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8일 금요일

밀린 임금 생각하면 고향은커녕 눈물이…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27일자 기사 '밀린 임금 생각하면 고향은커녕 눈물이…'를 퍼왔습니다.
체불액 19만명 7천900억원…공공기관도 118억원이나

▲ 나는 명절에 꽃을 팔고 있다. 꽃 판 돈으로 다리 아프신 어머니에게 고운 옷도 한벌 사다드리고 이쁜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아메리카노' 커피도 사주고 싶지만 밀린 학자금과 통신요금을 내면 내 차비 대기도 벅차다. 이런 세상을 웃으면서 지내라는건 잔인한 요구 아닐까? 그렇지만 난 오늘도 망자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산 사람에게 꽃을 판다. "한 송이에 5천원이요~"
우리 겨레의 대명절 한가위. 나훈아의 (고향역) 노래가 떠오른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들은 고향길 이쁜이 곱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
그렇게 가고픈 고향에 차비가 없어 가지 못하는, 그리고 회사일 바쁘다는 이유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늘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일을 해도 임금을 받기 어렵고, 명절에도 쉬기가 어려운 이웃들이 넘쳐난다. 다들 알고 보면 돈걱정이 태산인 사람들이다.
27살 외모가 번듯한 회사원 권아무개씨는 임금이 밀린 지 석달째다. 집에는 이미 의료보험 미납 독촉장이 날아와 가족들이 돈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연휴 5일간 공원묘지 앞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이모가 도와달라고 해 이번에도 경기도 일산으로 가기로 했다. 현금이 오가는 장사라 남도 못 믿고 명절에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든 터라 햇수를 세워보니 벌써 11년째 꽃파는 일을 해왔다. 큰집에 못간지 10년이 넘어 사촌 육촌들 얼굴도 기억이 안날 정도다. 그야말로 (개그콘서트)의 대사를 떠올리게 된다."사람이 아니무니다".         
체불임금 신고센터 운영하는 양성윤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27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추석을 앞두고 접수율이) 평소에 두배 정도 늘었다"며 "원래는 민주노총 법률센터에서 (접수할 땐) 약 한 15건 정도 들어왔는데, 신고센터 설치 이후 2배 가량 늘었고, 대부분 상담건수도 임금체불에 관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다수 노동자가 우리 조합원이 아닌 상황도 많다. 현실의 한계가 있는데 우선 최대한 법적 구제절차를 상세히 안내해드려서 해당 기관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민주노총이 행정관청이나 사법기구도 아니다"라면서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결국, 해당 정부기관에서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을 찾지만, 다시금 정부의 해결능력을 믿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양 부위원장은 이날 구체적인 사례도 언급했는데, "사장이 밀린 월급을 준다고 해놓고, 1년 넘게 체불돼 개인적으로 4천여원 이상의 빚을 지게 됐다. 결국, 노동자들이 소송으로 이끌고 가 확정 판결까지 받았다. 하지만 회사가 법인으로 등록돼 있어, 임금을 줘야 할 대표가 다른 법인을 차려 동일한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체불임금 해결은 물론 강제집행마저 어려워진 상황"라고 말했다.
이처럼 임금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이 넘쳐난다.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평등지부 청주대학교지회 소속 청소노동자들은 26일 청주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주대 청소노동자들은 명절 상여금은커녕 퇴직금조차 못 받게 생겼다. 용역업체가 교체될 때마다 퇴직금을 받았지만, 올해는 최저낙찰제로 학교에 들어왔던 지난해 청소용역업체가 '돈이 없다'며 퇴직금을 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함부로 사람을 잘라 인건비를 줄이려 하고 월급도 멋대로 안주고, 심지어 4대 보험까지 밀려 국민연금도 못 받게 하는 용역업체를 관리감독을 해달라고 끊임없이 대학에 요구했지만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만 말할 뿐"이라며 "청주대는 지금의 사태를 책임지고 조속히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국회 보건복지위 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이 26일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지방의료원 임금체불 현황'에 따르면, 전국 34개 지방의료원 중 임금체불이 발생한 의료원은 총12곳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릉의료원의 경우 전체직원 113명의 평균 임금체불액은 무려 3천만원, 총 35억원에 달한다.
심지어 지난 26일에는 대형유통업체인 이마트에서 사용하는 파레트(대형판)를 제작하는 2차 하청업체의 일용직 노동자 20여명이 체불된 임금 1억원 가량을 요구하던 중, 1차 원청 관리자가 화분을 던져 실신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4일 오병윤 통합진보당 의원은 건설노동자 임금체불 실태 파악을 위해 세종시 현장을 찾았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는 대전건설기계지부 소속 건설노동자 15명이 밀린 임금 탓에 천망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세종시~정안IC 도로건설공사에 참여했지만, 건설기계 대여금 2억5천여만원을 받지 못했다.
오 의원은 "만약 추석전에 해결되지 않으면 이번 국정감사에서 적극 제기할 예정"이라면서 "당면해서 시급히 임금체불로 고통받는 건설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가 계속되지 않도록 법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발주한 전국 45개 공사현장에서도 임금체불액이 11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힌 뒤, "임금체불을 막으려고 법을 개정한 정부가 일을 시키고 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5년 동안 이른바 ‘불도저 정권’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만큼 토목공사와 가까웠던 현정권이 건설노동자의 임금을 밀렸다는 점에서 이런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얼마나 안이하게 생각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년간 추석 전후 15일간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민원 573건 가운데, 181건이 임금체불이다. 지난 2009년부터 매년 체불임금은 1조원을 넘었고, 30만명의 노동자가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달 체불 임금까지 7천900억원. 해당 노동자 19만명에 달한다.
27일 (한국일보) 사설에 따르면, 주로 30인 이하 중소기업(61%), 업종별로 제조업(28%)과 건설업(14.5%)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불가피한 임금체불도 있지만, 임금지급을 우선시하지 않는 사업주들의 안일한 인식에도 원인이 있다. 올해 현재까지 구속된 체불 사업주만 14명. 이들 중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거나 재산을 숨기고 도망가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0일부터 3주간 '체불임금 집중지도기간'을 추진했고, 각 지방고용노동관에서 전담반까지 만들었지만, 지금까지 219억원을 해결하는 데 그쳤다. 이는 근본적인 대책도 될 수 없을뿐더러 7천억원에 이르는 체불임금을 해결하기에 미흡하기 짝이 없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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