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9일 일요일

대청봉은 잠들고 싶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 블로그 물바람숲 2012-09-04일자 기사 박그림님의 칼럼 '대청봉은 잠들고 싶다'를 퍼왔습니다.
박그림의 설악산 통신 ① 무박산행의 문제점
주말 4만이 오른다…정상주, 도시락, 기념사진, 그리고 욕망을 채우러
입산예약제 절실, 외경심 가진 사람만 정상에 오르도록 해야

»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로 넘어오는 무박산행 등산객의 행렬.

설악산국립공원 탐방객의 3분의 1이 몰리는 시월 단풍철, 주말 새벽 1시, 오색 등산로 입구에 관광버스가 하나둘 도착해서 무박 등산객들을 쏟아놓는다. 철문은 굳게 닫혀 있고 몰려드는 등산객들이 늘어나면서 내달리기 직전의 경주마처럼 안달을 하며 떠드는 소리와 입산시켜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가득하다.

입산 규정에는 해뜨기 두 시간 전에 입산을 시키도록 되어 있으나 등산객들의 아우성을 이기지 못하고 철문이 열린다. 산길을 가득 메우고 정상을 향해 물밀듯이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집단 행군을 보는 듯하다.

» 문을 열어달라고 재촉하는 오색 등산로의 무박등산객들.

가다 서다를 되풀이 하면서 어둠을 가르고 올라서는 등산객들의 불빛이 새벽 세시가 되면 보이기 시작하고 서서히 대청봉을 뒤덮는다. 시월 대청봉은 바람이 맵고 추워서 오래 머물지 못한다. 중청대피소로 이어지는 불빛이 길게 꼬리를 문다.

어둠을 헤치며 설악산을 오르면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잠깐씩 서서 쉬는 것조차 쉽지 않을 만큼 밀려서 올라가게 되고 발밑을 비추는 작은 불빛에 의지해 오르다 보면 오직 오르는 일 뿐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다.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마음은 바쁘지만 몸은 천근만근 늘어진다. 그렇게 시작된 등산객들의 행렬은 하루 종일 이어지면서 대청봉은 몸살을 앓는다.

» 단풍철엔 하루 3만~4만 명이 대청봉에 오른다.

주말 이틀, 3만~4만 명이 대청봉에 올라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정상주를 마시고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정상에서 20여분만 내려서면 취사를 할 수 있는 중청대피소가 있는데도 막무가내다.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여러 개 붙어있는 출입금지 구역까지 등산객들로 가득 찬 정상은 '대청식당'으로 바뀌고 정상비를 붙들고 벌이는 꼬락서니는 정말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설악산 어머니의 정수리에 올라 서로 사진을 찍겠다고 욕하고 싸움질을 하면서 벌이는 추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온갖 험한 말이 오가고 자연에 대한 예의와 염치는 멀리 사라진 지 오래다.

» 대청봉에서 '정상주'를 마시는 등산객. 고산 영봉의 존엄성은 깡그리 사라지고 만다.

» '대청봉 식당'으로 바뀐 대청봉.

설악산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 대청봉에 올라 말없이 서서 힘은 들었지만 올라올 수 있도록 애쓴 내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스스로 대견해 하며 자연 앞에 겸손해지는 일, 굽이치는 산줄기며 깊게 패인 골짜기를 바라보고 거기 깃들어 사는 뭍 생명의 노래에 귀 기울이는 일, 발 디딜 틈 없이 대청봉을 뒤덮은 등산객들 속에서 설악산 어머니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아픔을 나누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설악산은 가슴 속 깊이 아로새겨져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설악산 어머니는 말없이 모든 것을 받아주고 아무런 바람도 없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베풀고 있지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 등산객에 밟혀 무너져 내리고 있는 대청봉 등산로.

수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에 짓밟힌 대청봉은 산 풀꽃이 사라지고 허옇게 속살이 드러났다. 깊이 50㎝ 이상 패인 곳에서는 바위가 드러나 돌무더기로 바뀌고 상처는 더욱 깊어지고 있지만 아픔을 나누는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오직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바쁜 등산객들 속에서 어쩌다 보게 되는 걱정하는 눈빛이 그나마 가냘픈 희망을 갖게 하지만 흙은 패이고 묻혀있던 돌이 드러나 흔들리고 빠져서 뒹군다.

정상부 일대가 그렇게 넘치는 등산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어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방치할 것인가. 언제까지 지역주민과 등산객들의 눈치만 살필 것인가.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 후회하면 무엇 하겠는가.

» 표토가 사라지고 돌무더기만 남은 대청봉.

설악산이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받아들이는 입산예약제를 실시해야 한다. 여러분 집에 매일 백 명씩 손님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등산로의 나무데크와 계단과 같은 인공시설물을 점차적으로 철거하여 자연방해물을 최대한 살려냄으로써 유원지에 갈 사람이 정상에 올라 유원지에서나 볼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청봉은 정상으로서의 존엄성과 외경심을 갖고 올라야 하는 곳이다. 그런 마음으로 산을 오르내리며 자연과 마음을 나누고 상처를 더듬어 아픔을 느낄 때 설악산은 아름다움을 되찾을 것이다. 찬바람이 불면서 벌써 밀려드는 등산객들로 몸살을 앓게 될 설악산이 걱정스럽다.

글·사진 작은뿔 박그림/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설악녹색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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