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30일 일요일

MB의 수미상관법


이글은 한겨레21 2012-10-08일자 제930호 기사 'MB의수미관상법'을 퍼왔습니다.
[맛있는 뉴스] 부글부글

» 한겨레 신소영

주입식 교육이 효과가 있긴 한가 봐요. 가끔 십수 년 전 배운 게 또렷이 기억나요. 수금지화목토천해, 태종태세문단세…, 매 맞으며 외운 건 더 생생해요. 그런데 그냥 기억만 나는 게 문제예요.

중학교 국어 선생님은 ‘수미상관법’을 가르쳐주셨어요. 그냥 닥치고 “대가리와 꼬랑지가 같은 거”라고 외우라 했어요. 그래서 그런 줄 알았어요. 수업 시간에 긴 당구채로 머리에 한 대, 엉덩이에 한 대 번갈아 때려주시는 친절함도 잊지 않으셨어요. 역시, 맞으며 외운 건 더 생생해요. 수! 빠악! 미! 빠악! 상! 빠악! 관! 아악! 체벌 소리 가득한 그날 국어 시간에는 시를 알게 됐어요. 평생 잊지 못할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이명박 대통령이 9월21일 국회를 통과하고 정부로 넘어온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특검법’을 수용하기로 했어요. 이번 특검은 이 대통령이 퇴임 뒤 머물려 했던 서울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과정의 불법 여부를 조사하는 거예요. 이 대통령도 뭉그적대는 것 같더니 결국 등 떠밀려 허락한 꼴이 됐어요. 그래도 지난 4년6개월간의 임기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라고 칭찬받을 만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민의 뜻을 받든 결정으로 남을지도 몰라요. 힘들게 북극까지 가서 얼음 집어드는 사진, 괜히 찍었어요. 어쨌든 참 잘했어요. 짝짝짝.

사실 저도 요즘 이 대통령이 고마워요. 덕분에 고마우신 국어 선생님 얼굴을 자주 떠올리게 되거든요. 시인들이 운율을 중시하고, 의미를 강조하고 싶을 때 쓴다는 ‘수미상관법’의 기억이 되살아났거든요. 선생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이명박 정부를 되돌아봤어요. ‘특검, 촛불, 용산, 쌍용차, 4대강, 특검.’ 기막히게 운율이 들어맞아요.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수미상관법이에요. 훌륭해요. 자랑스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빼놨다고 섭섭해하지 마세요. 어차피 매년 돌아가며 여는 회의인 거 다 알아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를 넘어, ‘시적으로도 완벽한 정부’가 될 거 같아요. 어린 학생들도 좋겠어요. 앞으로 이명박 정부 5년의 역사 외우기 한결 편해졌으니까요.

이왕 칭찬할 거면, 특검 역사상 2번이나 주인공으로 선발된 사실도 이야기해야 해요. 종신 임기인 이건희 회장님도 1번밖에 못 서본 무대를, 이 대통령은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BBK와 내곡동 사저 문제로 특검 2관왕에 오른 거니까요. 태릉선수촌 국가대표 선수들도 이 근성, 보고 배워야 해요. 이 대통령은 했다 하면 확실하게 해내시는 분이었어요. 게다가 이번에는 내곡동 땅을 청와대 경호실과 함께 산 아들까지도 특검 포토라인에 세워야 할지 몰라요. 10년 전에도 아버지 덕에 거스 히딩크 감독과 사진도 찍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닐 거예요. 대신, 이번에는 옷 잘 입고 나와야 해요.

‘대가리와 꼬랑지’가 같게 된 이명박 정부가 지나면, 국어 선생님은 잘 생각나지 않을 거 같아요. 긴 당구채로 맞았던 기억보다 더 씁쓸한 기억을 남겨주신 분이 등장할 테니까요. 그런데 늘 문제인 건, 그냥 기억만 난다는 거예요.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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