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0일 목요일

[사설] 역사교과서 개악, 역시 독재 미화가 목적이었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19일자 사설 '역사교과서 개악, 역시 독재 미화가 목적이었다'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개편 목적이 선명해졌다. 엊그제 공개된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이전 집필기준이 요구했던 ‘이승만·박정희 정권 때의 독재정치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제외하고 ‘자유민주주의 발전 과정에 대한 설명’만을 제시했다. 두 정권의 독재를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발전으로 미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정권은 역사교과서 개정 교육과정에서 이미, 오로지 뉴라이트 계열 친정부 학자들의 요구에 따라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도록 한 바 있다. 학계 절대다수의 의견은 물론 정해진 절차에 따른 연구 결과와 결정을 짓밟았다. 근거는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위해 제정한 유신헌법에 처음 기술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표현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자유민주질서를 공산정권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유신헌법을 만들어, 독재와 인권유린, 영구집권의 토대를 만들었다. 반공 구호 아래 무엇이든 자행했던 이승만의 독재를 헌법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다.
박정희가 자유를 앞세워 국민의 자유를 억압한 것은 김일성 체제가 인민독재를 앞세워 인민의 주권을 빼앗은 것과 다르지 않다. 유신체제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한 것 역시 세습독재를 인민민주주의라고 한 것과 같다. 이런 말장난 속에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은 유린당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독재는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게 아니라, 소수 정치·경제·군사 엘리트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컸던 것이다.
두 정권 독재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친일 군벌, 언론, 지주, 재력가였다. 일제 패망 후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내건 구호가 반공이었고, 이들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중용됐다. 결국 이 정권이 역사교과서를 멋대로 개편하려는 것은 친일세력에 뿌리를 둔 독재체제의 적자와 수혜자들의 기득권을 항구화하려는 것일 뿐이다. 이들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일제의 병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고 기를 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세계는 지금 민주주의를 확장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지구적 차원으로 번지는 ‘월가 점령’ 시위도 인간을 자본에 예속시키고 민주주의를 위축시키려는 시장근본주의 등에 대한 저항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 정권은 독재의 망령이나 부활시키려 하고 있으니, 그 퇴행이 참으로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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