. 관광공사 재경팀에 그에 대한 의견 등을 물었으나 “설명할 게 없다”고 밝혔다. 이랜드와 부영은 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 1978년 정부가 중문 마을 사람들에게 보낸 토지수용 통보 공문. 끝부분 “죄송합니다”라는 면장의 문구는 당시 강제수용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추측하게 한다. 이렇게 조성된 공유지를 한국관광공사는 “토지가치가 성장잠재력”이 있다며 사기업에 팔려고 한다. 한국관광공사가 나서서 시세차익을 권하는 셈이다. 강남규 제주문화관광개발원장 제공
“인디언 보호구역이 될 것”
관광공사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10월17일까지 매각 주간사 입찰 제안서를 받는다. 강남규 원장은 중문단지 매각에 대해 “인디언 보호구역이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제주 사람이 육지 자본과 권력에 땅을 빼앗기고 자기 땅에서 유배된다는 취지다. 당시 면장 고문현씨도 매각에 반대했다. “그런 막중한 이익이 났으면 그래도 당시 토지를 가졌던 사람에게 환원이라도 해야지, 3천~4천원 줘서 땅 사놓고 30여 년이 지나 수십 배 (토지가치가) 되었으면 그래도 10%는 다시 원주민에게 환원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자기네 이익 봤다고 확 챙겨버리고 가버리면 도둑놈이랑 마찬가지 아닙니까?” 박정희 정부가 강제수용한 땅을 33년 뒤 이명박 정부가 사기업에 넘기려 한다. 관광공사 백서는 이를 ‘선진화’로 기록할 터다.

제주=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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