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8일 금요일

초조한 해적들, 인질 죽이기 시작


이글은 시사IN 2012-09-28일자 기사 '초조한 해적들, 인질 죽이기 시작'을 퍼왔습니다.
제미니호 한국인 선원 4명이 소말리아에 억류된 지 500일이 지났다. 싱가포르 선박회사와 한국 정부 모두 여전히 구출 노력이 미진하다. 최근 소말리아에선 협상금 독촉을 이유로 살해된 첫 인질이 나왔다.

한국인 선원 4명이 소말리아에 억류된 지 9월10일로 500일이 되었다. 싱가포르 국적의 화학물질 운반선 MT제미니호(제미니호)에 탑승했던 박 아무개 선장과 김○○·이○○·이○○ 선원은 2011년 4월30일 케냐 인근 몸바사항 남동쪽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지난해 이들이 풀려날 기회가 있었지만 싱가포르 선사와 한국 정부는 이를 놓쳤다. 2011년 11월30일, 해적들이 싱가포르 선사가 건넨 협상금을 받고 제미니호에 있던 중국·버마·인도네시아 출신 등 선원 21명을 풀어준 것이다. 애초 협상대로라면 한국인 4명을 포함한 선원 25명 전원을 풀어줬어야 했다. 

하지만 해적들은 약속을 어겼다. 감시의 시선이 전혀 없었다는 허점을 이용해, 한국인 4명을 데리고 소말리아 내륙으로 이동했다. 이후 해적들은 한국인 인질을 내세워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한국에 붙잡혀간 소말리아 해적들의 석방과 사살된 해적 8명에 대한 피해 보상을 한국 정부에 요구해왔다. 한국인 4명이 재납치된 이후 외교통상부는 국내 언론사에 제미니호 사건을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고 외교부 출입기자단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9개월이 지나는 동안 관련 뉴스를 국내 언론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2010년 납치된 MV 오르나호. 이 배에 탔던 인질이 최근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사건이 까맣게 잊힌 사이 선원 한 명이 몇 달째 연락 두절된 사실이 지난 8월 말 (시사IN)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에 (시사IN)은 8월24일 ‘한국인 선원 4명 피랍 483일째…1명 연락 끊겨’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1보를 내보냈다. 선장 박 아무개씨는 지난 7월까지, 선원 2명은 지난 5월까지 부산의 한 선원 인력공급업체에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안부와 함께 해적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나머지 선원 1명은 5개월이 다 돼 가는 현재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지난 9월10일, (시사IN)은 선원 4명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입수해 일부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납치 11개월째인 지난 3월15일 소말리아 현지 방송 제작진이 촬영한 영상이었다. 한국에서는 이 영상이 링크된 주소를 찾기가 불가능했다. 외교통상부의 요청으로 지난 4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국에서의 검색을 차단해놓았기 때문이다. 

영상 속 4명은 고개를 숙이거나 초점 없이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건강 상태가 안 좋고, 생활이 열악하며, 물이 부족하다”라며 “하루 속히 우리를 구출해달라” “대통령과 당국이 공사에 다망하더라도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라고 이구동성으로 호소했다.  


“몇몇이 열대병으로 고생 중”

제미니호 피랍자들은 과연 500일을 넘는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9월12일 KBS2 (추적60분)은 케냐에서 취재한 피랍자들 소식을 전했다(소말리아는 여행금지국으로 한국인이 방문 또는 체류할 수 없다). (추적60분) 제작진이 케냐에서 만난 소말리아 현지 언론인은 “몇몇이 말라리아와 열대병으로 고생 중이다. 한 명은 좌절감으로 심리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 

2010년 12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지난 7월 풀려난 타이완 어선 쉬푸(旭富) 1호의 타이완인 선장 우차오이(吳朝義)는 귀국 직후 현지 취재진들에게 “거의 날마다 위장이 비어 있었다. 가끔은 돼지도 안 먹을 만한 쌀을 먹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영국 (텔레그래프) 기자 콜린 프리먼은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을 당시의 기록을 담은 책 [소말리아 해적에 잡혀 인질로 살아보니(Kidnapped: Life as a Somali Pirate Hostage)]를 펴냈다. 그는 2008년 스페인 출신 사진기자와 함께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40일 만에 풀려난 바 있다. 책에는 디젤용기에 담겼던 물을 먹고 배탈이 났던 사연 등이 실렸다. 그는 초기 2주는 그럭저럭 잘 버틸 수 있었으나 이후 급속하게 구출에 대한 기대가 떨어졌다고 했다. 

지난 8월29일(현지 시각), 콜린 프리먼은 (텔레그래프)에 아직까지 소말리아 해적에 억류된 177명에 관한 기사를 썼다. 그는 특히 2010년 3월29일 아덴만에서 납치돼 2년6개월째 미해결 상태인 아이스버그 1호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해적들은 아이스버그 1호 인질에 대한 협상금으로 약 800만 달러(약 89억원)를 요구했지만 두바이 선주는 이들의 몸값을 치를 의지가 없다. 선박회사는 생계를 보장해달라는 선원 가족들과의 만남도 거절하고 있다. 아이스버그 1호 인질들은 내륙으로 끌려간 제미니호 한국 선원들과 달리 여전히 바다 위에 있다. 2010년 10월 예멘 출신 선원 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했다. 


“한국 정부, 일본보다 소홀하다”

최근 국제사회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수입이 줄어들자 해적들은 점점 더 흉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1일 (소말리아 리포트)는 해적들이 협상금을 빨리 내놓으라며 인질 1명을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희생된 인질은 2010년 12월 세이셸 공화국 인근 인도양에서 납치된 MV 오르나호의 시리아인 선원으로 파악된다. 

소말리아 현지 방송이 촬영한 선원들(맨 위). 2011년 제미니호 갑판에 서 있는 선원들(위).

제미니호 사건은, 선원들이 217일이나 억류돼 한국인 최장 피랍 사건으로 알려졌던 삼호드림호 사건보다 이미 두 배 이상 장기화됐다. 협상을 전담 중인 싱가포르 선박회사의 경우 한국인 선원들을 구출하려는 의지가 미약해보인다는 것이 국내외 선박업계 종사자들의 증언이다([시사IN] 제259호 참조)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불개입 원칙’만 내세운다. 한국 정부는 협상 주체가 피랍자를 고용한 싱가포르의 선박회사이고 한국 정부는 사태 해결에 나설 수 없다는 방침을 여전히 고수한다. 하지만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할 당시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대한민국은 국민을 보호한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위해행위를 한 사람은 끝까지 추적하여 처벌한다’는 원칙이 다시 한 번 재정립됐다고 홍보했다.

2006년 동원호 납치 때도 정부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2007년 국감 당시 이영호 당시 농수산위 위원은 “(마부노 1·2호 피랍에 대해) 해양수산부 직원들은 ‘선주가 돈이 없는 모양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모양입니다’라며 남의 동네 이야기하듯 한다”라며 당시 해양수산부(지금의 국토해양부)를 비판했다.

2010년 9월10일 외교위 국감에서는 유기준 당시 위원이 “일본 선적 켐스타비너스호가 45일 만에 석방되는 등 한국 국적보다 빨리 석방이 됐다. 한국 정부가 일본보다 구출에 소홀하단 증거 아니냐”라고 지적한 일도 있다. 이에 대해 신각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 직무대행은 “일본 선적이지만 우리 선원이 승선해 있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가 지원을 해줬다. 우리 선사는 일본 선사보다 영세해서 교섭에 어려움이 있다”라고 답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제미니호 피랍 장기화 문제가 거론될 예정이다.

허은선 기자 |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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