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3일자 사설 '박원순, 이제 시민운동 넘어선 비전 보여줘야'를 퍼왔습니다.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은 박원순 변호사가 범야권의 통합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박 변호사는 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겨룬 국민참여경선(40%), 여론조사(30%), TV토론 배심원 평가(30%)를 합산한 결과 52.15%를 기록, 45.57%를 얻은 박 의원을 6.58%포인트 차이로 눌렀다.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는 2.28%를 얻는 데 그쳤다. 이로써 두 정당과 시민사회가 저마다 후보들을 내고 각축을 벌인 초유의 실험은 시민사회의 승리로 끝났다. 박원순·안철수 단일화의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순수 시민후보가 조직을 등에 업은 제1야당 후보를 상대해서 승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 경선은 시민사회의 승리이지만 역으로 정당정치의 패배이기도 하다. 한 달여 전 불어닥친 ‘안철수 현상’과 그로 인해 촉발된 ‘박원순 바람’은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의 표출이었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구였다. 그러한 흐름이 일과성 바람이 아니라 엄연한 실체로서 확인된 셈이다. 당초 민주당이 의도한 것처럼 조직 동원만으로 민심을 뒤엎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번 경선 결과로 시민의 정당정치 불신과 탈정치화를 가속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 실현을 위한 시민사회의 열망이 기존 정당의 기득권을 타파하는 촉매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치문화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정치권의 구태의연한 대응이다. 여권은 대기업 모금이나 강남의 대형 아파트 거주 등 박 변호사 흠집내기로 일관했다. 그러나 모금보다 투명한 사용처가 중요하고, 시민후보라 해서 지하 전세방에 살아야만 하느냐는 반론이 제기됐고, 결국 그런 네거티브 공세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소셜네트워크로 초래된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결과다. 어제 오후 투표장에 길게 늘어선 젊은층의 행렬과 높은 투표율은 위기감을 느낀 시민사회가 ‘박원순 구하기’에 나섰다는 방증이라는 것 외에 설명할 방도가 없다.
박 변호사는 이제 시민운동가를 넘어서 행정가로서의 비전과 갈등 조정자로서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예비후보 시절에는 권력 비판이나 정치권 성토만으로도 설자리가 있었으나 더 이상은 아니다. 자신의 이념이나 철학을 ‘박원순 표’ 정책이나 정견으로 재구성해 시민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박 변호사가 이러한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시민사회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명실상부한 시민후보이자 범야권의 통합후보라는 위상은 그만큼 엄중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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