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1일 금요일

"죄다 PB상품 아니면 턱없는 유기농"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19일자 기사 '"죄다 PB상품 아니면 턱없는 유기농"'을 퍼왔습니다.
경제민주화의 거울 (2) 홈플러스-2

5주간 1000개 상품, 최대 50% 할인 유통업체 홈플러스가 창립 13주년을 맞아 1년간 400개 생필품 가격을 인하해 판매한다고 밝힌 1일 오전 서울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이순신 장군 컨셉의 모델과 임직원들이 올해 서민물가를 잡겠다는 의미로 '임진년 물가대첩'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홈플러스는 5주간 1000개 상품을 최대 50%, 1년간 생활용품 400개를 5~50%(평균 13%) 가격을 내린다고 밝혔다.

'상생'을 외치는 홈플러스에 소비자들의 평가는 "제품이 여러 할인마트보다 싼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내수시장이 전체적으로 불황을 겪고 있음에도 '2012 컴퍼니컴퍼런스'를 열어 올해 매출 목표를 12조2천억원으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6.2%p를 높이 책정한 것. 이같은 자신감은 경기가 불황일수록 고객층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민 눈길 끄는 자체 브랜드, 제조업자 목조여

홈플러스의 자체브랜드(PB, private brand) 상품은 시중에 나와 있는 물건보다 많이 싸다. 심지어 절반값인 품목도 있다. PB 상품은 크게 △최대 50% 가격이 싼 '알뜰상품' △최대 20% 싼 '좋은상품' △최상급 상품인 '프리미엄' △친환경 상품 '웰빙플러스' △패션의류 '프리선셋' △아동복 브랜드 '멜리멜로' 등 총 6개로 분류된다.
PB 상품 중 건전지 '테스코파워하이테크'의 경우 AA사이즈 1개당 가격이 300원으로, 시중에서 판매하는 '듀라셀디럭스'(한국P&G, 800원)와 비교했을 때, 500원이나 저렴하다. 한국야쿠르트와 함께 만든 PB 상품 '얼큰한 맛으로 소문난 라면'은 5개에 2,330원으로, 농심 안성탕면(5개 2,850원), 삼양라면(5개 2,780원)과 비교하면 많이 싸다.
또 지난달 홈플러스는 9,900원짜리를 '심플리 와인 11종'까지 출시했다. 이밖에도 과자와 음료, 컵라면, 깍두기, 포기김치, 종합사탕, 웰빙식품 등 약 1만4천개의 PB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1만8천개의 PB상품을 보유한 이마트의 뒤를 이어 국내 두번째로 많다. 지난 2010년 홈플러스 총매출액 중 PB상품은 3조원 이상을(26%) 기록하면서 대표적인 효도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문제는 PB상품이 너무 많아, 다양한 제품에 대한 고객 선택권이 크게 줄었다는 소비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홈플러스 공식홈페이지 '고객의견'에 최아무개씨는 "PB상품…. 좀 심하네요"라는 제목으로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전부 다 PB상품이다. 어느 정도 PB상품은 이해하겠지만, 죄다 PB상품"이라면서 "PB상품 아니면 유기농 머 어쩌고 해도 턱도 없는 가격의 상품만 진열해놓고 뭐하자는 짓인지 모르겠다. 여기 마트 맞습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얼마나 많았으면….
물론 싼 가격에 동일한 제품이라면 소비자에 환호한다. 하지만, 이같은 홈플러스의 행보는 오히려 가공·제조업자를 위협하고 있다.
PB상품의 장점은, 유통업체가 가공·제조를 모두 다함으로써 홍보·운송비를 줄임과 동시에 상품기획·연구·디자인을 연구해 해당 업체만의 희소성있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 가공·제조업체 측의 브랜드 상품(NB, National Brand)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내놓을 수 있으며, 해당 업체의 홍보 효과까지 덤으로 갖고 오기에 대부분의 대형마트에서 PB상품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효과는 홈플러스에만 돌아오지 가공·제조업체의 경우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가장 큰 이윤을 봐야 할 대형마트에서 자사 브랜드 상품이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셈.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홈플러스는 이런 가공업체에 맡겨 PB상품을 만들고 있다.
한국야쿠르트와 함께 만든 '얼큰한 맛으로 소문난 라면' 등 6개 상품, 국제제과와 협력해 만든 '알뜰상품 디저트 과일맛 종합캔디', LG 아워홈에게 순대볶음과 청국장찌개, 동화식품과 함께 만든 '천일염으로 만들어 아삭하고 시원한 깍두기' 등.
그렇기에 가공·제조업체의 브랜드(NB) 상품 생산을 위축시키며 동시에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가공·제조업체들은 어떻게든 대형마트와 함께 PB상품을 만들어 NB상품의 손해를 메우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독자적인 브랜드를 붙여 팔 수 있는 능력있는 회사들이 원주 브랜드 업체의 주문대로 제조·납품을 해야 하는 이른바 '하청' 관계(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추석 대목을 앞두고 잇달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으로 인해 과일 채소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18일 오전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상추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계약재배로 수확 전에 미리 팔아버린 농수산물 값 뛰어도…  

생산직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대다수 대형마트들은 농사가 시작되기 전 재배지에서 나올 농작물을 사들이는 입도선매 방식으로 농수산물을 확보한다. 이는 당해 재해가 덮쳐 농수산물 가격이 폭등하는데도 제 값을 못 받는 경우도 많다.
홈플러스는 경북 의성군, 경남 창녕군 농가와 100% 계약 재배를 통해 마늘을 공급받는다. 이 회사는 역시 100% 계약 재배로 전남 무안군과 해남군에서 양파를 사들이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과일의 계약 재배율도 지난해 70%에서 90%로 끌어올렸다"며 "특히 지난해보다 작황이 40∼50% 나쁜 자두와 털복숭아는 전남 남원시 등 새로운 산지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10년 8월 2일, 유통업체, 전국 훑으며 추석 과일물량 확보전)
그런가 하면, 국내·외 다양한 농수산물을 만날 수 있는 대형마트로 인해 일부 상품은 전혀 팔리지 않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이는 주고객이 서민층임을 감안할 때, 국내산 중에서도 생산지에 따라 값싼 농수산물이나 그보다 더 싼 외국산 농수산물을 사기 때문이다.
춘천의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입점 당시 상인연합회와 ‘강원도 쌀을 주력으로 판매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마트들이 팔고 있는 외지 반입 쌀들은 재고 처리를 위한 값싼 쌀로, 도내 생산 쌀보다 20㎏당 1만5,000원까지 싸다. 소비자로서는 싸게 물건을 살 수 있어 좋은 현상이라 할 수 있겠으나, 생산자인 농민의 입장에선 죽을 맛이다([강원도민일보] 2010년 10월 4일, [사설]대형마트 지역과 상생길 모색해야)
또 대형마트의 저렴한 농수산물 가격도 농·어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농수산물 평균가격보다 턱없이 부족한 가격으로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대형마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격대 맞추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우려된다.
대형소매점 등을 통해 판매되는 쌀은 정부 집계가보다 더 싼 경우도 많았다. '행사미'라는 이름으로 저가에 판매되는 쌀들이다. 일부 농민들은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의 대형소매점들이 '미끼 상품'으로 쌀값을 공급가보다 더욱 싼 값에 내놓으면서 쌀값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매일일보] 2010년 4월 16일, 쌀값 추락 "농사 계속해야 하나" 시름에 젖은 농심)
더군다나 일부 지역에선 생산지임에도 해당 지역의 농수산물을 거의 판매하지 않는 곳까지 등장했다.
지난 2010년부터 지난 5월까지 지역내 대형마트들의 지역생산품과 농·수·축산물 취급 비율을 조사한 결과 평균 1.9%로 극히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이마트 춘천점의 경우 지역 생산품 취급 비율이 4.5%로 다소 높은 반면 나머지 3개 대형 마트들은 0.3∼1.9%를 기록하는 등 지역 생산품들이 대형마트들로부터 소외당한 것으로 나타났다(…)지역 농·수·축산물 취급비율은 롯데마트 춘천점 7.3%, 롯데마트 4.4%, 이마트 3.8% 등을 기록했으나 홈플러스 춘천점은 0.5%로 거의 지역 농·수·축산물을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강원도민일보] 2012년 7월 13일, 춘천 대형마트에 지역 생산품 없다)
이같은 현상은 생산과 가공·제조 과정이 모두 유통과정인 홈플러스에 기대는 모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홈플러스측에서 제조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PB 상품을 만들어 대체하면 되고, 농수산업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지역이나 외국산 물건을 비치해 더 싼 값에 판매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홈플러스의 한마디에 '생산·가공·제조과정'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원치 않더라도 '길들이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농어민은 입도선매나 농수산물 가격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대형마트 탓에 큰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면, 이를 메우기 위해 원재료 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어 가공·제조업자는 원재료 가격의 상승과 비례하게 대형마트에서 NB상품이 팔리지 않아 손실이 생기면, 매출을 채우기 위해 상품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상생 주장하는 홈플러스는 '갑', 소비자와 생산자는 '을'

'상생'을 주장하는 홈플러스가 원치 않더라도 거시적으로 내수시장의 물가변동에도 큰 영향을 줄 가능성까지 가진 셈. 또 생산·제조-유통-소비자로 구성된 시장 관계에서 중간자 '유통업자'의 역할이 커짐으로써 '갑'의 역할을 맡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최근 홈플러스 PB 상품 중 △지난해 3월 '알뜰상품 디저트 과일맛 종합캔디'(국제제과)에서는 8mm의 철사가 발견 △지난해 4월 '무안양파&갈릭스낵'(풍전나이스제과)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세균 발견 △'표고절편' 이산화황이 기준을 초과 △지난해 8월에는 조미오징어에서 대장균이 검출 △지난해 10월 '고춧가루'(진미농산)에서 식중독균 검출 △지난해 11월 '100% 태양초 고춧가루와 의성마늘로 만든 포기김치'(동화식품)에서 식중독균 발견 △즉석식품 '연어초밥'에서 식중독균 발견 등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PB 상품에 대한 정부측의 제재와 홈플러스측의 대응은 실로 미비하다.
지난해 11월 PB상품이 문제가 되자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해당 상품 '45일간 판매정지 처분'이 전부였고, 홈플러스 측은 PB상품을 만드는 제조업체와 관계를 끊거나 "부적합 판정된 제품을 구매한 경우 반품해달라"는 말이 전부였다.
당시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형마트에서 이런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해 국민의 불안감이 확산하는데도 판매중지 조치에 그치고 있어 식품위생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것 같다"며 "국민 건강을 위해 강력한 행정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PB상품의 특성상 제조사와 유통사가 달라서, 비교적 홈플러스측의 책임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홈플러스가 영국계 기업이므로 정부기관에서도 강경하게 대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소비자는 책임 소지가 불명확한 상품을 저렴하다는 이유로 구매하는 셈이다.
미국의 최대 매출을 올리고 있는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 미국 전 지역 300개 이상의 매장과 캐나다와 영국 런던까지 진출한 유기농 전문 슈퍼마켓이다. 이들은 지역 사회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채소·과일·달걀·우유·육류를 가져다 비싼 가격에 판매한다. 가격도 저렴하지 않지만,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홀푸드마켓의 비결은 바로 △ 빈곤층의 노동력 착취도 없고 △농민-유통사의 공정거래와 직접 운송도 추진하며 △ 청정 제품만을 엄선에서 판매한다는 점 △ 지역주민과도 상생하는 모습이 소비자에게 믿음을 끌어낸 것이다.
소비자를 속이지도 않았고, 제품에 따른 책임도 지며, 공급자를 배려하는 모습. 시장 속 주체인 생산자·제조자·소비자를 모두 '을'에 입장을 전락시켜버린 홈플러스. 막대한 매출을 기록하는 같은 대형마트치곤,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일 것이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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