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8일 화요일

“편집권 독립 요구했단 이유로 징계? 축하할 일이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7일자 기사 '“편집권 독립 요구했단 이유로 징계? 축하할 일이지”'를 퍼왔습니다.
[미디어초대석]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

태풍 뒤 거리가 제법 쌀쌀하다. 행인 중에 어르신 두 분이 기웃거리며 농성장으로 다가왔다. 박근혜 후보의 사진이 크게 박힌 피켓이 관심을 끌었나 보다. 피켓에는 ‘박근혜는 정수장학회 해체 즉각 이행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그 중 한 분은 정수장학회에 대해 제법 많이 알고 계신다. 한참동안 의견을 말씀하다 마무리 한마디. “자기들이 땅 한 평 내놓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름을 갖다 붙이나”. 본질을 꿰뚫고 계신다.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 자리를 깔고 농성을 시작한 지 십여 일이 지났다. 언론노조와 정수장학회 공대위를 비롯해 많은 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지원이 고맙다. 지난 월요일에는 ‘동아투위’ 선배님들이 빗속을 뚫고 오셔서 격려를 하고 가셨다.

부산일보 4층 편집국 편집국장실에서 부산 수정동 회사 현관 앞을 지나 여기 서울 태평로 길거리까지. 10개월이 흘렀다. 그 시작은 ‘정수재단 사회환원 촉구’ 관련 기사를 1면에 배치하면서 시작됐다. 2번의 징계와 4개의 가처분소송, 1개의 징계무효소송, 또 주거침입, 업무방해 고소사건… 구비구비 넘어서야 하는 고개들이 이어지고 있다.

키워드는 권력, 언론통제, 그리고 폭력이 아닌가 싶다. 이 셋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정통성 없는 권력은 더욱 그러하다. 이들은 인종과 시대에 관계없이 언론대처 DNA와 매뉴얼을 공유하며, 이를 작동하는 방식을 대대로 물려준다.

나치 독일은 히틀러 집권 이후 전국의 3262개 일간지 중 절반인 1684개를 폐간했다. ‘국민의 단결과 화합 대신 분열과 투쟁만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군국주의 일본은 만주사변 이후 1200개 달하는 전국 일간지를 도쿄 5개와 지방 1현 1사 기준으로 50여 개만 남기고 정리했다. ‘국론통일과 해외선전 강화’가 명분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쿠데타 직후 언론기관 일제 정비에 착수했다. 최고회의 포고로 일간지 76개는 39개, 통신사 305개는 11개, 주간지 453개는 32개만 남기고 말 그대로 정리한다. ‘민주언론 창달과 혁명과업 완수에 이바지’하기 위해서였다. 전두환 신군부 정권은 일제의 ‘1현 1사’정책을 그대로 본뜬 ‘1도 1사’ 방안을 시행했다. 신문사 14개, 방송사 27개, 통신사 7개가 통합됐다(한국의 언론통제. 김주언. 리북).

언론인에 대한 탄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61년 5월부터 1년간 기자신분으로 체포되거나 재판에 회부된 사람은 모두 960명, 이중 포고령이나 반공법 위반 그리고 필화사건으로 구속된 언론인은 141명에 달했다. 긴급조치 서슬이 시퍼렇던 1974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자유언론실천투쟁’으로 파면이나 해직, 무기정직 등을 당한 기자들도 180여 명이다. 전두환 집권 초기 국보위는 ‘반체제 용공불순’ 기자 933명을 강제 해직했다. 이들 시기에 크고 작은 필화사건 등으로 화를 입은 언론인들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이명박 정권 이후 해고나 징계를 받은 기자는 모두 444명에 달한다. 불공정방송 편파보도에 대한 항의는 기자와 PD들의 제작거부로 이어지고 제작거부는 무더기 해고와 징계를 낳고 있다. 1년 새 두 차례나 해고된 기자가 있는가 하면, 어느 PD는 프로그램 제작을 접고 놀이동산개발사업단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그 수많은 사례와 사연들을 모두 기록한다면 몇 권의 책이 만들어질 것이다.

정수장학회가 탄생하게 된 배경도 ‘권력에 의한 언론 장악’이다. 5·16쿠데타 직후 4·19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론을 전파하는 언론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김지태씨가 소유하고 있던 부산일보와 한국문화방송, 그리고 부산문화방송을 강탈하는 폭력이 진행된다. 이를 묶어 설립된 ‘5.16장학회’는 이후 박정희와 육영수 이름 중 하나씩을 따낸 ‘정수장학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
그 딸인 박근혜씨가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된 지금,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 경영진들은 박 후보에 유리한 여론조성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 7월 느닷없이 송대성 정치부장과 이상민 사회부장 그리고 이병국 편집부장에 대해 좌천인사를 단행했다. ‘편향된 지면을 만든다’는 게 인사 이유. 해당 부장들이 인사에 불복하고 기존 부서로 출근해 업무를 계속하자 이제는 ‘회사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각각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지난달 말 부산일보 편집국에서는 기이한 행사가 열렸다. 젊은 기자들이 주도한 이날 행사의 명칭은 ‘정치 사회 편집부장 징계 축하쇼’, 1시간 여 동안 진행된 이날 ‘축하쇼’는 정수장학회 문제로 인해 빚어지고 있는 현 부산일보 상황을 패러디한 즉석 공연으로 성황을 이뤘다. 

회사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징계를 받은 상태에서도 당당하게 출근해 정상업무를 보고 있는 부장들, 그리고 이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보호하고 동조해주는 동료 부·팀장들, 부장들의 징계에 대해 ‘축하쇼’를 열어주며 현 경영진과 정수장학회의 처사를 조롱하고 반발하는 기자들… 이들이 있기에 지금의 부산일보는 존재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건강하고 믿음직한 언론사로 건재할 것이다.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 | lee6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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