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일 토요일

“‘실명제는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 헌재 결정 혁명적”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31일자 기사 '“‘실명제는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 헌재 결정 혁명적”'을 퍼왔습니다.
박경신 교수 “자의적 수사 가능성으로 표현의 자유 위축”… 선관위도 “실명제 폐지가 바람직”

인터넷 게시판에 실명인증 의무를 부과한 인터넷 실명제(정보통신망법상 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한 위헌 결정은 ‘범죄자취급=실명제’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헌법재판소가 명확하게 실명제의 위헌성을 규정한 만큼, 공직선거법상 실명제도 같은 취지에 따라 폐지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30일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본인확인제는 자의적인 수사가능성으로 사람들을 위축시킨다”며 헌재가 이 점을 명확하게 지적했다고 말했다. 헌재가 결정문에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이므로 표현의 자유의 사전 제한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 제한으로 인하여 달성하려는 공익의 효과가 명백하여야 한다”고 밝힌 대목에서 인터넷 실명제가 “사전제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실과 진보네트워크센터, 언론개혁시민연대, 참여연대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박 교수는 헌재가 위축효과를 발생시키는 규제에 대해 엄격한 심사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인터넷 실명제가 ‘사전검열’이 아니더라도 그에 해당하는 위축효과를 발생시키는 ‘사전제한’인 만큼,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 없는 한 사전검열이나 사전제한이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논리라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인터넷 실명제가 ‘소용없는 규제’였다는 점을 헌재가 인정한 대목도 “획기적”이라고 평가했다. 헌재가 “우리 법상의 규제가 규범적으로 현실적으로 적용되지 아니하는 통신망이 존재”한다고 밝힌 것은 “결국 인터넷망이나 정보에 직접적인 규제를 가하는 소위 ‘대정보규제’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실명제가 적용되지 않던 해외 서비스나 SNS에 대해 ‘더 강한 규제’ 대신 ‘현실을 인정하자’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의 의미와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장여경 진보넷 활동가가 토론하고 있다. 오른 쪽은 이날 발제를 맡은 박경신 교수. ⓒ이치열 기자 truth710@

인터넷 실명제가 익명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재의 결정도 높이 평가했다. 박 교수는 “헌재는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권 관련 법익의 침해도 명백히 인지하고 있다”며 “수사편의 등에 치우쳐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와 같이 취급한다”는 헌재의 결정문을 인용했다. 실명제로 축적된 정보가 수사기관에 전달되는 등 ‘수사편의’를 위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가능성을 헌재가 폭넓게 인정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게 박 교수의 결론이다. 그는 “선거법 하나만을 위해서 인터넷의 익명성을 없애버린다는 것은 어느 법원의 형량을 통해서도 합헌결과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인터넷 게시판에 후보자 관련 정보를 게시할 경우 실명확인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헌재 결정 직후 이 같은 제도에 대해 폐지 의견을 모으고,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박 교수는 “실명제는 국가와 개인과의 관계를 감시자와 감시대상으로 만들려는 여러 제도들 중 가장 중요한 제도”라며 헌재의 이번 결정이 “범죄자취급=실명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이 ‘기본’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한편, 이번 결정에 따라 수사편의를 위한 여타 실명제는 존립 근거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해석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활동가는 “(헌재가) 거의 완결적인 형태로 인터넷에서의 익명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선언했다”고 말했다. 또 헌재가 개인정보 유출 위험 등을 인정한 대목을 들어 “익명 표현의 자유뿐만 아니라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차원에서 향후 법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악플’에 대해서는 “외국의 보편적인 규제대로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주요 포털들이 가입돼 있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측도 “인터넷 실명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규제였다”고 지적했다. 최민식 정책실장은 “이번 결정이 국내 인터넷 기업의 경쟁력을 제한하는 규제 개선의 물꼬를 튼 것”이라며 “인터넷 업계에 자율적인 규제 권한이 주어진 만큼, (실명제 폐지로 인한) 우려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회원사들과 함께 공통적인 정책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박영수 법제과장은 “헌재 결정을 환영한다”며 “선거법상 실명제도 그런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실명제는) 사실상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면서도 “법 개정이 안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선관위는 사후조치를 엄격하게 하는 방안과 사전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방법 등을 실명제 폐지 이후의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허완 기자 | nin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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