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9일 수요일

[사설]한·미 FTA, 시한에 쫓기듯 비준할 이유 없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18일자 사설 '[사설]한·미 FTA, 시한에 쫓기듯 비준할 이유 없다'를 퍼왔습니다.
지난주 미국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뒤 정부와 한나라당이 국회 비준을 서두르는 모습이 가관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농민·중소상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루라도 빨리 비준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요란을 떨더니 이제는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10월 중 비준처리를 강행하겠다는 독재적 발상을 드러내고 있다. 어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10·26 재·보선이 끝난 뒤 비준 동의안을 처리할 뜻을 밝히면서 “한칼에 하겠다”고 말했다. 반대세력을 간단히 무력화하겠다는 압박인 것 같은데 한·미 FTA 비준은 그렇게 처리돼서도 안될뿐더러 그렇게 처리돼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10월 중 비준’이 무슨 마감시한이나 되는 듯 서두르는 속셈은 분명하다. 내년 1월1일 협정 발효가 가능하려면 14개 관련법안 처리 일정 등을 고려해 10월 중 비준이 마무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1월 협정 발효가 무슨 ‘지상과제’라도 된다는 얘기인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문제가 많고 반대가 커도 물리력으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한·미 FTA가 발효만 되면 나라에 서광이 비칠 듯 여론을 호도하며 ‘빨리빨리’를 외치는 태도도 볼썽사납다. ‘시장 선점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비준해야 한다’ ‘비준이 늦어지면 국가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등 온갖 논리 아닌 논리가 동원된다. ‘미국이 (비준)했으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맹목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그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4대 불가론을 이유로 비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민주당이 그동안 한·미 FTA 문제에 대응하면서 국민에게 실망을 많이 주기는 했지만 손 대표의 주장에는 틀린 구석이 없다. 한·미 FTA가 안고 있는 본질적 위험요소를 제외하더라도 미국법령 우선과 투자자의 국가 제소권 등 독소조항에 의한 주권침해 가능성, 불평등 조항에 따른 이익균형 상실 등 근본적으로 따져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를 위한 추가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손 대표의 주장이다. 이런 문제들은 갑자기 돌출된 것이 아니라 FTA 반대 진영에서 그동안 꾸준히 제기한 쟁점들이지만 정부와 한나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무시하고 있다. 국익과 직결되는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짚을 생각은 않고 시간다툼 하듯 속전속결로 비준을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는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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