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1일 금요일

[사설]학교폭력 대책 한계 드러낸 공주 고교생 자살


이글은 경향산문 2012-09-20일자 사설 '[사설]학교폭력 대책 한계 드러낸 공주 고교생 자살'을 퍼왔습니다.

서울 신문로에 있는 경찰박물관 건물 벽면에 경찰관이 ‘빵셔틀 운행중지!’라고 크게 쓴 광고판을 들고 있는 설치물이 있다. 그 안에 ‘학교폭력 상담/신고 117’이라는 안내문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학교폭력 문제 개선에 경찰까지 나섰음을 보여주는 이 대형 광고물은 정부가 국무총리와 10개 관련 부처·기관의 장을 포함한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는 등 이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던 지난 3월 등장한 것이다.

지난 18일 충남 공주에서 고등학생이 또 자살했다는 충격적 소식이다. ‘카카오톡’ 그룹채팅방에 친구 20명을 초대해 작별 메시지를 보낸 뒤 아파트 23층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휴대전화에는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과 나눈 대화 내용과 집단폭행을 당해 생긴 상처를 찍은 사진 등을 남겼다. 중학교 때 집단따돌림(왕따)을 당했던 과거가 친구들에게 알려지면서 다시 왕따와 폭력에 시달린 정황도 발견됐다. 학교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초고강도 대책을 시행하는 와중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그동안 정부는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면서 공권력이나 행정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테면 현재 14세 이상인 형사처벌 가능 연령대를 12세로 낮춘다든가, 학교폭력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다든가, 폭력 학생을 강제전학시킨다든가 하는 등이다. 그러나 이런 처벌 중심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번 사건이 보여주었다.

숨진 박모군의 자살 징후는 여러 경로에서 탐지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자살 시도가 있었는데 학교 측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고, ‘정서행동검사’에서도 2차 검사 대상자인 고위험군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담임교사는 지난 1학기에 박군이 친구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실을 듣고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군이 직접 자신의 상처를 찍어 카카오톡을 통해 친구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학교 안의 현실이 이런데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나 ‘117 신고 전화’가 얼마만큼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불도저식·여론몰이식·단기적·전시적 정책에만 연연할 게 아니라 학교 현장의 실상과 문제의 본질부터 인식했으면 한다. 누차 지적했듯이 단기적으로는 심리·상담 전문가의 학교 배치를 늘리고 중장기적으로 입시 중심 교육과 경쟁·불통의 학교 문화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