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8일 금요일

곽노현 유죄 선고한 대법원, 뭐가 그리 급했나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9-27일자 기사 '곽노현 유죄 선고한 대법원, 뭐가 그리 급했나'를 퍼왔습니다.
[주장] 헌재 결정 앞두고 보수 압력에 굴복... 헌재, 독립적 판단 내려야

27일 대법원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징역 1년 형을 확정함으로써 곽 교육감은 직을 상실하게 됐다. 이에 따라 교육감 직무대행 체제를 거쳐 오는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재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어디까지일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대영 부교육감 체제로 운영되는 서울교육은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 혁신학교 등의 추진에 있어서 상당한 후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 새누리당과 교총은 대법원 선고를 재촉했을까

▲ 후보자 매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원심이 확정된 27일 오전 중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한 8개 교원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곽 교육감에 대한 상고심 판결은 법치주의 구현과 국민법감정을 대변한 판결이다"며 환영의 뜻을 밝힌뒤 박수를 치고 있다. ⓒ 유성호

일반적 형사사건과 달리 이 사건은 사실 관계를 밝히는 것이 핵심이 아니었다. 물론 사건 초기에 검찰, 보수언론과 보수적인 정치권, 단체를 중심으로 사전매수로 몰아가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재판 과정을 통해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러니까 곽노현 교육감이 상대 후보를 사전에 매수한 바 없으며, 사후에도 보고받거나 추인한 바도 없으며, 사후에 돈을 준 것이 후보단일화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대가가 아니라는 것 등을 재판부가 모두 인정한 셈이다. 즉,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사실 관계가 아니라 그 사실 관계에 대한 법리적 판단이었다.

그래서 1,2심 재판부는 사후매수죄 조항을 인정하여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사후매수죄 조항에 대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법률 조항의 위헌성을 결정하는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렸다가 그에 따라서 결정을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얼마 남지도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선고를 해버렸다. 왜 그랬을까? 

민주당은 이와 관련, 새누리당의 압박에 의한 대법원의 정치적 굴복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새누리당 신의진 대변인은 지난 8월 21일 원내 현안관련 브리핑 '곽노현 확정 판결· 한명숙 항소심 언제까지 미룰 건가'를 통해 "이래서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며 대법원을 비난했다. 그리고 곽노현 교육감 사건에 대해 조속한 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16일에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은 논평 '곽노현 교육감 판결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를 통해 대법원 판결을 촉구했다. 이런 연유로 계속되는 새누리당의 재촉에 대법원이 화답하고 나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한국교총를 필두로 하여 한국교원노동조합, 대한민국교원조합, 자유교원조합과 퇴직교원단체인 한국교육삼락회총연합회, 한국중등교장평생동지회 등 보수적인 교원단체와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종북좌익척결단, 멸공산악회 등 보수단체들도 지속적으로 대법원의 조속한 선고와 곽노현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은 새누리당을 정점으로 하는 보수집단의 이런 압박에 화답이라도 하듯, 선고 기일을 확정 발표했고, 27일 서둘러 유죄 선고를 내렸다. 

앞장 서서 대법원의 판결을 재촉한 새누리당은 이번 판결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것이고, 보수적인 교원단체들도 어떤 식으로든 교육감 선거에 영향을 발휘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습게도 새누리당이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끼워넣어 함께 재판을 촉구했던 한명숙 전 총리 뇌물 사건에 대해서는 선고를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곽노현 사건이나 한명숙 사건이 모두 법정 선고기일을 넘겼다. 그렇다면 두 사건에 뭔가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혹시 한명숙 사건은 무죄이고 곽노현 사건은 유죄여서 서둘러 선고한 게 아닐까? 

아직 끝나지 않은 법적 분쟁, 최종 결과는?

▲ 지난 6.2 지방선거 후보자 매수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대법원 선고 공판이 예정된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곽 교육감이 출근하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3심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인 사건은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나면 그것으로 사건이 종결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아직 최종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대법원 판결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남아 있다. 

지난 1월에 제기된 곽노현교육감의 위헌법률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서 헌법재판소 역시 선고 기일 180일을 넘겨서 9달 째 심리를 해오고 있으며 최근 공석이었던 헌법재판관들의 임명이 완료되면서 곧 선고가 내려질 수 있는 상황이다.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에서도 민주당 서영교 의원 등은 곽노현교육감의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서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비판했고 김창종 후보자 등은 "여러 각도에서 외국 입법례 등을 참고하여 신중히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법제사법위원회의 야당 의원들은 성명서를 통하여 헌법재판소 결정 시까지 대법원 판결을 미룰 것을 요구하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결정을 해야 하는 헌재는 묵묵부답이고, 기다려야 할 대법원이 용감하게 선수를 친 것이다.

지난 6월 대법원이 GS칼텍스 등이 제기한 조세감면규제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대법원 유죄판결을 정면으로 뒤집고 위헌 결정을 내린 것 때문에 최근 헌법 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관계는 최악이다.

우리 나라 사법제도가 3심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법률에 대한 위헌 심사 권한은 헌법재판소의 고유 권한이다"라고 주장하는 헌법재판소와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위에서 제4의 재판기관으로 행세하려고 한다"는 대법원의 온도차가 큰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곽노현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 판결은 두 기관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선,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는 이를 뒤집고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서 심적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헌법재판소의 고유권한에 대한 침해라며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실제로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해버리면 사건은 더 복잡해 진다. 이 때에는 대법원이 이전의 선례에서 보듯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하부 기관이냐?"는 볼멘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래도 저래도 두 기관은 불편해 질 수밖에 없는데 왜 대법원은 선고를 서둘렀는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공 넘겨받은 헌법재판소... 독립적 결정 내려야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유죄 확정에도 불구하고 위헌 결정을 내리면 곽노현 교육감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법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우리 교육계 또한 대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12월 19일 선거를 통하여 새로운 교육감이 뽑히고 난 다음에 위헌 결정이 나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그렇다고 헌법재판소가 헌법이 부여한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고 사립학교법처럼 무한정 선고를 미루어 버리거나 대법원과의 소원한 관계에 부담을 느껴 섣부른 합헌 결정을 내리는 것은 스스로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헌법의 최고 수호기관이라는 위상을 가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모두 대한민국 헌법에 근거한 독립된 사법기관으로 각자의 역할이 있다. 두 기관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가진 수평적 존재임에 분명하다. 

이제 사법부가 정치적 권력의 시녀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결론이야 어떻게 나오든 정치적 고려없이 오로지 헌법에 근거한 독립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국민들이 주목하는 이유이다. 헌법재판소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조속히, 아무리 늦어도 12월 19일 선거 이전에 위헌 여부에 대한 선고를 내려야 할 것이다.

김행수(hs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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