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1-10-12일자 사설 '금융권, 월가의 분노 제대로 읽어야 한다'를 퍼왔습니다.
미국 뉴욕 월가(街)의 분노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소비자협회 등 10여개 시민단체는 오는 15일 세계 25개국 400여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리는 금융자본의 부패 규탄 집회에 발맞춰 서울 여의도에서 동조 집회를 열기로 한 상태다. 월가 시위가 있기 훨씬 전부터 과도한 잇속 차리기로 비판받아온 국내 은행 등이 월가 못지않은 탐욕의 주인공으로 매를 맞기에 이른 것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금융당국과 금융업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은 주요 은행장들을 만나 고배당을 자제하고 내부유보를 늘리라고 주문하고 있다. 은행들이 올해 사상 최대인 20조원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고배당·고임금으로 돈잔치한다’는 비난에 직면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서민금융과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하라는 주문도 단골메뉴다. 금융업계도 며칠 전 은행연합회에 모여 내년도 계획했던 사회공헌활동 사업 규모를 더 늘리고 고졸 채용을 확대키로 한 바 있다.
금융당국이나 금융업계의 이런 행동은 간단히 말해 ‘비난의 화살을 피해보자’는 얄팍한 수에 지나지 않는다. 은행들이 배당률을 잠시 낮춘다고 무엇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은행들은 경쟁력이 없어 위기가 닥치면 국민세금에 기댄다. 평상시에는 경기침체로 허리가 휘는 중소기업과 서민의 고통은 외면한 채 과도한 예대마진과 수백가지 수수료를 챙기며 손쉽게 돈버는 데만 혈안이다. 이것이 은행의 모습이다. 이들이 사회공헌 규모를 몇 백억원 더 늘리고, 고졸 행원 몇 천명 더 뽑는다고 건강성과 공공성이 회복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가 폭락 와중에 수수료 수입으로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성과급 잔치를 예고하는 증권업계도 공분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은행들이 스스로 탐욕을 자제하고 정신차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금융당국마저 눈가리고 아웅하는 태도는 정말 문제다. ‘약탈적’이라고까지 비판받는 은행의 수익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금융기관으로서의 공공성을 회복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기껏 ‘배당 많이 하지 마라’ ‘공헌활동 늘려라’라고 주문한다. 잠깐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임기응변식 발상에 다름 아니다. 이러니까 시위대로부터 “금융관료도 엄벌하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금융당국과 금융업계 모두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분노의 불길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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