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30일 일요일

일용직, 게임방, 변호사, 약사, 의사... "왜 투표시간 연장 헌법소원에 참여하는가"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9-29일자 기사 '일용직, 게임방, 변호사, 약사, 의사... "왜 투표시간 연장 헌법소원에 참여하는가"'를 퍼왔습니다.
[추석연휴, 가족과 이 이야기를 ①] 투표시간 연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날인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가 기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 유성호

"투표소는 선거일 오전 6시에 열고 오후 6시(보궐선거 등은 오후 8시)에 닫는다."

공직선거법 제155조 제1항입니다. 요즘 이 조항이 뜨거운 감자입니다.

안녕하세요, 독자여러분. 즐거운 추석 보내고 계시나요. 사회팀은 이번 연휴 동안 가족, 친지들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획을 고민하다가 투표시간 연장 문제를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때가 때이니만큼 정치문제가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이 사안은 그중에서도 정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유권자의 권리와 민주주의 근본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투표시간을 2시간 연장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 직전까지 갔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산되자 여론이 뜨겁습니다. 그중에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추진하고 있는 선거법 155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입니다.

이 소송이 주목되는 이유는 바로 아래 조항인 155조 2항(부재자투표의 투표시간 규정)에 대해 지난 2월 23일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민변의 소송은 2항에 이어 더 규모가 큰 1항의 위헌성을 다투는 '투표시간 헌법소원 제2라운드'인 셈입니다.

민변은 지난 25일 오후부터 소송에 참여한 청구인단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모집했는데요. 약 사흘만인 28일 오전 현재 84명이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84명이 뭐 대단한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청구인단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꽤 까다롭습니다.

우선 선거권이 있어야 하고, 시간의 제한 때문에 지난 4월 총선에서 투표할 수 없었거나, 오는 12월 대선에 투표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야 합니다. 신청서에는 투표시간 규정에 의해 기본권을 침해받을 수 있음을 합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현재 직업과 참여 동기를 명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발적입니다. 아무리 공익소송이라고 하지만 소송에 휘말리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지요. 지난 2월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던 소송은 청구인이 단 한명이었습니다.

155조 2항은 이미 승소... 이제 1항을 다툰다

신청서를 제출한 84명을 살펴보면, 남성(65명)이 여성(19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연령별로는 40대가 40명으로 거의 절반이고, 30대(24명), 50대(15명) 순입니다. 개략적인 직업을 보면 상당히 다양합니다. 

자영업 13명, 회사원 11명으로 제일 많구요, 비정규직·계약직과 개국 약사가 각각 5명씩으로 뒤를 잇고 있습니다. 대기업 정규직도 4명, 대표이사를 포함한 중소기업 정규직도 3명, 대학원생을 비롯한 학생도 3명입니다. 택시기사, 벤처기업 정규직, 변호사, 의사, 치과기공사, 학원강사, 예술인, 건설업, 직업상담사, 프리랜서, 국회의원 보좌관까지 정말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신청했습니다.

신청서를 제출한 몇몇 분들에게 전화를 해봤습니다. 서울 노원구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약사 안아무개(42)씨는 "약국은 약사 이외의 사람은 조제나 투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대개 자리를 비우기 힘들다"면서 "저녁 8시 이후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 소규모 자영 약국 입장에서는 투표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 제19대 국회의원선거일인 11일 서울 용산구에 마련된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 남소연

서울 서대문구에서 게임방을 운영하는 김아무개(36)씨는 "게임방이라는 특성상 24시간 운영하는데, 경기라도 좋으면 사람을 많이 써 내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요즘은 그런 것도 아니지 않느냐"면서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고, 사실 요즘 24시간 아닌 곳이 어디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투표일은 법정공휴일 아니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그건 공무원들 이야기다, 자영업에는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용산구에 살면서 비정규 계약직으로 행사출연 일을 하는 안아무개(29)씨는 좀더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지난 총선 때는 겨우 투표 했어요. 막바지에 겨우. 하지만 이번 대선 때는 힘들 것 같아요. 보통 연말에 행사가 많거든요. 투표일에 행사가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며칠 전 리허설부터 참여해야 해요. 몇시에 끝난다 말은 하지만 절대 그렇게 안 끝납니다. 먹고사는 일이 달려있으니 빠질 수 없습니다. 해야 합니다. 저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투표가 너무 힘들어요. 투표시간은 길어야 좋은 것 아닌가요?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투표시간 연장하면 100억 원이 드네 어쩌네 하는데, 100억 원이 아니라 1000억 원이 들어도 해야되는 거 아닌가요?"

전북 전주에서 비정규직으로 건설업에 종사하는 한다는 강아무개(51)씨도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현장에 오전 7시에 가서 오후 6시가 넘어야 끝납니다.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투표는 꿈도 못 꿉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몇 명씩 팀을 이뤄서 현장에 들어갑니다. 이동도 팀별로 차로 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빠진다고요? 못 빠집니다. 다음부터 짤리는 거죠. 상황이 이런데 투표가 뭐가 중요하냐고요. 법정공휴일이요? 직업의 특성상 공휴일이 따로 없습니다. 일이 있으면 해야 해요."

단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송아무개(33)씨는 준종합병원급에서 근무하는 내과전문의입니다. 그는 지난 총선 때 투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근무시간이 오전 9시부터 6시까지인데, 사실 8시까지는 와야 합니다. 그러면 이동시간 고려하면 7시에 나와야 하는데, 2살짜리 애 챙기려면 새벽 투표는 힘듭니다. 총선·대선이 공휴일이라고는 하지만 제가 알아본 바로는 아주 큰 대학병원 정도만 쉬지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일을 합니다. 병원장의 뜻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개인병원에서는 하루 일 하고 안 하고에 따라 매출 차이가 엄청나니까요. 새누리당이 투표하는데 불과 10분 정도만 내면 된다고 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아요."

이외에도 국회의원이 선거일에 더 바쁘기 때문에 투표하기 불가능하다는 의원 보좌관도 있었고요, 언론사는 투표일에 쉬지 않기 때문에 홍보팀도 그에 따라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대기업 홍보팀 근무자도 있었습니다. 위성도시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는 상황에서 오전 일찍 투표를 하려고 하면 대기인이 많아 출근시간을 맞추기 어렵다는 정규직 근로자도 있었습니다.

"투표일 법정공휴일은 공무원들 이야기"

민변 사무차장이자 이번 헌법소원을 담당하고 있는 박주민 변호사는 이번 소송의 승소를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세 가지 이유로 투표시간으로 인해 투표권이 제약되고 있는 정황이 너무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첫째, OECD 가입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 제일 높다는 점(연평균 2193시간). 둘째,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800만이 넘는다는 점. 셋째, 우리나라의 투표율이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시민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나서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질타합니다.

자,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추석 연휴에 가족, 친지들과 한 번 이야기해 볼만한 주제 아닐까요? 우리 자식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산 교육 차원에서라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박 변호사의 말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이 말을 꼭 적어달라고 하더군요.

"아시다시피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보좌관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소위 '터널 디도스' 논란이 있습니다. 이제 새누리당은 투표시간 연장까지 명백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해서 봤을 때,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새누리당은 좀 위험하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단지 나쁘다, 싫다는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정도면 위험한 겁니다."

내일은 반대 논리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왜 투표시간 연장에 신중한가'입니다.

이병한(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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