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7일 목요일

시사매거진 2580, 기자 얼굴 안 비추는 진짜 이유는…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26일자 기사 '시사매거진 2580, 기자 얼굴 안 비추는 진짜 이유는…'을 퍼왔습니다.
'공정방송' 배지 착용했단 이유로 기자 리포트 장면 삭제, 다른 화면으로 대체

시사매거진 2580이 지난 1994년 방송을 시작한 처음으로 프로그램 시작을 알리는 기자들의 스탠드 리포팅 없이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 중간 인터뷰 장면이나 취재 과정을 보여주는 화면에서도 기자들의 얼굴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들의 모습이 보이더라도 주로 옆모습이나 뒷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시사매거진 2580에서는 무슨일이 벌어진 것일까?

시사매거진 2580은 지난 23일 우리나라 의료체계상 신속한 환자 치료가 불가능해 사고 이후 제 시간에 치료를 받아야 살 수 있는 골든타임은 드라마 내용일 뿐이라는 내용의 (골든타임은 없다)는 리포트를 냈다.
또한 지난 91년 5월 유서를 대신 써주고 동료의 죽음을 이르게했다는 강기훈씨가 2007년 진실과 화해위에서 명예회복을 하고 재심 결정이 났는데도 판결을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다룬 (21년간의 외침)과 용산에 위치한 쪽방촌인 동자동 마을을 그린 (동자동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그런데 보통 스탠드업으로 시작하던 리포트는 온데 간데 없이 기자들의 오디오의 소리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방송 중간에 얼굴을 비췄던 기자들도 철저히 풍경화면으로 대체돼 베일 속에 가려졌다.
(골든타임은 없다)를 리포트한 최훈 기자는 제때 치료받지 못해 다리를 절단한 시민과 인터뷰 하는 장면과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을 비판하는 의사와 인터뷰 화면에서도 옆모습과 뒷모습만 볼 수 있었을 뿐이다.
(21년간의 외침)를 리포트한 정시내 기자는 강기훈씨와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 잡힌 풀샷을 제외하고 뒷모습만 나왔다.
(동자동 이야기)를 리포트한 강나림 기자도 동자동 주민들과 동네 주변을 거닐고 있는 모습이 나오지만 꽤 먼 거리에서 잡힌 화면이 주로 나온다.

▲ 지난 23일자 시사매거진 2580 화면 중 일부

이 같은 장면은 지난 23일 방송 직전 편집 과정에서 기자들의 모습이 통째로 삭제가 됐거나 다른 그림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보통 기자들이 서서 전면이 나오는 오프닝 리포트는 삭제돼 오디오만 나오는 화면으로 대체됐다. 기자들이 가슴 한켠에 '공정방송'이라고 쓰여진 배지를 찬 모습이 방송에 나가면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21년간의 외침)를 리포트한 정시내 기자는 당초 강기훈씨와 인터뷰하기 위해 함께 공원으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이 있었지만 배지가 보인다는 이유로 뒷모습이 나온 화면으로 대체됐다.
심원택 시사매거진 2580 부장은 편집과정에서 '기자들이 차고 나온 배지가 보이는 화면은 삭제하거나 다른 그림을 무조건 덮어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사매거진 2580 기자들은 지난주 배지를 착용하고 방송한 책임을 물어 경위서까지 제출한 바 있다. MBC 경영진은 배지 착용에 대해 '노조에서 제작한 배지'라며 방송에서 노조활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자 기자들은 자체 제작한 배지를 착용하고 23일 방송을 제작했다. 그러자 MBC 경영진은 배지가 보이는 화면 자체를 가리는 꼼수를 선보인 것이다.
시사매거진 2580은 프로그램 시작에 앞서 기자들이 서서 방송 전반에 대한 주제를 설명하는 리포트를 하는 것이 전통이다. 또한 스탠드업 리포트를 하게 되면 화면 바로 아래 기자들의 이름이 나가게 되는 전통도 이번 일로 인해 사라졌다.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라도 취재 기자의 얼굴과 이름을 같이 내보냈는데 얼굴도 이름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결국 취재기자의 이름은 프로그램 마지막 크리딧 자막으로 밀려났다.
시사매거진 2580 기자는 "공정방송 의지를 보이기 위해 양심상 배지를 착용했는데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프로그램 고유의 포맷이 하루 아침에 바뀌면서 수십년 된 시사매거진 2580의 전통이 깨져버렸다"고 토로했다.

▲ 시사매거진 2580 기자들이 방송에서 착용했던 배지

특히 심원택 부장은 편집에 항의하는 기자들을 향해 '방송이 안되면 책임져라'고 말해 사실상 이 문제로 불방이 될 경우 기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일이 단순한 헤프닝을 넘어 갈등이 깊어지면 방송 파행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시사매거진 2580 기자들은 업무복귀 이후 안철수 원장 아이템이 폐기되고 이에 항의하는 두명의 기자들이 징계성 조치로 교육발령을 받은 일이 이어지는 등 MBC 경영진들이 방송 파행 사태를 유도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번 일 역시 양심에 따른 행위까지도 방송 파행 책임으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 기자들의 주장이다.
한 기자는 "이 문제로 인해 방송 파행까지 가는 것을 기자들은 절대 원하지 않는다"라며 "배지 착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MBC 경영진의 모습을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재훈 MBC 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는 "애초 공정방송 배지는 보도국 조합원들이 업무 복귀를 하면서 노조에 제안해 제작하게 된 것"이라면서 "MBC 경영진이 배지 착용에 대해 노조활동의 일환이라고 하는데 시사매거진 2580 기자들이 자체 제작한 배지까지 문제를 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간사는 "배지 착용은 기자들 스스로 공정방송을 하자는 다짐이지 노조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모든 기자라면 당연히 지켜야할 가치이고 다짐이다. 공정방송을 못했기 때문에 시청자와의 약속을 밖으로 표현한 것이 뭔가 잘못된 건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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