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7일 목요일

가수와 교수, 연예인과 지식인


이글은 대자보 2012-09-25일자 기사 '가수와 교수, 연예인과 지식인'을 퍼왔습니다.
[논단] 당당하게 참여하는 개념있는 연예인과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

1994년 미국에서 공부할 때였다. 매주 내 글을 싣던 신문사에서 한 번은 원고료 대신 가수 나훈아 공연 관람권 두 매를 주었다. 원고료가 100달러였고 관람권은 100달러가 넘었으니 원고료를 두 배 이상 받은 셈이었지만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곧 정치학박사가 될 ‘고상한 지식인’이 어찌 ‘경박한 딴따라’ 공연을 보러 가겠느냐는 생각으로 관람권을 이웃에게 선물했다. 가진 것도 없고 든 것도 없었지만, 뉴스 빼고는 텔레비전도 전혀 보지 않으면서 정말 같잖고 엄청 시건방진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그렇게 무시했던 가수 나훈아를 16년 뒤엔 맘속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2010년 펴낸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서다. 대략 다음과 같은 사연 때문이다. 삼성 이건희 집안의 파티엔 다양한 연예인들이 동원되는데, 초청된 가수는 보통 2-3곡의 노래를 부르고 3,000만 원쯤 받아간단다. 그런데 삼성 쪽에서 아무리 거액을 준다고 해도 나훈아는 초청을 거부했다고 한다. 자신은 대중예술가로서 대중 앞에서만 공연을 하니 자기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 관람권을 사라면서. 한 마디로 ‘부잣집 애완견 노릇’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으리라. 세상에, 권세 높은 정치인들이나 위엄 있는 법조인들에게 현금이나 선물을 쥐어주며 왜소하고 비굴하게 만들어버리는 삼성을 상대로 이토록 줏대를 세우며 자존심을 지키는 가수가 있다니 ..... 지난 학생 시절 그를 깔보았던 것을 속죄하는 심정까지 덧붙여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나아가 가수 나훈아처럼 존경할만한 연예인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배우 안성기와 탤런트 송승환은 작년 여름 문화부장관을 맡아달라는 이명박 정부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적임자가 아니라면서. 상아탑에서 고상한 체하는 교수들은 논문 표절,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등의 온갖 비리를 폭로 당하는 모욕을 겪으면서도 기어코 올라보고 싶은 장관 자리를 뿌리쳤다는 것이다. 특히 내 주변엔 가수 안치환이 노래하듯, 시궁창이건 오물더미건 똥이 많이 쌓인 곳에 가서 붕붕거리며 떼 지어 사는 똥파리처럼, 하찮은 보직이라도 맡기 위해 온갖 치졸한 짓을 벌이며 목을 매는 교수들이 적지 않은 터에. 

작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존경할만한 연예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부가 야당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소셜 넷워크 서비스 (SNS) 선거운동에 대해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김제동, 김미화, 이효리 등의 연예인들은 이런 위협에 주눅 들기는커녕 오히려 조롱하듯 트위터를 통해 투표를 독려했던 것이다. 그들에겐 밥줄이나 마찬가지인 방송 출연이 금지될 것을 각오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인권이 짓밟히는 암울한 현실에도 정부로부터 조그만 불이익이라도 당할까봐 시국선언 같은 단체 성명서에 이름 하나 올리는 것조차 거부하는 비겁한 교수들이 즐비한데 말이다. 

올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얼마나 많은 교수들이 무슨 자리를 좇아 학문의 바른 길에서 벗어나 정치권을 맴돌며 아첨할까. 역사를 돌이켜보면 1961년 박정희가 총칼을 앞세워 민주 정부를 뒤엎은 5.16쿠데타를 지지하는 데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앞장섰다. 

1972년 1인 독재체제 구축과 영구 집권을 위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는 등의 초헌법적 비상조치를 편 10월유신도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떠받쳤다. 1980년 전두환이 광주학살을 저지르고 정권을 찬탈해 폭압적인 군사독재를 실시하는 데도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그리고 40-50년이 지난 요즘엔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해 5.16쿠데타를 미화하는 억지를 부리고 10월유신을 정당화하는 궤변을 늘어놓는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후보만 되어도 주변에 이렇게 곡학아세하는 교수들이 줄을 서는데 대통령에 당선되면 얼마나 넘쳐날지 훤히 보일 것 같다. 이미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 글쓴이는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평화연구소장이며 (남이랑북이랑)(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입니다. 
*  [원대신문] 201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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