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9일 토요일

안철수 현상, 깨닫지 못하는 정치세력에 외침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27일자 기사 '안철수 현상, 깨닫지 못하는 정치세력에 외침'을 퍼왔습니다.
(박정원의 따스한 눈길)

▲ '안철수 현상'

좋은 정치인의 기본 자질은 어질고 현명한 사람을 존중해 항상 배우고, 능력 있는 자를 알맞은 자리에 앉게 해 그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재를 편견 없이 쓰고, 이들 인재의 집단이 개인의 욕망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할 때, 비로소 좋은 정치가 가능해진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의 원인을 찾아 들어가면 대개는 교육의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비뚤어진 경쟁에 강요당한 괴물들이 사는 공간이라 표현하면 너무 가혹할지 모르겠지만, 아니라고도 못할 곳이 바로 오늘날이다.

예를 들어 반값등록금이라는 구호에는 사실 등록금을 반만 내도록 하자는 현실적 요구와 함께 대학의 현실과 더불어 사회적 공평에 대한 의문이 혼재되어 있다.

국가가 반을 대주어 내일 당장 반값을 실현한들, 계속 등록금이 오르면 또다시 학생으로서는 제자리가 될 뿐만 아니라 대학들은 오히려 훨씬 쉽게 돈벼락을 맞는다. 등록금을 올리기만 하면 학생부담분과 국가부담분이 덩달아 오르니 도깨비 방망이도 이런 방망이가 또 있을까? 이미 대다수가 기업 논리에 빠진 대학들이니 반값등록금에 반대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반값등록금 실현이 매우 중요한 가치인양 떠드는 이들의 부류는 아마도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중에 대학 다닐 사람은 어떻게 되든 지금 당장 등록금 덜 내고 대학 다니고 보자는 파렴치한들과 그에 영합하는 정치세력이거나, 그게 아니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정쟁의 도구로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일 것이다.

드물지만, 차제에 대학의 문제는 물론 교육제도의 혁신을 이끌어내는 키워드로 반값등록금이라는 구호를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정도의 양심적 인사들도 없지 않겠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일 뿐, 지금 시국에 반값등록금 계속 떠들면 대다수 국민은 결국 비웃고 말 것이다. 키워드는 키워드일 뿐, 너무 떠들다 보면 본질이 키워드에 파묻힌다.

또 중요한 원인 하나를 들라면 남북의 분단 상황이다. 특히 선거가 다가오면 우리 사회의 기득권들은 분단이라는 상황을 이용해 이념전쟁 비슷한 상황을 항상 연출하곤 했다. 북풍, 총풍도 모자라 인간어뢰 코미디도 연출하는 등, 안 그래도 동족 간의 전쟁으로 외상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선거 때만 되면 이 논란의 함정으로 빠뜨려 왜곡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

게다가 경쟁자를 색깔 논쟁으로 공격하다 그의 출신지역까지 통틀어 불신하게 하는 비열한 정치의 결과, 지역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적 갈등이 덤으로 얹혀진 현실이 바로 오늘날이다.

엄격히 말하면 우리의 지역주의 논란은 전체주의의 작은 일면이다. 특정 지역과 특정 지지층을 모두 비슷하게 생각하게 하였으니 전체주의적 정치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는데, 독재정권의 여론 형성에 일정부분 길들여진 많은 이들은 자신의 무의식 깊은 곳에 이미 심어져 있는 혐오의 관성을 이성적으로 용납하기는 어려운바, 사회의 보편적 현상으로 치부해 지역주의라는 단어로 합리화한다. 정신을 지배당했다고 자인한다는 것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사회 문제들과 경쟁의 장은 매우 복합적이고 창의적 발상을 필요로 한다. 성장과 복지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기초과학과 인문학적 성찰이 부족하면 창의적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꾼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급여를 올리면 올렸지 정규직처럼 사용자에게 부담되는 것도 없다. 일자리를 나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성장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래서 혹자는 역발상으로 인재 개발을 통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좋은 예가 안철수 후보다. 의사였던 사람이 컴퓨터용 백신을 개발해 수많은 일자리와 국가적 이익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모두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모두의 비정규직화를 통해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가운데, 실업 시의 사회보장과 인재 재교육 제도를 확립해 사회 안정과 인재 경쟁력을 키우는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제한 것처럼 좋은 정치가 이루어지려면 편견 없는 인재의 등용이야말로 첫 번째 조건이다. 

한평생을 오늘날의 새누리당으로 대변되는 정치 세력 안에서 활동하던 윤여준 전 의원이 문재인 캠프에 오다니, 이를 상상했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나 이미 그 전조는 2008년도부터 무르익었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에 가장 문제는 바로 리더십에 있다는 것을 인지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니 오늘날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한 나라 안에서 정치하는 이들이 적과 아군의 입장이 될 수는 없다.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선의의 경쟁이 되어야 할 텐데 이에는 필수적으로 발전적 변화의 경쟁이 요구된다.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거나, 적어도 변화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 변화의 요구가 안철수 현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만든 이 현상을 기존 정치권은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 왼쪽부터 박선숙 민주통합당 전 의원, 안철수측 유민영 대변인.
박선숙 전 의원이 안철수 캠프에 가고, 윤여준 전 의원이 민주당으로 오고, 이미 한번 민주당으로 왔었던 김종인 전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돌아가 박근혜 후보를 돕고 있다. 그야말로 전통적인 정치 구조에 미증유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인식할 정도로 정치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변화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권력 옆에서 벌어지는 경쟁들이다. 안 봐도 비디오라고 아마 벌써 세 사람 후보의 곁은 철옹성처럼 인의 장막이 두터워지고 있을 것인데, 사실 이를 경쟁이라 표현하기도 그렇다.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의 충성 경쟁과 인정받기 위한 줄서기는 솔직히 경쟁이라 표현하는 것보다 집단 광기라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어질고 현명한 사람이, 또 능력 있는 인재가 왜 이런 우습기만 한 경쟁을 할 것인가? 결국, 이 과정에서 어질고 현명한 사람과 능력 있는 인재는 자존심을 다쳐 정치권을 떠난다.

계산이 정확하다. 더럽고 아니꼬운 걸 참지 못하는 이는 모두 떠나고, 남은 자는 결국 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악순환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것이 바로 우리 정치권의 현실이다.

인재를 영입하려면 경쟁자가 될까 먼저 나서서 방해하는 사람들, 이런저런 입장으로 갈리고 갈리다 어느덧 자기들도 모르게 파편화된 이들은 결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표현처럼 날이 갈수록 작은 소집단으로 나뉘고 나뉘어, 이제는 자신들을 보호하기에 바쁘다.

이러니 언제나 우리 정치는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잡지도 못해 허둥댄다. 정치가 경제권력 등의 이익을 대변해 입법 서비스나 해주는 수준에 머무는 주요한 원인에는 결국 우리 정치권의 이런 인적 구성과 행태들이 있다.

이걸 바꾸라는 것이 유권자의 요구인데, 깨닫지 못하는 정치세력이 과연 살아남을까? 아니 살아남아야 할까? 결론은 너무도 정확하다. 이런 정치세력은 죽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와 겨레가 산다!

박정원 편집위원  |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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