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30일 일요일

23번째 죽음을 바라는가


이글은 한겨레21 2012-10-08일자 제930호 기사 '23번째 죽음을 바라는가'를 퍼왔습니다.
[이슈추적] 먹튀 위한 상하이차의 기획부도 사실로 드러난 국회‘쌍용차 청문회’… 임원 대폭 늘린 쌍용차 “노동자 복직 여력 없다”

» 지난 9월20일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열린 쌍용차 청문회에서 조현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맨 왼쪽)이 “다친 노조원은 없었던 반면 경찰은 107명이 부상했다”고 말하자 김정우 금속노조 싸용차지부장이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해고노동자와 가족 22명의 죽음에 대해) 유감스럽고 죄송스럽고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 사망한 분들의 명예를 생각해서 말하기 어렵지만 그분들 중에는 정리해고와 관계없이 사망한 분들도 있다.”(이유일 쌍용차 대표이사)
“2009년 8월4일까지 경찰의 물리력 행사로 다친 노조원은 없었던 반면 경찰은 107명이 부상했다. 경찰이 다치는 걸 막기 위해 테이저건(권총형 전기충격기)을 사용했다. (노조원 얼굴에 쏜 것은) 빗맞은 것이다.”(조현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

‘먹튀’ 위해 경영 위기 조작

9월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쌍용차 청문회’에서는 한숨과 야유가 터져나왔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치기도 했다. 청문회가 잠시 정회하자 “거짓말 좀 제발 그만하십시오”라는 울부짖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참고인으로 나온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이 억울함이다.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쌍용차 해고자들이) 헤매다가 목숨을 버린 것이다. 23번째 죽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는, 2009년 노동자 2646명을 공장 밖으로 내쫓은 게 애초에 잘못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특히 쌍용차 기술 유출을 완수한 상하이차가 자본을 철수할 명분으로 ‘기획부도’를 이끌었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상하이차는 자동차 개발 기술만 습득하고 쌍용차를 버렸다는 ‘먹튀’ 의혹을 받아왔다. 상하이차가 인수한 뒤 4년간 투자 한 푼 없이 쌍용차가 생산하는 차량의 설계도 등 쌍용차 기술 대부분을 빼내갔으리라는 의혹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L-프로젝트에 따라 카이런의 생산 기술이 상하이차에 넘어간 사실이다. 또 쌍용차와 전산망을 통합해 기술자료에 상하이차가 접근할 수 있게 됐고, 검찰은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도 2007년에 유출됐다고 판단했다.
쌍용차 기술을 확보한 상하이차는 먹튀 수순을 밟았다. 2009년 1월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만기 된 약속어음 약 920억원을 결제할 수가 없고 보유한 현금이 약 400억원에 불과해 4월25일쯤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1500억원을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금난 탓에 파산할 위기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당시 쌍용차는 현금 동원력이 없던 것이 아니었다고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반박했다. “당시 쌍용차는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기술료로 지급하기로 한 1200억원 중 미지급금 600억원과 상하이차에 대한 매출채권과 미수금 등 260억원이 있었다. 현금도 775억원 있어서 920억원 결제에 문제가 없었다. 또 쌍용차가 중국은행 등에 2천억원 대출계약이 있었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힌 상태라 4월 말의 회사채 1500억원도 해결할 수 있었다.”
유동성 위기를 야기한 2008년 매출액 20% 급감도 석연치 않다. 쌍용차의 서유럽 수출은 2008년에 86%나 감소한다. 2007년에는 2만6741만 대를 수출했는데, 2008년 수출은 3774대에 그쳤다. 쌍용차의 주력 모델인 스포츠실용차(SUV)가 유럽 시장의 환경인증을 따내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이미 2007년 쌍용차는 유럽환경기준을 충족한 신차 ‘렉스토II 유로’를 개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출 급감을 막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주장이 가능한 대목이다. 은수미 의원이 “경영 위기를 (상하이차가) 먹튀를 위해 고의적으로 조작했다”고 지적하는 까닭이다.
회계법인, 주력 생산설비를 고철로 간주
자본 철수의 명분을 상하이차는 차곡차곡 쌓아갔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쌍용차 정리해고 해결을 위한 보고서’에서 “(상하이차로선) 쌍용차의 재무 상태와 수익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회적 낙인이 필요했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실제 현금의 유·출입과 관계없는 평가액을 손보는 것이었다. 어차피 회계법인과 회사가 ‘평가’하는 금액이니, 마음먹기에 따라 고무줄 회계를 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2008년 말 쌍용차의 의뢰를 받은 안진회계법인은 갑자기 쌍용차의 건물·구축물·기계장치·공구·기수 등 유형자산 평가에 문제가 있다며 쌍용차 자산 평가액을 전년보다 5177억원이나 감액했다. 공지영 작가는 쌍용차 이야기를 담은 에서 반문했다. “지진이나 화재가 일어난 것도, 외계인이 나타나서 건물에 전부 구멍을 뚫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모든 건물, 기계장치, 차량운반구의 자산가치가 이렇게 변하는 일이 있을까?”
당시 모기업이 파산해 쌍용차보다 사태가 심각했던 지엠대우의 손상차손이 28억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참으로 이례적이었다. 쌍용차 청문회에서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회사 회계팀이) 손상차손을 5200억원으로 한 것을 다른 곳에서도 본 적이 있냐?”고 묻자, 이상근 안진회계법인 상무는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납득하기 어려운 회계보고서로 인해 2008년 9월까지 168%에 불과하던 쌍용차의 부채비율은 3개월 만에 563%로 증가했다. 이런 장부상 부실은 대규모 정리해고를 핵심으로 한 이른바 ‘회생 계획안’의 주된 근거가 됐다 .
안진회계법인은 자산 재평가의 이유를 금융감독원에 이렇게 해명했다. “당시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회사 자산이 의미 있는 금액으로 시장에서 평가받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고철값 수준으로 매각할 것이라고 가정해 가치가 거의 없고 중요하지 않았다.” 멀쩡하게 가동되던 쌍용차의 주요 자산을 고철덩어리로 평가했다는 태연한 주장이다. 안진회계법인이 고철로 평가한 자산에는 2008년 2661억원의 판매량을 기록한 액티언과 전체 매출액의 25% 가량을 차지한 카이런·렉스턴 등 3개 주력 차종의 생산라인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쌍용차가 이 차종을 1∼2년 내에 단종한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라는 게 안진회계법인의 주장이다. 하지만 액티언은 단종한다던 2009년 8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1만5282대를 생산했고, 카이런과 렉스턴은 단종 예정 시점인 2010년 12월 이후 각각 2만8063대, 2만776대를 생산했다. ‘고철’은 아직도 멀쩡하게 새 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지원 연구실장은 “거짓 단종 계획으로 부실을 부풀려 정리해고 정당화의 근거로 활용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2009년 2월5일 기준으로 작성된 한국감정평가원의 유형자산 평가액은 1조7192억원으로 안진회계법인의 평가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2009년 서울중앙지법 파산1부 부장판사 자격으로 쌍용차 경영진이 제출한 ‘회생 방안’을 확정한 고영한 대법관은 지난 7월10일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산평가 관련 회계조작을 주장하는) 근로자들의 소리를 좀더 배려하고 귀담아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했다.

» 2009년 8월5일 쌍용차 평택공장에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조립3 · 4공장 옥상에서 체포한 노조원을 곤봉으로 내리치는 모습. 국가인권위 제공

중국 “철수 원인 경제적 문제 아니다”

또다른 회계법인인 삼정KPMG가 작성한 구조조정안의 일부 자료가 잘못됐다는 사실도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밝혀냈다. “쌍용차의 노동생산성이 낮다며 2646명의 정리해고 근거로 제시한 생산성 지수(HPV·차 1대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의 출처를 미국 민간연구소가 발생하는 자동차업계 보고서인 ‘하버리포트’에서 밝혔는데, 이 보고서는 쌍용차를 조사하지 않는다.” 김 의원이 이렇게 따지자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윤창규 삼성KPMG 상무는 “(하버리포트에 없는) 쌍용차 생산성 지수는 회사 쪽에서 제공한 것”이라고 태연하게 답했다. 삼정KPMG는 당시 쌍용차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자료를 토대로 쌍용차 생산성 지수가 67.4로, 현대차(31.1)나 포드(25.2)보다 높다며 생산 부문에서 2158명의 ‘잉여인력’을 정리하면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삼정KPMG은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회사 쪽 임의자료를 근거로, 쌍용차가 업계 1위인 현대차보다 1인당 생산성이 두배 이상 높다며 노동자를 대량 해고할 근거를 만들어준 것이다.
경영 위기 탓에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게 아니라는 사실은 당시 정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심상정 무소속 의원이 쌍용차 청문회에서 공개한 외교통상부 대외비 문서(2009년 1월20일)를 보면, 한국 정부는 2008년 7월 서울중앙지검이 기술 유출 혐의로 쌍용차 평택 종합기술연구소를 압수수색하자 같은 해 11월 중순까지 중국 쪽 요청으로 모두 20여 차례 면담했다. 중국 쪽은 “한국의 검찰 수사가 과도하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검찰에서 (기술 유출에 대한) 분명한 위법 사실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두 달 뒤인 2009년 1월 쌍용차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사정이 다급해진 한국 외교부가 거꾸로 면담을 요청했다. 한국 상하이영사관 관계자는 “상하이차가 한국에서 철수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철수 원인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렇게 직설적으로 답했다. “첫째 고분고분하지 않는 노동조합, 둘째 한국 정부의 비협조, 셋째 기술 유출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강압수사, 넷째 금융기관 무관심 때문이다.”
심상정 의원은 한-중 외교 당국자간의 이런 면담 내용과 경과를 근거로 “정치적 이유로 상하이차가 철수를 결정했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쌍용차 사태는 기술 유출과 관련해 한-중 정부가 외교 갈등을 벌이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정부의 외교적 무능에서 출발해 경영진·회계법인의 공모로 대규모 정리해고가 단행되고 경찰이 폭력 진압으로 짓밟은 게 쌍용차 사태의 본질이다.”
정부는 노-사간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을 권고하기보다 일방적 파업 진압을 선택했다. 정부는 쌍용차 노조 진압에 전시를 방불케 하는 경찰력과 장비를 투입했다. 2009년 7월20일부터 8월5일까지 약 보름 동안 연인원 1154명의 경찰특공대가 참여했다. 최근 5년간 집회·시위에 투입된 경찰특공대 연인원(2148명)의 54%에 이른다. 물대포 사용량은 2009년 전체 사용량의 89%에 해당하는 228.8t이었다. 이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때보다도 33%가 많은 양이다. 테이저건이 사용된 유일한 집회·시위 진압이기도 했다. 테이저건은 약 5만V의 전류가 흐르는 전기침을 발사해 근육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장비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테이저건을 얼굴을 향해 발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쌍용차 파업 진압이 전두환의 1980년 광주학살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임원 24명→35명 증가, 노동자 복직 0명

결국 희망퇴직 2026명, 정리해고 159명, 무급휴직 468명 등 모두 2646명의 노동자가 쌍용차에서 쫓겨났다. 상하이차는 인도의 마힌드라그룹에 쌍용차를 넘겼다. 이후 쌍용차 임원만 24명에서 35명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쌍용차가 최대 생산량을 기록했던 2002년(23명), 2003년(30명)보다 더 많은 임원 수다. 하지만 지난 3년간 복직된 생산직 노동자는 한 명도 없다. 이유일 쌍용차 대표는 “임원은 전문직”이라며 “회사가 여전히 적자 상태이기 때문에 (노동자) 복직 여력은 없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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