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7일 목요일

대선 풍경, 때 아닌 ‘노인 삼국지’ 펼쳐내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26일자 기사 '대선 풍경, 때 아닌 ‘노인 삼국지’ 펼쳐내'를 퍼왔습니다.
[기자수첩]노인에 의한 '개혁'과 '통합'은 있다? 없다?

▲ 대선 정국의 삼분지계와 맞물려 39년생 윤여준, 40년생 김종인, 44년생 이헌재가 각각 엇비슷한 역할을 부여받은 채 각기 다른 ‘주군’을 보필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연합뉴스

‘신 삼국지’ 시대의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어쩌면 ‘노객에 의한 정치 개혁 드라이브’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안철수-문재인 후보로 대선 구도가 삼분지계 된 상황에서 김종인, 윤여준, 이헌재 등이 각기 다른 선택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 측은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국민통합추진위원장’으로 합류한다고 밝혔다. 문 후보측은 윤 전 장관이 추미애 의원과 함께 국민통합추진위를 맡아 “이념, 지역, 당파 등으로 쪼개진 한국사회가 갈등과 대립을 넘어, 이제는 서로 상생하고 공존하는 통합의 지혜를 찾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윤 전 장관은 문 후보에 대해 “살아온 길이 항상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면서 “안정감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 무슨 일이든 돕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 측은 윤 전 장관의 합류 의미를 “계층적으로 합리적 보수까지 껴안아서 국민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안철수 후보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던 윤 전 장관이 문 후보를 택한 것이 다소 놀랍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 후보 측 역시 고무적인 표정이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의 경우 안 후보의 ‘멘토’로 언론에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맞지만 이후 여러 강연회에서 “안철수보다는 문재인이 낫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 기자는 “윤 전 장관의 얘기를 들어보면, 안철수 보단 문재인을 더 지지한단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찌되었건, 윤 전 장관의 합류로 안 후보 출마 이후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던 문 후보가 활기를 찾는 모습이다. 최근 며칠 간 안 후보 측이 ‘혁신’을 앞세우며 기존의 정책 포럼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내일 포럼’을 잇따라 발족하며 진보적 지식인을 흡수해가던 형국에서 문 후보 측은 상황을 수습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의 합류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구시대적 인사인 윤 전 장관의 합류가 실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부정적 반응도 보이고, 정치권 최고의 ‘전략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윤 전 장관의 합류로 문 후보가 지지부진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도 엿보인다. 이런 기대감에는 스타일이 확실한 윤 전 장관이 문 후보 주변 친노 인사들의 전횡을 묵과하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자연스레 ‘인적 쇄신’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전망에,  더 나아가 문 후보의 상대적 약점으로 지적되는 ‘확장성’ 측면에 윤 전 장관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예측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런 역할은 공교롭게도 박근혜 후보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비슷하다. 김 위원장은 ‘재벌 개혁’의 이미지로 박 후보의 ‘극우적 이미지’를 탈색하며 동시에 박 후보 주변의 이한구 대표 등 ‘문제적 측근’들과 맞서는 모습으로 대중적 완충 작용을 하고 있단 평가다. 문 후보 측이 기대하는 윤 전 장관 합류의 상도 이런 것일 수 있다. ‘합리적 보수’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윤 전 장관이 문 후보의 ‘친노 이미지’를 탈색하며 친노 측근들과 맞서는 모습을 보여줄 때 중도층에 대한 문 후보의 소구력이 강화될 수 있단 계산다.
이러한 전략은 안철수 후보에게도 관찰된다. 이헌재 전 부총리의 경륜을 높이 사고 있다는안 후보의 입장은 ‘적극적 시장주의자’로 각인되어 있는 이 전 부총리의 이미지를 통해 안 후보에게 달려있는 ‘불안감’을 희석시키려는 전략이다. 이에 대해 한 평론가는 “자본가들에게 나 그렇게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신호를 쏘아보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대선 정국의 삼분지계와 맞물려 39년생 윤여준, 40년생 김종인, 44년생 이헌재가 각각 엇비슷한 역할을 부여받은 채 각기 다른 ‘주군’을 보필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하지만 문 후보의 개혁성을 지지하는 이들은 윤 전 장관의 합류가 탐탁하지 않고, 박 후보가 보다 완강한 보수주의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지층들은 김종인 위원장의 행보가 불안하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를 주창하는 안 후보가 ‘모피아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이헌재 전 부총리와 동행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노객 3인방은 각 후보 진영에서 가장 중요한 ‘아젠다’를 맡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의 존재감은 ‘박근혜 노믹스’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윤 전 장관의 합류 역시 ‘계층적 통합’이라고 하는 문 후보의 가장 큰 지향점에 근거하고 있다. 이 전 부총리 동행 논란에 대해 안 후보 측 역시 “반드시 필요한 분”이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걸 어찌 봐야 할까? 이번 대선 전체를 읽어내기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 밖의 안철수 존재가 문재인 후보로 하여금 지지자들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보수 인사까지 포괄하는 ‘용광로’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세우고, 역시 안 후보의 존재가 박 후보로 하여금 ‘줄푸세’가 아닌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앞세워야 하는 상황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단 점이다. 안 후보 역시 밖에서 안을 넘봐야 하는 조건에서 ‘불안감’ 해소를 위해 과거의 인물과도 어깨를 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역대 가장 강력한 제3후보가 등장한 생경함 때문일까, 전혀 조합이 맞지 않는 것 같은 과거의 인물들이 현실에 소환돼 후보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진귀한 경쟁의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했던가, 대선 레이스 초반을 노인들이 달구고 있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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