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사설]‘물대포 진압’ 겁박 말고 집회·시위부터 보장하라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23일자 사설 '‘물대포 진압’ 겁박 말고 집회·시위부터 보장하라'를 퍼왔습니다.
경찰은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면 곧바로 물대포를 사용해 진압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지난 21일 이 같은 내용의 ‘도로 점거 등 불법행위 대응 법 집행력 강화 방안’을 전국 지방경찰청에 내려보내 도로 점거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을 주문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도로 점거로 인한 시민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선에서 물대포 사용을 꺼리고 있어 법 조문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라고 주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이 국민의 집회·시위에 관한 권리는 무시하면서 엄격한 행정집행만 강조하고 있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물대포가 가장 안전한 진압장비라고 주장하지만 물대포는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 위험한 장비다. 경찰 지침에 따르면 물대포는 타인 또는 경찰관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가 있거나 공공시설·재산이 위험에 처해 있을 경우, 또 화재 진압 또는 분신 방지의 필요성 등이 있을 때에만 쓰도록 하고 있다. 고압의 물대포가 시위대에 직사되거나 최루액을 혼합해 쏠 때에는 상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한 진압장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시민의 안전보다 법집행을 중시하겠다는 뜻이다. 시민들에게 다쳐도 책임지지 않겠다고 겁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찰은 이번 지침 외에도 시위에 대한 대응의 수위를 계속 높여왔다. 미국에서는 의원들도 법을 어기면 연행한다며 강경 대응으로 공권력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바람직한 시위 문화는 강경한 시위진압만으로 정착되지 않는다. 미국은 총기 사용이 허용된 나라여서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더구나 경찰은 2009년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 떨었지만 아직까지 별문제가 없다. 강경 일변도 대응은 오히려 과격 시위를 촉발하는 역작용을 부를 수도 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그동안 집회 및 시위를 신고제 대신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해 정당한 시위까지 막아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집회 장소는 물론 행진 거리, 차선 개수까지 자의적으로 정해놓고 이를 어기면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있다. 경찰이 이처럼 법률이 아닌 자체 규정으로 집회 및 시위를 제한하는 것은 월권이다. 경찰은 자의적인 기준에 따른 엄격한 직무집행만 강조할 게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부터 존중해야 한다. 선후가 뒤바뀐 물대포 사용 지침은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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