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3일 목요일

“시신으로 돌아온 남편, 등이 다 시커멓게 타 있었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13일자 기사 '“시신으로 돌아온 남편, 등이 다 시커멓게 타 있었다”'를 퍼왔습니다.

인혁당 사형 이수병씨 부인 이정숙씨

[인터뷰] 인혁당 사형 이수병씨 부인 이정숙씨

남편 주검 고문 흔적 역력 
손톱·발톱은 찾아볼수도 없었고 
발뒤꿈치는 시커멓게 움푹 들어가 
“당국이 화장해 재로 만들어버린 
다른 피해자들 생각하면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당신 아기 얼굴 좀 봐요, 얼굴. 이만큼 컸어요. 얼굴 좀 봐요.’돌을 갓 넘긴 어린 딸을 등에 업은 28살의 젊은 아내는 속으로만 되뇌었다. 1975년 4월1일 서울 서대문구 서울구치소 안마당. 멀찌감치 남편의 모습이 보이자 아내는 등을 돌려 필사적으로 딸의 얼굴을 보였다. 1년 만에 본 남편이지만 소리내어 말을 걸 수는 없었다. “남편을 만나게 해준 것이 알려지면 내 목이 달아난다. 아는 척도 말을 걸지도 말라”고 교도관은 신신당부했다.속으로만 외친 아내의 말을 들었을까. “많이 컸네. 많이 컸네.”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여 변호인 접견실로 끌려가던 남편이 말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는 아내가 들은 남편의 마지막 육성이 됐다. 학원강사였던 남편 이수병(당시 38살)씨는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4월8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고, 이튿날인 9일 새벽 형장에 끌려가 세상을 떴다.“그렇게 빨리 죽일 줄 알았으면, 그때 붙잡고 무슨 말이라도 했을 텐데….” 이수병씨의 아내 이정숙(65)씨는 12일 와 만나 37년 동안 쌓인 한을 토해냈다.

구속 뒤부터 남편 얼굴 못봐 
교도관 도움으로 먼발치서 잠시 
두돌 안된 딸 들어보이고
말한마디 못했다 교도관 다칠까봐 
“그렇게 빨리 죽일 줄 알았으면 
무슨 말이라도 했을텐데…”

생전의 남편은 통일운동가였다. 1961년 5·16 쿠데타가 있기 사흘 전인 5월13일 서울에서 열린 통일촉진궐기대회에 참석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유명한 연설도 했다. 이 일로 쿠데타 직후 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 수립 이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해 이씨를 비롯한 8명을 사형에 처했다.그들을 구속한 직후부터 1심·2심·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유신 정권은 단 한 차례의 가족 면회도 허락하지 않았다. 교도관의 도움을 받은 덕에 오직 이씨만 수감중인 남편의 얼굴을 잠깐이나마 보았다. 사형당한 나머지 7명의 유족은 그런 행운조차 누리지 못했다.“법정에서도 뒷모습밖에 못 봤어요. 아빠들 옆에 선 헌병들이 뒤도 돌아보지 못하게 했어요.” 환갑이 넘은 아내 이씨에게 죽은 남편과 그 동료들은 여전히 ‘아빠’다.사형은 새벽에 집행됐지만, 시신은 오후 6시가 지나서야 넘겨받았다. 죽은 이의 몸뚱이에는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등이 다 시커멓게 타 있었어요. 손톱 10개, 발톱 10개는 모두 빠져 있었고, 발뒤꿈치는 시커멓게 움푹 들어가 있었어요.” 그날을 회고하던 아내 이씨는 “당국이 시신을 화장해 재로 만들어버린 다른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며 치를 떨었다.

박정희가 내 남편 죽였고 
박근혜는 우리 자식들 죽이려 하는 것 같아… 
자기 아버지 때문에 이만큼 됐지만 
자기 아버지 때문에 결코 대통령 될 수 없을 것”

이후 37년이 넘도록 매년 4월9일이 되면 이씨는 경남 의령에 있는 남편의 산소에 갔다. “박정희 살인마, 내 남편을 살려내라”며 울었다. 남편이 죽을 때 5살도 채 되지 않았던 어린 아들 둘과 딸도 엄마를 따라 이유도 모른 채 울었다.그에게 ‘박정희’와 ‘박근혜’는 같은 이름이다. “(박근혜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걸 볼 수가 없어요. 꺼야 해요. 한동안 텔레비전에 안 나올 때는 살 것 같았어요. 요즘은 텔레비전을 거의 못 봐요.”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남편이 사형당했던 그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지금껏 언론에 나선 적 없는 이씨가 12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한겨레) 인터뷰에 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재심 무죄 판결로 조금이나마 위안받나 했는데, 대통령 나온다고 우리를 들먹여도 되는 건가요? 또 우리를 이런 데까지 나오게 해야 하는 건가요?”박 후보의 발언에 대한 심경을 묻자 이씨는 그만 울어버렸다. “아아, 박정희가 내 남편을 죽였고, 박근혜는 우리 자식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손에 쥔 휴지로 눈물을 닦아낸 이씨는 “이 말은 꼭 하고 싶다”며 꼭꼭 힘주어 덧붙였다. “박근혜는 자기 아버지 때문에 이만큼 됐지만, 자기 아버지 때문에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을 겁니다.”

글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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