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8일 금요일

투표시간 연장은 경제민주화 법안이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27일자 기사 '투표시간 연장은 경제민주화 법안이다'를 퍼왔습니다.
[기고]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

[편집자 주] 최근 정치계 안팎에서 투표시간 연장이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갑자기 말을 바꾸는 등 석연치 않은 이유로 투표시간 연장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 처리가 무산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노동·시민사회에서 국회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디어스)에서는 이와 관련해 투표시간 연장 운동을 벌여온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그리고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법을 대표 발의했던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의 기고를 통해 우리나라의 낮은 투표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투표율 제고를 위한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글 싣는 순서-① 민주노총, “사실 투표시간 연장으로도 부족하다”② 참여연대, “투표권 사각지대와 투표율 제고를 위한 대안은”③ 진선미 의원, “투표시간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작년 한국정치학회에 연구용역한 비정규직 투표참여실태 연구에 따르면 지난 18대 총선과 5회 지방선거에서 투표에 불참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약 65%는 출근 등 외부적 원인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이 연구결과를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 선거일에도 새벽같이 연 가게들을 보며 막연하게 저분들은 투표는 하시고 일하시나 생각을 했지만 비정규직들의 투표참여가 이렇게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차단되어 있으리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아, 우리 민주주의가 벽을 타고 오는 곰팡이처럼 취약한 곳부터 차츰 위협받고 있구나.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원칙은 1인1표의 원칙이다. 아무리 재력과 권력을 많이 가진 이라도 1표밖에 가질 수 없고, 아무리 가난하고 나약한 이라도 1표는 반드시 갖는다. 이러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특정한 이들만을 위한 길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믿음을 가질 수 있다. 특히 힘이 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투표권은 가장 큰 무기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정치학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비정규직 노동자의 71.9%가 ‘나에게 있어 투표만이 정부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고 대답하였다. 이미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만을 위해 정부를 운영하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는 것이 1인1표의 힘이다. 국민을 위해 열심히 뛰는 정치인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뛰는 언론인도, 국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행정가도 1인1표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질 때에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1인1표의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가령 투표소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으면 장애인들은 투표하기가 어렵다. 투표 안내가 한국어로만 된다면 한국어에 서툰 이주민들도 투표권에 상당히 제약을 받는다. 먹고살기 위해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데 왜 투표도 안 하냐며 시민으로서 성의 운운한다면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소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표권이 있는데 왜 투표를 못 하냐고 묻는 건 호리병에 수프를 주고 여우더러 왜 못 먹는지 묻던 이솝 우화 속 두루미와 다를 바가 없다. 1인 1표의 원칙이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선거관리의 모든 차원에서 차별적 요소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선거정보는 모두에게 편향 없이 충분히 전달되는지, 모든 유권자는 정해진 시간에 투표소에 자신의 의사대로 접근할 수 있는지, 누구나 강압 없이 자신이 원하는지 항상 살펴야 하고, 필요하면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7일 오전 국회 앞에서 투표권 보장 국민선언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일을 유급공휴일로 지정하고 투표는 9시까지 실시하라고 주장했다ⓒ연합뉴스

투표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보완을 위해 지난 9월 5일 투표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연장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이번에 발의한 투표시간 연장은 정말 최소한의 조치다. 투표시간 보장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유급 투표시간을 보장하는 등의 사측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고, 지정투표소제를 폐지해 원하는 곳 어디에서든 투표하게 하는 등의 선거제도 변화도 필요하다. 또한 전자투표제 등 발전된 투표기술 도입 또한 고민해야 할 것이다. 투표시간 연장은 당장 이번 대선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표권을 보장할 가장 쉽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선거를 준비하고 관리하는 입장에서야 투표시간이 늘어나는 게 피곤한 일이겠지만,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은 원래보다 투표시간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혼란스러울 이유가 없다. 그리고 예산 부담도 그렇게 크지 않은 부분이다. 쉽게 말하면, 기왕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 정도 더 얹는 정도의 노력만 있으면 된다. 투표권 보장에 여러 방안들이 있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 투표시간 연장만큼은 꼭 되어야 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원칙적 사안이기 때문에 여야간 합의가 가능하리라 생각해 투표시간 연장 원 포인트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 것이다.
새누리당은 선거일이 공휴일이기 때문에 현행 투표시간만으로 충분히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투표시간 연장을 둘러싼 새누리당의 대응은 그 자체로 새누리당이 얼마나 서민의 삶을 모르는가를 드러낸다. 새누리당은 먹고 사는 문제의 처절함을 모른다. 투표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도, 정치가 우리 삶을 바꾼다는 것을 알아도 가게 문을 열어야 하고 첫차를 환승해가며 공장에 나가야 하는 삶을 새누리당은 알까. 이번 투표시간 연장 논쟁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이 세상을 쉴 때 쉬고, 놀 때 놀아온 사람들의 잣대로 본다는 게 여과 없이 드러났다.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합의를 의결직전에 무산시킨 고희선 소위원장은 신고된 재산이 1,226억이다. 그 분에게는 투표를 포기하고 일하러 가야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고희선 소위원장님을 비롯해 새누리당 의원님들께서 혹시 정말로 투표를 못하고 출근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기 힘드시다면 조금 더 열심히 주민들을 만나고 다니시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경제 민주화는 민(民), 즉 사람들이 먹고 사는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렇기에 투표시간 연장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정치관계법이지만, 실제로는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민주화 쟁점 중에 하나다. 

진선미/민주통합당 의원  |  mediaus@mediaus.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