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기자가 걸어본 이자르강, 4대강 사업 모델이라고?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블로그 2011-10-23일자 기사 '기자가 걸어본 이자르강, 4대강 사업 모델이라고?'를 퍼왔습니다.
보 쌓고 강 정비하자 '물의 아우토반' 생겨 홍수 피해 커졌다
걷는 발바닥 아플 만큼 인공 최소화, '한강'은 없었다

 

얼마 전 독일 뮌헨에 갔다 왔다. 뮌헨은 다름 아닌 이자르 강이 흐르는 도시다. 시사 마니아라면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강이다.

나일강, 템즈강, 라인강 등 귀에 익은 강을 빼곤 이자르 강은 한국에서 최근 들어 가장 유명해진 강이 아닐까 한다. 바로 4대강 사업 때문이다.

이자르 강은 2000년부터 강 복원 사업을 시작한 곳이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나 이를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학계 모두 근거로 드는 '저명한 강'이다.

원래 환경단체가 이자르 강 복원 사례를 들며 대규모 보를 건설하는 식으로 4대강 사업을 추진해선 안 된다고 했는데, 언젠가부턴 정부도 4대강 사업이 이자르 강 복원 사업과 비슷한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이자르 강 하중도 서쪽 지류에서 동쪽 지류로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보. 사진에서 보이는 위쪽의 지류는 수위가 높고 바로 아래 쪽은 낮다. 두 지류의 경관도 인공하천과 자연하천으로 판이하다.

뮌헨 중앙역에서 칼스 광장, 마리엔 광장 등 관광객이 붐비는 중심가를 지나면 이자르 강이 나온다. 첫 인상은 한강이나 낙동강에 비해 규모가 작다. 우리나라의 지방하천 정도의 규모다. 강 너비도 100m 안쪽이고 둔치도 그리 광활하지 않다.

이자르 강은 상류에서 뮌헨 시내로 들어와 흐르다가 독일 박물관이 있는 하중도에서 두 물길로 갈라진다. 그런데 재밌는 게 한쪽은 수위가 높고 다른 한쪽은 수위가 낮다. 깊은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하중도 서쪽의 강에 보를 세웠기 때문이다.

보를 세운 것은 10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시내에 가까운 서쪽 강으로 물자를 수송하는 배가 드나들게 하기 위해서 보를 세웠다고 한다. 강에 배가 다니는 것은 유럽에선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이자르 강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강은 이렇게 19세기부터 운하로 이용됐다. 유럽의 강 거의 대부분은 배가 드나들었다고 보면 된다.

이 때문에 하중도를 중심으로 서쪽 강은 인공 하천의 면모를, 동쪽 강은 자연하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보에 막힌 물길 때문에 서쪽의 강은 느리고 연못 같았고 물은 탁했다. 반면 동쪽의 강은 물살이 급했고 여기저기 여울과 자갈밭을 품고 있었다.

이자르 강 복원 사업은 뮌헨시 상류에서 이곳 도심까지 모두 8㎞ 구간에서 진행됐다. 원래 이 강은 오스트리아의 티롤 알프스에서 발원해 독일 도나우 강까지 흐르는 295㎞의 강이다.

하지만 알프스에서 내려운 강물은 계절에 따라 수량 차이가 크고 홍수도 잦자 1888년부터 강둑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1920년대부터는 콘크리트 보를 세우고 준설 작업을 벌여 강을 직선화된 수로로 만들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단기적으로는 높인 강둑이 홍수를 막아준 것 같았지만 장기적으로는 홍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콘크리트 보와 직선화된 물길은 홍수가 되면 ‘물의 아우토반’으로 변했다.

인공수로를 통해 빠르게 흐르는 물은 한번 넘치면 피해가 커지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뮌헨 당국은 2000년부터 직선화된 강을 다시 구부리는 공사를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이자르 강 복원 사업이다.

강을 따라 걷다
  
독일박물관 주변에서 보를 구경하고 상류 쪽으로 이자르 강을 따라 걸었다. 복원된 이자르 강의 특징은 ‘인공 둔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절대 서울 한강 구간을 상상해선 안 된다. 둔치에는 넓은 잔디광장도, 자전거도로도, 체육공원도, 오토캠핑장도 없었다. 분수대도 없고, 편의점도 없고, 카페도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생태공원’이라는 이름 아래 설치되는 흔한 나무데크나 산책로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둔치를 따라가는 산책로는 그냥 사람들이 걸었기 때문에 길이 되었다. 그나마 있는 자전거도로 등 인공시설물들은 둔치에서 상당히 떨어진 주로 둔치 밖이나 숲에 설치돼 있었다. 독일박물관 하중도 옆의 석재로 만들어 놓은 물맞이 시설(4대강 남한강 이포보 옆의 문화광장을 연상시켰다)이 둔치 시설물 가운데 그나마 가장 인공적이었다.


▲뮌헨 중심가의 산책 시간 동안 그나마 가장 인공적이었던 물맞이 시설.

주말이어선지 이자르 강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아이들은 강가에서 돌수제비를 뜨고, 젊은이들은 강변 풀밭(잔디광장이 아니다)에서 라디오를 켜고 춤을 췄다. 마침 나는 구두를 신었기 때문에 약 3~4㎞ 산책에도 발바닥이 아팠다.

이자르 강의 산책로는 정비된 산책로가 아닌지라 여기저기 돌들이 튀어 나와 있었다. 잘 포장된 한강이나 4대강 산책로라면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이자르 강에서 산책로는 그냥 사람들이 많이 걸어서 생긴 길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자연적인 강변 풀밭을 걷는 것은 인공공원이 된 강변을 걷는 것보다 훨씬 상쾌했다.

이자르 강이 4대강 사업의 모범?
  
정부는 이자르 강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임혜지 박사 등을 통해 독일의 하천 복원 사업이 언론에 4대강 사업과 비교돼 자주 소개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해 4대강본부 간부들은 뮌헨에 들러 교민들을 불러 ‘4대강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한강이나 이자르 강이나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친환경적 하천정비”(이성해 4대강본부 총괄팀장, 10월11일)라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지만, ‘친환경적 하천정비’라면 기존에 없던 보를 특정 구간에 연속적으로, 그것도 16개씩이나 단 2년 만에 세우진 않는다.

이자르 강은 환경단체의 반대를 설득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 2000년부터 올해 여름까지 11년 동안 단 8㎞를 정비했다. 반면 4대강은 반대여론이 찬성여론보다 많은 상황에서 단 2년 만에 691.5㎞를 정비했다.

뮌헨시는 보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두루 감안하면서 철거하는 데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를 하고 있다. 반면 4대강은 일부 학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2년 만에 16개 보를 뚝딱 지었다.


▲둔치에 인공시설물을 극히 자제한 것이 눈에 띈다.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선 각종 안내판과 시정홍보물의 시각 공해 없이, 편의점과 체육시설 없이, 천연의 시골의 강변을 걷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일각에서는 뮌헨 도심에 있는 보를 들면서, ‘이자르 강에도 보가 있다, 보라, 4대강과 비슷하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이자르 강의 보는 복원 사업을 통해 생긴 결과물이 아니다. 이 보는 100년도 훨씬 전에 생긴 일종의 문화 유적이다. 다른 유럽 하천의 보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자르 강 복원 사업을 통해 복원 구간의 모든 보가 철거되진 않았다. 여전히 보나 하상유지공 등 인공시설물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시설물들은 지난 8월 한국을 다녀간 독일의 저명한 하천수리학자 헬무트 베른하르트 칼스루에 대학 교수가 얘기했듯이 “지난 세기의 하천 구조물”이다. 유럽에서 보는 근대적 하천학의 반성과 성찰의 대상이지, 21세기 생태도시의 신 문물이 아니다.

과연 이자르 강 복원과 관련해 제 논에 물대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정부일까, 환경단체일까. 이자르 강의 역사와 복원 사업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보라. 이자르 강을 따라 걸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의 말이 옳은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4대강 사업의 사진을 보자. 위 사진은 2009년 4대강 사업 전 경기 여주 남한강대교에서 내려다 본 바위늪구비 일대의 사진(녹색연합 제공)이고, 아래 사진은 지난 6월 조경공사 마무리 작업을 한창 하고 있는 바위늪구비 생태공원의 사진이다. 똑같은 장소다. 4대강 사업은 이자르 강 복원사업과 비슷한가? 4대강 사업의 방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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