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8일 화요일

보수언론의 박정희 ‘쉴드치기’ 안쓰러워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7일자 기사 '보수언론의 박정희 ‘쉴드치기’ 안쓰러워라'를 퍼왔습니다.
“개인사 넘어서야”… “가난한 집에 개발독재는 필수”? “박정희 독재는 무혈독재”?

2012년 대선이 100여일도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최대 이슈로 떠오른 사안은 ‘박정희’다. 그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지지율 조사에서 연일 1위를 달리고 있는데다, 5·16 쿠데타와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서는 보수·진보 언론 할 것 없이 자중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14일자 사설 (‘박근혜 시대’ 열려면 ‘아버지와 딸’ 個人史 넘어서야)에서 “박 후보가 내놓을 새 입장은 ‘박정희와 딸’ 박근혜가 기억하는 박정희 시대가 아니라, 5000만 국민을 대표해 나라를 이끌겠다는 국가 지도자의 눈으로 다시 평가한 박정희 시대에 바탕을 둬야 한다”며 “그래야 박 후보에게 대한민국의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한 입장을 밝힐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인정하라는 보수언론의 지적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또한  박 후보의 관련 발언이 있을 때마다 그의 지지율이 2~3%포인트씩 빠지곤 한 점을 감안해볼 때 보수언론으로서는 반드시 해야 할 조언일 것이다. 하지만 보수언론의 ‘컨설팅’ 여전히 '박정희 미화 작업'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한 이런 작업들이 바탕을 둔 논리는 박 후보의 발언과 일맥상통하고 있기도 하다.
보수언론의 '박정희 미화 작업'은 크게 세 가지 논리 위에서 이뤄진다. 이들 신문이 가장 많이 펴는 논리는 5·16과 유신이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필요악’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박 후보가 “5·16은 최선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일례로 중앙일보 17일자 칼럼 (박정희 독재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박정희 시대를 이렇게 평가했다. “박정희는 이중의 난제를 안고 있었다. 김일성의 적화야욕을 막아내면서 경제발전을 이뤄야 했다. 그런 그에게 개발독재는 종교였다… 김대중과 신민당은 향토예비군 폐지를 주장했다. 북한 위협을 잘 아는 박정희에게 이것은 충격이었다.”
중앙일보의 칼럼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의 적화통일과 남한 내 친북세력의 위협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독재를 한 셈이다. 중앙일보는 게다가 유신을 선포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배경은 ‘가난한 집 수험생’에 빗대 설명하는 궤변을 펼치기도 했다.
“인생에는 욕구를 통제해야 하는 특정한 기간이 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그러하다. 이성교제도, 영화도, 여행도, 달콤한 잠도 참아야 한다. 자신에게 독재 계엄령을 내리는 것이다…가난한 집 학생, 박정희에게 개발독재는 더욱 필수적인 것이다.”

▲ 중앙일보 17일자 칼럼

이 과정에서 중앙일보는 “상대적으로 박정희 독재는 무혈 독재였다”며 “유일한 살인이 75년 인혁당재건위 8명을 사형한 것”이라고 팩트를 왜곡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 이후 계엄사령부는 민족일보에 북한의 자금이 흘러들어갔다는 이유 등으로 조용수 사장을 처형했다. 1967년에는 작곡가 고 윤이상씨, 이응로 화백 등 예술인과 대학교수, 공무원 등 194명이 옛 동독의 베를린인 동백림을 거점으로 대남적화 공작을 벌였다는 ‘동백림 사건’을 조작, 2명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뿐만 아니라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이던 YH 노조원들을 끌어내기 위해 경찰 1000여 명이 펼친 일명 ‘101호 작전’에서 19세였던 김경숙 상무위원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량 학살을 벌이지 않았다고 해도 수많은 민주인사들과 시민들을 체포, 고문하고 노동자 빈민들에 대한 국가 폭력이 자행되던 시대를 열었던 그의 독재를 ‘무혈독재’라고 볼 수 있을까.
두 번째 논리는 박정희 시대에 ‘암’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명’을 가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권침해가 있었지만 눈부신 경제발전만큼은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소위 '공과론'은 겉으로는 합리적인 평가로 보이지만 박 전 대통령의 과를 덮고 공을 내세우기 위한 일종의 프레임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화일보는 14일자 칼럼 (박근혜의 역사관과 史實)에서 이런 논리를 풀어내고 있다. 문화일보는 “지금 뭐라 하더라도, 산업화와 근대화의 토대를 일군 아버지에 대한 평가는 부정되거나 지워질 수 없다”며 “마오쩌둥이 문화혁명 시절 저항 인사들에게 저지른 대숙청의 과오를 오늘날 비판받는다고 해서 중국현대사를 일궈낸 업적 자체를 가리지는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5·16과 유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무마시키려는 시도 역시 보수 언론이 종종 사용하는 프레임이다. 조선일보 7월21일자 칼럼 (5·16, 유신의 기억과 민주당 대선 전략)에서 이를 사용했다. 조선일보는 프랑스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일으킨 두 번의 쿠데타에 대해 “그때나 이제나 두 정변에 대한 평가는 하늘과 땅 차이다”며 “그렇다고 좌우 양파가 200년 전 두 정변을 두고 쿠데타냐 혁명이냐 하는 철부지 논쟁을 벌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헌법에서 이미 쿠데타라고 규정한 5·16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철부지 논쟁’으로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폄훼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또한 5·16을 여전히 혁명이라고 부르는 일부 세력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발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박 후보는 지난 2007년 5·16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고 규정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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