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9일 토요일

코피 터지고, 아이들은 뒷전... 조마조마한 한가위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9-28일자 기사 '코피 터지고, 아이들은 뒷전... 조마조마한 한가위'를 퍼왔습니다.
[현장] 서울 망원시장 상인들, 홈플러스 입점 반대 천막농성

 
▲ 서정래씨가 이날 반품할 옷들을 창고에서 꺼내 용달차로 옮기고 있다. ⓒ 강민수

▲ 서정래씨가 가게 돌보랴, 당번 서느라 챙기지 못한 점심을 천막 농성장에서 해결하고 있다. ⓒ 강민수

"상인회에서 알립니다. 오늘 농성장 당번인 빨간오뎅, 우먼로드, 올리비아 하슬러는 늦지 않게 제 시간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3일 앞둔 27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망원시장. 농성장 당번을 알리는 상인회의 공지가 울려 퍼졌다. 

여성 의류 전문점, '올리비아 하슬러'의 서정래(51)씨는 오후 1시 당번이다. 서씨는 근무시간을 맞추기 위해 점심도 걸렀다. 혼자 재고 박스 30개를 용달차에 실었다. "장사가 잘됐으면 박스 수가 적었을 텐데…" 재고 물품을 넘기는 서씨의 마음은 무겁다. 얼른 박스를 싣고 시간에 맞춰 농성장으로 달려간다.

농성장은 시장에서 800m 떨어진 '메세나폴리스' 앞의 임시 천막이다. 이 초고층 주상복합 빌딩에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입점하기로 예정돼 있다. 입점은 상인들의 생존과 직결되기에 농성장을 세워 입점을 저지하고 있다. 

▲ 서정래씨가 재고 물품을 물류창고로 보내기 위해 박스를 용달차에 고정시키고 있다. ⓒ 강민수
20년째 망원시장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는 서씨는 홈플러스 반대 운동을 하면서 정작 자신의 장사는 뒷전이 됐다. 농성장 근무 외에도 기자회견, 대책위 회의 준비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서씨는 "대표라는 사람이 신경을 안 쓰고 가게를 등한시하다 보니까 매출에 지장이 없을 수가 없다"면서 "신경 쓰지 못한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큰 충격이 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뒷전이 된 것은 가족도 마찬가지다. 딸 셋을 둔 가장으로서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딸들과 저녁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시간 없다. 이른 아침부터 가게와 농성장을 오가며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도 서씨는 홈플러스가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몰두해 있다. 그는 "(저지 운동을) 망원시장만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더 큰 줄기인 경제민주화 이슈로 확장해야 한다"며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지 말고 큰 길로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인 생계'에서 '공동 운명체'로... 입점 저지의 구심점, 천막 농성장

천막 농성은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마포구 주민 대책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대책위에는 망원시장 상인회, 망원월드컵시장 조합, 지역의 시민단체, 진보신당 등이 참여하고 있다.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망원시장과 망원월드컵시장이 나뉜다. 망원시장은 88개, 망원월드컵시장은 42개, 둘을 합치면 140개 점포가 있다.

대책위와 시민단체,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내세우면서 이 지역의 문제가 공론화되자 홈플러스 측은 눈치를 보는 듯하다. 지난 8월 말 문을 열 예정이었지만 9월 말인 현재까지 입점이 연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농성장을 세울 때만 해도 '장사하기도 바쁜데, 시간을 낼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대부분 1인 사장인 상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50일이 지난 지금, 농성장은 상인들이 뭉치는 구심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끈끈한 연대의 현장을 보여주면서 입점 저지 운동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 '개인'의 생계 문제를 상인들의 운명 공동체인 '우리'의 생존 문제로 확대해낸 것이 주효했다.

몸이 부서져도 끝까지 간다는 각오...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새내기 상인도 이날 농성장에 나왔다. 서씨와 교대한 '빨간오뎅' 사장 신봉진(32)씨는 지난 2일 망원시장에 가게를 열었다. 한 달도 안 된 신참이라 그동안 당번에 끼지 못했지만 추석 대목을 맞아 바쁜 상인들을 대신해 전격 투입됐다.

신씨는 홈플러스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망원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가게 문을 열고 상인들의 활동을 보면서 '이렇게 하는데 홈플러스가 어떻게 들어올 수 있겠냐'고 안심하고 있다.

신씨는 "망원시장이 지역 주민들한테 인기가 좋기 때문에 오히려 홈플러스가 들어와서 망할 수도 있다"면서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오후 5시 당번인 이성진(45)씨는 망원월드컵시장에 들어온 지 2년이 넘었다. 고추장, 된장 등 식자재 도소매점을 운영한다. 그는 평소 오전 4시에 일어나 오후 11시까지 일을 하지만 농성장이 들어선 뒤에는 다음 날 오전 2시까지도 눈을 붙이지 못한다. 대책위 회의와 근무를 하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결국 몸에 무리가 왔나보다. 이날 코피가 났다. 가게를 열기 전에는 체육관을 운영하며 몸을 다졌던 그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이씨는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 몸이 부서져도 끝까지 간다는 각오"라며 "장사만 아는 상인들이 이렇게 같이 '으쌰 으쌰'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며 웃었다. 

▲ 이성진씨가 농성장 근무를 마치고 가게로 돌아와 진열대를 정비하고 있다. ⓒ 강민수

▲ 26일 늦은 오후. 대책위 상인들이 천막 농성장에 모여 회의를 열고 있다. ⓒ 강민수

2012년 추석은 시장 상인들에게 조마조마한 시간

"박원순 시장이 오면 어떻게든 입점 저지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끌어내야 돼."

26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 대책위 상인 5명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한다. 28일 박원순 시장의 농성장 방문을 준비하는 전략회의다. 상인들은 서울시가 대형마트 일부 품목을 제한하고 일요일 의무 휴업을 추진하면서 홈플러스 입점 저지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 시장의 방문은 홈플러스를 압박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박 시장의 입점 저지 지지 발언을 또렷히 듣기 위해 마이크도 준비하기로 한다. 추석 연휴 전날이지만 더 많은 상인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의자도 늘린다. 대책위의 능력을 총동원해 간담회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농성장은 추석 연휴 3일간 휴식한다. 추석 이후가 걱정이다. 다음달 4, 5일 메세나폴리스 내 상인들이 홈플러스 입점을 추진하라는 취지의 집회를 계획한 것이다. 이 상인들은 홈플러스가 빨리 입점해 상권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칫하면 입점을 저지하는 상인들과 충돌할 수도 있다.

추석이 되면 사람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덕담을 나눈다. 그러나 2012년 추석은 망원시장, 망원월드컵시장 상인에게 조마조마한 시간이다.

강민수(comi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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