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0일 일요일

[사설] 민심에 귀 기울일 시늉조차 않는 대통령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28일자 사설 '민심에 귀 기울일 시늉조차 않는 대통령'을 퍼왔습니다.
여권 지도부가 10·26 재보궐선거 뒤 이상한 행보를 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심각한 민심 이반이 확인되었는데도 원인을 진단하고 기존의 국정 기조를 추스르는 의례적인 몸짓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서울시민이 이번 선거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전임 시장의 그릇된 국정·시정 수행을 심판하려 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더욱이 대통령 가족이 국가예산을 이용해 개인 재산을 증식하려 한 의혹, 즉 내곡동 사건마저 불거졌다. 포괄적인 국정 실패 정도가 아니라 이 대통령 가족과 청와대가 민심 이반의 원인을 직접 제공한 셈이다. 박원순-나경원 후보의 인물 대결은 부차적 요소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곧바로 국민 앞에 나서서 머리를 숙이고 국정 쇄신을 다짐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과거 선거 패배 뒤에 했던 형식적인 반성의 말조차 듣기 어렵다.
고작 들려오는 이야기는 물러나겠다는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이 대통령이 주저앉혔다는 것이다. 선거 다음날인 그제는 2008년 촛불시위 진압과 관련해 문책 경질했던 어청수 전 경찰청장을 새 경호처장으로 불러들였다. 어제는 ‘대운하·4대강 사업 전도사’로 알려진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를 국립환경과학원장에 임명했다. 국민이 뭐라고 떠들든 말든 나는 내 갈 길을 가겠다고, 이런 때일수록 내 사람끼리 뭉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작심한 듯한 모양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선거 결과를 두고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라”는 말장난을 늘어놓았다. 그만두겠다는 대통령실장을 황급히 불러내 입을 틀어막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속셈은 뻔하다. 책임론이 확산되어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을 걱정했을 터이다. 당 차원에서 에스엔에스(SNS) 대책기구나 만들겠다는 것도 우습다. 민심 이반을 초래한 근본 원인을 손대지 않고 여론 전파 경로만 탓하는 꼴이다. 정당은 유권자들이 회초리를 때리면 아파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법인데, 한나라당은 초보적인 정치상식조차 잊은 듯하다.
이명박 정부가 남은 임기 중 큰 업적을 남길 것으로 기대하긴 이미 어려운 듯하다. 하지만 국정을 더 망가뜨리기에 남은 1년여는 짧지 않다. 국민의 주름살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 민심을 외면하는 여권의 태도가 참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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